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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Sep 05. 2019

11.나이들수록 세월이
쏜살같이 흐른다지....

결도 속도도 저마다 다르게 흐르는 시간


살림을 안 해도 된다니, 와우, 오 마이 갓~

일단 이 시간을 여행자인 듯 홀가분하게 살리라 마음 먹었다. 멍때리기, 늦잠 자기, 낮잠 자기도 하고, 책도 읽고, 넷플릭스로 영화와 드라마도 실컷 즐기리라. 무엇보다 여행자 처지라 꼭 어느 숙소에서 자야 할 필요성이 옅었다. 자연스레 여기저기 떠돌게 됐다. 늘 만나러 가야지 하면서 미뤄뒀던 선배 언니네도 가보고, 언제든 와서 며칠이든 지내라는 편한 후배네도 가고, 후배들과 어울렁더울렁 1박 2일 봄놀이도 다녀왔다. 





청년기를 보낸 지 몇십 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삶이 뭘까’ 되뇌고 궁리한다. 쓸모도 없는 의문이 쉽게 떠나지를 않는다. 더 늙어도 그럴 것 같다. ‘삶이 뭘까’라는 물음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꼬리를 문다. ‘나 잘 살고 있는 거지?’ ‘너무 소중한 가치를 내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니지?’ ‘인생에서 중요한 게 뭐야?’ ‘삶에 대단한 의미 같은 건 없어도 되지?’…. 종종 이 물음들이 한바탕 훑고 지난 후에야 이만하면 잘 지내는 거라는 위안을 이불 삼아 덮고 잠든다.  

대개 이런 생각들은 밤에 찾아온다. 시계의 눈금은 반듯한데 눈금을 쫓는 시간의 결은 참 다르다. 낮이 현실과 실천이라는 조금 뭉툭한 결을 지녔다면 밤은 서러움과 쓸쓸함, 사유라는 섬세한 결을 지녔다. 밤은 연민과 회한과 근심의 그늘이 짙은 시간이다. 물론 곤한 잠에서 깨어나면 마법 같은 시간이 새로 열리지만. 

또 하나, 시간은 정확성의 표상인데도 사람마다 상황마다 체감 속도가 다르다. 초침과 분침과 시침은 일관되게 정확히 움직이는데 사람들은 시간의 속도를 주관적으로 느낀다. 스무 살 언저리의 딸아이와 쉰 중반의 나와 아흔을 바라보는 엄마의 시간은 확실히 다르게 흐른다. 가끔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주 적어져 버린 늙은 엄마의 시간을 떠올릴 때가 있다. 따분하고 지루하니 참 긴 하루겠지만, 반대로 그래서 아주 빠르게 흐르는 노년의 시간. 그리고 ‘늙어버린’ 초침을 이해하기 시작한 중년의 시간. 그런 내게 약간 신기한 일이 생겼다. 보통 때보다 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르는 체험을 하는 중이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그러나 완벽한 해방이


몇 달 전 서울 모처에 20년 된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장만했다. 이집 저집 떠돌며 산 게 햇수로 25년이 넘어서 이사를 들고나는 게 아주 넌덜머리가 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그런 나를 긍휼하게 여긴 선배 언니가 지도편달을 해준 덕에 아파트 구매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사놓고 보니 샷시고 주방이고 너무 낡아서 집 전체를 손봐야 할 것 같아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는데, 대략 두 주 정도 걸릴 줄 알았던 일이 커져 한 달여를 넘게 됐다. 계약 당시에는 별로 큰일이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막상 이삿짐을 창고에 넣고 나니 조금 당황 혹은 황당한 느낌이 들었다. 

이사 전날 고양이 두 마리와 딸아이의 한 달 살이 짐을 아이 아빠에게 보내고, 내 짐은 결혼을 앞두고 집을 구해 살고 있는 조카딸네로 옮겼다. 몇 달 전 이미 계획한 일인지라 생각한 바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됐지만 정작 그 이후의 내 마음, 내 느낌은 알 도리가 없었다. 조카네 작은 방에 큼지막한 트렁크를 들여놓고 옷가지 몇 개를 옷장에 걸고 나서 보니, 자취생 기분이 들면서 묘한 해방감이 몰려왔다. 

