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땅,
아나톨리아

터키 여행기 <1>(2015년)

by 김지나

풍광은 풍광일 뿐이지만 이 바다가 동해나 서해가 아닌 지중해라는 사실에 어찌 감회가 남다르지 않으랴.

버스는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끝도 없이 가고, 쪽빛 지중해를 보며 영화의 한 장면, 소설 속 명장면이 스쳐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만난 고대 유적 사갈라소스는 단박에 1만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땅, 아나톨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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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행장을 꾸리는 일조차 일상의 시간에서는 호사다. 비행시간을 코앞에 둔 순간까지 산처럼 쌓인 원고를 털어야 했으니, 여행에 대한 정보는 고사하고, 출근길에 끌고 온 캐리어 속에 뭐가 있고 뭐가 빠졌는지 헤아릴 여유도 없었다. 터키 여행을 앞두었다고 하자 가까운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두 가지였다. ‘터키 너무 좋아!’, ‘공부를 좀 하고 가는 게 좋을 거야.’ 그러나 정작 나는 이스탄불까지 비행시간만 꼬박 열한 시간이 넘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비행기를 탔다.
머나먼 타국이 전해주는 이국적 향취란 저마다 다르리라. 내게 터키는 오르한 파묵의 고국이었고, 그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 전해준, 중세 예술의 신비롭고도 찬연한 색감이 잔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그 외의 정보는 말 그대로 제로, 바보 여행객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터키 최대의 지중해 휴양지, 안탈리아(Antalya)

퀴즈를 하나 내볼까? 원고를 쓰다 고개를 쓰윽 돌려 옆자리 기자에게 물어본다. 터키의 수도는? 잠시 생각해보다 자신있게 “이스탄불?”한다. 나는 신이 나서 “땡!” 하고는 함께 한바탕 웃는다.(궁금하다면 찾아보시라. 내친김에 터키 지도도 잠시 들여다보시고.) 지리와 역사만큼 ‘골 때리게’ 지루한 공부가 없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사를 쓰느라 책상 위에 큼지막한 터키 지도를 펼쳐놓고 나서야 우리 일행을 살뜰히 안내한 현지 가이드 훌리아의 그때 그 설명들이 겨우 귀에 들어오는 것 같다.

자신을 향해 손바닥이 보이게 왼쪽 손을 알파벳 L자처럼 벌려보자. 터키 지도가 그렇게 생겼다. 북쪽으로는 흑해를 이고 있고, 서쪽으로는 에게해가, 남쪽으로는 지중해가 둘러싸고, 동쪽으로는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에 면해 있는, 반도의 나라다. 이스탄불은 L자의 머리쪽으로 그리스, 불가리아 등의 유럽과 붙어 있다. 이번 행선지는 이스탄불이 아닌 안탈리아. 이스탄불에서 비행기로 다시 한 시간을 날아야 한다.


밤새 날아 안탈리아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무렵. 피로에 잠식된 몸에 덩치 큰 캐리어를 끌고 터덜터덜 대절한 버스에 몸을 실었더니, 숙소로 향하지 않고 해안선을 따라 일주를 시작한다. 여행의 노곤함을 버스 의자에 묻고 차창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바라본다. 아, 지중해. 드디어 눈부신 햇살에 일렁이는 쪽빛 지중해를 만날 수 있었다. 안탈리아는 유럽 사람들이 즐겨 찾는, 터키 최대의 지중해 휴양지다. 이스탄불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은 곳으로 한겨울에도 기온이 1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칼레이치 항구의 저녁.jpg 칼레이치 항구의 저녁. 당시(2015년) 아이폰은 해상도가 별로 안 좋았던 거 같다.

한국 관광객은 상대적으로 적고, 러시아를 비롯한 유러피언들이 찾는다는 안탈리아는 관광지로 천혜의 요소를 갖춘 보석 같은 곳이다. 안탈리아의 역사와 함께한 칼레이치 항구는 2세기부터 지중해를 오가던 배들이 쉬어가는 일종의 정거장이었는데, 막상 만난 칼레이치는 역사의 도도함보다는 여행객들의, 혹은 터키인들의 친근한 휴양지로 다가왔다. 청춘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정담을 나누고, 중장년의 사내들도 계단에 천역덕스럽게 앉아 담소를 나눈다. 쪽빛 바다는 눈부시고, 정박한 배들은 한가하고, 줬다 뺏았다 장난치며 파는 터키아이스크림 상인의 몸짓은 개구지다. 해안은 따뜻한데 육지쪽으로는 토로스 산맥이 높이 솟아 서늘하고, 그 산맥에는 고대인들이 살았던 유적들이 느닷없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태양이 솟는 곳, 아나톨리아

