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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Jul 30. 2019

01 여름밤, 창경궁

01#창경궁야간개장 #순라길  #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게 궁궐은 별로 특별할 게 없는 곳이다. 시내에만 나오면 보이는 게 궁이니 말이다. 하지만 궁궐은 서울이라는 세계적인 대도시의 풍광을, 아주 독특하고 매력적이게 만드는 마법을 지녔다. 또 바쁘고 요란한 현대적인 분위기를 오랜 시간의 힘으로 다독이고 있는 느낌도 난다. 특히 낮게 에워싼 궐 담장과 담장 안팎에 서 있는 키 큰 나무, 그 위의 너른 하늘은, 고즈넉한 기운을 선물한다. 

어느 날 퇴근길에 보니 창경궁 앞에 야간개장이라고 큼지막하게 써놓은 푯말이 멀뚱히 서 있는 걸 봤다. 몇 해 전부터 궁궐 야간개장에 대한 얘길 여기저기서 들었다. 창덕궁 ‘달빛기행’과 경북궁 ‘별빛야행’. 눈길이 가긴 했지만 예약도 쉽지 않고 비용도 적지 않아서 게으른 내게는 그냥 ‘그림의 떡’이었다. 혹시나 하고 다음 날 창경궁 야간개장을 검색해보니 만만하니 좋았다. 입장료 1000원만 내면 되고 9월까지 상시 개장이어서 예약도 필요 없다. 됐다, 이 조건이면. 

나는 궁궐의 밤 산책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곳에서 밥을 먹고 음악의 향연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우아하고 품위 있는 궁궐 처마 끝이 푸른 여름 밤하늘에 어떻게 걸려 있는지 보고 싶었다. 휘황하게 밝힌 도시의 불빛을 피해 얌전하게 궁궐로 숨어들고 싶었다.  

  

서순라길 가게 아저씨와 참새떼와 구경꾼 

궁궐이 서울여행의 막강 콘텐츠임을 서울시가 알아챘나 보다. 곳곳이 정비사업으로 부산스럽다. 특히 창덕궁 앞은 사시사철 공사 중이어서 걷기도 영 불편하다. 본래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가 이어져 있었는데 일제가 율곡로를 놓아 그 맥을 딱 끊어버렸고, 지금은 이를 잇는 공사가 한창이다. 100여 일 후면 마무리 된다니 조금만 참으면 근사한 길이 생길 것이다.  

출근길에 늘 이곳을 지나는데, 어느 날 버스 창밖으로 무심히 눈길을 돌리다 공사현장 한쪽의 좁은 골목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니아적으로 골목을 애정하는 터라 그 길이 참 궁금했다. 그래서 퇴근하다가 일부러 그곳을 찾아 걸어 보았다. 사진도 한 장 담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몇 사람이 그곳이 ‘순라길’이라고 말해주었다. 아, 이 길도 이야기를 담고 있었구나. 

여정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지만, 순라길을 둘러보고, 창덕궁으로 입장해서 창경궁으로 넘어갈 작정이다.

음식도 여행도 다 마찬가지 같다. 인스타 감성의 사진들로 보면 원래의 모습보다 더 맛있고, 더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 실제로 보면 수수한 경우가 많다. 사진이 부리는 사기를 감안해야 한다. 종묘 담벼락인 이 순라길은 포졸들이 순찰을 돌던 길이다.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는 도둑질, 화재를 대비할 양으로 야간 순찰을 돌던.    

음식도 별스럽지 않은 본연의 소박한 맛을 즐기는 취향이라 그런가 볼 것 없는 순라길이 내 맘에는 든다. 왼쪽으로는 종묘 담벼락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낡고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이런 저런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었는데, 평일 오후라 그런지 한산하다. 블로그나 인스타마다 멋지게 찍은 사진과 함께 장소에 대한 정보를 친절하게 적어두었는데, 이런 카페나 음식점들은 사실 어딜 가든 많아서 크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도 않고 믿음도 가지도 않는다. 인파로 뒤덮인 익선동 꼴이 날까봐 두려울 정도다. 

