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경춘선숲길 #화랑대철도공원 #공릉동도깨비시장
오늘의 여정
화랑대입구역-> 화랑대 철도공원(옛 경춘선 간이역 화랑대역사) ->목공체험장->공릉동 도깨비시장->태릉
발길이 낯선 곳에 닿으면 조금 당황도 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여행이 막 시작됐다는 뜻이다. 육군사관학교가 있고, 서울여대가 있고, 태릉선수촌이 있고, 태릉이 있는 그 길들. 여러 번 지나치긴 했지만, 굳이 찾아온 기억은 없다. 쭉쭉 곧은 우렁찬 가로수들이 반겨주던, 녹지가 풍성한 그 길.
이 일대에 경춘선숲길을 조성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길래 볕 좋은 날, 주머니에 덜렁 휴대폰 넣고 카메라 들고 가볍게 집을 나섰다. 오늘의 낯선 길이 내게 어떤 느낌을 주나, 하는 작은 기대감과 함께.
경춘선숲길을 가려면 화랑대입구역 4번 출구에서 내리면 된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3번 출구에서 내려버렸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두리번거리다 결국엔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경춘선숲길이 어디냐 물었더니, 표정이 재미나다. 친절하게 손짓을 해가며 알려주면서 ‘여기가 다 철길이에요.’ 라고 하는데. 그 길에 서 보니 그 표정의 의미가 뭔지 알 듯하다. 차를 타고 지나치던, 앞에서 말한 길 옆에 철로가 쭈욱 놓여 있었다.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그 길 위로, 아래로 거닐고 있었다.
잠시 우두망찰.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걸어야 할까?
‘애벌’ 취재라 별다른 정보 없이 와 보니 잠시 불시착한 기분이 들었다만, 자고로 모르면 사람 북적이는 곳으로 향해야지 싶어 육군사관학교 건물이 보이는 쪽으로 걷다보니 ‘경춘선숲길’이라는 글자가 대문만하게 반겨주었다.
어리둥절 가보니 나들이객이 붐빈다. 아이들은 뛰고 달리고, 연인들은 두 손을 꼭 잡고 어깨를 감싸고 걷는다. 등산점퍼 차림의 중년들도 멈춰서 사진을 찍으며 청년처럼 웃는다. 이제는 멈춰 선 낡은 선로 위에는 낯선 기차들이 서 있다. 철로 주위에 조성된 꽃밭에서는 소박한 가을 꽃들이 수북하다. 사람들은 이국적인 느낌의 열차 앞에서 즐겁게 사진을 찍는다. 열차와 꽃이 이렇게 낭만적으로 어울리다니. 카메라에 담고 보니 괜히 신이 난다.
지금에 와서야 살펴보니, 그곳은 경춘숲길(전 구가 6킬로) 중 ‘화랑대 철도공원’이었고, 유독 눈길을 끌었던 낯선 전차는 체코 프라하에서 운행(1992-2016년)됐던 트램(노면전차)이었다. 이 트램 외에도 일본의 전철 한 량도 전시돼 있었다.
그리고 저쪽, 낯익은 열차가 길게 늘어서 있는데 보완작업 중인지 일하는 분들이 분주히 오갔다. 서울에서 춘천을 오갔을, 코레일 열차. 오랫동안 일을 한 차량은 늙은 플라타너스 기둥처럼 겉면이 쭉쭉 갈라져 있었다.
철로 중앙에는 이정표도 서 있다. 성북 청량리 방면(←) (→) 춘천방면
가물거리듯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이 철로를 내가 처음 달려본 것은, 중학생 시절 어느 겨울방학이었다. 단발머리 여중생 셋이 방학을 맞아 용기를 낸 하루 여행 코스. 경춘선을 타고 강촌엘 갔었다. 언 강과 시린 바람, 황량한 시골길 외에는 뭘 했는지, 뭘 먹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우리들 깜냥으로는 제법 큰맘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때 아마 이 역을 지나쳐 갔겠지. 간이역 화랑대역에 들어서니 소박하게 과거의 철도 문화를 전시하고 있었다. (1939년에 개설됐고, 2010년까지 제 몫을 해낸 후, 80년의 세월을 견뎌 여전히 그 자리에 굳건하게 서 있었다.
