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에서,
‘낡음’에 대해 생각하다 ①

대만 타이페이 여행기

by 김지나
아주 오랜만에, 아니, 어쩌면 어른이 돼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나이가 몇이든 사람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자기답다. 나는 꼭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 기분이 났다. 이 여행에 대한 예감이 아주 좋았다.




3월 혁신호를 마감하고 2월 말 부랴부랴 여행길에 올랐다. 아이들 읽는 잡지에서 어른들도 보는 인문교양 잡지로 옷을 갈아입히려니 이것저것 챙길 게 많았다. 디자이너 선수도 교체라서 처음 맞춰보려니 조마조마했다. 내용이야 그전보다 조금 더 다양하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기사들을 모양새 갖춰 잘 정리하면 되겠지만(이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니까), 디자인이 어떻게 나올지 콩닥거렸다. 가격도 바뀌니 여기저기 올라가 있는 상품들도 다 손을 봐야 한다. 하지만 혁신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인이다.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으므로. 연말부터 연초까지 온통 그 생각만 하며 지냈다. 마침내 혁신호 마감을 했고, 너무나 고맙게도 기대 이상으로 책이 잘 나왔다. 덕분에 마음 편히 비행기를 탔다.

나는 여행을 별로 즐기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한다. 시간에 맨날 쪼들리니 일정을 빼려면 앞뒤로 바빠야 한다. 그리고 다녀와서 쉴 짬이 없으니 여독을 달래기도 쉽지 않고. 여행에 대한 나의 로망은 이렇다. 한두 달쯤 머나먼 이국의 한 마을에 숙소를 잡는다. 그곳 사람처럼 어슬렁거리며 동네 사람들 먹는 거 먹고, 골목을 걷고, 시장에서 과일과 야채를 사다 간단한 음식도 해먹는다. 아침은 매일 별맛 안 나는 빵에 커피 한 잔, 조금 호사를 한다치면 계란프라이만 있으면 된다. 느즈막이 나서서 한끼를 먹고 숙소로 와서 늘어지게 쉰다. 그러다 몇 번은 근사한 식사에 몰빵도 좀 하고, 조금 지겨우면 버스나 전철, 혹은 차를 빌려 슬쩍 구경나갔다고 돌아와 다시 빈둥대는 것. 그래, 와인 한잔 혹은 맥주 한잔은 해야겠지. 그래서 10박 어쩌구 하는 유럽여행 같은 상품에는 관심이 1도 없다. 언젠가, 덜 늙어 무릎에 힘이 남아 있고, 물처럼 낭비를 해도 될 만큼 시간이 있으면, 그때는 여비를 마련해 떠나보리라는 막연한 꿈은 꾼다.

KakaoTalk_20180321_131540278.jpg 숙소 근처 냉면집. 나는 동네에서 이집 음식이 제일 깔끔하고 맛있었다. 대만 사람들은 밥을 안해먹고 거의 사먹는 거 같았다.


‘선배, 대만 갈까요?’


나이 차가 무려 15년인 후배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후배 같지 않고 친구 같았다. 그는 나를 선배라고 부르고, 나는 친구라고 생각하며 봐온 게 꽤 오래다. 철도 들었고(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철이 났다), 똑똑하고, 젊으니까 스마트하기까지 해서 내가 모르는 실속 정보도 풍성하다. 나와 친구 먹는 게 그로서는 좀 억울하겠지만, 나에겐 큰 복이다. 대만이나 일본엘 가자고 몇 년째 말만 오가던 터라 말 나온 김에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후배와 후배의 친구와 나. 비행기표 샀다고 그러면 입금하고, 숙소 정해졌다고 하면 또 입금하고, 함께 쓸 경비 환전했다고 하면 또 입금하고. 그들은 최적화된 가이드였다! 어디서 자고 어딜 가고 무얼 먹을지 그냥 따라만 다니면 되는데, 워낙 취향이 엇비슷해 마음을 푹 놓았다.

그들이 미혼인 것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 얘기, 부부 갈등 이런 거는 아예 테이블에 오르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아니, 사실은 어른이 돼서 처음으로 친구들과 해외 여행길에 올랐다! 나이가 몇이든 사람은 친구와 있을 때가 가장 자기답다. 나는 배낭여행을 떠나는 대학생 기분이 났다. 이 여행에 대한 예감이 아주 좋았다.

타이페이를 간다는데 여행 정보 하나 찾아본 것 없이 비행기를 탔고, 비행기 안에서 일행 중 하나가 건네준 여행책자를 그제야 읽었다. 두 시간 조금 더 지나니 남의 땅, 남의 하늘에 닿았다. 송산공항에서 내릴 거라고 했고, 에어앤비에서 주택가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통으로 빌렸다고 했다. 숙소까지는 공항에서 택시를 타면 금방이라고 했다.

공항은 아담했다. 나는 택시 차창 밖으로 남의 나라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집들과 거리가 형편없이 낡아보였다. 우리나라 70년대쯤의 모습 같달까? 낡은 상점 앞에는 오토바이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게 또 신기해보였다.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택시가 정차했는데 잠시 후 신호가 바뀌니 우르르 오토바이 행렬이 쏟아지는데 그 광경 또한 낯설었다.

