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사진으로 보는 틈새
매일매일 날짜를 적어가며 아침 일기를 쓰지만
정작 오감으로는 날이 지나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
해야만 할 일들 속을 어지럽게 지나는 나날들이었다.
일요일 아침. 여의도에서 서촌으로 넘어가다 효창공원을 지나는데
이른 단풍이 오전의 햇살 아래 수줍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가던 걸음을 꺾고 잠시 공원 산책을 하려던 참이다.
할머니 한 분이 앞서 걷는다.
밝은 빨강의 코트를 화사하게 입고.
손에 빨강 가방을 들고.
코트 뒤쪽에 주머니가 하나 달려 있다.
뜻밖의 위치다.
할머니의 담담한 발걸음에 단풍이 따라 든다.
등이 굽은, 빨강
그러나 마음은 영원한 볼 빨간 사춘기
시나브로 가는 세월은 저 혼자 가는 셈.
2020.10.18. 효창공원 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