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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Aug 28. 2019

09.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외로움의 이유, 그런 것은 없다

 일요일의 호젓한 늦저녁. 익숙한 외로움이 찾아든다. 편안함과 외로움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조금 있으니 헛헛한 기분도 들고 되새겨볼 만한 가치도 없는 잔 생각들도 밀려온다. 돌아봐서는 안 되는 미련 같은 것, 영문 모를 불안도 손님처럼 찾아든다. 하지만 이젠 웬만해서는 외로움에 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누구도 채울 수도, 채워줄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일요일 밤이 고즈넉하게 저물어간다. 

늦은 아침을 함께 먹은 딸아이는 일찍 집을 나섰다. 설렁설렁 게으름을 피우다가 머리염색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오후에 외출을 했다. 머리를 검게, 혹은 짙은 갈색으로 염색해서 나이를 감쪽같이 속이는 일이 영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나이를 먹어버렸다. 멋진 그레이도 아니고, 거칠게 새버린 상태로 다니기도 어려워 밝게 염색을 했다. 옅은 갈색빛 사이로 더 옅은 노랑빛, 혹은 거의 하얀 빛이 뒤섞여 있어서 중년의 나이를 짐작하게 해줘서 마음이 한결 편하다.   

이 미용실을 다닌 지 10년이 넘었다. 미용 서비스는 사람과의 접촉이 긴밀하다. 타인이 내 두피를 만져주고, 머리카락을 깎고 다듬어준다. 낯선 사람에게 머리를 맡기는 게 영 불편해서 늘 같은 곳을 다녔을 것이다. 미용실을 나서며 이사를 하게 돼 못 올 거 같다니까 꼭 그렇게 말하는 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오더라며 웃는다.  

미용실을 나서니 출출하다. 아점을 먹은 지 네댓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하다. 집에서 미용실까지는 전철로 두 정거장쯤 걸리는데, 오가는 중간에 시장이 있다. 아까 지나오면서 봤던 호떡 생각이 나서 돌아가는 길에 들러 호떡 하나를 맛나게 먹었다. 아주 전통적인, 깔끔한 맛이었다. 집에 가서 아침으로 먹은 카레를 또 먹으려니 별로 내키지 않는다. 종종 닭과 고기를 사던 정육점 옆에 있는 분식집을 지난다. 오뎅도 오뎅이지만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 싶어서 한 꼬지 먹어야지 했다가 아예 오뎅과 떡볶이를 주문하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장을 보러 나온 부부, 아이들과 둘러앉은 가족들이 있었는데, 혼자 앉아서 먹는 게 별로 어색하지 않아서 아주 맛있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작 미용실 다녀온 것 가지고도 몸이 위세와 투정을 부린다. 피곤하니 쉬라는 명령이다. 당장  해야 할 일도 없어 한창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중국드라마 <사마의>를 틀고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눕는다. 어느덧 스르륵 눈이 감긴다.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짧은 잠에 빠져든다.  

까무룩 자고 깨니 텔레비전 화면은 멈춰 있고, 저녁 어스름의 회색빛 공기 알갱이가 촘촘히 들어차 있다. 뒷베란다 작은 창문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다. 일요일의 호젓한 늦저녁. 익숙한 외로움이 찾아든다. 편안함과 외로움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조금 있으니 헛헛한 기분도 들고 되새겨볼 만한 가치도 없는 잔 생각들도 밀려온다. 돌아봐서는 안 되는 미련 같은 것, 영문 모를 불안도 손님처럼 찾아든다. 하지만 이젠 웬만해서는 외로움에 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누구도 채울 수도, 채워줄 수도 없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그렇다고 외로움을 벗 삼을 생각은 없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녀석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외롭고, 앞으로도 그럴 게 뻔하지만, 적어도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지배당하고 농락당하지는 않게 되어 홀가분해졌다.      



나는 왜 이토록 외로움에 의연할 수 없을까     


나는 늘 외로웠다. 아니다. 사람들은 늘 외롭다. 모두 외롭다고 아우성이다.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부터 외로웠던 것 같다. 평범한 집안이었고 식구들이 북적거렸는데도 말이다. 그때는, 주위 친구들이 도무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고 어린 치기지만 나름 진지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하는 생각, 마음을 나누기 어렵다고 느꼈다. 십대의 나는 그래서 외로웠다. 