이사를 코앞에 둔 며칠은 너무나 정신이 없고 피로했다. 마감을 하느라 딸아이 짐과 내 짐을 정리도 못한 데다 완전히 비워야 하는 냉장고와 냉동고도 그대로여서 전날 늦게까지 버리고 씻고 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스트레스를 잔뜩 받은 작은 고양이 콩이가 곳곳에 오줌 스프레이를 하는 통에 매일 빨래를 하느라 완전 지쳐 있었다. 젊지 않은 몸으로 회사 일하랴 강의와 강연하랴 지칠 대로 지쳐서 집에 오면 콩이 오줌 냄새와 자잘한 일감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은 또 하나의 거대한 일터였고, 나는 안팎으로 해야 할 일들에 짓눌려 있었다. 이사 전후와 이사 당일 해야 할 무수한 일 더미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다 갑자기 완벽하게 해방이 돼버린 거다. 딸도 냥이 두 마리도 설거지나 청소를 해야 할 집도 없이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됐다. 당장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없는 게 너무 이상했다. 이럴 수가! … 그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큰 짐을 이고 지고 살았는지 덜컥 실감이 났다. 머릿속 시뮬레이션으로는 그릴 수 없던 감정이었다. 첫 아이를 낳은 게 25년쯤 돼 가니, 그 25년 동안 혼자인 적이 없었다. 나의 존재 깊숙하게 아이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나름 애면글면 해왔다. 어미가 된 순간부터 아이를 뱃속에 품듯, 어미로서의 책임감도 그렇게 품고 살아왔음을 새삼 느꼈다. 꽤 긴 세월 동안 나는 독박육아에 독박가사에, 밖엣일까지 억척스럽게 해냈다. 그렇지만 그건 너무 당연한 ‘나의 할 일’이었고, 또 너무 오래 이고 지고 살고 있어서 별로 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겨우 한 달여에 불가하겠지만) 잠시라도 훌쩍 내려놓고 보니 그게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것인지 명징하게 자각됐다. 비로소 오래도록 나를 짓누른 의무를, 그 의무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잠시지만 그것으로부터 놓여났다는 데서 큰 해방감을 맛봤다. 아, 이렇게 홀가분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도 처음 해봤다. 하지만 나의 해방감은 시원한 여름밤의 청량한 바람처럼 가뿐하지는 않았다. 비 냄새 섞인 늦가을의 무거운 바람처럼 조금은 서럽고 애처로웠다.       



여행자 같은 나날을 보내리라 마음 먹고


‘살림을 안 해도 된다’ … 나는 결혼 전에 한 번도 밥을 해본 적이 없어서 내 아버지는 신랑이 될 사람에게 우리 딸은 밥 짓는 법도 모른다고 했고, 그러자 자취로 잔뼈가 굵은 그는 호기롭게 자기가 밥을 잘 짓는다고 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밥 잘하던 그는 밥 짓는 일에서 물러났고, 밥 한번 안해본 나는 못하는 그 일을 해보느라 끙끙댔다. 억울하고 한편으로는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지만, 세상도 어둡고 내 의식도 뭐 그저 그러하여 그냥 속으로 삭이며 흘려보냈다. 그러다 살림보다 더 가혹한 일들이 폭풍처럼 덮쳐와 살림을 누가 하느냐 따위는 손톱에 낀 때쯤 됐던 것 같다. 살림 안 하던 삶에서 살림을 전담하는 삶으로 건너오는 것. 우리 세대 결혼한 대부분의 여성이 피할 수 없었던 이 전이轉移는, 당사자들 생애 전체를 장악하는 엄청난 대사변이었다, 라고만 쓰고 넘어가야겠다.  

