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미생 #내인생의대사미생82회
“우리 팀 신입이 있는데 딱 형님 같더라고. 성실하고 일 미루지 않고…. 근데 형님하고 다른 게 있어요.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어린 친군데 취해 있지 않더라구요. ”(<미생>, 82회)
한두 해 전이었다. 대전 사는 여고 친구가 오랫만에 서울에 올라왔다. 거의 유일한 친구인데 일년에 한번 보기도 어렵다니, 매일 붙어다니던 여고 시절의 역사가 힘이 세긴 하다. 그래도 가장 실한 우정으로 남아 있는 걸 보면. 우리는 함께 을지면옥엘 갔다. 둘 다 엄마가 이북 출신이어서 입맛도 엇비슷해서 일부러 찾아갔다. 불고기를 2인분 시켜 먹고, 물냉면 한 그릇을 시켜서 나눠 먹는데, 새삼 참 맛이 있었다.
이 맛의 느낌은 뭐냐면, 아무 맛도 없어서 맛이 있었달까? 나, 냉면이야, 맛있는 냉면은 이래야 해, 라고 냉면이 내게 말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어떤 맛도 돌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웹툰이 <미생>의 대사가 떠올랐다.
“우리 팀 신입이 있는데 딱 형님 같더라고. 성실하고 일 미루지 않고…. 근데 형님하고 다른 게 있어요.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고, 열정적인데 무리가 없어. 어린 친군데 취해 있지 않더라구요. ”(미생, 82회)
유일하게 열광적으로(?) 본 웹툰이 그 유명한 <미생>이다. 2012년 여름, 아직은 <미생>의 유명세가 덜 할 때였다.(<미생>은 그해 1월 연재를 시작했고, 2014년 드라마로 제작됐다). 당시 나는 <유레카>에서 독서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회사 규모는 제법 컸고(지금에 비해 그렇단 얘기다), 매출은 꽝이었고, 분위기는 어수선했으며, 어디선가 낯선 투자자가 등장해 간부들 군기를 잡던 때였다.
여러 가지가 마뜩치 않았지만, 마흔 중후반 무렵이라 그나마 수용적 태도가 제법 생겨 있어서 지낼 만은 했다. 나는 오래 하는 회의가 질색이다. 그런데 그 여름엔 회의를 끝도 없이 해댔고, 새 투자자는 회의 때마다 거의 강의를 하곤 했다. 처음에는 좀 들을 만했지만, 금세 남들 모르게(당시 회의실에서는 TF(Task Force)팀이라며 간부들이 모여 일을 하고 있었다) 컴퓨터에 <미생>을 띄워놓고 맹렬하게 열독을 하였다.
매회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가 넘쳐서 따로 파일을 만들어 둘 정도로 몰입했다. 지루한 여름을 보내고 결국 그해 겨울 회사는 풍비박산이 났고, 투자자도, 일하던 사람들도 모조리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 겨울에 나는 무슨 뚝심이었는지 모르지만 홀로 남아 312호를 만들었고, 그러다가 팔자에도 없는 ‘대표’ 노릇을 지금껏 하고 있다.
주인공은 아다시피 ‘장그래’라는 청년 인턴이다. 막 사회에 나온 새내기. 장그래의 대척점에 일당백의 싸움을 할 줄 아는, 노련한 영업 3팀의 영업과장 오상식이 있다. 위의 대사는, 오상식이 사업 실패 후 술에 취해 살고 있는 선배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이 대사를 읽고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내가 꼭 오과장 앞에 앉은, 술에 취한, 실패한 선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십여년 일을 하다 둘째가 생기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공교롭게 외환위기 때였는데, 그런 정황이 아니었어도 짤렸을 거란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프리랜서로 짬짬이 일을 하다 다시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였다.
나는 여전히 사회의 룰이 익숙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감정들이 대책 없는 누수처럼 낭비되고 있었고, 가끔은 참다참다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하고는 했다. 객관적 정황을 실제적으로 판단해서 다시 현실적인 묘책을 찾아야 하는데, 나는 자꾸 원론적인 비판을 하고 있는 바보 멍충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종종 이 어리석음을‘열정’과 ‘진심’이라고 포장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런 내 모습을 오과장에게 간파 당한, 그런 기분이었다.
