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몇 해를 뒤돌아보면, 남이 아니고 내가 살아온 내 세월인데도 대체 어떻게 버텼는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출퇴근 길은 무려 세 시간이 넘었고, 입시생 아침밥은 꼬박 챙겨야 했고, 일손이 없어 거의 혼자 책을 만들다시피 했다. 인생 인연이라 믿었던 사람과는 이별 중이었으며, 회사는 과연 망하지 않고 내가 재건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엉망이었다. 거의 일주일에 3~4일 이상 술을 마셨고, 담배도 어지간히 피워댔으며, 당연히 귀가도 늦었다. 수면장애 또한 극심했다.
긍정의 DNA를 달여 먹어가며,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 내는 걸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던 나날이었다. 다행히도 세상이 내게 호의적인 편이라 많은 고난을 무사히 건너왔다.
대신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극심한 만성피로 상태였고 심심찮게 허리통증이 도졌으며 오십견도 지나갔고 오른발도 부러져 몇 달 고생했다. 몸 여기저기서 팡파레 울리듯 신호탄을 신나게 쏴댔다. 어디어디가 이렇게 저렇게 문제다, 라고 짚기는 어려웠지만 몸뚱이가 천근처럼 무거워 겨우겨우 이고 지고 다니며 생활하자니 너무나 힘이 들었다. 숨이 고르지 않았고 편안하지 않았다. 승모근은 쪼그라들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저렸으며 굳은 어깨는 바위덩어리처럼 나를 짓눌렀다.
몸의 말을 들어야겠다는 다짐을 얼마나 자주 했던가? 중요한 건 다짐이 아니라 행동인데도. 하지만 핑계든 아니든 도무지 짬을 낼 수가 없었다. 운동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서적 여유가 필요하다. 당시 내게는 셋 다 없었다. 사람들은 짬을 못 내는 게 아니고, 안 내는 거라고 했다. 돈 없어서 운동 못하는 것도 다 핑계라고 했다. 그러나 누가 뭐라든 당시의 나는 아무 여유가 없었다.
특히 지난 겨울부터 올 상반기까지 숨돌릴 겨를 없이 일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국을 돌며(?) 강연을 다니고, 집을 고치고 이사를 하고, 팔자에도 없는 대학 강의를 한 학기 맡아 했고(그 와중에 4회차 도서관 강연도 줄줄이 이어졌다) 마감도 해야 했다. 특히 강의 준비는 상상 이상 고됐다. 갑작스러운 일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강연 끝자락부터 왼쪽으로 기울며 쓰러질 것 같은 증상이 있었다. 겨우겨우 참고 나와서 근처 병원을 찾아 주사를 맞았고, 또 어느 주말 밤에는 심한 급체로 처음으로 119에 실려가기도 했다. 위험을 알리는 비상벨 소리는 더 날카로워졌고, 부글부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5월 말 이사를 하고, 6월 말 기말고사 채점을 마친 후에야 숨을 돌렸다. 계속되던 강연 요청도 줄었다. 모래 주머니를 차고 뛰다가 주머니를 덜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날 듯이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하던 일들만 하는 정도는 이제 만만했다.
하지만 날 듯이 뛰려면 엉망진창 내버려뒀던 몸을 보살펴줘야 했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서 저녁 약속을 거의 할 수 없게 됐다. 조금만 무리하면 피로감이 급습했고, 피로가 잠식한 내 몸이, 아니 몸보다도 오히려 마음이 휘청거리는 게 더 싫었다. 몸이 시들하면 마음은 그보다 더 시들해졌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개선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정신력’은 ‘체력’이란 외피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7월 초 부랴부랴 사무실 지하에 있는 헬스클럽을 찾아가 평소라면 생각지도 않을 거금을 내고 개인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입원비나 수술비보다는 낫겠거니 생각하기로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처음 운동할 때가 생각난다. 첫날, 아주 평이한 자세가 생각처럼 되지 않아 크게 좌절했다. 난이도 0에 가까운 동작이었는데…. 필라테스는 기구를 이용하긴 하지만 격한 운동은 아니었고, 오히려 깊이 있는 스트레칭에 가까웠다. 요가도 한두 해 했고, 국선도라는 운동도 했지만 개인지도라서 그런가 운동 과정이 아주 세밀한 느낌이었다. 몸의 앞뒤, 위아래 숨어 있는 작은 근육들의 긴장과 이완을 계속 반복하며 근육의 힘을 키워주는데, 그전까지는 한 번도 그 자잘한 근육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은 별다른 동작은 아닌데 강사 쌤이 한 곳을 꾸욱 짚으며 엉덩이 근육에 힘이 가야 한다고 계속 지도해주었다. 나는 풍성한 엉덩이 살 속에 근육이 존재하고 있음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래서 그 근육을 감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이런 말이 나왔다.
“쌤, 제 엉덩이 근육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강사 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에요, 저는 회원님 다른 근육들에도 다 관심 있어요!”
우리는 가끔 엉뚱한 문답을 주고 받으며 재미있게 운동을 했다. 동작은 단순한데 땀이 꽤 나는, 은근 힘든 운동이었다.
나는 새 동작을 배울 때마다 열심이었다. 범생이 기질 탓에 쌤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고 정확하게 몸 동작을 하려고 집중했다. 그런데 새 동작을 할 때마다 매번 같은 얘기를 들었다.
“어깨에 힘 주지 않아요~”
물론 이와 다른 버전의 말도 계속된다. “팔에 힘주지 않아요, 손에 힘주지 않아요.” 같은. 하지만 처음 하는 운동이든 새로 하는 운동이든 “어깨에 힘주지 않아요”는 늘 반복된다.
힘을 빼며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그게 비단 운동할 때만이겠어.’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것들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체력이 꽤 나아졌다. 저녁 술 약속도 많이 줄였고, 술자리가 있어도 과음은 거의 안하게 됐다. 담배도 비흡연가 수준으로 줄였다. 일상이 단조로워졌고 수면의 질도 좋아졌다. 일찍 자게 되니 일찍 깨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하여 지독하게 날 옥죄던 만성피로라는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게 됐다.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뭔가 억울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들은 맨날 이렇게 가뿐한 몸으로 살아왔단 말이지? 갑옷 같은 만성피로라는 옷을 안 입고? 아침에 일어나도 특별한 때가 아니면 내 몸에 대해 무감각하고 무덤덤할 수 있게 됐다. 숨을 쉴 때 공기의 존재를 모르듯이.
묵지근한 어깨도 가벼워졌고, 허리 통증도 사라졌다. 노래방에서 진성을 뽑을 힘이 없어 가성으로만 불러서 재미가 하나도 없었는데, 이젠 옛날처럼 진성을 내지를 수 있게 됐다. 걷기도 도움이 됐고, 집에서 조금씩 하는 스트레칭도 거들었다.
지금, 몸을 단련(한다고까지 말할 수준은 절대 아니다)하면서 곁가지로 얻게 된 자잘한 지침이나 교훈들도 아주 마음에 든다. 숨차고 힘들고 하기 싫은 마음을 어르고 달래서 해보려고 아등바등하는 그 과정도 마음에 들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교훈은, 힘을 빼야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묵직한 중력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여 에너지를 만드는 그런 느낌. 사람 관계도, 삶도, 사업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