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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나 Feb 03. 2020

05태강릉과 단풍놀이
태릉에서 소로를 걸어 강릉에 닿다

05#태릉#강릉#경춘숲길

오늘의 여정 화랑대입구역-> 경춘숲길을 따라->태릉에 닿은 후 소로를 걸어->강릉에 닿다     


         

태릉 일대를 지나간 적은 꽤 여러 번이었다. 서울의 끄트머리, 태릉을 지나면 경기도가 나온다. 어딜 가는 길이었는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녹지가 풍성하여 차창 밖으로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이 동네 살면 어떨까, 상상도 하면서. 인연이 닿을 게 없으니 택도없는 소리인 줄 알지만 풍성한 푸르름이 정겨웠다.   

태릉은 재밌는 동네다. 한번도 발길을 멈춘 적이 없는데도 그냥 낯이 익다. 태릉선수촌도 있고, 태릉갈비집이란 상호를 단 곳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그런 걸까? 그나저나 한달여 전에 포천을 갈 일이 있어 오랜만에 이 길을 지나는데 ‘강릉’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강릉 가는 이정표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 근처에 강릉이란 곳이 있단 뜻이다, 아아,  참 재밌네. 서울에 있는 강릉이라? 순전히 호기심에 태릉을 둘러보고 강릉을 찾아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쩌다보니 걸음이 예상보다 빨라졌다. 

지난번 경춘숲길을 갔다가 태릉을 슬쩍 다녀왔다. 거의 오후 다섯 시 무렵 입장했는데, 표를 받는 안내원이 ‘강릉’으로 넘어가는 산책로는 네 시 반에 닫힌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태릉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데 얼마나 걸려요?’라고 묻자 ‘삼십 분 정도’라고 답해주었다. 옳다구나, 하면서 다음번에 다시 와서 태릉을 거쳐 강릉으로 가는 나들이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휘 둘러보고 돌아왔다. 잠깐이었지만 평화로운 분위기가 잔잔히 전해져왔다. 입장할 때는 지나쳤던, 조선왕릉전시관도 들렀다.  

돌아오는 길에 셈을 해보니 다음에 오면 단풍이 제대로 물들었을 것 같았다. 

          

능 구경보다 단풍 구경이 더 하고 싶었다

화랑대역에서 내려 태릉을 향해 걷는데, 단풍이 화려할 거라는 나의 셈이 제대로 맞았다. 단풍과 은행, 플라타너스가 더할나위없이 찬란하게 물들었다. 워낙 그 길의 가로수가 풍성하고 우람하여 거리 자체가 탐스러운 가을, 그 자체였다. 이리 보고 저리 보는데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저만큼 앞에 단풍이 제대로 든 육중한 나무 아래서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사진을 찍으며 놀고 있다. 멀리서 보는 데도 청춘 특유의 발랄한 유쾌함이 전해졌다. 

그날은 걷기 좋아하는 후배와 동행을 했는데 감탄에 감탄을 하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건넨다. 요지는 이랬다. 감탄사 ‘와아~’가 뱃속부터 끌어올려져 나오는 울림으로 내뱉는 게 바로 나이 들었다는 증거란다. 젊은이들은 ‘아’ 하고 짧게 말하고 ‘너무 이쁘다’ 하는데, 나이 든 사람은 거의 한숨이 뒤섞인 호흡으로 길게 길게 ‘와아아아~~’ 하고 큰 소리로 말한단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다. 스무 살의 내가 지금처럼 감탄했을 거 같지는 않다.   

그래서 후배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걸까?’ 그러자 자기도 모르겠다더니, 언뜻 보면 서른몇 살로 보이는 후배도 잠시 후 ‘와아아~~’ 하고 길고 길게 감탄사를 뽑았다. 그러면 그렇지, 너도 뭐 중년이군, 하며 속으로 고소해했다. 

