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나 Aug 28. 2019

08. 그녀와의 따뜻했던 포옹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질척대던 기대감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한결 가볍고, 쾌활하고, 깔끔하고, 편안해졌다. 관계를 규정짓는 일도, 함께 하자는 허튼 약속도 덩달아 사라져버린 탓이다. 무엇으로 만난들 어떠랴. 세상사라는 게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투성이더라. 



새벽기차가 달린다. 어둠 속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겨울햇살이 차창에 닿는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산등성이 위로 푸르른 새벽이 열린다. 대지는 평평하고 또 평안하다. 도시에서 만나는 겨울가지는 뾰족하고 성마른데, 자연 속의 겨울나무는 풍성하게 살아 있다. 두 팔을 스르르 벌려 잔가지들을 펼쳐내며 조금 낯설지만 익숙한 생명력을 전해준다. 기차가 달리자 푸른 새벽하늘과 더불어 대지가 줄지어 열린다. 아침을 여는 배달부가 된 기분이다. 오늘의 여행은 이걸로도 충분하다.

강연이 주요 일정이었는데, 고맙게도 내려온 김에 맛있는 점심을 먹자고 페북 친구와 약속을 했다. 사람이나 인연에 대해 기대를 버린 지 좀 됐다. 내 근심과 고통, 외로움을 간수하지 못해서 누군가 손만 내밀어도 엎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면 쓴맛과 신물이 창자부터 올라오고는 했다. 술 속에 범한 실수투성이 행동들, 그 후에 은근하게 전달되던 뒷담화들. 물론 그들의 잘못은 아니다. 내게 그 이상의 마음을 열 준비가 안 된 이들에게 내가 억지를 부린 탓이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나의 흑역사…. 

질척대던 기대감을 버리고 나니 오히려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한결 가볍고, 쾌활하고, 깔끔하고, 편안해졌다. 관계를 규정짓는 일도, 함께 하자는 허튼 약속도 덩달아 사라져버린 탓이다. 무엇으로 만난들 어떠랴. 세상사라는 게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투성이더라. 서른 혹은 마흔 무렵까지도 ‘이것만은’ 하면서 쥐려 했던 소중한 것들조차 손가락 새로 술술술 새나가더라. 진즉 알았으면 그렇게 조바심내지 않아도 됐을 걸 하는 게 천 가지, 만 가지가 넘지만, 그때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으니 어쩌겠는가.      



지난 가을의 결핍감에 대하여     


이제는 한눈으로도 어느 정도 상대를 알 것도 같다. 페친과의 만남은 기분으로, 우연으로 이뤄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페북은 만만한 동네가 아니다. 그 동네에서 서로 무엇을 하고 누구와 어울려 살아가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오랫동안 봐온 터라 ‘일면식 없는, 친구’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강연을 마치고 반갑게 손을 마주 잡고 몇 걸음 떼며 몇 마디 나누자마자 우리는 곧장 수십년 만나온 선후배로 돌변했다. 몇 마디 건네보니 역시나 다른 곳에서였지만 공통된 경험들이 수없이 겹쳤다.  

몽돌이 파도에 쓸려 쓰르륵쓰르륵 구르는 소리를 처음 들어본다. 그 바다를 배경으로 아이들처럼 셀카를 찍는다. 만난 지 고작 십여분 지났지만 우리의 표정에는 어떠한 어색함도 없다. 바다가 보이는 창가. 햇살이 카페 곳곳을 따스하게 감싼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녀가 말한다. 

‘지난 가을, 쌤이 연애할 것 같았어요.’

그 말에 빙그레 웃음이 난다. 들켰구나, 내 외로움이. 언제쯤인지 선명하다. 페북은 정말 만만한 동네가 아니다. 암호처럼 숨겨뒀다고 생각했는데도 단번에 알아버리다니. 그즈음 나는 지독한 결핍감을 독감처럼 앓고 있었다. 외로움도 앙상하게 드러내 보였고. 아마 그래서 누군가를 만났을 거라고 허튼 짐작을 한 모양이다. 

 고작 몇 달 전인데 벌써 기억도 잘 안 난다. 하지만 꽤 아팠던 기억은 난다. 지금이야 뭘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지만, 이십여년을 평범한 가정을 일구고 살다가(누구나처럼 그 속에서 지지고 볶기야 했겠지만) 갑자기 혼자가 되고 나니 몹시 혼란스러웠다. ‘평범한 가정’이라는, 수십년 동안 익숙해온 이데올로기, 혹은 관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성장한 자식들과 외식을 즐기는 가족만 봐도, 지하철에 오순도순 가족들이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주책없이 눈물이 나려 했다. 한동안은 가족모임에도 잘 안 나갔다. 이빨 빠진, 초라한 접시꼴 같아서. 

또 하나. 이별이 무서운 것은 추억을 공유할 대상을 잃게 되어 수십년의 추억이 매몰돼버린다는 것이다. 한번은 예전에 살던 동네 인근에서 모임이 있었다. 어두운 밤, 택시 안에서 순식간에 몇 가지 필름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그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무덤으로 변한 추억 때문에 속울음이 났다. 

