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조금 심심한 휴일 연휴에 길을 나섰다. 소풍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햇볕 속에서 걷다가 맛있는 밥을 먹고 헤어질 요량이었다. 하지만 길상사 가는 길의, 서민들이 모여 사는 성북동에서 나는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그리움을 만났고, 우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을 잃고 있는지 크게 각성을 하게 됐다. 사람 사는 냄새 물씬 나는 동네에 깃들고 싶어졌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봄날엔 무조건 밖에 나가야 해. 초록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야 해. 햇살이 곳곳에서 부서지는 광경을 마음으로 찍어야 해. 하늘을 째고 나오는 날카로운 햇빛에 눈이 아파야 해…. "
운수 대통한 그날, 소풍 가듯 길을 나섰다. 고맙게도 전날의 비가 세상의 잡티를 말끔하게 흡수해버렸다. 심심하다는 후배 말에 반갑게 맞장구를 쳤고, 어린이날맞이 연휴 마지막 날 아침, ‘무계획적’으로, ‘무조건’놀기로 합의했다. 뭘 할까 궁리하다 ‘길상사’가 떠올랐다. ‘길상사 가보고 싶어’라고 후배에게 말을 건넸다.
길상사는, 백석 시인의 ‘자야’가 법정스님에게 기증한 절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길상사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몇 달 전 <유레카>에 기고한 이산하 시인의 글이 무의식 속에 저장돼 있어서였던 모양이다. 그 어마어마한 재산이 아깝지 않냐는 말에 자야가 했다는 대답. ‘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도 못해.’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만나, 일상적인 얘기를 주거니받거니 늘어놓는다. 자주 보는 후배라 곰살 맞은 수다가 자연스럽다. 그렇게 고작 십여 분을 걸었을까. 유독 널찍한 인도에는 작고 예쁜 붉은 벽돌로 된 턱이 있었고, 동네 화원들에서 그곳에 봄꽃을 줄줄이 내놓고 팔았다. 5월의 꽃이 아우성이다. 양쪽으로 나지막한 집들이 순탄한 고갯길을 따라 앉았는데, 나무와 숲이 집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은 모습이다. 저 멀리 고갯길에는 나무가 하늘을 보며, 하늘은 나무를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수다를 떨 수 없었다. ‘아, 이 동네 너무 예쁘다.’ ‘와, 세상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네.’ ‘나 여기 처음이야, 차로 지나간 적은 있는데 생각 안나.’‘나, 여기 살구 싶다.’ ‘어머 저 집 봐.’호들갑스러운 감탄사가 요란스러워서 후배 눈치를 살짝 보았지만, 어쩌겠누. 내 눈과 마음이 하는 일을.
마침 우리는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파트가 전체 주택의 60%를 넘는데. 아파트의 문제는 공간을 가꿔야 하는 공적인 영역의 일을 사적인 영역으로 이전시킨 거야. 좋은 경관, 도서관, 쉼터 같은 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걸 단지 안에 흡수해버렸어. 그리고 울타리로 막아버리지. 그 아파트 주민만 사용하도록. 이건 다시 배타성을 낳게 돼.”
아파트라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주거공간이 우리 삶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주거니받거니 했다. 나중에 꼭 돈 많이 벌어서 너나없이 소통하는 작은 공동주택을 만들고 싶다는 둥 흰소리도 늘어놓는다.
그런데 말이다, 길상사 가는 성북동의 서민 주거지는, 까맣게 잊고 있던, 내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던 그리움을 일깨웠다.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사람 사는 동네. 이런 걸 우리가 모조리 잃어버렸다는 걸, 이렇게 귀중한 것들을 모두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서늘하고 냉랭한 사각의 큐브를 세워두고 우리의 삶을 그 안에 던져버렸다는 걸 깨우쳐주었다.