태릉 입구. 가을 햇살 아래 단풍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걷다가 사진 찍다가 수다 떨다가 태릉에 닿았다. 지난 번 대충 둘러본 왕릉전시실을 꼼꼼하게 들여다볼까 하다가 단풍에 정신이 팔려 지나쳤다. 홍살문을 향해 가는데, 햇살 한 무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듯, 한 지점에 내려앉았고, 그 빛을 받아 유난히 붉은 단풍이 꽃처럼 반겨주었다. 

학창시절 자주 왕릉으로 소풍을 다닌 까닭도 있겠지만 왕릉 자체에 흥미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구릉 진 능과 오래 된 나무가 주는 안정감 덕에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거겠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들의 견해다. 태릉․강릉을 비롯한 조선왕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다. 왕조의 무덤이 500여년 넘게 훼손되지 않고 보존돼온 게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설명이다. 

가을 풍광 속을 걷다보니 금세 홍살문이 맞아주었다. 키 큰 노송, 가을 나무들이 노릿하게 익어가는 잔디 빛깔과 어우러져 특유의 평온함을 선사한다. 홍살문은 곧게 정자각으로 이어졌고, 정자각 앞에 언덕처럼 구릉진 넓은 능이 펼쳐졌다. 태릉은 조선의 11대왕 중종의 둘째 계비 문정왕후 윤씨의 무덤이다. 조금은 비밀스런 산책로를 걸어서 닿을 강릉은 그의 아들내외인 13대 왕 명종과 인종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조선왕릉과 유네스코 문화유산

조선왕릉은 총 40기로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다. 1408년부터 1866년까지 5세기에 걸쳐 만들어졌다. 왕릉은 고유의 풍수사상에 따라 결정하는데, 도성 한양을 중심으로 4km 밖, 40km 이내로, 쪽에는 물이, 뒤에는 언덕이 있어 보호를 받는 배산임수(背山臨水) 터로 정한다. 왕릉에는 매장지뿐 아니라 의례를 위한 장소와 출입문도 있다. 왕릉 주변은 다양한 인물과 동물을 조각한 석물로 장식되어 있다. 조선왕릉은 5,000년에 걸친 한반도 왕실 무덤 건축의 완성이다.

한편 2009년 7월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유산(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UNESCO)는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으로 세계유산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인정했으며 지금까지도 제례의식과 같은 무형 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조선왕릉 전체가 잘 보존관리 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평가했다.  

    


    

여인천하 문정왕후와 그의 아들 명종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단풍 욕심만 가득 품고 길을 나섰다. 태릉이 문정왕후의 묘고, 강릉은 그들 아들 내외의 묘고, 그 길을 잇는 산책로가 태릉 안에 있다는 게 전부였다. 

두 번째 와본 태릉에서 여전히 인상적인 것은, 묘지를 둘러싸고 있는, 사선으로 기운 키 큰 소나무들이었다. 그 기울기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덤은 나무들이 에워싸고 있고, 정자각보다 높은 구릉에 무덤이 있어서 묘를 지키는 동물석도, 문인석이나 무인석도 구경하기 어려웠다. 당연히 사진에도 담을 수 없었는데, 그게 좀 아쉬웠다.  

그나저나 저 나무는 누가 언제쯤 심었을까, 궁금했다. 

돌아와 자료를 찾아 읽으니, 문정왕후의 기세가 머릿속에 그려지는데 참으로 대단하였던 모양이다. 문정왕후는 중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그녀 나이 서른 초반에(그 옛날이니 어마어마한 노산이다) 두 번째 적자인 경원대군(명종)을 낳았다. 중종의 첫 부인 왕비가 낳은 아들 인종이 중종의 장례를 치르고 왕위에 오른 지 9개월 만에 요절하자, 명종은 열두 살에 왕위에 오른다. 그리하여 문정왕후는 명종이 스무 살 될 때까지 수렴청정하며,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중종에게는 왕비가 셋이고 후궁이 일곱이어서 후손이 모두 9남 11녀였다는데, 살아남은 왕자가 창빈 안씨 사이에 낳은 7째 아들 덕흥군밖에 없었다니, 권력 다툼의 피비린내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문정왕후와 인종을 둘러싼 야사들도 꽤 재미있다. 