구경꾼 신분이니 느긋하게 두리번거리다가 방앗간이라도 있는 양 참새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걸 한참을 서서 지켜보았더니, 가게 아저씨가 쌀알을 흩뿌려 참새떼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 준다. 그러자 수십마리의 작은 새떼가 모여들어 정신없이 쌀알을 주워 먹다가 뭔가에 놀란 듯 후두두둑 나무 위로, 담벼락으로 몰려 날아간다. 그러다 다시 땅으로 날아드는 데 그 모양이 재미난 음표 같아서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보았다. 

나는 가게 아저씨의 쌀알이 참새떼를 위한 것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구경꾼에 대한 세심한 선심이라는 걸. 그날의 순라길은, 그 정겨운 느낌만으로도 충분했다. 충분함이란 내게 이와 같은 것이다. 시시하고 별것 없지만 내 마음에 꽉 차는 평온함. 더구나 평소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다면 거기가 어디든 내겐 그곳이 여행지다.      



춘당지 버드나무 아래서 나눈 담소

이런저런 공사로 번잡한 창덕궁 앞을 서둘러 건너고 보니, 아뿔싸, 열려 있던 문이 닫혔다. 여섯 시를 10여 분 남겨놓은 시간. 폐장이 6시니 당연한 걸. 창덕궁으로 들어가 금세 이어진 창경궁으로 넘어가려 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그 문도 닫혔다고 설명한다. 한편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공사를 다 끝낸 가을이나 겨울에, 보행로도 걸어보고, 창덕궁 옆 ‘공간’ 건물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후원도 걸어봐야지. 내친김에 창덕궁 ‘달빛기행’도 와볼까?  

이 여행의 가장 중요한 팁은, 폐장 시간 30분 전에는 입장해야 한다는 거다. 창경궁 야간개장이 9시까지이니, 최소 8시 30분 전에는 입장해야 한다. 늦으면 들여보내 주지 않는다. 입장 방법은 초간단하다. 교통카드를 대면 입장료 1000원이 결제된다. 

오늘 여행은 듬직한 후배가 동행했다. 한창 힘들 때 새 책이 나오면 부리나케 구입해서 실어가고, 먹을 거 생기면 사무실에 던져놓고 가고, 여기저기 정기구독을 받아다주던, 고맙고 든든한 후배다. 자주 밥도 먹고 차도 마셔서 그런가 수다 떨 일이 많다. 

궁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그윽한 옛 정취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궁과 나무.

차들이 달리는 대로를 뒤로 하고 궁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안과 밖. 순간이동의 느낌이다. 차분한 저녁의 고궁 속을 걷는다. 키 큰 나무들이 두런거리고 지는 햇살이 비껴든다. 어떤 얘기들을 나눴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저그런 일상의 얘기들이었으니까. 명정전은 하이라이트라 잠시 저금해두고 춘당지로 향했다. 몇해 전 봄에 왔을 때 참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소풍객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은, 꽃이 만발하는 늦은 봄이었으니까. 

사방은 고요했다. 사람의 발길도 거의 없었다. 큰 바위에 걸터 앉아 수면 위를 바라본다. 물을 보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참을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하지만 나름 취재라 그런가 마음이 조금 바빴다. 시간의 결이 어디에 어떤 무늬를 만들어놓을지 모르겠는 데다 그 순간을 모두 카메라에 담아야 해서 조급증이 조금 생겼다.   

안내 방송도 한몫 거든다. 야간에는 관람 범위가 한정돼 있다. 명정전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만 개장을 하고 다른 곳은 출입이 제한된다. 연못을 에둘러 가느라 보니 의외의 하얀 건물이 서 있다.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잘 꾸며진 정원 앞에 안내 글을 읽으니 조선 최초의 온실이었다고.      



창경궁말없이 품은 치욕의 역사

창경궁 대온실은 평범한 외관이었고, 워낙 큰 식물원들을 많이 봐온 터라 안에 들어가봐도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온실이 생긴 역사에는 깊은 치욕이 서려 있다. 일제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을 창덕궁에 가두어놓았다. 그래놓고 황제를 위로한다며 궁 안에 동물원과 대온실을 지어 공원으로 만들어버렸다. 황실의 권위를 떨어뜨려 국권을 말살하겠다는 의도였다. 

창경궁은 그래서 우리들에게는 뼈에 사무치는 아픔을 느끼게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1986년에야 동물원을 없애고 창경궁으로 다시 복원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해방 후 40년이나 지나는 동안, 왜 이 치욕의 역사를 그대로 방치했을까? 일제 식민지 청산이 제대로 안 돼왔던 일과 무관해보이지 않는다.  

