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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엄마 Feb 17. 2023

진통이 끝나고 먹는 미역국의 맛

잊지 않기 위해 쓰는 출산일기

출산 전날 왜 때문인지 마지막으로 찍고 싶었던 주수사진

1월 11일 출산예정일을 8일 앞둔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준호는 출근을 했고, 나는 아침을 먹은 후 피곤함을 느껴 안방 침대에 누워있었다. 돌아 누으려 자세를 바꾸는 순간, 뭔가 평소와 다른 느낌에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확인을 해보니 이슬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본 적은 없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이슬인가?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침착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신을 붙들고 '병원전화 > 준호전화 > 샤워 > 남은 출산가방 싸기'를 후다닥 해버렸다. 이슬을 본 후에는 양수가 터져 샤워하면서 콸콸콸. 양수가 터지면 바로 입원이라는 얘기를 들어서 준호는 회사 복귀 후 출산가방을 가지고 병원을 오기로 하고, 나는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향했다. 집이 윗동네라 눈이 많이 내리고 있어 이동이 가능할까 걱정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한 택시가 왔고, 기사님이 사정을 듣고는 빠르게 가보겠다며 눈길을 뚫고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접수를 한 후에 출산센터에서 양수가 맞는지 검사를 한 후 바로 입원수속이 이루어졌다. 양수가 터지면 24시간 안에 진통을 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출산을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 '아 이제 밤토리를 만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설레었다. 산모복으로 갈아입고 점심이 나와 밥을 먹고 입원실로 이동하니 준호가 도착. 서귀포에서 회사와 집을 들러 오느라 병원까지 2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을 혼자 있으니 좀 무섭기도 했다. 준호를 보니 마음이 편해짐.


우리는 몰랐지 다음날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양수는 계속 나오고 있는데 진통이 없어서 자연진통을 기다려보기로 했다.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촉진제를 쓰기로 하고, 입원 첫날부터 다음날까지 2-3시간에 한 번씩 태동검사를 했는데 기다리는 진통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통은 없고 아기를 만날 생각에 준호랑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는데...


1월 12일 오전 5시, 태동검사를 하고 촉진제 투여 후 오전 7시 50분부터 진통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진통은 정말 상상 그 이상.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되는 고통이었다. 자세와 호흡법, 마사지로도 해결 안 되는 고통에 무통주사를 요청했는데 그 시간이 오전 10시. 마취과 선생님이 오시는 데에 시간이 걸려 1시쯤 도착하신다는 소식... 5시간 동안 1분 간격의 진통을 겪는데 정말 너무 고통스러워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진행속도가 빨라 5시간 동안 자궁문이 5cm 열렸다고 했다. (10cm가 열려야 출산을 할 수 있음) 아 그럼 무통주사 맞고 진행이 되면 6시쯤엔 밤토리를 만날 수 있겠다고 예상했다. 워낙 약발을 잘 받는 체질이라 그런지 무통주사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총 3번의 무통주사를 맞았더니 촉진제를 맞아도 진행이 되지 않았고, (무통 3번 5시간 동안 1cm 열림) 마지막 내진에서는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는데 자궁문이 7cm만 열렸다고 했다.

- 여기까지 조리원에서 쓰고 지금부터는 한 달 후에 쓰는 출산일기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래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아기가 많이 내려온 덕분에 빠르게 분만 준비가 진행되었다. 무통 약기운은 이미 끝났고 아기가 위험해지기 전에 자궁문이 열려야 해서 촉진제를 맞고 있으니 다시 쌩으로 진통을 느끼고 있었다. 내 진통은 허리로 왔고, 누군가에게 들었던 허리를 기차가 밟고 지나간다는 표현이 정말 딱이다... 분주한 틈에 8시부터 아기를 밀어내는 힘주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이것도 참 많이 듣던 얘긴데, 얼굴로 힘주지 말라는 말. 실전에서는 너무 어렵더라. 진통은 진통대로 아프고 되지 않는 자세로 힘을 주어야 이 고통이 끝난다는데 할 수가 있어야지? 담당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이 안될 것 같다고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술해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진통을 견뎌가며 마취과 선생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힘들 것 같아 참았다. 그러던 중에 새로운 간호사 선생님(교대시간이었던 듯)이 오셨고 자세를 바꿔 짐볼을 붙들고 힘주기를 시작했다. 어떻게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아프면 힘을 줬고, 뭔가 아래에 걸려있는 듯한 느낌이 나니 담당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이제 세 번만 힘주면 밤토리를 만날 수 있을 거라 했다. 사실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고통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세 번 끙차끙차 힘을 줬고 순간 고요해졌다가 음악소리와 함께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준호의 울음소리. 따뜻한 아기가 내 품에 안겨지고 태반까지 나오니 모든 고통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아기를 낳고 나면 진통이 순간 싹 사라진다는 출산 선배님들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난 순간 감동보다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드디어 삼총사 완전체

2021년 1월 12일 오후 10시 38분, 그렇게 우리는 밤토리를 만났다. 태어나자마자 눈을 번쩍 뜬 우리 아들. 건강하게 태어나줘서 고마워♡ 힘들었던 14시간의 진통 옆에서 함께 아파해준 우리 준호 사랑해!


이 미역국은 잊을 수 없지

+ 나는 임신 초기부터 선택제왕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는데 애 셋 낳은 언니가 자연분만 후에 먹는 미역국이 그렇게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실제로 미역국은 맛있었다) '진통하다가 힘들면 수술해 달라고 해야지'라는 마음이었어서 진통하면서 몇 번이나 수술 얘기를 꺼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지금까지 진행일 빨라서 아깝단 얘기를 듣고 확고하게 수술을 밀어붙이진 못했지만? 어찌 됐든 관장도 안 하고, 제모도 안 하는 자연주의에 가까운 자연분만을 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회복이 빠른 것은 인정. 하지만 진통은 이 세상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아파서 나중에 누가 물어보면 수술을 적극 권장할 거다. 임신과 출산은 책도 많이 읽고, 주변 친구들에게 조언도 많이 들었지만 겪어보지 않고는 절대로 모르는 것들 투성이다. 세상에 모든 어머니들 정말 존경합니다. 14시간의 진통 잊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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