자료를 슬쩍 봐도 기세등등한 문정왕후의 모습이 그려진다. 상대적으로 명종은 기가 약했던 것 같다.      


“또 스스로 명종(明宗)을 부립(扶立)한 공이 있다 하여 때로 주상에게 ‘주상께서는 내가 아니면 어떻게 이 자리를 소유하실 수 있었겠습니까.’ 하고, 조금만 여의치 않으면 곧 꾸짖고 호통을 쳐서 마치 민가의 어머니가 어린 아들을 대하듯 함이 있었다. 상의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김없이 받들었으나 때로 후원(後苑)의 외진 곳에서 눈물을 흘리었고 더욱 목놓아 울기까지 하였으니, 상이 심열증(心熱症)을 얻은 것이 또한 이 때문이다.” _《조선왕조실록》 명종실록 31권     


평생 무서운 어머니 그늘에 있던 명종은, 문정왕후가 죽고 겨우 3년을 더 살다 갔다. 그들 모자(母子)의 세고 약한 기세가 왕릉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들 한다. 권세를 휘두른 태릉이 여러 모로 더 크고 담대하다는 설명이다. 태릉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강릉을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비슷한 이치일까. 태릉은 연간 30만명의 사람들이 찾는다는데, 강릉은 오랫동안 비공개였다가 일반인을 받은 지 오래지 않았다. 한달여 전에야 ‘강릉’의 존재를 알게 된 게 우연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태강릉

어머니 문정왕후의 '태릉(泰陵)'과 아들 부부 명종·인순왕후의 '강릉(康陵)'은 조선 시대부터 '강태릉(康泰陵)' 또는 '태강릉'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하지만 태릉선수촌(1966년 건립)이 들어서면서부터 태릉과 강릉의 권역으로 분리된 상태로 50여 년 동안 본연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강태릉'이라는 명칭은 명릉향대청술회(明陵香大廳述懷:조선 영조 32년)에 수록돼 있다. 

한편 강릉은 태릉에 비해 휴식공간이 매우 좁아 비공개 왕릉이었는데,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복원과 정비사업을 해서 개방했으며, 태릉과 강릉을 잇는 산책길도 조성했다.          



 

드디어 강릉으로, 봄가을에 잠깐 개방하는 비밀스러운 소로小路    

가을햇살이 여름햇살과 다른 점? 

그날의 기분이었는지 모르지만, 가을햇살은 오순도순 몰려다니는 느낌이다. 이쪽에 소담스럽게 내려앉았다가 저쪽에 다정하게 모여 있는 그런 느낌? 그래서 가을 단풍은 공평하지 않다. 햇살 넉넉한 곳에 서 있는 나무는 이파리들을 꽃잎으로 변신시키지만, 햇살이 찾아주지 않은 곳의 나무들은 그냥 푸르게 여의어간다. 

햇살 세례로 꽃처럼 피어난 나무들을 눈으로 쫓으며 카메라 초점을 맞춰본다. 강릉으로 걸음을 돌리려 보니 몇몇 아주머니들이 땅에 떨어진 도토리를 줍느라 조금 바빠 보인다. 아무쪼록 다람쥐 양식은 남겨두길 바라며 산책길이라고 쓰인 이정표를 찾았다. 처음 가보는 길에는 늘 기대가 있다. 어떤 형세의 길일까? 지하철을 타면서 보니 비탈길이 있다고 했던 것 같다. 부실한 발바닥이 살짝 걱정스럽다.  

작고 호젓한 소로. 고요하고 평온했다.

