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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May 18. 2016

우연히, 혹은 고의로 캔버스에 떨군 물감 한 방울

잭슨 폴락

삶은 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 이리 저리 헤맨다. 그러다 문득, 삶은 지독한 우연의 연속에 불과한 것이란 생각도 스친다. 광대한 캔버스에 물감 한 방울 한 방울들이 구르고, 뒤섞이고, 휘갈겨져 우연히, 혹은 의도된 그림으로 탄생한다. 모든 진부한 속박을 던져버리고 싶다.



'In' the Painting... 그림 ‘안’에 있기 

한 사내가 있었다. 바닥에는 하얀 캔버스가 펼쳐져 있었다. 크고 작은 물감 깡통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사내는 깡통을 들고 캔버스 위를 휘젓고 다녔다. 물감은 흩뿌려졌고, 방울방울 부정형으로 떨어졌다. 붓 혹은 막대기를 들고 물감방울을 휘갈겼고, 손가락을 담가 캔버스 위에 튕겨내기도 했다. 그림보다 영화로 만난 화가 잭슨 폴록. 


그의 액션페인팅은 무아지경의 춤이었다. 사내의 광적인 행위가 감정의 폭동을 일으켰다. 나는 내 길을 나박나박 걷고 있었다. 초중고 대학을 차례로 나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우리들은 고만고만한 길을 걷고 있다. 단순하고 쉬운 건 아니지만, 내 삶의 길에는 가지런한 계단이 놓여 있었다. 계단은 오르기 좋지만 재미가 없다. 가끔 나는 계단의 어디쯤에서 멈춰 선다. 그림 안에서 활갯짓하는 잭슨을 보면 그 모든 계단을 갈아엎고 싶어진다. 

바닥에 펼쳐진 캔버스. 잭슨에게 그것은 대지였고, 삶이었다. 그런데 난 진부함 덩어리 같은 계단을 오르고 있을 뿐이다. 

<Lavender Mist No.1>은 3미터가 넘는 광대한 그림이다. 모니터에 뜬 작품 이미지만으론 잭슨의 열정을 훔쳐보기 역부족이다. 이미지를 최대한 펼쳐 몇 번이나 뚫어지게 보지만, 숨이 막힐 만큼 압도당하긴 무리다. 빛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형태미가 빼어난 류의 그림이 아니니까. 두텁고 불확실하고 거친 질감이 주는 미적 아름다움을 인쇄된 그림으론 알기가 어려운 거니까. 


“나는 바닥 위에서 더 편했고, 더 가까이, 더 그림의 일부로 느꼈다. 그림 안에서 걷고, 네 귀퉁이에서 작업하는 방법을 쓴 이래로. 글자 그대로 나는 그림 ‘안’에 있었다.”

(잭슨 폴록)


잭슨은 그림은 그 자체의 삶(Life)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그대로 두려고 했다. 그래서 어떠한 이미지도 머릿속에 담지 않고 그림 안에 있었던 거다. <라벤더 미스트>는 그 행위의 결과물이고. 

그의 그림을 보며, 나는 재미없는 모든 규정을 버리고 그 자체에서 생동하고 싶단 생각을 한다. 잭슨 폴록은 그림 안에 있고, 나는 삶 안에 있고.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문의 02 558 1844 eurekaplus.co.kr

미국의 추상화가.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했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했다. 1947년 마룻바닥에 편 화포(畵布) 위에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는 독자적인 기법(액션페인팅)을 개발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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