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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Apr 15. 2016

고흐가 부르는 ‘봄노래’

곱고 환하게 담은, 그의 시린 봄

내면은 심연과 같은 나락에 빠진 채 암흑의 고통에 시달리지만 작품에서는 단순하고 순수하고 밝은 심성을 가만히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다자이 오사무의 문체, 이상(김해경)의 화법, 엘리엇 스미스의 애처로운 목소리처럼. 실의와 패닉 상태가 최고조였던 1888년 봄에 그린 고흐의 연작도그렇다. 고흐는 다음해 병원에 입원했고 그 다음해 세상을 떠났다. 고흐의 봄노래를 들으니, 그의 그림 속 세상만큼은 어둠보다 밝고, 우울보다 경쾌하고, 절망보다 희망적이었던 모양이다. 


봄은 빛의 탄생이요, 빛의 환희다. 세상의 색깔이 막 움트기 시작하다가 마치 불꽃놀이 하듯, 팡파레를 울리며 하늘과 땅 위로 찬란한 빛을 뿌린다. 차가운 겨울을 보내고, 봄이 기지개를 켜면 사람들 마음속에 기다림이라는 조바심이 아지랑이처럼 움찔한다. 멀리 아득한 곳에서 보내는 봄의 작은 손짓에도 사람들은 민감하다. 조바심 나는 기다림이 봄의 마음이다.

The White Orchard, 1888(Oil on Canvas, 60 x 81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과수원에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옅은 초록빛과 연둣빛이 대지를 감싼다. 아직 이른 봄이다. 따사로운 봄 햇살은 어느덧 과일나무의 꽃을 풍성하게 피워냈다. 이 꽃이 지고 나면, 탐스런 결실을 맺을 것이다.

 고흐가 부르는 봄의 노래는 밝고, 순하다. 강렬한 필치와 열정적인 색감이 만들어내는 고흐만의 독특한 화풍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고흐의 그림이라고 하니, 그런 줄 알뿐이다.

 이 연작 그림엔 작은 사연이 있다. 고흐는 평생 곁을 지켜주었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석 장의 스케치를 동봉했다. 그가 마음속에 그린 연작 그림에 대한 것이다. <The White Orchad> <The Pink Orchard> <The Pink Peach Tree>. 1888년 3월의 그림이다. 

고흐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모티프라고. 고흐는 이 그림들이 잘 팔릴 거라고 기대했다.


어둠보다 밝고, 우울함보다 경쾌했던 고흐의 그림들


The Pink Orchard, 1888

소년은 열다섯 살에 학교를 중단한다. 너무 가난해서다. 호구지책으로 판화복제를 하며 화랑에서 일을 하다 신에게 빠져든다. 성직자가 되려 했지만, 격정적인 기질과 강렬한 성향 때문에 교회는 그를 성직자로도, 전도사로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 평생 헌신적으로 그의 곁을 지켜주었던 동생 테오의 권유로 붓을 들었고, 어느새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그를 구원해주었다.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얘기다.

그림에 문외한이라도 작품 몇 점쯤은 알아볼 만큼, 고흐는 전대미문의 불멸의 화가다. 

생애의 비극성은 또 얼마나 드라마틱한가. 평생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산 것은 그렇다고 쳐도, 고갱과의 일화는 엽기적(?)인 느낌조차 준다. 아를의 풍경과 햇빛과 하늘에 반한 고흐는 고갱을 불러들인다. 하지만 이내 두 사람은 예술에 관한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고, 결국 고갱과 다투다 실의에 빠져 면도칼로 제 귀를 자른다. 이후 지독한 정신병으로 발작과 입원을 반복하다, 마침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1853~1890). 그러나 죽음을 맞기 전까지의 15개월 동안 고흐는 200여 작품을 남겼다.

The Pink Peach Tree, 1888

고흐는 다작의 작가다. 짧은 생애 동안 무려 900여 점의 작품을 남겼고, 1100여점의 습작을 그렸다. 그러나 죽기 전에 딱 한 작품을 팔았을 뿐, 평생 가난에 허덕였고, 명예도 물론 못 얻었다.

봄에 그린 이 연작은, 실의와 패닉 상태가 최고조였던 1888년의 작품이다. 다음해 그는 병원에 입원했다. 고흐의 봄노래를 들으며, 그의 그림 속 세상만큼은 어둠보다 밝고, 우울보다 경쾌하고, 절망보다 희망적이었음을 느낀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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