변변한 공원이 없던 시절이라 창경원은 관람객들로 북적였고, 벚꽃이 필 때는 수많은 상춘인파로 몸살을 앓았다. 어릴 때는 할머니와 부모님과 언니와 나들이를 왔던 기억이 나고, 커서는 소풍을 왔던 것 같지만 또렷하지는 않다. 하지만 누구도 내게 그 얘기를 들려준 것 같지 않다. 역사를 제대로 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지만, 우리에게는 치욕의 역사를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희빈의 저주를 묻은 명전 마당

그날 나는 생각 없는 여행객으로 걷고,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하다가 밝을 때의 사진과 어둠이 깃든 후의 사진이 모두 필요해서 일단 들어가 해 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우리 두 사람은 통명전 계단에 걸터앉았다. 

통명전은 창경궁 안에서 가장 큰 생활공간으로 왕과 왕비의 침전이었고, 연회가 열리던 장소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아주 흥미로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숙종 때 장희빈이 인형왕후를 모해하려고 저주를 담은 물건을 어딘가에 묻어두었다가 발각돼 죽었다는 얘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장소가 바로 이 퉁명전의 마당이었다. 그리고 퉁명전을 마주봤을 때 바로 오른쪽에 있는 건물에서 장희빈이 살았다고 한다.  

퉁명전의 돌계단은 너무나 편안하였다. 슬쩍 옆을 보니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함지박이 놓여 있다. ‘드므’라고 쓰여 있는데 설명이 재미나다. 물 귀신이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놀라서 달아나게 하려는 물건이라는데, 목재 건물이라 화재에 취약해서 만들어 놓은 일종의 소화기인 셈이다. 

기우는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사는 얘기를 계속 나눴다. 하고 있는 일들은 잘되고 있는지 부모와 가족은 무탈한지….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된 곳에서 바람을 맞으며 구름을 보며 한가하게 앉아 있었다. 저기 앞쪽에서도 두 여인이 커다란 나무 아래에 걸터 앉아 담소를 즐기는 모양인데, 그 뒷모습이 평온해보였다. 작고 시시한 여행의 감칠맛과 위력을 전할 방법이 없어서 안타깝다.      

통명전의 드므. 일종의 소화기다. 


명정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점점 애가 탄다. 제법 시간이 흐른 데다 밥때를 놓쳐서 배가 슬슬 고파오는데, 기다리면 오지 않는다는 말이 맞다. 어둠이 깃들 기색이 없다.  

조급해지니 몸을 움직이게 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명전전이니 그곳은 어쩌고 있는지 궁금해서 자리를 옮겼다. 명정전을 에워싼 쭉 뻗은 담장이 수평의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너른 마당에는 사진동호회에서 나왔는지, 삼각대를 펴고 사진기를 걸고, 밤의 명전전을 담으려고 이미 한 무리가 진을 치고 있었다. 한 무리의 관광객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명전전 안을 기웃댄다. 왕이 앉아서 국정을 논했을 그 자리를 빼꼼히 들여다본다. 왕이거나 혹은 왕의 말을 전하는 신하의 목청이 컸어야겠단 생각이 스친다. 

또 한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손에는 등을 들었다. 꼬마 아이, 10대의 아이들, 그들의 부모들이다. 가이드는 어떤 설명을 할까? 몇 년도에 세워졌고, 몇 년도에 소실됐고, 몇 년 도에 재건됐다는 설명, 장소의 쓰임새도 들려주고 에피소드도 전해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듣는 이의 가슴에 창경궁이 품은 치욕의 역사에 대해서 절절하게 설명해줄 것 같지는 않다.

삼각대에 사진기를 걸어둔 무리들은 여유롭다. 사진이라는 작업이 워낙 기다림 끝에 얻게 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기본 렌즈를 낀 보급형 소니 카메라를 목에 건 채,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스마트폰에만 익숙한 나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넘사벽’ 포스다. 나는 자꾸 애맨 하늘만 채근한다. 올 건 반드시 오는 데도 기다림은 늘 갑갑증을 일으킨다.        