숙소 근처 주택가의 모습. 오토바이가 정말 많다.

나는 아주 가난한 나라에 여행 온 부자 나라 사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모든 것들을 만만하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97년 도쿄 국제도서전엘 가느라 처음으로 외국엘 갔다. 쭉쭉 곧은 빌딩들과 그 속에 어지럽게 엇갈려 있는 고가도로들, SF 만화에 나올 법한 초현대적인 건물들을 ‘시골사람’처럼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대만에서는 ‘서울사람’ 같은 기분이 부품하게 올라왔다.

하지만 이상하다. 대만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지만, 내 상식으로는 대만은 결코 가난한 나라가 아닌데, 심지어 옛날에는 우리보다 잘 살았단 적도 있었는데. (원고를 쓰느라 찾아보니 2017년 IMF 기준 타이완의 1인당 GDP가 2만 4511달러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2만 8739달러다. 별 차이 안 난다. )

과연 평범한 주택가의 한 아파트. 집앞에는 꽤 큰 동네 공원이 있었고, 베란다에서는 공원이 내려다보였다.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났고, 아침도 점심도 안 먹고 비행 직전 빵 한쪽에 커피 한잔을 마셨으니, 허기가 몰려왔다. 우리는 동네 식당에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백반 같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값은 쌌고, 음식의 질은 괜찮았지만, 위생 상태는 별로인 듯했지만 괘념치 않았다. 정말 작은 동네식당인데 주문을 받는 주인 아주머니가 똑 부러지게 단순한 영어를 기막히게 구사해서 조금 놀랬다.

배를 채우고 슬슬 첫날 첫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성품서점’이라는 곳인데, 교보문고 같은 데라고 했고, 근처에 호수가 있어서 참 좋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고, 한 명은 구글 맵을 보며 앞서 걸었다. 후배의 친구는 방향 감각이 좋아서 처음 가는 길인데도 골목으로 안내했다. 단독주택은 눈에 띄지 않았고, 연립 같은 저층 아파트 비슷한 집들이 이어져 있는데 하나같이 낡고 꾀죄죄해보였다. 일층은 상가니 주상복합인 셈인데, 이런 주택 형태가 일반적이어 보인다. 주택의 뒤태는 더 형편없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나는 곳이 특별히 가난한 동네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뭐지? 대만은 가난한 걸까, 가난해 보이는 걸까. 나는 이게 무진장 궁금했다.

낡은 건물들, 바꾸지 않는 걸까, 바꿀 여력이 안되는 걸까?


길을 건너려고 길가에 섰다. 맞은편에 역시나 낡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비바람의 세월을 온전히 견뎌온 건물의 노고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는 왠지 이 색감이 좋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 참 마음에 들었다. 낡았는데 멋있었다. 하긴 낡았다고 해서 멋있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골목의 집들은 별로 깔끔하지 않은데 그에 비해서 주택가에 있는 학교는 아주 훌륭했다. 운동장도 널찍널찍하고 나무도 잘 자라고 있었고, 학교 건물들은 단과대 수준은 돼 보였다. 재밌는 건, 쉬는 시간에 울리는 띵똥띠똥 하는 음악소리가 우리나라랑 똑같다. 문득 우리 아이들의 학교가 떠올랐다. 새로 지은 학교들이야 다를지 몰라도(이 경우도 건물은 알록달록한데 운동장은 코딱지만 하고, 그나마 운동도 별로 안 하는 것 같고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안 난다. 하지만 이곳 학교는 활기차 보였다 ), 세상의 모든 것들이 번쩍번쩍 새 단장을 하는 동안 학교는 여전히 교도소 같다는 생각을 여러 해 전에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중간에 시장도 구경하고, 동네 구경도 하면서. 교보문고 분위기가 나는 성품서점 부근에는 과연 작은 호수가 있었다. 호수가 보이는 곳에는 옛날 담배공장(맞나?)을 리모델링해서 차와 문화상품을 파는 카페가 있었다. 우리는 나무와 호수를 바라보며 쉴 필요가 있었다. 집에서 김포공항까지는 김포공항에서 송산공항까지만큼 시간이 걸렸고, 새벽에 길을 떠났으며, 방금 밥을 먹고 또 한참을 걸어 이미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그 카페는 값이 아주 비쌌다. 맛은 별로 없었고. 후배는 궁시렁거렸다. 그럴 만한 맛이다! 하지만 이 경치도 돈으로 쳐야 한다고, 그리고 지금은 쉴 타임이라고 자꾸 달랬다.

나는 이 세련된 공간이 아주 편하고 익숙했다. 어느새 그런 속물(?)이 되어 있었다. 나무를 보고, 물을 보고, 앞에 있는 벤치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행인을 구경하는 동안에도 계속 아까의 그 의문에 시달렸다. 이 의문은 여행 내내 꼬리표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가난한가, 가난하지 않는가? 이 낡은 것들을 무너뜨리고 새로 건설할 경제 여건이 안 되는 건가, 안하는 건가? 그게 나는 진짜로, 너무, 궁금했다. (다음 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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