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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Apr 22. 2016

화폭에 담긴, 책 읽기의 즐거움

잔도메네기, 호머, 르느와르, 호퍼, 피카소

겨울방학이면 따끈한 온돌방 아랫목 이불에 발을 넣고 친구들과 모여 만화책을 읽었다. 귤도 한 바구니 까먹었고, 새우깡 같은 과자도 집어먹고. 뭐가 우스운지 웃음소리도 높았지. 화폭에 담긴 책 읽는 여인들의 그림을 보면, 그 까마득한 시절의 겨울방학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스스로를 호젓한 고독 속에 가둬두는 제일 쉬운 방법은 책을 집어 드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요란하고 복작거리는 생활은 늘 잔 쓰레기 같은 스트레스를 남긴다. 가끔은 일도, 사람도 심지어 친구들도 귀찮을 때가 있다.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때. 책을 펴고 읽다가 졸기도 하고 오수(午睡)를 즐기기도 하고, 이야기 재미에 빠지기도 하고, 읽던 책을 가슴에 덮고 공상을 할 때도 있다. 

근데 책 읽는 행위의 즐거움은 꼭 ‘책 읽기’에만 있지 않다. 책을 펼쳐드는 순간 벌어지는 시공간 속에서의 다양한 일들, 그 풍경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음을 가라앉히곤 한다. 나른하게 하는 햇살 한 줌, 그 햇살에 부서지는 먼지 알갱이, 종아리 부근에 몸을 기대고 조는 고양이가 전해주는 평화, 산들한 바람 한 줄기. 물론 책이 아니었으면 전혀 알 수 없었을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기쁨, 혹은 소설 속 캐릭터들이 겪어내는 일을 통해 새로 알게 된 일상적 깨달음은 당연한 것이고. 

아무튼, 그게 무엇이든 우리에게 책 읽기는 여유로운 쉼표다.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주는 진짜 선생이다”

책 읽는 여인을 담은 작품은 너무 많아서 누구 작품을 다루고, 누구 얘기부터 해야 할지 고르기 난감하다. 조형적인 느낌의 피카소, 아름답다는 찬탄마저 무색게 하는 부드러운 그림체의 르누아르, 어떤 작품이든 ‘서늘한 시크함’을 담은 호퍼, 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투명한 수채화의 대가 윈슬로 호머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책 읽는 소녀, 혹은 여인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중에서 먼저 이탈리아 화가 페데리코 잔도메네기(Federico Zandomeneghi, 1841~1917)의 작품을 소개한다.

Federico Zandomeneghi, Young Girl Readingl

붉은 머리가 풍성한, 앳된 소녀를 담은 이 작품은 “책은 꿈꾸는 것을 가르쳐주는 진짜 선생이다”라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소녀의 지긋이 감긴 듯한 눈 때문일지도…. 풍성한 붉은 머리에 붉은 기가 감도는 벽지와 마찬가지 색조의 의자 등받이는 단일한 색감을 주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구축한다.   

페데리코 잔도메네기는 우리에게 조금 낯설지만, 파리에서 인상파 기법을 배운, 가장 전위적인 기법으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평을 듣는 인물로 1874년 잠시 파리에 방문했다가 예술의 도시에 매료돼 눌러앉았고 드가의 도움으로 파리 화단에 입성하는데 성공한 화가다. 

Pierre Auguste Renoir,  Young Woman Reading an Illustrated Journal,  1880, oil on canvas

두 번째 작품은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 1841~1919)의 <만화 잡지를 읽는 소녀>. 

잔도메네기 작품과 비슷한 구도이다. 주황에 가까운 황금빛 기운이 도도한. 텔레비전도, 웹툰도 없던 시대였으니, 호기심 많은 이 소녀에게 만화잡지가 얼마나 달달한 즐거움을 선사했을까? 따뜻한 온돌방에 발을 넣고 만화책을 읽던 내 소녀시절과는 달랐겠지만, 글쎄, 또 뭐가 그리 달랐으랴 싶다.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책 읽는 여인들의 그림 중에서 가장 부러웠던 ‘포즈’는 윈슬로 호머가 수채화로 그린, 이 작품이다.

Winslow Homer, The New Novel, 1877, watercolor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베개 삼아, 포근한 풀밭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이제 막 출간된 ‘New Novel’을 읽고 있는 이 아가씨. 햇볕도 적당한 듯 눈부시지 않아 보인다. 자잘한 그림자가 드리운 탓이려나? 나른한 봄날, 생생한 풀내는 또 얼마나 향긋하랴. 이 겨울을 보내고 5월이 오면 나도 재미난 신간 소설 한 권 옆구리에 끼고 한적한 곳을 찾아들고 싶다는 소망을 샘솟게 한다.   

그림을 뒤져보면 19세기 후반, 책 읽는 여인의 모습을 화폭에 담은 작품이 넘쳐나는데, 그만큼 여성이 책을 읽는 모습이 보편적이었음을 뜻한다. 아니, 책을 읽는 게 보편적이고 말고 할 게 있냐고 묻고 싶겠지만, 그 당시로부터 100년 전만 해도 책을 읽는 여인은 아주 극소수였음을 알아야 한다. 여성이 자유롭게 책을 선택해서 읽는 행위도 역사적으로 보면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남성들이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동명의 책이 있다. 여성들의 독서의 역사를 그림과 함께 설명한)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똑똑한 여자는 질색이라는 식의 아둔한 사고방식은 사라진 것 같지 않다.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수많은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상상력의 보고, 사고의 보고가 책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그림 속 앳된 소녀들은 책을 통해 꿈을 꾸고, 책을 통해 인생을 알아가고, 책을 통해 세계와 접하면서 성장해나갈 것이다. 무지(無知)의 세계에서 스스로 삶을 살아갈 무기를 책을 통해 벼려갈 것이라고 믿는다. 추운 겨울밤은, 독서하기 참 좋은 때다. 

Edward Hopper, Woman Reading.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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