역사 반대편쯤에는 재미 있는 활동 공간이 수풀 속에 살짝 감춰져 있다. 목공체험관이었다. 한쪽 교실에서는 한창 수업 중이었는데 북적북적 재미나 보였다. 아까 총 6킬로 구간의 경춘선숲길에 대한 안내도를 슬쩍 보긴 했지만, 이 길이 어디까지 어떻게 뻗어나가고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해 좋을 때 사진을 찍어둘 욕심으로 한참 위쪽을 향해 걸었더니 배꼽 시계가 성화를 부려 다시 부리나케 역사 쪽으로 걸어내려오다보니, 꼬마 하나와 아이의 엄마가 막 목공작업을 마쳤는지 나와 앉아서 쉬고 있었다.
어떤 작업을 했는지 여쭤보고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고 하자,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무릎에 뉘어두었던 작품을 들어 보여주라 했다. 이 상황이 쑥스러웠는지 사내 아이가 뻘쭘해하며 작품을 구경시켜주었다. 나무로 만든 시계였다. 제법 근사했다. 아이들과 나들이 와서 하면 꽤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생나무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날은, 경춘선숲길을 느긋이 여행하기가 어려웠다. 생소한 길이라 거리도 방향도 가늠하기 어려운 데다 취재를 하려다 보니 마음은 또 왜 그리 급한지. 화랑대철도공원으로 가면서 이정표를 꼼꼼히 읽었지만 이 여행의 목적지가 어디여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경춘선 숲길 전 구간(총 6.0km)
월계역(인덕대학)->경춘철교->행복주택->공릉동도깨비시장->화랑대역->구화랑대역->태릉선수촌->담터마을
그러다 너무 배가 고파 일단 공릉동도깨비시장엘 가보기로 했다. 맛집 검색을 해보니 시장 칼국수가 3000원인데 맛이 좋다고 했다. 시장나들이에 대해서는 기대가 없는 편이다. 어딜 가든 엇비슷한데다 시장 군것질들도 거기서 거기라서. 하지만 시장 이름도 재미있고 배도 고팠고 혹시 색다른 점이 있을까 기대도 있어 걸음을 돌렸다. 화랑대 철도공원에서 도깨비시장까지 검색해보니 도보로 30분. 허기가 너무 져서 버스로 이동했다.
역시 평범한 동네 시장이었다. 색다른 점은 평지가 아닌 고갯길이라는 것? 한바퀴 둘러보다 샘터분식이란 델 들어갔다. 밥때가 지났는데도 몇몇 분들이 앉아 있었다. 칼국수 하나와 손수제비를 시켰는데, 와우, 아주 깔끔한 정석의 칼국수 맛이었다. 멸치 육수에서 비릿한 내도 없고 수제비도 제대로 손으로 뜬 맛. 시장이 반찬이어서였는지도 모르지만 아주 맛나게 먹었다. 다시 여행 경로를 짠다면, 태릉역에서 내려 공릉동도깨비 시장엘 가서(도보로 7분) 칼국수와 수제비를 먹고 여행을 시작하면 될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월계역 숲길 초입부터 걷기 시작해 공릉동쯤 와서 국수를 먹고 다시 걸어도 좋을 것 같고.
경춘선이라고 하면 지금 청년들에게는 아무 느낌도 없겠지만 그들 부모 세대에게는 각별할 것이다. 대부분 청춘기의 짜릿한 낭만이 깃든 추억 한줌씩은 아마 가지고 있을 테지. 서울에서 춘천까지 운행하는 이 무궁화호 열차는 70, 80, 90년대에 대학생을 비롯한 청년들을 참 많이도 실어날랐다. 차창 밖으로는 아름다운 북한강이 따라 흘러서 더없이 아름다웠고. 지금 청년들이야 해외고 국내고 여행을 쉽게 하고 있지만, 당시 청춘들에게는 국내 여행도 쉽지 않았다. 경춘선이 지나는 대성리, 청평, 가평, 강촌은 수도권 대학생들의 MT장소였고, 연인들의 나들이 장소였다. .
