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감정 #고뇌 #잔생각 #어두운마음의그림자
“삶은 내 생각이 만드는 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
_에크하르트, <Now>
내 어머니는 겉모습으로 보자면 꽤 굳세고 시크해보이는 사람이다. 입 모양새가 좀 나온 터라 입을 굳게 다물면 조금 화난 것 같은 표정도 있다.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엄마가 멋있고 근사해보였다. 진심으로 엄마를 존경했다. 존경하는 인물란에 늘 엄마를 적었는데, 한번은 중학교 때 학교에 온 엄마가 선생님에게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무척 기쁘셨는지, 환하게 웃으며 그 얘길 한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한 것도, 폼 나는 직업을 가진 적도 없는 평범한 분이었지만 포스가 남달랐다. 부모 잃고 부잣집 노부부의 양녀처럼 자란 이북내기였는데, 현명하면서도 깔끔한 대단한 원칙주의자였다. 가난한 집에 시집온 데다 또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를 일궈야 했기 때문에 호떡장사도 하고, 만화가게 주인도 하고, 동네 점방도 오래 했었다. 하지만 그분은 어떤 일을 하든 그 기상이 꼿꼿하여 품위를 잃은 적이 없었다. 기성회비가 밀려 벌을 섰다는 언니 말에 그길로 학교로 달려가 이게 아이가 야단들을 일이냐 무섭게 따져 묻고 한달여를 학교를 안 보낸 분이다. 언니와 내가 조금 자라니 성당 다니는 우리를 앉혀두고 밖에 나가서 아무에게나 오빠라고 부르며 다니지 말라고 까칠한 다짐을 받아두기도 하셨다. 그렇지만 늘 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웠고, 헌신적이었으며, 웃음도 많았다.
며칠 전 아침 꿈이 생각난다. 아이처럼 폴폴 날아다니다 엄마를 만났다. 예순 살 안팎의 엄마. 내가 너무나 그리워하던 그 표정의. 엄마를 품에 안고 엉엉 울었다. 너무 너무 그리운 엄마 표정. 여든 중반을 넘어선 엄마는 착한 치매를 앓고 계신대, 치매는 엄마의 멋진 표정을 앗아가버렸다. 깨고 나서도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추억이라는 게 늘 좋은 것만 선택적으로 간직하는 법이고, 그래서 사람이 산다고들 한다. 어쨌든 어릴 때의 내 기억 속 엄마는 그렇게 강인하고 독립적이며 멋진 여성이었다. 그런 엄마의 등뒤를,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이면을 우연히 본 건 대학생 무렵인 것 같다. 저녁 준비를 하던 중에 석양을 바라보며 서 있는 엄마의 등 뒤로 서글픔, 쓸쓸함 같은 것이 서성거렸다.
그날 이후, 내 나이가 하나둘 늘면서 어수룩한 엄마의 다른 면모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여성인 줄 알았던 엄마는 나중에 보니 아빠에게 모든 걸 기대며 살아온, 전형적인 주부였다. 딸 앞에서 브래지어도 훌떡 벗어본 적 없을 만큼 자잘한 원칙도 많은 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잔생각이 너무 많은, 복잡한 감정과 생각에 자주 휩싸이는 분이었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과의 일이 마음에 걸리면 소가 되새김질하듯 되씹고 되뇌며 밤을 지새우셨다. 복잡함, 혹은 복잡한 감정에 자주 노출되는 기질이었다. 타인과의 관계에서든 일에서든 완벽하게 깔끔하고 싶은 욕심 같은 것으로 보였다.
그의 자궁 안에서 숨 쉬다 태어난 탓인지 엄마의 기질이 내게도 이어져 있었다. 단조풍의 곡조가 좋고, 사춘기 무렵부터 늘 심장에 무거운 추를 달고 사는 기분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고 우울증 같은 병증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늘 편치 않았다. 문학을 좋아하는 것이 어쩌면 이런 기질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나중에는 좀 약이 올랐다. 내게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감수성으로 시를 짓는 것도, 소설을 건축하는 것도 아니면서 대체 어디에다 쓰려고….
나는 자주 센치했고, 늘 석연치 않았으며, 일이든 사람과의 관계든 늘 복잡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고, 내가 한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곱씹으며 자책도 많이 했다. 그 복잡한 심사 덕에 종종 일도, 관계도 꼬이고는 했다.