살림을 안 해도 된다니, 와우, 오 마이 갓~

일단 이 시간을 여행자인 듯 홀가분하게 살리라 마음 먹었다. 멍때리기, 늦잠 자기, 낮잠 자기도 하고, 책도 읽고, 넷플릭스로 영화와 드라마도 실컷 즐기리라. 무엇보다 여행자 처지라 꼭 어느 숙소에서 자야 할 필요성이 옅었다. 자연스레 여기저기 떠돌게 됐다. 늘 만나러 가야지 하면서 미뤄뒀던 선배 언니네도 가보고, 언제든 와서 며칠이든 지내라는 편한 후배네도 가고, 후배들과 어울렁더울렁 1박 2일 봄놀이도 다녀왔다. 

모든 길이 새로웠다. 거처가 달라지니 출퇴근 길도 달라졌다. 늘 다니던 낯익은 코스가 아닌, 처음 가보는 길을 산책했다. 출퇴근 시간도 제대로 어림하기 어려웠다. 어떤 곳은 멀고, 어떤 곳은 지척이다. 하지만 어떤 숙소에서든 서너 시간 자면 깼고, 대여섯 시쯤 일어나면 남의 집이라 뭉그적대기 어려워 일찍 움직일 때가 많았다. 마을버스도 타보고, 신도시와 시내를 오가는 광역 버스도 타보고, 까마득히 오랜만에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출근한 적도 있었다. 집 수선이 잘 되나 보러 가는 길도 당연히 낯설다. 이삿짐을 창고에 넣고 난 후 익숙한 많은 것들로부터 떨어져나왔으나 새로운 곳에 아직 닻을 내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회사를 가고 사람을 만나는 자질구레한 일상은 거의 같지만, 그럼에도 온통 낯선 경험에 둘러싸여 지내고 있다. 세상에나, 내게 이런 시간들이 오다니.         


나이 듦에 따라 시간이 더 빨리 흘러가는 이유


요즘의 내 시간은 참말로 더디 간다. 집도 절도 없이 지낸 게 스무 날 정도 됐는데 한 달은 훨씬 넘은 기분이다. 수선한 집으로 들어갈 날이 스무 날 정도 남았는데 참으로 까마득하고 아득하다. 월간지 인생이라 마감하고 나면 시간이 뭉텅 잘려나가는 기분이라 한달이 금세 가는데 내 인생의 초침이 갑자기 거북이 걸음이 돼버렸다.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버렸다.  

흔히 우스갯말로 이렇게 말한다. 세월은 나이의 제곱만큼 흐른다고. 나이 들수록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신경회로와 도파민 등을 들먹이며 이유를 설명하는데 관심 있는 사람은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빠르게 흘러갈까>) 

한편 세월을 주관적으로 느끼는 것은 기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새로운 일, 강렬한 느낌, 충격적인 사건들은 오랫동안 기억의 조각으로 남지만, 늘 겪는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기억은 별로 오래 남지 않는다고. 요즘 내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는 것은 이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반복적이고 익숙한 일을 덜 하고 새롭고 낯선 경험이 늘어나서.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경험으로부터 멀어지는 게 좋은 일 같지는 않지만 나는 빨리 익숙하고 반복적인 패턴 속으로 들어가 안정하고 싶은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 뭐가 좋고 나쁜지 선뜻 정하기가 이렇게 어렵다.       

몇해 전부터 낯선 시간과 상황이 종종 나를 찾아온다. 낯설고 생경한 그 상황들이 처음에는 제법 힘도 들고 긴장도 많이 되곤 했다. 이번 일처럼. 그러나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들이 찾아와줘서 좋기도 하다. 삶이 뭔지는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것 같지만, 한두 가지의 단조로운 경험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별로인 것 같아서. 그런데 사람이란 참 모순투성이라 새로운 것이 오면 낡은 것을 그리워하고, 익숙한 상태에 있으면 생뚱맞게 새로운 걸 꿈꾼단 말이지. 시간이 빨리 흘러도 좋으니 어서 일상의 냄새가 고루하게 배어 있는, 본래의 내 둥지로 돌아가고 싶은 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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