대학 때는 더 심각했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 러시아 문학에 심취해 있었다. 러시아 문학작품 속의 혁명은, 뭣도 모르는 내 눈에 그렇게 순수하고 멋있을 수가 없었다. 민중들의 참상은 가늠이 안 되고 프록코트를 입은, 귀족 청년들의 고뇌가 눈에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쨌든 나는 사상이 능금처럼 열릴 것이라는 낭만적 기대를 안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현실의 혁명은 달랐다. 사상은커녕 강팍한 이론만 난무했고,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실천들을 요구받았다. 사회 현실은 곪아터져서 근본적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회 변혁을 위해 공장으로 농촌으로 뛰어들 자신은 없었다. 내가 내뱉는 말들과 나는 유리돼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는 자각이 뚜렷해졌다. 나는 외로웠다. 전투적인 선배와 동기와 후배들과 어울렸지만 늘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다른 길은 찾을 수 없었다. 운동적 삶 이외의 것에서는 어떠한 가치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기묘한 회색지대에 포위돼 있었다. 대학 3학년 즈음에는 거의 우울증에 가까운 심리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지독하게 외로웠고, 무기력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엉거주춤하다 취직한 단행본 출판사 분위기는 일반 사회보다는 나았지만 나는 잘 적응하지 못했다. 여전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분명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과 육아에 돌입하며 모든 고민을 유보했다. 결혼도 아이들도 후회하지는 않지만, 삼십대와 사십대는 내 인생의 암흑기나 다름 없었다. ‘나’라는 자각을 잊어야만 버텨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외로움의 이유는 산처럼 많았다.  

돌이켜보니 그때까지는 외롭기는 했어도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다 마흔이 지날 무렵 외로움에 대해 의연하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나 못나고 초라해 보여 심각한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당시 나는 스물일곱 살의, 나보다 열다섯 살 어린 후배와 친구가 되었는데, 그녀는 어린 나이였지만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 보였다. 단단하고 무던하게 자신의 외로움을 잘 단도리하고 있는 그녀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다. 그때 이후 아주 오랫동안 나는 외로움에 익숙해지는 걸 숙제처럼 안고 스스로를 들볶고 채근했다. 외로움에 쩔쩔 매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고 어떻게 해서든 이 못난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다.        

외로움의 이유그런 건 없다     


나는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었다. 사실은 별로 외로워 본 적 없이 평온하게 자란 덕일 것이다. 당연히 홀로 있는 법을 익히지 않았다. 그래 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그러다 몇 년 전 내 일생의 가장 어려운 시기가 지나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산더미 같은 외로움이 나를 덮쳤다. 외로움의 이유는 너무나 구체적이었다. 가난하고 형편없는 회사를 능력도 부족한 상태로 떠맡아야 했고, 내가 깃들어 있던 둥지는 무너져버렸다. 도무지 해결하기 벅찬 난제들이 몰아쳐왔고, 나는 그것들을 홀로 맞서야 했다. 내 인생의, 가장 투쟁적인 시간들이었다.      

다행히 굽이굽이 고비를 넘겼다. 어느새 폭풍과 눈보라와 비바람이 잦아들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 날부터인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겉보기에는 씩씩하고 당당해보였지만, 빈 집에 홀로 있을 때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몰라 전전긍긍했다. 주중은 일과 사람에 치여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는데, 주말이면 미뤄둔 공허감에 치여 질식할 지경이었다. 그즈음에는 주말마다 체했다. 주말이 싫었다. 몸과 마음은 너덜거릴 정도로 피로했는데 가장 편안해야 할 내 집이 가장 불편했다.      

삶은 경험이고,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낯설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비로소 실체가 있는 외로움에 직면했고, 그것은 내게 익숙한 경험이 아니므로, 의연하지 못한 게 당연했다. 외로움에 관한한, 심지어 스무살 된 딸아이보다도 어리석음을 인정했다. 

그렇게 하루를, 일주일과 한달을, 일년을 보냈다. 홀로 있는 시간들이 쌓여가자 조금씩 휴일의 집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익숙해지고 나니 비로소 외로움의 이유라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수없이 외로움의 이유를 찾았다. 이것 때문에 혹은 저것 때문에. 아니면 외로움을 나눌 누군가가 없어서라고. 그러나 돌아보니 여전히 모두들 외로워 보였고, 외로울 이유 역시 충분해보였다. 그냥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무엇으로도 외로움을 채울 수 없음을 자각했다. 더불어 누구도 내 외로움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러고 나니 외로움이 좀 만만해졌다. 무엇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더 이상 지배받지 않게 됐다. 스스로에 대한 연민으로 발전시키지 않게 됐고, 누군가를 붙들고 내 외로움을 봐달라고 떠들지 않게 됐다. 그래서 이제는 혼잡한 평일을 보내고 적막하게 보내는 주말의 고요가, 홀로 있는 게으름이 오래 입은 낡은 옷처럼 편안하다. 나는 여전히 외롭지만, 그래서 외롭지 않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 너무 길게 떠들어 송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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