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反日에 대해 생각하다

한국과 일본 <7>

by 김지나


아베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하자 한국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맞섰다. 이와 함께 반일 감정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아베 정부의 행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일본의 극우 보수파를 결집하기 위한 것도 그중 하나라는 얘기가 들린다. 반일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생각이 잘 모아지지 않는다. 박경리 선생은 일본 평론가와 인터뷰하면서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라고 했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반일 감정을 갖는 건 너무나 타당한 일인 것 같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일제 식민의 역사로 인해 파행을 거듭했건만 일본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해방 후 7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일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일들을 계속 하고 있으니 말이다.

반일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정의도 사람마다 달라 보인다. 반일 감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려 했던 이유는 두 가지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과거사 청산에 등돌린 채 여전히 뻔뻔하게 행동하는 일본에 대해 비판하고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반일은 정당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일 감정 안에는 미성숙한 생각들이 너무 많이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싫다라는 개인적인 감정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 감정이 일본과 일본인을 조롱하고 폄하하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옳지 않다. 잘못된 반일 감정은 ‘혐한’과 별반 다를 게 없으므로.

또 하나는 감정의 속성과 관련 있다. 감정은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우리는 될 때까지 일본의 사과와 진상규명과 배상을 요구해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 청산을 제대로 하도록 비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일의 역사를 알아야 하고, 현안을 살펴봐야 한다.

반일 감정을 반성적으로 사유하기란 쉽지 않다. 반일에 대한 반성적 사유를 친일의 근거나 양비론의 근거로 삼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에 내재한 문제들에 대한 글쓴이의 지적에 동의한다.

“물론 감정이나 민족주의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고, 이를 경계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감정을 억제함으로써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개선해야 해결되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한일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민족문제나 민족감정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내재해 있다. 이는 인권의 문제이며,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고,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국제질서의 문제이다.”(홍석률, ‘한일문제와 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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