여행 첫날, 가이드 훌리아가 버스에서 터키 지도를 펼쳐놓고 간략한 설명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아나톨리아’가 뭔지 도무지 모르겠다. 설명할 때마다 ‘아나톨리아’를 연발하는데, 그 발음을 떠올릴 때마다 어릴 때 본 순정만화에 나오는 나라 이름이 연상될 뿐이다.(검색해보니 <프린세스>라는 만화에 아나톨리아 제국과 아나톨리아 공주가 등장한다.) 피로에 잠식된 탓에 물어볼 생각도 않고 굽이굽이 끝도 없는 해안선을 따라 지중해를 보고 또 본다.


생소하게 들렸던 아나톨리아Anatolia는, 터키 반도를 이르는 말로 소아시아를 말한다. 수십년 전의 세계사 시간이 떠오른다. 이 소아시아를 그리스어로는 ‘아나톨레’라고 하고, ‘태양이 솟는 곳’ 또는 ‘동방의 땅’이라는 의미란다. 터키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뚜렷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 아나톨리아가 서방과 동방을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양쪽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라는 뜻이요, 이는 다른 말로 하면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수많은 왕국들의 정복사에서 중요한 길목이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명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 대단한 행운이다.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문화들이 섞이고 투쟁하며 갖가지 이름의 문명을 꽃피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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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아나톨리아의 역사, 혹은 터키의 역사는 난맥이다. 유적지나 명소를 갈 때마다 가이드 훌리아가 아무리 열심히 설명을 해도 그저 귓가를 스쳐가는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터키의 역사를 아는 게 세계사 전체를 이해하는 것과 같아서였다. 그래도 잠시, 백과사전의 설명의 기대 이 오묘한 땅, 아나톨리아 혹은 터키의 역사를 스르륵 훑어보자.


아나톨리아에 왕국이 세워진 것은 BC 1680년대. 고원지대에 히타이트 왕국이 일어났고, 뒤이어 프리지아 왕국BC 1200년대, 리디아와 카리아 왕국BC 700년대이 등장한다. 그러다 BC 546년 페르시아제국이 침입한 후, 거의 반도 전체를 지배했고, 그후 우리의 귀에 익숙한 알렉산더 대왕이 BC 334년 이 영토를 장악하면서 헬레니즘 시대에 편입하게 된다. 그 뒤의 역사도 만만찮다. BC 133년에는 로마제국의 영토가 되었다가 이어 동로마제국에 편입되는데, 동로마제국 혹은 비잔티움제국은 서기 330년부터 1453년까지 무려 1123년 동안 존속했다.

조선왕조 500년사를 비롯해 우리의 역사는 영토사와 민족사가 같다. 우리 땅에 우리 민족이 살아온 발자취만 이해하면 되는 것. 하지만 터키의 역사를 이해하기가 고역인 이유는 그들의 영토, 아나톨리아를 스쳐간 왕국이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민족도 다 제각각이어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터키 공화국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그리스도교 세력에서 벗어난 오스만투르크제국의 등장에서 겨우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아나톨리아의 한 구석에 있던 작은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왕조는 점차 세력을 확장해 오스만 제국으로 발전했는데1299년 무렵, 10대 왕조인 쉴레이만 1세재위 1520~1566 때에는 중앙 유럽과 북아프리카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그러다 18세기 이후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면서 복속됐던 영토들이 다른 나라에 점령 또는 독립했고, 20세기 초반 마지막 남은 영토 아나톨리아로부터 새롭게 건국된 국민 국가가 터키 공화국인 것. 훌리아가 터키라는 말보다 아나톨리아라고 더 자주 설명했던 이유를 이제야 겨우 짐작하게 된다. 세계사의 중요 대목에 겹쳐 있던 터키의 유적, 문화, 정체성을 터키라는 국가명으로 한정할 수 없었던 탓이었으리라.


무심히 건재하는 고대 유적, 사갈라소스의 깊은 울림

지중해가 여행의 번잡함을 잔잔히 위로한다. 미항임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소란스럽지 않아서 더없이 평화로운 해안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버스에 오른다.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된다. 바보 여행객의 귀에 뭔들 제대로 들리랴. 장기판의 말처럼 먹여주면 먹고, 보여주면 보리라.


