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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Feb 07. 2020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아이 꿈'의 타이밍은 언제일까?

요즘 아이들의 꿈은 무얼까?

연예인이나 공무원이라고 하면 그마저도 오래된 이야기이고 현실적으로 들어가 보면 요즘 아이들의 꿈은 유투버나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때의 꿈은 이제는 너무 고루해서 말하는 거 자체도 고조선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대통령이나 과학자 아니면 선생님이었고 어떤 아이는 현모양처가 꿈이라는 아이가  있어서 한참 갸우뚱했던 기억도 있었더랬다.


꿈이 있는 아이는 정말 그 꿈이 뭔지 알고, 
꿈을 이야기하고 꿈이 있다 말하는 것일까?


내 아이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다 했고 나이가 한두 살 먹을수록 유치원 선생님에서부터 하이스쿨 선생님까지 자기가 보는 세상에서의 선생님이 최고이자 최선이라 생각한 지극히 평범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한국 의학 드라마를 고등학교 때 즐겨 보더니 의사에게 반해 지금까지 변치 않고 의사의 길을 가려고 노력 중이다.


그 중간에 자기의 꿈이 정말 맞는지에 대한 확인사살로 멀리 자신을 던져 실험해 보기도 하고 대학교 때 의료봉사로 열악한 환경의 나라에서 고생하며 봉사를 다녀오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꿈이 정말 맞는지에 대한 실험을 여러 차례 하더니 지금은 그런다. 잘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의사의 길밖에 없으니 이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자신의 꿈을 어릴 때부터 알고 그 꿈을 향해 끝없이 노력하고 자기의 꿈이기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완벽한 행복을 가지고 죽을 때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 지. 만, 그 누가 처음부터 자기의 꿈을 알고 그 꿈을 향해 전진하며 행복할 수 있단 말인가? 그 꿈을 찾아주는 몫은 바로 우리 부모이다. 흔히들 착각하는 모순이 여기에 있는데 나의 꿈과 희망이 혹여 아이들의 꿈으로 전수되는 오류는 범하고 있지 않나 뒤돌아봐야 한다.



이 시점에서,

나 또한 솔직함을 가장한 나의 꿈도 아닌 나의 로망을 행여나 내 아이의 꿈인양 어릴 때부터 조장하지는 않았나 돌아본다. 맞는 말인 듯도 하다. 난 공부 잘하는 친구를 부러워한 적이 많았다. 나는 미술을 좋아했지만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고 피아노를 잘 쳤지만 피아노 치는 긴 손보다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의사의 긴 손가락을 더 동경했음을 시인한다.


그러므로 내 딸에게 바이올린 켜는 아름다운 손보다는 피 묻는 하얀 손의 손이 값지다라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말없는 속삭임으로 유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마치 너의 원래의 꿈은 의사라는 무언의 압력으로 말이다. 내 아이가 나만큼 나이가 들어 나의 실체와 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알아버려 혹여나 나의 아버지를 지금 내가 원망하듯 나를 원망하면 어쩌나라는 섬뜩함이 느껴지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자기의 일에 만족하고 있고 내 나이가 되려면 아직도 먼 이야기이고 그때쯤엔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니 그냥 모른척하자. 


꿈이, 정말 꿈속의 꿈이 되어버리면 어쩌나라는 기우가 생긴다.

나의 꿈이 아닌 내 부모의 꿈이라도 아예 꿈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 그런 세대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생기기도 한다. 꿈은 기역이 두 번 연속하여 붙어 꼭 이루어야 하는 결연 비슷하게 꿈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꿈은 원래부터가 자면서 몽상 세계를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한여름밤의 이야기이고 꾸는 시간이 지나면 즉, 자는 시간이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지는 이야기가 꿈이라는 단어로 단단하게 뭉쳐진 말이지만 몽상적인 환상의 꿈이라 한 번에 꺼져버릴 듯한 아슬아슬한 단어이기도 하다. 그런 허망하고도 허무한 자는 동안에 꾸는 이야기를 우리는 미래의 꿈이라 이야기하고 그 꿈을 향해 미친 듯이 뛰고 쫒고 있는 것이다. 


난 내가 원하는 꿈을 꾼 적이 없다.

글이라는 것을 그것도 남들이 읽어도 좋다는 가정하에 글을 쓴다는 꿈을 단 한차례도 꾸어본 적이 없다. 그냥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이다. 난 미술을 전공하고 인테리어로 직업을 가졌고 옷을 판매하며 헤어와 마사지 면허를 땄고 부동산 공부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과 노인들 봉사를 했으며 지금은 에세이를 쓰며 신문에 평론을 기고하기도 한다. 무엇이 나의 원래의 꿈이란 말인가?


아주 어릴 때부터 학년이 올라가면 장래희망란은 한 번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단골 물음이었다. 한 번도 바뀐 적 없는 꿈은 ‘피아니스트’였지만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그 꿈은 나의 꿈이 아닌 부모의 바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당시엔 부모의 강요가 무서워 다른 꿈은 꾸어본 적이 없고 다른 꿈은 존재하지 않는 나를 제외한 사람들의 다른 꿈이라 생각했다.


진짜 꿈은 자신이 꾸어야 하고,
 꿈꾸게 만드는 무대는 부모의 몫


그때는 그렇게 부모의 절대권력에 휘둘려 꿈이 무언지 자신의 정체성을 따져보지도 못한 채 부모가 먹이는 데로 먹어야 하는 나에게 주워진 나만의 양동이에 담긴 물만 스펀지로 빨아들여야 되었다. 다른 양동이엔 독극물만 있어서 쳐다만 봐도 안 되는 것처럼.. 진짜 꿈은 자신이 꾸어야 하고 꿈꾸게 만드는 무대만이 부모의 몫이다. 지휘를 하되 뒤에서 조용히 드러내지 않고 지켜보며 가이드라인만 정해주면 될 일이다.



