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5> 일본의 주장은 틀렸다 #일본식민지과거사청산
일본 패전 후,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일본 각지의 광산과 공장에서 본국 귀환과 배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한 임금을 비롯한 강제저금, 가족송금, 후생연금, 보험금, 퇴직수당, 조위금 등 각종 수당과 저금을 포함한 미지급금을 요구했다. 골치 아파진, 일본 점령 중인 연합군총사령부는 징용 노동자의 본국 귀환을 서두르는 한편, 배상 절차의 일환으로 미수금을 한 곳에 결집시키라고 일본 정부에 지시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공탁*을 결정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다양한 꼼수가 등장했다. 공탁 명부에 이름과 본거지가 있는데도 통지서를 보내는 절차를 안 밟고, 공탁 사실을 관보에 공시하지 않았으며, 공탁을 기피한 기업도 있었고, 공탁금 액수도 허위가 많았다. 그러나 어찌 됐든 일본은 이 공탁 자료를 손에 쥐고 한일회담에 임했다.
한편 한국은 한일회담 초기부터 미수금 문제를 제기했지만, 한국 측 근거는 방대한 일본 측 자료와는 비교가 안 됐다. 그래서 한국 정부의 조사는 한일협정 당시 거의 이용할 수 없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이 자신들이 미수금 문제를 대신 책임지겠다며 목돈을 요구한 것이다. (무상 3억달러. 유상 2억달러로 상징되는 청구권 자금) 일본의 진정한 사과도 없고, 진상규명 같은 본질적인 과정에 대한 협의도 없어서 국내에서는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크게 일어났다.
뿐만 아니라 한일협정을 맺은 박정희 정권은 미수금 지급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그래서 협정이 체결된 지 10년이 지난 후인 1975년에야 징용노동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 물론 액수도 대상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설상가상 미지급금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태도도 과연 이들이 우리 주권을 대변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한국 정부는 종종 1965년 협정 당시 받은 목돈에 징용미수금이 포함됐다는 견해를 피력하기도 했다. 청구금과 관련한 어설픈 협상으로 인한 불씨는 지금까지도 불길로 커지고 있다. 현재까지 청구권에 대한 한국와 일본의 해석은 각각 다르다. 일본 정부는 청구권 자금이 경제협력 자금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정부는 배상적 성격을 갖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 정부가 청구권 협정을 맺었음에도 개인 청구권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이 1965년에 한 말을 보자. 그는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외교보호권만 소멸할 뿐 개인청구권은 존재한다”고 했다. 물론 이 발언은 일본 국민에게 청구권의 일반적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군들이 러시아 등 외국에 대해 주장하는 개인청구권은 일본 정부가 해당 국가와 이를 포기하는 조약을 맺었어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국가가 외교를 통해 일방적으로 사유재산권에 해당하는 개인청구권을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은 한일 양국의 최고 사법기관도 견해차가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공인한 내용이다.
(《불편한 회고》, ‘농락당해온 개인청구권’부분을 발췌, 정리했다.)
*본래 공탁은 채무자가 변제를 하려고 해도 채권자가 수령을 거부해서 변제가 불가능할 때 혹은 채권자를 못 찾을 때 이뤄지는 민법 상의 행위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제에 끌려가서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는지는 각자 살펴보도록 하자.(《군함도, 끝나지 않은 전쟁》는 강제동원의 진실을 제대로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