소로에 들어선다. 새로운 장소가 우리를 품는다. 신선한 느낌이다. 가을이 익을 대로 익어 겨울로 가는 길목. 오른쪽은 단풍이요, 그늘진 왼쪽은 여전히 푸르다. 햇살이 눈부셔 몽환적인 기분도 든다. 태릉과 강릉을 잇는 숲길은 약간의 오르막과 약간의 내리막길이다. 우리 두 사람 외에는 평일이라 아무도 없어서 ‘멧돼지 주의!’ 문구를 읽으며 한참 멧돼지가 등장하면 어떻게 할까를 두고 시답지 않은 얘길 주고받는다. 길의 중간쯤에 있는 안내소에서 젊잖은 분이 등장하여 반겨준다. 이 길로 다시 돌아올 거냐고 묻는다. 제법 늦은 오후여서인가 보다. (시원치 않은 발 탓에) 강릉에 갔다가 그곳 출구로 나갈 거라고 답했다.   

느닷없는 호젓함. 자연 그대로라고 강조할 만큼은 아니다. 산이 많은 땅이라 동네 어디든 있는 작은 동산 분위기다. 강릉은 비공개였고 이 길은 막혀 있다가 새로 조성해서 공개한 게 몇 년 안됐고, 주변의 나무와 풀을 그대로 두느라 편의시설은 최소화했단다. 잘한 일이다.

이 산책길이 비밀스러운 이유는, 일년에 두 번, 5~6월과 10월~11월에만 제한적으로 개방하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으며 겨울에 오면 참 멋지겠다는 얘길 나눴는데, 그건 불가능해보인다. 봄에도 어지간히 곱겠단 생각이 든다. 

강릉의 정취가 희한하게 더 오래 남는다. 열심히 둘러본 것도 아닌데. 부부가 호젓하게 누워 있는 강릉은, 태릉에 비해 규모가 작게 느껴지지만, 오랫동안 비공개였다는 비밀스러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조촐한 매력이 깊이 있게 다가온다. 

어미의 묘와 아들 내외의 묘를 이어서 본다는 경험도 나름 각별하다. 두 능이 비슷한 듯 다른 것도 그렇다. 살아있을 때의 기개가 사후에도 이어지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도 들고. 

태강릉을 나와 동행자와 나는 다시 가을 속을 걸으며 가만가만 이야기를 나누며 출출한 뱃속을 달래러 유명한 분식집으로 향했다. 가깝고 별것 아니지만, 멋진 가을여행이었다.            

강릉 전경



>금강산도 식후경     

주변 맛집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근처에 사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리스트가 빼곡하다. 태릉숯불갈비도 먹고 싶었지만 조금 번거로워서 우리들의 소울음식 떡볶이를 먹으러 갔다.      


소라분식

경춘숲길 소개할 때마다 나오는 맛집이다.육군사관학교 학생들과 서울 여대생들의 역사적 소개팅 성지. “소라분식, 하면 그냥 레전드예요.” 라고 지인이 말했는데. 

막상 가보니, 그냥 평범해보이는 외형이었다. 내용을 레전드요, 형식은 요즘스러운 게 당연한 것 같다. 서울여대 후문 부근인가 보다. 

‘전설의 떡볶이’(1만2000원)를 시켜먹었다. 라면, 쫄면, 당면 사리가 몽땅 들어 있고 햄도 들어 있고 만두도 들어 있는데. 짜지도 맵지도 않으면서 맛이 있어서 둘이 다 먹어버렸다. 메뉴들이 엄청 많은데, 다 맛이 있다고 한다. 값도 싸고 맛도 좋고 일하는 분들도 친절하다. 강추, 강추!!     


태릉숯불갈비

다음에 가보려 한다. 지인의 소개만 정리했다. 예전과 달리 양념으로 고기맛을 숨긴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달지도 짜지도 않은 전통의 숯불갈비다. 육사를 지나 구리시 갈매동에 있는데, 양념게장도 밑반찬으로 나오는데 3000원인가 내면 리필을 해준단다. 

갈비라니 덜컥 가격이 부담스러워 물었더니, 왕갈비 1만2000원, 소갈비 2만8000원. 

근처에 허참이 운영하는 유명한 고깃집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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