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경쟁#특출나지않아도괜찮아
“여하튼간에 재능이란 미리 받은 장학금과 같은 것에 불과하니,
큰 괴로움과 온갖 시련을 겸허하면서도 꿋꿋하게 이겨나감으로써
그 장학금에 마땅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하늘의 목소리를 듣게 되며 그것을 받아 쓰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느니라.”
사르트르, <말>
나는 결코 ‘경쟁적’인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려니 스스로 좀 의심스럽다. 남보다 더 큰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싶다거나, 남보다 뭐 어쩌고 하고 싶단 생각을 안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일찌감치 이런 경쟁에 이길 자신이 없으니 백기를 든 것일 수도 있고, 이미지 ‘뽀샵’하듯 점잖고 근사한 철학이라도 있는 양한 것일 수도 있지.
이 문제의 진위 여부는 가리기 어렵지만 만일 다음과 같은 시샘도 경쟁에서 비롯된 거라면, 꽤 경쟁적인 것도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관심 있는 분야에 관한한 나보다 조금 더 잘 하는 사람들을 시샘했다.
그림 대회에 나가면 탁월한 색감을 뽐내며 최우수상을 손에 넣던 그 아이,
글짓기 대회에서 장원한 그 아이(나는 자주 차상, 차하 같은 걸 받았다),
시험 결과 나온 날 복도에 내걸린 전교 순위의 앞부분에 있는 그 아이,
학교 행사에 독창 주자로 뽑혀나가는 그 아이….
모두 가까운 친구들이었고, 나는 자주 좌절했다. 공부고 뭐고 못하지는 않는데, 중뿔나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학에 가서도 이런 견주기에 계속 주눅 들었다. 고교 시절에 당시 대학에서 유행(?)하는 책들을 나름 읽고 갔는데 막상 입학을 하고 보니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 처음 듣는 철학자 이름이 오르내리고 그들의 생각을 청산유수로 떠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문학은 어떤가. 글 잘 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나는 지레 뒤로 물러나, ‘저는요, 그냥 문학이 좋아서 왔는데 글은 못 써요. 평론공부를 할 계획이에요.’남들은 모르겠지만 내 귀에는 이 대답이 너무 옹색하게 들렸다. 투쟁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데모가 일상인 대학생활 내내, 실천력마저도 부족했다! 밤샘농성이 있을 때는 막차 탈 때까지 앉아 있다 슬그머니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아, 여전히 나는 중뿔나게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직장생활을 ‘대충’ 하다가 두 아이 양육을 앞세워 마침내 경쟁으로부터 물러났다. 출판사 기획일도 특출나게 잘하지 못했다. 이 동네는 선수가 더 넘쳐났다. 아이들은 자랐고, 육아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들의 아빠는 직업적 성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초라해져갔다. 중뿔나게 잘하는 게 없었어도 그럭저럭 나답게 살았는데 집에서 아이 키우는 일을 십여년 하는 동안,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두 아이와 재미나게 지냈고, 한 남자의 아내 노릇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던 것 같고, 시부모의 괜찮은, 크게 욕먹을 짓 않는 막내며느리였는데도, 그런 것들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사회는 내가 주로 하는 일의 가치를 우습게 알았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추어올리지만, 개뿔이다. 무엇보다 내가 나답게, 만족스럽게 살고 있지 못했다.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무엇이든 해보려고 꼼지락거렸다. 구성작가라는 걸 하겠다고 교육도 받았고, 동화작가를 하겠다고 습작도 써보았지만, 도무지 나아갈 수가 없었다.
나는 재능이 없다고 마침내 단정을 내렸다. 끈기도 없는 사람이라고 몰아세웠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은 무심한 시계소리와 함께 무럭무럭 자랐다. 한해 한해 손이 덜 갔고, 점점 엄마라는 존재의 절대성은 약화되어 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이 왔다. 이유 없이 얼굴 반쪽이 부어오르거나 인중이 탱탱 부어올랐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마음보다 몸이 먼저 말을 걸었다. 나는 일을 찾아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변한 건 크게 없었다. 아이들 밥을 해먹이고 키우며 직장 일을 해내야 했다. 그때 그 시절, 이 노래를 즐겨 들었다. 노랫말이 가슴에 몹시 사무쳤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이었다.
보일 듯 말듯 가물거리는 /안개 속에 쌓인 길
잡힐 듯 말듯 멀어져 가는 /무지개와 같은 길
그 어디에서 날 기다리는지 /둘러보아도 찾을 수 없네
그대여 힘이 되 주오 /나에게 주어진 길 찾을 수 있도록
그대여 길을 터 주오 /가리워진 나의 길을
나는, 여전히, 내 길을 찾고 싶었다.
결코 무심하지 않은, 오랜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보다 더 나이를 먹어버렸다. 그리고 이제야 어린 날부터 있었던 시샘이, 재능이 없다는 좌절감이 겨우 꼬리를 감췄다. 중뿔나게 잘할 필요가 없다는 걸, 중뿔난 재능 같은 걸 내가 가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걸 알았다. 중뿔나게 잘하지 않아도 한세상 너끈히 살아낼 수 있다는 걸 말이다.
앞에 인용한 글귀는 사르트르의 자전적 얘기를 담은 <말>이라는 책을 읽다 발견한 것이다. 사르트르는 여기서 재능을 장학금이라고 표현했다. 시련과 어려움을 잘 겪어서 장학금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되면 재능이 빛을 발할 거라고 했다. 이 문장에 줄을 그으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두드러지게 있어도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하는 것이구나. 근데 대체 재능이란 뭘 말하는 거지?
아이들 키우는 부모들이 이런 말 하는 걸 종종 듣는다. 뭘 하나 제대로 잘하는 게 있어야, 특출난 게 있어야 공부 안해도 된다는 말을 하지. 이때의 제대로란 어느 수준일까? 수영을 하면 박태환급, 스케이팅은 연아 수준, 노래를 하면 악동뮤지션의 수현이 정도?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정말 '중뿔나게' 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말하는 부모들은 그런 재능을 가졌는지, 그런 특출난 재능이 없어서 대신 공부를 엄청 잘했는지 묻고 싶다. (공부도 재능이다!)
사르트르는 재능을 장학금이라고 했는데, 미안하지만 나는 평생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다행히 장학금 없이도 잘 살아왔다. 어릴 때 백일장 나갈 수준의 재능으로도. 이 정도의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그리고 이만큼의 재능으로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사는 데 아주 부족한 건 아니었다. 돌아보니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이 일을 해왔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렇게 끈질기게 이 일을 붙잡고 있게 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니, 그래도 개중에 잘하는 것인 모양인갑다. 친구며 형제 자매, 선후배를 좌우로 둘러보니, 그들도 나처럼 그래도 개중에 잘하는 것을 붙들고 한세상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제 내가 가진 것들 중에 개중에 잘하는 일, 그걸 재능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재능들이 있던가. 성격이 좋아서 사람들과 잘 섞이는 재능, 남들보다 책을 좋아하는 재능,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좋아하는 재능, 식물을 잘 키우는 재능, 동물을 좋아하는 재능, 공부 재능.... 세상사는 데 ‘중뿔난 재능’이 필요한 건 아니다. 자기답게 살 수 있는 힘이 ‘중뿔난 재능’에서 오는 건 더더욱 아니다.
오랫동안 나를 억누르던 무거운 추 하나를 겨우 덜어냈다. (유레카,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