다만, 우리 부모가 놓치면 안 되는 '절대 타이밍'이 있다.


아직 그들의 자아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해 부모의 의견이 절대적인 시기가 있다. 10살 정도까지 뭐 아이들마다 성숙도의  차이는 충분히 감안해야겠지만, 보통적으로 10살 이전 그들의 관심도와 특별히 다른 아이들에 비해 잘하고 잘하는데 그것도 쉽고 빠르게 하는 무언가를 발견하는데 모든 촉을 동원해야 한다.


가능한 한 뭐든 할 수 있는 판을 자유롭게 깔아주어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 이용이라든가 운동실력을 보기 위한 여러 가지 체험을 시킨다던가 동물원에 데리고 가서 동물과의 교감도 시켜보아 정서적인 면도 살펴봐야 한다. 여력이 안되면 쓰던 게임이나 장난감이라도 공수해주고 부지런히 친구와의 만남도 주선해주어 정보교환에도 게을리해서는 안될 일이다.


예를 들어 옷을 입는데 스스로 찾아 입기를 원하고 칼라를 매칭 하는 센스가 남다르다면 필히 칼라 감각과 독창적인 창조 능력의 소유자임을 직감해야 한다. 칼라에 예민함을 드러내는 분야는 너무 많아 나열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예술적 끼가 있음을 직감하고 그런 분야에 관심의 폭이 넓힐 수 있도록 집중해줘야 한다. 아이들의 시야는 아직 어려 극히 제한되어 있으므로 이럴 때 부모의 기치를 발휘하고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어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시기임을 꼭 알아야 한다. 


만약 그 시기에 게임이나 레고에 심취해 몇 시간이고 엉덩이를 붙이고 끙끙대며 완성하는 아이라면 이는 필히 수학적인 머리의 비상함을 인지해야 한다. 레고는 독창성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문제를 내주고 해결할 수 있는 공식을 연속적으로 나열해 줌으로써 인내를 가지고 따라오면 끝은 창대하리만큼 결과물이 훌륭한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카테고리이다.


공식대로 따라가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없고 아이큐의 비상함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수학이 공식을 외우고 그대로 공식에 대비해 풀어야 하는 일과 일맥상통하고 거기엔 창의적인 예술이 끼어들 틈도 없고 요즘 북한말로 '일없다'. 머리가 좋은데다가 더불어 엉덩이까지 무겁다면 정확성을 요하는 음악이나 공부에 전념하면 좋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또한 그 시기에 또래집단에서 계획을 세우고 친구의 일을 서슴지 않고 해결하는 일들을 내 아이랑 연결되고 모든 연락망이 내 아이에게 집중되어 있고 파티나 선생님의 생일이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계획하에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필히 그 아이는 리더십의 자질이 있는 아이이다. 그런 아이는 어느 집단에 가서든 성격적으로 다른 아이와의 소통을 원활히 하는 사회성이 높은 아이로 자랄 가망성이 높다. 그러므로 그런 아이는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램이나 학생회 같은 곳에 참석시켜 학교의 발전에 참여시키면 나아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리더가 되는 발판으로의 자질이 있다 할 수 있다.

쉽게 잘하는 것을 발견해주어 뒤에서 밀어주면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클 수 있다 


이 시기에 이런 사소한 행동에서부터 습관 된 행동으로 아이만의 장점을 부각해 잘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부모가 발견해주고 뒤에서 밀어준다면 아이는 그 자신감으로 자존감이 생겨 성취감도 클뿐더러 남과는 다른 나만의 독특함을 찾을 수 있고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행복으로 성취되어 지치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런 장점을 발전해 나가는 게 장래희망이 되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 꼭 한 가지 꿈을 세워 한 무덤만 파라는 식으로 부모가 정해준 정해진 길을 끝없이 맹목적으로 가는 꿈은 실패하기 쉬운 그야말로 개꿈이 되어버릴 수 있다.


지금 시대의 꿈은, 어릴 때 가져야 하는 절대적인 사항이 아니다.


꿈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는 게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꿈이 없는 세대라고 말하지만 그 또한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잣대이다. 열악한 사회에서 남들에 비해 잘나지 않으면 도태되는 누구보다도 앞장서 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 시기에는 치열한 경쟁구조에서 꿈도 희망도 전쟁 치르듯 앞다퉈 밟지 않으면 밟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판으로 꿈을 외쳤고 엄마의 이마에 합격이라 적어놓은 하얀 띠를 두르던 그런 때는 꿈이 절대적이었다.


꿈은 우리 시대에 이미 다 이루었다
지금 세대는 행복하게 잘 사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올 리도 없고 나올 필요도 못 느끼는 세상에 살면서 꿈이 없다고 핀잔받을 일이 아니다. 너무나 꿈이 난무해 피해본 나의 세대들은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하고 꿈이 없으면 도태되리라 한탄하고 꿈을 가지라 열변을 토한다. 꿈은 이미 다 이루었다. 이전 세대에서 다 이루어버린 지금, 지금 세대는 우리가 꿈꾸어 놓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살기만 하면 되는 세대이다.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만이 남아있을 뿐이고 오히려 꿈꿀 수 없는 세상에서 떨어지지 않는 정신건강에 힘쓸 때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일을 꿈꾸며 새로운 도전으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설령 나를 못 찾아도 좋다. 그냥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는 무대만 있다면 그 무대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지 싶다. 그게 꿈이고 그게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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