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이해할 수 없어. 배려할 뿐"

by 김지나

외로움과 고독의 웅덩이는 깊고 넓다. 언제나 아주 쉽게 빠져버리는 걸 보면. 그래서일 거다. 우리는 ‘이해’ 받고 싶고, ‘이해’ 하고 싶어한다. 또 그래서 자주 ‘이해’를 주고 받는다는 작은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빈번하게 다툼이 생길까? 바로 얼마 전에 이해를 주고 받았다는 사람들과도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 이해를 주고받은 게 아니었다. 외로움과 고독, 상처가 커서 무턱대고 상대에게 기댄 것일 확률이 높다. 그렇게 기대 오면 상대는 하는 수없이 받아주는 제스처를 한 것일 수 있다.


“사람을 이해하는 건 가능할까?”


아주 오랫동안 한 사람을 이해해왔다고 생각했다. 그의 단점, 그의 고민, 그의 생각을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나는 안다고.

그런데 정말 그럴까?

지금에 와서야 그 ‘이해’조차 내 식으로, 내 눈으로, 내 잣대로 해왔음을 고백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오묘하고 복잡한데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나를 어떻게 타인이 이해할 수 있으랴.

그러니 상대가 또 어떻게 나를 이해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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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다시 생각한다.


"타인을 이해하지 말자고. 그건 이해하는 척일 확률이 너무 높다.

이해한다는 착각이 오히려 오해도 만들고, 섭섭함도 생산하고,

예의없는 행동도 만든다. "


이제 ‘이해’라는 말보다 ‘배려’라는 말이 좋다.


배려의 가치가 더 크게 다가온다. 배려는 태도의 문제이므로 사람과의 관계에서 따뜻한 에너지를 평안하게 만들어낼 소지가 많다.

배려는, 어려운 고비에 선 사람에게 다가가되 무례하지 않다.

배려는, 작은 공감을 통해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되 부담스럽지 않다.

배려는 친구나 선배 혹은 후배 동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 있을 때 선뜻 손을 내밀 작은 용기를 준다. 나의 준비 정도, 상대의 받을 정도에 맞추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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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를 잘 주고 받는 관계에다 ‘취향’까지 맞을 때 비로소 우리는 친구가 된다.

오랜 세월 배려하며 같은 취향을 나눈 사람이 평생을 보는 벗이 되는데,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를 이해한다는 말, 그 말은 너무나 섣부른 것이었다. 그보다는 작은 배려를 나누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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