그러나 이 낭만적인 열차는 2010년 복선전철화하면서 운행을 멈췄다. 서울시는 쓸모 없어진 옛 철길 주변을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계획을 세워 2013년 첫삽을 떴고, 올해 5월에야 6킬로미터 전 구간이 완전히 이어졌다. 옛 기찻길과 철길을 살렸고, 주변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했다. 경의선숲길이 핫플레이스인 홍대 인근을 지나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반면, 경춘선숲길은 그야말로 걷기 좋은, 아름다운 길이어서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춘철교(경춘철교는 1939년부터 2010년까지 열차가 다녔는데 지금은 사람만 다리는 다리가 됐다. 철교 위에서는 중랑천이 내려다보인다)를 시작으로 숲길을 따라 걸으면 구리시 경계까지 두 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니 그날의 나의 여행은, 눈먼 사람이 코끼리 더듬기한 꼴이다.
어느덧 4시도 훌쩍 넘었다. 활달하던 햇살의 기세가 누그러지자 마음이 더 바빠졌다. 공릉동도깨비 시장을 나와 택시를 탔다. 화랑대역철도공원에서 조금만 걸으면 태릉이 나오는데, 걸어갈 여유가 없는 탓이었다.
개찰을 하고 들어가려는데 안내해주는 분이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시간이 늦어 태릉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은 닫혔단다. 태릉은 중종비 문정왕후의 묘이고, 강릉은 그의 아들인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를 모신 능이다.
참 오랜만에 능을 찾았다. 키 큰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곳, 푸르른 초원이 평화를 주는 곳. 기우는 해가 비스듬히 사람들을 비춘다. 태릉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이 30여분 걸린단다. 마음을 비우고 다음 나들이를 삼기로 하였다. 햇살 아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밝아졌다.
여담이지만, 서울나들이 덕에 걸음이 바빠졌다.
경춘선숲길은 낙엽이 더 고울 때 너무나 아름다울 것 같아 다시 찾을 생각이다. 그때는 홀가분한 산책자가 되어 6킬로미터 완주를 목표로 삼을 예정이고. 인근의 키 큰 우람한 플라타너스가 입은 가을옷이 궁금하다. 무르익은 가을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산책길이 되리라 장담한다.
옛 간이역 화랑대역
원래는 근처 문정왕후 무덤의 이름을 딴 ‘태릉역’이었는데 역사 바로 옆에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서면서 ‘화랑대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화랑대는 육사의 별칭.
화랑대역은 1960년대 무렵부터 병력 수송의 중요 거점 역할을 했다. 충남 논산 등 후방에서 신병교육을 마친 장병들이 전방 부대에 배치되기 전 들르는 곳이 바로 화랑대역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1년에 하루, 육사 졸업식 때 만큼은 민간인들로 붐볐다. 생도들의 가족, 친인척들이 몰렸고, 그래서 육사 졸업식 날엔 용산~청량리~화랑대 구간만 운행하는 10량짜리 열차가 운행되기도 했다고 한다.
노원목예원
화랑대역 앞 숲길에 있는 목예원은 2015년 목재자원 재활용 복합단지이다. 낙엽퇴비장, 목재 펠릿센터, 목공소, 나무 상상놀이터, 목공예 체험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전 신청해야 가능한 듯하다. 주중과 주말 프로그램이 다르고 목공예 체험은 초등학생 이상 가능. (화~일요일 10:00~17:00 / 휴무일 월, 02-977-4816)
금강산도 식후경~~~
공릉동도깨비시장
샘터분식
특별한 맛이 아닌, 익숙한 칼국수 맛이다. 값은 3000원. 조미료맛이 별로 안 난다. 정직한 멸치육수 맛이다. 서울에서 요즘은 수제비 먹기 쉽지 않다. 사람 손이 귀한데 수제비는 반죽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뜯어야 하니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감자가 들어간 수제비는 5500원이다. 그 값을 생각하면 고마워해야 할 맛.
공릉동 수제맥주
브로이하우스바네하임
유명세가 있는 집이다. 맛집 검색을 보고 찾아갔는데 맛있다. 수요미식회에 나온 집이라는데 맥주 맛이 구수하다. 안주로는 치킨과 고추 튀김만 먹어봤는데 정성이 느껴진다. 비비큐치킨을 먹고 싶었지만 1시간 전에 주문해야 한단다. 여행의 피로를 위로해주기에 좋은 곳이었다. 화랑대입구역 근처 주택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