나는 생각했다. 길상사에 안 가도 이 동네를 구경한 것만으로도 여행이 줄 수 있는 100가지의 재미를 모두 얻었다고. 너무 즐거운 여행이라고. 그러다 눈에 들어온 ‘노가리슈퍼’를 스마트폰으로 박았다. 이번 소풍의 첫 사진이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길상사를 걸어 올라가려면 밥심이 필요했다. 보리밥 한 그릇 먹자들었더니 사람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잠시 머뭇거리다 대기표를 손에 쥐고 나와서 주변 탐색에 나섰다. 길 하나 건너니 심우장 가는 길이 보인다. 심우장은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만년을 보낸 집이다.
심우장이 무슨 뜻이려나. 그날은 무심히 스쳐갔던 걸 오늘에야 검색해본다. ‘심우장(尋牛莊)’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명.
100여평의 평평한 터에 방 두 개가 나란하다. 집은 아주 작다. 왼쪽 온돌방은 시인이 기거하며 글을 쓰던 곳이고 오른쪽 방은 부엌이다. 누구나 방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데 그저 툇마루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북향이란 점이다. 북향집은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더워 지내기가 아주 곤혹스럽다고들 한다. 그런데도 선생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보기 싫어 등을 진, 북향 집을 고집했다. 이곳에서 만년을 보낸 선생은 1944년 해방을 한 해 두고 영면하였다.
꼿꼿한 선생의 결기를 여행자의 잔걸음으로 어이 짐작이나 할까.
심우장을 나와 좁은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본다. 대저택이 즐비한 성북동이라지만, 그건 그야말로 다른 세상 얘기다. 폐허와 같은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쭉 따라 올라가면 성곽 둘레길로 이어진다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돌아 나온다.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는 거미줄처럼 가는 줄이 늘어져 있는데 그 줄에 어린 송충이 한두 마리가 거미처럼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아이들은 벌레라고 소리를 내지르겠지만, 나이 먹은 내 눈에는 그저 따뜻하고 귀엽고 소중한 생명으로 보일 뿐이다.
행여 몸 기댄 줄을 끊을까 조심하며 걷는데 지붕 위에 길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경계의 빛이 완연한 눈길로 낯선 우리를 바라본다. 지붕 위의 고양이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얘기는 고갯길을 따라 집들의 높낮이가 다르다는 얘기다. 큐브 안에 사는 내 눈에는 지붕을 시선 아래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아래로 내려오면 인도 한쪽에 만해 선생 동상이 굳건하게 앉아 있다. 그의 눈에 비치는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지, 그가 지금 여기 살고 있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지, 궁금해졌다.
나물을 듬뿍 얹어 고추장 간을 슴슴하게 한 다음 쓱쓱 비비니 꿀맛이다. 맛있게 식사를 한 다음 다시 가방을 메고 길을 걷는다. 낯선 곳을 걷는 것이 여행이란 생각이 스친다.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생활해온 내게 새로운 거리와 풍광이 신선함을 선물한다. 사각의 아파트, 사각의 빌딩. 얼마나 지루한 공간이던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꼼짝없이 큐브 속을 오가며 살고 있다.
길상사 가는 마을버스가 있지만 걷기로 했다. 걸을 때 볼 수 있는 게 훨씬 많으니까. 번듯한 고급주택의 사열을 받으며 오르막길을 걷는다. 저택을 보는 일도 흔하지 않으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호기심 어린 눈길이 찬찬하게 훑는다. ‘집이 참 예쁘고 좋군. 그림 같은 집이야.’하지만 얼마 후 지루해진다. 우리네 보통의 삶과는 너무 거리가 있는 탓이다. 절과 좀체 어울리지 않는군, 하는 생각도 스친다. 중년의 부부가 ‘하드’를 손에 들고 웃으며 마주 내려온다. 아이스크림을 별로 즐기지 않는데 아이처럼 여름 하드를 먹으며 걷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슈퍼를 지나쳐온 뒤여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어느새 길상사 일주문에 닿았다. 젊은 엄마와 아이가 일주문을 등지고 환하게 웃고 있다. 젊은 아빠가 그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이 추억을 만드는 동안 잠시 걸음을 쉰다. 상춘객의 마음에 작은 미소가 번진다.
