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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Apr 23. 2019

10. 나이,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핸디캡

#세대차가있지만그렇다고소통이어려운건아냐

그날의 만남은 조금 어색하고 긴장됐다. 가을이 깊어져 겨울을 부르던 때였다. 첫 만남도, 잊고 지내던 옛사랑도, 대단한 비즈니스 파트너도 아닌데 그랬다. 더구나 나는 ‘핵인싸’에 속하는 축이라 사람 만나는 일에 부담이나 불편을 별로 안 느끼는 편이다. 이십대 초중반, 출판사 새내기 시절 막 출소한 김지하 선생을 모시고 다닌 적이 있었는데, 어린 나이였지만 별로 기죽지도 떨리지도 않았던 기억이 난다. 이북내기 어머니가 물려준 자존심이 짱짱해서 권위 같은 것에 쉽게 주눅 들거나 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한해 한해 나이 드니 사람 만나는 일이 더 편해졌다. 잘났든 못났든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요 누구든 이생의 삶을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아 보여 관대해졌달까? 젊을 때는 누구를 만나면 나랑 잘 맞니 아니니 따지고, 언뜻 단점이 보이면 그게 그렇게 큰 흉으로 보였는데 이젠 단점보다 사람들의 장점이 먼저 보여 관계가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그런데도 그날의 만남은 영 편치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장벽에 주눅 들어


지난 해 봄, 교사와 중고생이 주 독자층이었던 <유레카>를 전 국민이 보는 인문교양 잡지로 대대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러면서 두 명의 신입생과 두 명의 재학생으로 구성된 청년기자를 영입(?)했다. 대단한 계획과 포부가 있었던 건 아니다. 청년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 정도였다. 마침 딸아이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또 주위 선후배 자녀들도 막 입학하거나 재학중이라 <유레카>에 보내달라 청했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만난 건 아니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괴력에 가까운 능력을 발휘 중인 젊은 기자에게 연락처를 주고 만나서 일을 도모할 임무를 주었다. 그랬더니 꿍짝꿍짝 기획을 해서 청년 섹션을 만들어냈다. 그들과 만나고 온 다음 날이면 그 얘기를 하는 기자의 표정이 활기차고 생생해서 덩달아 좋았다. 나는 마감 때에야 그들의 글을 접했는데 일단 참 재미났다. 글에 담긴 에너지는 상상 이상이었고, 도무지 알기 어려운 그들의 생각이 엿보여 반가우면서 신기했다. 집순이에 대한 소고를 읽으며 우리 딸만 그런 게 아니구나, 고개를 끄덕였고, 덕질의 힘이 느껴지는 연극평은 신선했으며, 대학가의 풍속을 스케치한 글은 반할 만큼 발랄했다. 별생각 없이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라는 느낌이었다.    

얼마 후, 막 새순이 돋을 무렵 청년기자들을 비롯해서 <유레카> 식구들과 다 함께 1박2일 여행을 다녀왔다. 포슬포슬한 대지 위로는 여린 싹들이 움텄고, 밭에는 씨앗을 숨긴 흙들이 자랑스럽게 맨몸을 드러냈다. 물 오른 나뭇가지는 봄꽃을 하늘을 향해 쏘아올렸다. 강가에 줄지어선  메타세콰이어는 수직의 기상을 전해주었다. 그날 처음 청년기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반가운 인사를 나눴을 뿐 깊은 얘기를 나누지도, 친근해질 만한 어떤 시간도 갖지 못했다.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즐겁게 식사를 했으나, 숙소로 와서는 잠시 술자리에 앉았다가 금세 헤어졌다. 늘 그렇듯 어른(?)들만 남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갔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조금 의외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면 터놓고 대화하기를 즐기는 데 왜 나는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을까?… 

세대 차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에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상대에 대한 질문이 행여 프라이버시 침해가 될까 봐, 내 말이 일방적 장광설로 흐를까 봐, 기성세대의 묵은 문화가 들킬까 봐 그랬던 것 같다. 그 무의식들이 얼마나 힘이 센지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호기심을 억눌러 버렸다.   


그날 젊은 그들을 만나면서 


사람마다 양육 태도가 다를 텐데 나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는 편인 것 같다. 아이들의 선택에 크게 간섭하지 않았고, 대신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자신들의 몫임을 분명히 했다. 입시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여서 남들이 겪는 자녀 갈등 같은 것은, 아주 없기야 하겠냐만, 거의 안 겪었던 것 같다. 이제 둘 다 성인이 됐으니 경제적인 책임은 여전히 있지만 양육에서는 벗어났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대화는 더 자유로워졌고, 대화의 깊이 또한 더 막강해졌는데 희한하게 나로서는 조심할 것, 세심할 것이 더 늘었다. 세대 차도 크게 다가왔고(삶의 조건 처한 상황이 다르니 당연하다), 또 내 아이이기 전에 한 사람의 성인이라 나와 자녀 사이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했다. 

