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4> 일본의 주장은 틀렸다 #개인청구권 유효
지난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며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이미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배상청구권이 다 소멸됐는데, 한국의 대법원이 국가 간의 약속을 위배했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1965년 한일협정의 최대 난관은 대일청구권이었다. 일제에 끌려가 고된 노역에 시달리던 강제 징용 노동자들은 해방 후 갑자기 고국으로 송환되면서 임금이며 연금, 보험금 등을 챙기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와 같은 미지급금을 비롯해서 일제가 식민지배 기간에 입힌 손실에 대해 배상과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당연한 요구였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한일 간의 견해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대일청구권 문제의 실마리를 푼 것은, 1962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종필이 일본에 특사로 파견돼 오히라 마사요시 일본 외상과 가진 회담이었다. 이때 두 사람은 ‘김-오히라 메모’로 불리는 비밀문서를 작성했는데, 청구권 자금을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 상업차관 1억 달러 이상으로 정하자는 내용이었다. 이 메모를 근거로 해서 상업차관만 3억 달러로 조정해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일본군‘위안부’와 징용노동자 배상에 대해 발뺌하는 일본의 태도는 이를 근거로 한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배상 청구권이 이때 완전히 소멸됐다는 것이다.
일본군‘위안부’나 징용노동자들에 대한 미지불금 반환 요구 외에 일본이 행한, 강제노동, 학대, 모욕 등 반인륜적인 행위에 대한 배상 요구에 주목해보자. 식민지 시절, 한국인은 군인, 혹은 군속으로 끌려가 전쟁터로 내몰렸고, 일본 본토에 징용으로 끌러간 노동자만 해도 72만명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 전쟁 때문에 한국인 원폭 피해자, 일본군‘위안부’, 그밖의 성폭력 피해자, 세군전과 화학무기 피해자, 강제노역과 무차별 폭격 피해자 등은 그때의 상처로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 이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배상과 보상은 과연 누가 어떻게 해야 할까?
하지만 피해를 입힌 당사자인 일본은 식민지배가 위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대일청구권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협정에서 개별 기업의 ‘반인륜 행위’에 대한 배상과 관련한 내용은 전혀 없다. 따라서 배상 요구를 하는 것이 한일 협정에 전혀 위배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외교를 통해서 어떤 합의를 했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사유재산권에 해당하는 개인청구권을 과연 훼손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