나는 오과장의 대사를 적어두고 이 말을 마음속으로 새겨넣었다. 열정적이지만 무리가 없이, 무언가에 취하지 않은 채로 담백하게 현실적 성취를 해야겠다고. 열정은 종종 허공을 붕붕 떠다니기 일쑤고, 그런 열정에 취하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이것 또한 현실을 회피하는 다른 모습의 비겁함 같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세상의 룰을 숙지하는 게 먼저겠다는 생각을 어슴푸레했다.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물론 사회 탓이지만(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건 사실이다), 이 속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 룰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필요하단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그 룰은 남자들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그러니 이 게임에 발을 들여놓은 이상 게임 고안자들의 태도와 언어와 규칙을 익혀야 한다는 말을 받아들였다.(당시 읽던 <남자처럼 일하고 여자처럼 승리하라>는 책의 내용이었는데, 나는 저자의 주장을 인정했다)
1997년 외환위기 무렵, 대기업 문화재단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잘린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별로 능력도 없으면서 대책 없이 서슴지 않고 간부에게 원론적인 짱돌을, 아주 열정적으로 날려댔으니, 내가 간부였어도 자르고 싶었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허한 열정 혹은 열정을 흉내낸 제스처에 스스로 환멸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물론 본래 생겨먹은 성정도 무시할 수는 없다. 호기심과 열정이 넉넉한 편이니까. 이 무렵, 아주 많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열정보다는 숨겨져 있는 열정이 더 무섭고 힘이 있다는 걸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정확하고 날카로워야 하지만, 태도는 유하고 진중하고 포용적일 때 한발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필라테스를 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경험 중이다. 새로운 자세를 익힐 때마다 매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 포즈를 익히겠다는, 잘해보겠다는 각오가 어깨와 온몸의 긴장으로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강사님은 이리 말한다. '어깨 힘 빼시고, 턱 넣으시고, 허리 바닥에 붙이고.. '라고 읊으며 자세를 교정해준다. 스르륵 힘을 빼고 나면 신기하게도 이완된 기운이 중력의 힘과 합세해서 강사님이 집중하라는 그 부분으로만 에너지가 모이는 게 아닌가. '애는 쓰는데 자연스럽다'는 그 대사가 다시 떠올랐다.
세월이 또 많이 흘렀다. 그 시절도 또 아득한 과거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만나면 생면부지의 사람을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나는 음식에 제법 까탈스러운 편이다. 미식가는 아니지만 맛없고 성의 없는, 상품으로 변한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맛의 오묘한 조화를 이뤄낸 요리를 찾아다닐 만큼은 여력도 없고, 큰 관심도 없다. 그냥 옛날 맛들, 소박하고 정갈한 맛들을 좋아한다. 국수는 소화를 잘 못 시키는 편이라 즐기지 않아서 냉면을 식사로 시키는 법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입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평냉, 평냉’ 할 때 그냥 그랬다. 달지 않아서 괜찮긴 하지만 그냥 그랬다.
그런데 그날 친구와 을지면옥에서 '내맛도 네맛도 없는' 냉면을 먹었는데, 그게 참 맛이 있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슴슴한 맛을 좋아한다. 소스나 양념이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 원래 재료가 데쳐지거나 슬쩍 볶아지거나 하는. 별로 요리를 하지 않는. 그래서 가끔 내가 맛있어 하는 걸 남에게 권하기가 어렵다. 내 입에는 맛있는데, 사실 뚜렷하게 별맛이 나지 않는 그런 맛이어서 그렇다.
사람도 요리도 일도, 이제는 슴슴한 게 좋다. 그리고 그 슴슴함이 나는 기본을 지키는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람도 요리도 일도, 담백한 게 좋다는 말을 이렇게 오래 하고 있으니, 나는 아직 멀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