가을 초입에 갑자기 온통 내게 없는, 혹은 내게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독한 결핍감이 찾아왔고, 그래서 무지막지하게 외로웠다. 나는, 그 감정을 한참 동안 잘 다스릴 수 없었다. 헤어진 지 한두 해 흘러서 이제 막 겪는 일이 아니었을 텐데, 누르고 억제해온 감정들이 쌓이고 쌓여 막 넘쳐나려 했던 것 같고, 누군가가 나타나 이 결핍감을 보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던 모양이다. 그랬다, 아주 낭만적인 연애가 하고 싶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J, 그녀의 너무나 따뜻했던 포옹     


우리 집 앞 골목에는 희안한 빵집이 하나 있다. 우리밀로 갖가지 빵을 만들어서 파는 ‘콩플레’다. 이 빵집의 희안함은 전적으로 베이커 ‘콩사장님’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그녀가 구사하는 어법은 신묘한 힘이 있다. 자로 잰 듯, 빤한 삶에 부적응하거나, 적응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석처럼 골라낸다. 그래서 주인장과 단골 사이가 긴밀하다. 주인장과 손님이, 혹은 손님과 손님이 어우러져 ‘콩플레 사람들’이 돼버린다.   

그 무렵, 콩플레에서는 종종 파티가 열렸다. 콩플레에는 서른 후반에서 마흔 초반의 젊은 부부들과 어린 자녀들로 구성된 두서너 가족의 원년 멤버가 있다. 이들이 잔치의 중심이다. 와인이나 음식을 사오거나 해오면 콩프레 빵과 콩사장표 야채볶음이 곁들여져 근사한 상이 차려진다. 이들 젊은 부부들은 볼 때마다 대견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주책맞게 부러웠다. 가족끼리 빵을 먹으러 왔을 때도 아내가 우선이다. 파티가 시작되면 남편들은 아내들이 먼저 식사할 수 있게, 파티를 즐길 수 있게 아이들을 몰고 나간다. 사람에 대한 배려, 사려 깊은 말, 그러면서도 자유롭고, 한편으로는 고집스러울 만큼 원칙적인 사람들. 

어느 가을 밤, 파티가 열렸고 모두들 흥에 겨웠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젊은 부부들은 늦지 않게 일어서야 했고, 테이블 끄트머리에 청년 베이커 두 명과, 콩사장과 사려 깊으면서도 부드럽고 당찬 J와 남은 술잔을 기울였다. 많은 얘기를 나눈 것도, 술을 과하게 더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저 담담하게 몇 가지 얘기들을 한 것 같다. 콩사장과 나 빼고는 나이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고, 그래서 지금 겪고 있는 곤란함 혹은 슬픔의 색채도 완연히 달랐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펼쳐놓으면 그때의 내 마음을 훨씬 잘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남의 인생이므로.  

마음이 쉬던 곳, 고덕동 콩플레

고요한 카페 안, 어지러운 술자리의 한 귀퉁이에서, 조금 늦은 밤, 덤덤하게 조곤조곤 나눈 그 짤막한 이야기들 안에 사실은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과 외로움, 슬픔, 나약함, 피로가 알알이 숨겨져있음을, 나 혹은 우리 모두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주책맞은 내 외로움에 대해 몇 마디 꺼냈다. 그때의 나는 그랬으니까.   

갈 길이 먼 사람을 술을 마실 줄 모르는 청년이 태워준다고 일어나고, 얼마 후 나도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러자 부드럽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J가 배웅해주겠다며 일어섰다. 서른 중반의 그녀는 꽤 오랫동안 진실한 사랑을 나눈, 결혼을 약속한 연인과 얼마 전 이별을 했고. 그들의 이별은 너무나 순수하여서 더 마음이 아팠었다.   

나와 J는 꼭 단짝 소녀처럼 팔짱을 걸고 수다를 떨며 길을 걸었다. 몇백 미터 안 되는 길이었고, 나누고 싶은 마음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서 내 집 근처에서 다시 길을 돌아 또 걸었다. 마침내 작별의 인사를 할 찰나에 J가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위로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도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의 아픔과 내 외로움이 서로를 격려했다.   


다음날 일요일 아침, 따뜻한 잠자리에 그대로 누워 읽고 있던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을 펴들고 읽기 시작했다. 앤은 빵집에 가서 곧 생일을 맞을 아들아이 스코티를 위한 특별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데 생일날, 아들아이는 인도 연석에 발을 헛디뎌 차에 치었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집에는 왔는데, 그날 앤의 옆에서 축 늘어져 일어나지 못한다. 병원에 데려갔지만 아들아이는 깨어나지 못하고, 앤의 평범하고 안온한 삶은 불시에 무너진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카버가 그리는 현실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지독한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롤러코스트 같은 반전이나 스토리가 없는데도 그렇다. 삶이 괄목할 만한 사건 때문에 고통스러운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겠지. 심지어 짧은 단편으로도 독자들에게 스릴러급 긴장감을 선사한다. 

앤 부부는 지독한 슬픔에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빵집에 가게 된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앤 부부는 한참 동안, 햇살이 높게 비칠 때까지, 구수한 빵냄새를 맡으며 먹울 수 있을 만큼 먹었고, 자리를 떠날 생각을 안한다.  


일부러 고른 작품도 아닌데, 마치 내 어제의 감정을 멋지게 정리해준 기분이 들었다. 전날 밤,  콩플레 사람들, 나를 따뜻하게 안아준 J의 포옹에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큰 도움’얻었던 터라. 

그랬다. 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지 않은 도움과 격려와 위안을 받았고, 그덕인지 그때의 그 몹쓸 결핍감은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물론 틀림없이 고통은 모습을 바꿔 신선한 모양새로 다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크게 기대하지 않지만 그 순간 나눌 수 있는 마음들에 기대 또 그렇게 지나올 것이다. 별것 아닌 도움을 주고 받으며. 그렇게.            


매거진의 이전글 07. 사랑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