오십 넘어 살다보니, 누구나 어느 한때 예기치 않은 된서리를 뒤집어쓰는 시기가 있는 것 같더라. 저마다 다른 시기, 다른 내용들이지만.
우연 혹은 필연처럼 회사를 경영하게 됐는데, 코딱지만한 회사지만 그래도 운영이란 걸 하다보니 새가슴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잦아졌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해야 할 일도 많았고, 인쇄소 사장님을 찾아가 몇 달만 지불을 늦춰 달라고도 해봤다. 이뿐이겠는가. 껄끄럽고 피하고 싶은 일투성이였다. 직원들 눈치도 보였다. 사람은 없는데 일이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대표로서 새로운 돌파구를 못 찾고 있다는 자괴감도 시시때때로 들었다. 회사 시스템을 제대로 못 갖춘 것도 부끄러웠다. 명절에 상여금도 못 주고 겨우겨우 월급을 맞춰 보낸 다음, 만만한 술친구를 찾아 폭음을 하고 술힘을 빌어 대성통곡도 해봤다.
꿈은 큰데 현실은 구차했고, 모두의 입장에 완벽하게 조응해내기엔 내가 가진 것이 너무 형편없었다. 복잡한 감정이 매일매일 다른 내용으로 내 안에 파고를 일으켰다. 나는 그 파고에 정신없이 실려 다니며 고초를 겪었다. 밤잠을 못 이루기도 했고, 이기지 못할 술에 취해도 봤으며, 어두운 계단 한켠에 앉아 눈물콧물도 빼봤다.
그러던 어느 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더는 어리석고 싶지 않아.’내게는 절박한 외침 같은 거였다. 그러려면 그동안의 태도와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보통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그 주위로 파장이 생겨난다. 가까운 지인 혹은 친구와 작은 다툼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견디기 쉽지 않다. 복잡한 감정이 눈사태처럼 쏟아진다. 그러다 보면 문제가 왜 생겼는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기보다는 원망, 비난, 섭섭함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다 나중에는 스스로에 대한 좌절에까지 이른다. 어두운 마음의 그림자들.
그런저런 한 시기를 겪고 있을 때 <Now>라는 책에서 많은 위안을 받았다. 생각에 짓눌리고 감정에 복받치느라 지칠 때로 지쳐 있었다. 내 속을 가득 채운 이 감정들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제멋대로 말똥구리처럼 커져가는 부정적인 마음의 작동. 복잡한 감정의 파고에 휩쓸리다 보면 나중에는 뭐가 문제인지도 알 수 없는 채로 흔들리고 무너진다. 두려움이거나 걱정인 것은 안다. 두려움 때문에 단순하고 분명하게 봐야 할 것을 회피하고 마음의 그림자 속에 자신을 감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삶은 내 생각이 만드는 만큼 그렇게 심각하지 않다.”내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도, 어쩌면, ‘내 생각이 만드는 만큼’그렇게 심각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그제야 날이 잘 드는 가위를 양 손에 들었다. 복잡해 보이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잘라냈다. 그러고 나면 문제 그 자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게 드러난 본모습은 회피하고 싶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긴 했지만 의외로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는 아닌 경우가 많았다. 조금씩 문제를 간명하게 파악할 줄 알게 되었고, 나름의 해결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또한 역량에 부친 일을 도모하느라 괜히 스스로 좌절하는, 그런 일은 과감히 중단했다. 비로소 감정이라는 파고에 덜 시달리게 되었다.
내게 큰 어려움이 왔지만 늘 친구처럼 내 일에 민감했던 엄마는 치매 덕에 마음을 앓지 않으셔도 됐다. 또한 기억 저장이 불가능한 탓에 잔걱정을 곰삭이는 일에서도 벗어났다. 아빠 장례식. 남편을 잃은 고통에서조차 해방된 엄마를 보면서, 우리 남매는 쓴웃음처럼 다행이야, 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문득문득, 뭉툭해진 내가 낯설 때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종종 복잡한 감정에 휩쓸리고, 어두운 마음의 그림자에 갇혀 있곤 한다. 양손에 든 가위가 제 구실을 못할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