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왜 이렇게 헛갈릴까

겉과 속, 흑과 백....

by 김지나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내가 활동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활동적이라는 것도, 너무나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고 보면 그 역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늘은 잠시 활동을 정지하고, 나의 마음은 제 자신을 맞으러 간다.”_알베르 카뮈, <안과 겉>




토요일 늦은 아침이다. 이부자리한테 괜한 어리광을 부리다가 느지막이 일어난다. 일주일 동안의 노고(勞苦)를, 나 아닌 누군가 나처럼 알아주고 보듬어 주면 좋겠다는 어리광. 아잇적 엄마의 품에 안겼을 때 나던 엄마 냄새 같은 그런 위로는, 그때 엄마 나이보다 한참을 더 먹은 지금까지도 왜 그렇게 그리운지. 휴일이면 이부자리 온기에 기대 꼼지락꼼지락 위로를 구한다.

그러다 찌뿌드드한 몸을 일으킨다. 묵묵히 장관을 이루며 떠올랐을 태양이 신선한 아침햇살로 번져 있다. 공기 끝에 아직은 아침의 상쾌함이 매달려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동네 산책을 나선다. 단풍의 계절이 아니던가. 거리마다 풍경마다 색들이 신나는 잔치를 벌인다. 자연의 온갖 빛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찬란하지만 숙연함과 고요함을 갖춘, 10월은 그런 계절이다.

작은 나무 한 그루 안에서도 제각각 다른 옷을 입고 뽐내는 이파리들로 분주하다. 여전한 초록과 퇴락한 초록, 노랑기가 물든 연두와 완연한 진노랑, 진노랑이 진화한 주황과 뒤섞인 빨강, 갈색빛이 당당한 녀석도 있다. 어떤 나무는 이파리가 빨간 꽃처럼 앉았다. 햇살을 받은 꼭대기 이파리는 빨간데 태양의 손길이 덜 미친 그늘 진 부분은 여전한 초록이다.

단풍은 어디서 오는 걸까? 써놓고 보니 세 살 아이의 물음 같다. 과학적 설명은 모르겠고 태양의 농간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봄의 새싹과 꽃망울도 햇살의 불평등한 영향을 안 받았을 리 없겠지만, 가을 단풍만큼 노골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한 바퀴 돌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진기한 풍광을 만난다. 작은 길을 사이에 두고 가로수 빛깔이 아주 확연하게 갈린다. 왼쪽은 초록과 연두고, 오른쪽은 푸른빛이 좀 남아 있긴 하지만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다. 단풍 드는 것이 우월하고, 여전한 초록이 열등한 것도 아닌데 괜히 왼쪽 가로수들을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다. 처진다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이런 생각도 든다. 초록이 기세등등하게 남아 있으니 여전한 혈기를 자랑하는 것일 수 있지 않냐고.

별 쓸 데 없는 생각에 골몰하다가 이것이든 저것이든 왜 나이 들수록 선명하게 무언가를 가르는 게 더 어려워졌지 싶다. 가부(可否)를 정하는 것도, 무엇이 더 올바른지 선택하는 것도 자주 머뭇거려진다. 더 젊고 더 어릴 때는 분명 선명했는데, 노안으로 본 사물처럼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상반된 것들 사이를 줏대도 없이 흔들린다.



나는 만날 흔들린다


천상병 시인의 천진함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성인은 아이에 비해 노회(老獪)하다. 겪은 게 많으니 눈치가 빠르고 제 이익을 위해 교활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아이 같다는 말은 칭찬이다. 막걸리 한병에 천하를 다 얻은 것 같은 천상병 시인의 웃음을 좋아하는 이유다. 하지만 어떨 때 아이 같은 성인을 보면 화가 난다. 감정 조절조차 못하고,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지기보다 남의 뒤에 숨으려는 어리석음으로 보인다. 왜 어른답지 못하지? 미성숙과 동의어일 때도 있다. 아이 같은 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이성과 감정도 그렇다. 감정의 동요 없이 이성적으로 결론에 이르는 것을 좋아한다. 이성적 합리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어떨 때는 이성이란 녀석이 정나미 없이 차가워 보여서 싫다. 조금 어수선해도 감정적인 것이 훨씬 소탈하고 매력적일 때가 많다. 게으름은? 세상은 게으름을 비판하기도 하고 찬양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인생은 짧은 것이기에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은 죄악이다. 내가 활동적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활동적이라는 것도, 너무나 일에 골몰하여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고 보면 그 역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오늘은 잠시 활동을 정지하고, 나의 마음은 제 자신을 맞으러 간다.” - 알베르 카뮈, <안과 겉>


나는 카뮈가 한 이 말의 첫 문장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과연 죄악일까? 나는 가끔 불안해하는 이십대 아들딸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괜찮아. 너희는 젊어서 인생을 막 낭비해도 좋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가졌어.” 비단 젊은이들뿐 아니라 나도 시간을 낭비하면서 살아도, 허송세월 해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옛날에는 분명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다.