잔뜩 습기를 안아 푸른 여름 밤을 만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궁궐의 정전正殿 앞에는 품계를 적은 돌들이 가지런히 서 있다. 정전은 왕이 문무백관과 왕세자, 척신, 사신 등에게 국가적 행사를 치를 때 하례를 받는 곳으로, 궁궐의 중심이다. 사극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장소다.  

더디게 오던 어둠이 어느 순간 완연해진다. 이 여행기는 청명하고 푸르른 여름밤의 궁궐이었는데 장마가 올듯하여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하는, 그런 기막힌 푸른빛은 찾아와주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 없다. 

궁궐 안의 건물들이 하나둘 불을 밝히자 색다른 정취가 생겼다. 또 습기를 품은 땅과 나무가 짙은 자연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천년의 고도 경주에 온 기분이 났다.   

천천히 주위를 다시 걸어본다. 고작 두서너 시간인데, 아주 멀리 근사한 여행을 온 기분이 났다. 날이 흐린 덕에 궁궐을 에워싼 빌딩들이 얌전해보인다. 그들이 뿜어내는 인공의 빛이 덜 현란하다. 빌딩 숲에 둘러싸인 궁궐이 아주 아늑해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과도 같다. 지하철을 타듯, 버스를 타듯, 교통카드를 들이대고 가볍게 열린 홍화문에 발을 들였을 뿐인데, 그 짧은 시간이 나를 완전히 다른 시공간 속으로 옮겨다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이란 낯설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익숙하고 진부한 것으로부터 달아나는 것이라고들 한다. 다른 시공간 속에서 다른 경험과 느낌을 얻어 새롭게 충전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게 여행이라면 나는 아주 행복한 여행자다. 나는 자주, 어디에서든,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여행은 얼마나 많은 것을, 귀한 것을 보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부함 속에, 일상 속에 감춰져 있는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으로도 충분해서, 어쩌면 나는 풍요로운 여행 부자란 생각도 든다. (본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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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을 창경원으로

창경궁은 1418년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상왕인 자신이 거처하기 위해 지었다. 창덕궁과 연결돼 동궐로 불렸다. 일제는 국권 말살의 저의를 가지고 이 창경궁을 무참히 부수고 공원화해버렸다. 1908년 공사를 시작하면서 우선 창경궁에서 종묘로 이어지는 지형부터 바꿨다. 그 자리에는 벚꽃을 잔뜩 심어두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화려하고 웅장한 전각을 허물고, 전각의 문이나 기와 등을 해체시켜 경매에 부쳤다. 공사기간 동안 중요한 문화재가 함부로 훼손되었다. 

공사를 끝낸 창경궁 동·식물원은 1909년 여름 개관했고, 해방 후 40여년 동안 공원으로 쓰였다. 그러다 1986년 궁궐을 복원해 창경궁으로 환원되었다.     



서울돈화문국악당

서순라길 가는 길에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나온다. 방치돼 있던 주유소 자리를 서울시가 매입해서 2016년 만든 자연음향 국악전문 공연장이다. 마당 안을 들어서니 고운 빛깔의 천이 높이 걸려 있었다. 조금 더 한가로운 때, 공연을 들으러 와도 좋을 것 같았다.       


춘당지

창경궁 후원에 있는 연못. 본래 농업 장려를 위해 왕이 농사를 시연하는, 권농장(勸農場)이 있던 자리다. 일제는 1909년 이곳을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연못을 파서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다. 해방 후에는 심지어 이 위로 다니는 케이블카가 개통되기도 했다. 1980년대 복원 당시 한국식 정원으로 개조하였다. 

     

춘당지




맛있는 밥     

혜화칼국수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이번 여행은 뒤바뀐 것 같다. 맛 취향이 나랑 비슷한 선배님이 추천해준 곳이다. 혜화로터리 인근에 있다. 가장 일품은 역시 칼국수였다. 오랜만에 고기국물 베이스의 칼국수를 먹었다. 

이집만에서만 볼 수 있는 요리는, 단연 생선튀김이다. 아주 두툼한 대구살을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는데 깔끔하고 맛이 있다. 단, 두세 개 이상을 먹기는 내 위로는 힘이 든다. 술을 못하는 동행이라 막걸리 한 병에, 수육과 생선튀김,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켜 나눠 먹었는데, 생선튀김은 포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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