그 무렵 딸 아이는 2학년 1학기 휴학을 결정하고 <유레카>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우리는 출근도, 일도, 점심 저녁도, 퇴근도 함께 했다. 그만큼 아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주제 역시 전방위적이었다. 나는 딸아이와 얘기하면서 내 시각과 생각을 교정해야 했다. 아이의 논리는 당당했고, 나는 자주 내 생각의 한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청년이 아니던가. 매사에 더 없이 날카로웠다. 알게 모르게 기성세대의 습성을 지니고 있던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날 때가 많았다.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한 대화는 번번이 판정패 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점차 전위적이고 전복적인 딸 아이와 그 또래 여성들의 생각을 조금씩 인정하게 됐고, 나와 우리 사이의 일치점과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사진=사진찍는 김기자 트위터캡쳐. 마트 여자화장실 칸막이에 점점 늘어나는 구멍들. 

내 아이들, 청년기자들은 그 봄을 지나고 여름을 맞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부지런히 성장해갔다.  문장은 더 명쾌해졌고, 주제의식도 더 탄탄해졌다. 그렇게 가을이 저물고 겨울이 올 무렵, 담당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 청년기자 모임에 내가 맛있는 술 사 주러 갈까?”

그렇게 해서 우리는 상수역 부근에 찜해둔 맛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호기롭게 안주를 시키고, 그 즈음 애정하던 화토닉(화요와 토닉을 섞어 먹는)을 말아주니, 처음 마셔본다며, 맛있다며 반색을 했다. 다섯 명의 청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속으로 쫄리는 기분이었다. 물경 대표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데도, 그들 부모와 선후배 친구 사이인데도 위축감 같은 걸 느꼈다. 여전히 나는 내 말이 너무 길어지는 건 아닌지, 내 중심적으로 흐르는 건 아닌지 자기점검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아주 유쾌했다. 청년들이 앞서 살아온 선배로서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느낌이었다. 대화는 거침이 없었고, 그들은 맹렬한 생각들을 의기양양 드러냈다. 이제 갓 스물이거나 스물하나거나 스물 대여섯인 청년들의 눈빛과 어조는 당돌할 만큼 자신감이 넘쳤는데 그게 그렇게 반갑고 멋있게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들의 대화는 치열했고, 수위 또한 어마어마했다. 그들의 발칙함(?)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차수를 옮겨 생맥주집에 앉아서 이런 요지의 얘기를 잠깐 했던 것 같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은 내가 상대와 다른 처지라는 것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나와 너희들 사이에는 몇십 년이라는 경험의 차이가 있고 당연히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차이를 서로 감안해주면 되지 않겠느냐. 나이라는 핸디캡이 당연히 작용하겠지만, 그것은 여러 가지 핸디캡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세대 차라는 너무 무거운 장막에 짓눌리는 대신 서로가 다른 시간대를 살아왔고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되 그것을 너무 크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얘기였다.    


스물넷 초짜 기자와 퇴근길에 막걸리 반주를 하면서


말은 호기로웠지만 그 자리는 내가 여태 참석한 모임 중에서 가장 부담스러운 자리인 것은 틀림없다. 다수 중에 소수여서 그런 것도 같다. 입장을 바꿔서 이십대 후반 삼십대, 사오십대가 많은 회사에 새내기 청년이 입사하면 어떤 기분일까? 자기만 어리고 모두 어른인 곳에서 함께 일하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입을 닫고 눈만 뜬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일 것 같다. 특히 한국의 사회생활 문화에서는 더더욱. 그날의 자리가 불편(?)했던 것은 내가 다수가 아닌 소수여서 그렇단 생각이 자꾸 든다. 그 모임에서 나는 비주류였으니까.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흡족한 기분으로 헤어졌던 것 같다. 

그 청년 기자들 중 한 명이 올해 졸업을 하고 얼마 전 <유레카>에 입사를 했다. 탱크같이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청년이다. 졸업을 앞두고 입사할 의사가 있는지 묻던 날, 그녀와의 대화가 떠오른다. ‘가난한 회사에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냐.’그녀는 당장 이렇게 대답했다. ‘부자 회사에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요, 뭐,’나는 맞다, 맞다 하면서 크게 웃었다.  

나는 종종 그녀와 도서관도 가고, 일하다가 차도 마시고, 퇴근길에 밥도 먹고 반주도 나눈다. 며칠 전에는 둘이 야근하다 퇴근길에 만둣국과 빈대떡과 막걸리 한 병을 나눠마셨다. 30년이라는 나이 차가 났지만, 나와 그녀는 동료이기도 하고 반주를 즐기는 친구이기도 하다. 지금은 일하다가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 그녀가 아주 귀엽다는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칭찬을 해주기도 한다. 나와 그녀는 나이라는 핸디캡은 넘어서는 중이다.   

나는 청년들의 맹렬함을 흠모한다. 회사의 여력이 생기면 이들과 꼭 한번 멋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그들의 얘기를 이 사회에 아주 멋지게 들려주고 싶다. 내가 할 일은 이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사주면서 이들의 매력적인 도발을 부추기는 것이다. 봄과 여름 어느 사이에, 내게는 조금 긴장되는 그 모임을 또 한번 가져볼 생각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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