또 있다. 누구나 그렇듯 나 역시 중학생 무렵부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꽤 깊게 마음을 앓았다. 인생은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 의미가 보이지 않을 때 우울해하고 좌절하고 냉소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인생이 꼭 의미가 있어야 하나, 라는 의문이 든다.

여든 중반의 약한 치매를 앓는 엄마는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분이다. 당신이 치매로 아이들이나 다닐 법한 노치원을 다니며 얼토당토 않은 유치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단단히 성을 내실 거다. 엄마는 홀로 계실 때 자주 전화를 하는데 가장 흔한 레퍼토리는 이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왜 자살하는지 이제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세상에 아무 할 일이 없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사람이다. 이렇게 살아서 무슨 의미가 있나. 종교가 있어서 자살은 못하지만, 나는 자살하는 사람이 이해가 간다.’

‘엄마, 꼭 그렇게 인생이 의미 있어야 돼?’ 라고 엄마에게 항변하고 예전처럼 수다를 떨고 싶지만, 치매를 앓으면서 엄마의 공감 능력은 제로가 되었다. 아마도 얘기의 맥락을 따라가기 버거워져서겠지. 이제 엄마와의 대화는 무조건적인 맞장구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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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가라사대


나는 이렇게 만날 갈팡질팡한다. 더구나 이런 의문들은 끝이 없다. 도무지 사는 일은 어마무시하고 장대한 것이라 고통도 끝이 없어서, 수학 공부할 때 일차방정식 단원을 마치면 이차방정식 단원을 배우듯, 하나의 고통을 겪어내서 단단해졌다고 믿으면 곧이어 다른 모양의 고통이 찾아와 나를 시험한다. 그래서 나는 자잘한 일상을 가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삶은 가꾸는 것이라고 믿는다. 사랑도 그렇다. 젊을 때는 열정적 사랑만을 믿었지만, 뜨뜻미지근한 사랑도 믿게 됐다. 아니 오히려 더 믿는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삶은 가꾸는 게 아니라 흐르는 대로 흘러가는 거라고. 물론 이 둘은 상반된 입장이 아니다. 그저 강조점이 조금 다른 것일 뿐이다.

어찌 됐든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안과 겉이, 흑과 백이, 옳고 그름이 있어서 둘 사이를 단번에 긋기가 너무 어렵다. 이런 판단들이, 그저 태양의 세례로 단풍이 곱게 물든 가로수와 그늘에 서 있어서 여전히 푸른 이파리에 대한 것이라면 간단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생활적이고도 현실적인 것들이라 결코 단순하지도 쉽지도 않다. 나는 자주 두 개의 패를 들고 무얼 버려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다가 감상적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함민복 시인이 ‘모든 경계에 꽃이 핀다’고 한 게 아마 같은 이유일 거야. 사람들이 어떤 일의 이면에 대해 깊이 봐야 한다고 하는 것도 그래서일 거고. 만날 흔들리는 게 정상일 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게 더 아름다운 걸 지도 몰라.

그러다 조금 학문적(?)으로도 생각해본다. 소크라테스가 ‘깨달음을 낳게 하는 산파’를 자처한 이유도 그래서일 거라고. 옳다고 맞다고 철썩같이 믿은 것들에 대해 회의해야 한다고 말한 그 이유에 대해서.

에우티프론과의 일화를 소개한다.

젊은이 에우티프론은 실수로 노예를 죽인 자기 아버지를 법정에 고발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은 ‘경건한 사람’이므로 아무리 친아버지라도 고발하는 게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를 붙잡고 그가 존중하는 ‘경건함’이 뭐냐고 묻는다. 에우티프론은 경건함은 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신들마다 제각각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에우티프론은 경건함은 모든 신들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묻는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네. 그럼 경건함이란 모든 신들이 인정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이 인정한 것인가?”

진리를 향한 우리들의 수많은 흔들림이 어쩌면 모든 경계들마다 꽃을 피운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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