이제 버스는 끝도 없이 산길을 굽이굽이 돈다. 유목을 하며 살았을 풍광이다. 바위산이 많아 나무가 크고 곧지 않고, 중간중간 너른 초원이 펼쳐진다. 이번 행선지는 고대도시 사갈라소스라고 한다. 안탈리아에서 정북방향으로 한 시간 이십 분을 올라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 길고 긴 도로를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을꼬. 집들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차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수고에 비해 도로 이용률이 참 낮겠구나 싶은, 효용성을 앞세우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원형극장.jpg 원형극장
분수대.jpg 분수대

세상에나. 닿고 보니 우리 일행 외에 관광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적이 분포해 있는, 고대의 찬란한 문명이 현존하는, 역사적인 현장인데도 말이다. 말없이 걸어올라간다. 들풀과 꽃들이 잔잔한 들판에 돌무더기가 이렇게 저렇게 널브러져 있다. 하지만 이곳은 고대 국가 피시디아의 수도였던 곳. 왕족, 혹은 귀족이 살았던 대저택의 흔적이 보이고, 자그마한 개인 도서관의 흔적도 남아 있다. 제우스 신전이 서있고, 분수대도 있다. 두 개의 아고라뿐 아니라 반원형 극장도 보인다. 아고라는 시장 역할을 했다고 하고, 반원형 극장에서는 에페소의 광활한 원형경기장에서 치러질 본선을 위한 예선이 치러졌던 곳이라고 설명한다.

해발 1450미터나 되는 고원지대에 턱하니 자리잡은 고대 도시. 한 왕국의 수도였다니 그 번성함을 미뤄 짐작할 만하다. 안타깝게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것을 1985년 이후에야 발굴이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다. 여행객을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니, 여행객의 발길이 드물 수밖에 없었으리라.


처음에 그저 그런 관광객의 눈으로 설명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가장 깊이 마음속에 남은 장소였다. 발굴 중이라고 하지만 요란한 현대인들의 해석이 없어서 더 좋았던 기억이다. 하나하나의 돌덩이가 그리스 로마시대의 것이라는데 보존의 명목으로 유리관을 만들어 박제화하지 않아서였을까? 그냥 그 잔해들이 자연 속에 건재해 있는 풍광인 양 고요했다. 가이드를 따라 옮겨 걸으며 심심한 상념에도 빠졌던 것 같다. 들판 위로 소슬한 바람이 불어와 풀이 눕는 것을 보는 것도, 들풀 속에 화려하게 숨어 있는 꽃을 보는 것도, 그 땅속에 무연하게 박혀 있는 돌무더기를 보는 것도 여행자의 심상에 묵상처럼 다가왔다.


산 아래 지중해 연안에서는 현대인들이 노곤한 몸과 마음을 위무하는 휴양지가 있고, 산에 오르면 이렇게 대자연 속에 수많은 고대의 유적들이 무심한 듯 건재해 1만년 전의 사람들이 살아왔음을,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묵상하게 하는 곳. 과연 아나톨리아라는 땅은 축복받은 곳이구나,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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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평야와 언덕들, 혹은 산 중턱에 무심하게 널브러져 있는 고대유적들, 빈 땅 위에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는, 옛 잔해들을 보는 일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지진이나 세월을 이기지 못한 성벽, 혹은 무덤들, 기둥들. 잔해 사이를 걸으며 생각한다. 어쩌면 삶이 이리 무상하고, 또 무상하다고. 그래서 더욱 간결해져야 한다고. 불필요한 감정과 불필요한 생각으로부터 달아나, 단순한 진리를 좇아야 한다고. 관광객으로 들끓는다는 에페소 유적의 사이즈는 사갈라소스보다 더 대단하다지만, 물론 가보진 못했지만, 왠지 이곳 사갈로소스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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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파르타 박물관
으스파르타에는 있는 박물관으로 1935년 개관했다. 사갈라소스 유적지에서 출토된 로마시대 유물과 오스만투르크시대의 동전 수집품을 소장하고 있다. 고대유물이 2,181점, 민속품이 1,937점, 동전수집품 11,669점에 이른다. 사갈라소스 고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로마시대의 석판, 비석, 조각 등이 전시돼 있고, 니케 여신상이 유명하다. 이외에 비잔틴시대의 성화聖畵와 제례용품이 있다. 한편 민속관에는 으스파르타 지역의 근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데, 카펫관은 지역 특산품인 카펫과 다양한 모직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고대 유적지 사갈라소스에서 발길을 돌려 꼼꼼하게 전시를 돌아보면 더 유익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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