일주문을 들어선다. 아, 드디어 길상사에 왔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100년도 더 된 느티나무 가지를 근거로 죽죽 뻗어 있는 하얀색 연등 행렬이다. 오색연등만 보다 흰색 연등을 보니 한결 운치있어 보였다. 길상사 안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사람이 많아서 절이 주는 고즈넉한 여운을 느끼기 어려웠던 거?
본래 이곳은 고급요정 대원각이었다. 요정의 주인은 백석의 연인인 자야(본명은 김영한. 자야는 백석이 부르던 애칭이다)였고, 요정이었던 이곳을 법정 스님에게 시주해 절이 되었다. 법정 스님과 <무소유>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사람들 틈에 끼어 걷는다. 법정 스님이 지내던 곳도 둘러보고 저 아래 오색 연등도 내려다본다. 다음에는 휴일이 아닌 날 골라서 와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조금 더 고요한 시간에, 가만히 나무 아래 앉아서 바람도 느끼고 그 바람에 번잡한 마음도 씻어볼 생각이다.
길상사를 나와 오던 길을 되돌아오는 대신 위로 쭈욱 걸어올라간다. 오던 길에 보던 저택들은 한층 더 기고만장한 형태였다. 너무나 높은 언덕 위에 너무나 큰 요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대사관들이 많아 외교관거리라는 푯말이 달린 곳이다.
식구 수별로 차가 있지 않으면 살기 어려운 곳이겠군. 하나하나가 섬처럼 보였다. 당연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결코 외부에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공동주책도 마찬가지였다. 이웃 혹은 소통이 있을 만한 공간이 없었다. 산길을 따라 그저 서로서로 크기를 자랑하는 저택들이 섬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성북동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넉넉함은 그런 것들이 아니니까.
두런두런 얘기하며 걸어내려오니 여행이 고단함이 발끝부터 전해져온다. 발도 다리도 점점 무거워진다. 어딘가에서 차를 한잔 할까 하고 둘러보다가 멋스럽고 큰 곳들이 많아 자꾸 지나친다. 맘속으로는 가려던 곳이 있었다. 올라오던 길에 만난 노가리슈퍼 옆에 작은 카페가 떠올랐다. 우리의 마지막 발길이 비로소 휴식한다. 카페는 아주 작았는데 카운터 앞에 싱싱한 과일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과일이 아니라는 게 더 신선해보였다. 메뉴판을 보니 쥬스 조합이 신기했다.
나는, ‘파인애플 더하기 생강 더하기 사과’쥬스를 청했다. 후배는 ‘사과 더하기 케일’ 쥬스를 청했다. 흘낏 보니 대동강 에일이 보인다. 요즘 에일 맥주에 꽂혀 있던 중이라 군침을 삼킨다.
쥬스 맛은 처음 느껴본 맛이었다. 파인애플의 단맛과 향, 사과의 상큼함 속에 생강 맛이 꼿꼿했다. 분명 얼음이 가득한 유리잔에 따라마셨는데 몇분 지나자 속이 뜨끈했다. 생강의 위력을 실감했다. 차고 상큼한 쥬스를 마시고 속이 뜨끈해지는 경험은 당연히 처음이었고, 아주 신기했다. 테이블 위에 성북동 마을 잡지를 뒤적이니 이 카페가 소개돼 있었다. ‘카페 58.4’, 은근 ‘유명짜’한 곳이었다.
나는 후배에게 덕분에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을 했다고 고맙다고 말을 한 것 같지는 않다만. 그런 신호는 보낸 것 같다. 후배 역시 덕분에 즐거웠다고 말한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카페를 나와 옆에 있는 노가리슈퍼를 바라본다.
‘여름날 늦은 오후에 여기 꼭 다시 올거야. 와서 1차는 카페에서 대동강 에일을 한 병 마실 거야. 그리고 차수를 옮겨 노가리슈퍼에서 2차를 할 거야. 전주에서 체험하지 못한 가맥을 할 거야.’
아쉬운 마음에 중얼거리며 전철역으로 향했다.
www.eureka.co.kr | 문의 02 558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