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Feb 14. 2020

그녀, 혜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된 친구 카페에서 내가 존경해왔던 작가의 책을 발견하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책을 줄 수 있나를 물어보고(미국에 사는 친구에게 빌려줄 수도 없는 일이라 난 거의 강도나 다름없다. 뺏는 거니까) Yes 사인을 받으며 가슴을 졸였다는 걸 그 친구는 알 수  없었겠지만 난 내손에 들어온 그렇게나 오래된 전 혜린의 책을 당장 읽을 수도 없었다. 얼마나 찬란했던 나의, 아니 우리의 우상이었던가?



그러니까 한참이나 고상한 척하며 음악도 '마그마' 같은 신기한 이름의 그룹이나 '스콜피언스' 같은 그 당시엔 꽤나 요란한 팝에 심취하며 들었고 윤 석화 씨를 지금에 있게 한 '신의 아그네스'라는 연극은 정신과라는 철학적 사고를 신비하게 만들어 문학적 소녀들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동기가 된 연극도 있었던 때, 나는 전 혜린의 절망에 동감하는 척, 어려운 내용을 마치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척하며 전 혜린이 내 친구라도 되는 양 서툴지만 그런 척하며 읽었던 나름 있어 보이는 그런 책이었고 그런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지금의 중학교 시절이었으니,

지금의 아이들에게 사춘기를 심하게 앓고 있다느니 사회가 풍요로우니 할 일이 없어서 우리 때보다 요란하게 치른다고 하는데 그때의 우리도 사회적으로 반항적인 느낌을 밖으로 표출하지 못했을 뿐 나름의 내적인 격정과 미래의 두려움, 자신을 알아가는 성숙하기 위한 과정이 분명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만 모두가 어려운 시대였으니 부모님께 직접 나의 혼란스러운 마음들을 디밀고 싶지 않아 문제제기를 안 한 것뿐이지 어떤 식의 반항으로든 그 당시의 과도기를 격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본다.



그렇게 잊혀졌던 전 혜린이 이제야 이 나이에 내 눈에 뜨였다는 건 운명처럼 다가온 과거의 이름이지만, 더 우리를 자극했던 이력은 다름이 아니라 진정한 천재였다는 사실이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독문과로 전과한 후 독일로 유학을 가서 단 몇 년 만에 독일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배운 일본어는 물론 영어도 능숙히 구사한 것 뿐만 아니라 독일어 책을 번역해 생활비를 충당할 정도의 실력과 그녀의 일기를 보면 일어와 영어,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쓴 글들을 보면 그 시절에 공부할 수 있는 책도 많이 부족했을 터인데 그 정도의 실력이라면 과히 천재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난 그녀가 비판받고 있는 사상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녀가 한 인간으로 특히 여자의 31세 일생으로 짧게 살았고 자신의 눈에 비친 실존 문제제기를 그 당시 50-60년대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발달의 시작점에서 남자의 가부장적인 사회만이 존재하는 시대에 여자가 깨어남을 외치는 그 당시로는 괴기에 가까운 괴변을 늘어놓으니 반대 여론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문제를 뒤로하고 과감히 자신의 의지를 펼치며 여자로서 성공하는 삶을 사는 듯했으나 끝내 자신의 지적 괴로움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으니 그녀가 짧게 던져놓은 물음에 답할 시간도 주지 않았음에 그저 속수무책이었음을 그래서 더 남겨진 의문이 많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  오랫동안 간절하듯 나의 뇌리에도 지금까지 남아있지 않았나 싶다.



이십 대 끄트머리에 배낭여행의 바람을 타고 독일 여행에서 뮌헨을 방문한 이유는 이러했기에 충분했다. 뮌헨의 회색도시는 어렴풋한 철학을 가슴에 품은 나의 방황에도 큰 몫을 했음에 부인할 수 없는 혜린의 발자취였지만 나에게 뮌헨은 혜린의 축축한 회색보다는 하얀 눈의 어둠에서 작게 빛나는 크리스마스 전기줄 꼬마등의 흔들림이 오히려 나에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다행이었다.


그녀의 뮌헨은 어떠했나?

한국 여성 최초로 독일 유학길에 오른 혜린의 눈에 비친 독일은 자유 여성의 날개를 단 듯 희망의 날개를 달았으리라. 그녀가 뮌헨에 도착하고 느꼈던 회색빛 도시의 척척한 공기와 눅직한 건물 그리고 높게 달린 가스등에서 외로움마저도 흔들리며 즐기는 철학도가 되어 자유를 만끽했으리라. 50년대의 한국은 봉건시대로 한마디로 삿갓 쓴 양반이 분명 존재했을 때이고 그나마 혜린의 아버지는 일본을 등에 업고 부유했기에 가능한 유학이었으니 아마도 그녀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관료의 세계에 인간적 비애를, 특히 여자의 비애를 느끼고 독일의 삶을 보았으니 그 괴리감이 컸을 것이다.


그녀의  감상적이고 철학적인 직관으로 그리고 천재적인 지식으로 유럽 특히 독일문학의 불모지였던 독일 서적을 주로 번역했는데 그 당시의 대가인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같은 책은 젊은 우리의 문학적 목마름을 가득 채워주었고 독일 문학과 한층 가깝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점에도 그녀의 짧은 생이 이토록 원통한 이유는 천재적이고 직관적인 문학의 창고인 그녀의 감성과 철학이 합쳐진 독일문학을 조금도 더 접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녀의 감수성과 인간적인 비애의 본질을 논하는 철학을 우리가 맛볼 수 있었을 터인데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오로지 그녀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갈망과 그 광기를 풀어내지 못함이 원통하다는 것이다.


물질의 발달과 문명의 발전 그리고 육체의 가증스러운 몸짓이 역겹다는 말로 방황한 그녀를 잡아주지 못하고 함께 해주지 못한 그녀의 남자 철수는 고사하고 그녀가 사랑한 어린 제자와의 사랑도 난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다. 결국엔 절정의 사랑을 이기지 못한 슬픔과 그에 따른 인간의 고통으로 죽음만이 찬란한 꿈의 끝임을 스스로 결단 내 버리고 단숨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게 안타깝고 그래서 난 그 생을 붙잡고 싶다.


시대를 앞서 태어나고 시대를 앞서 가버린 그녀, 전 혜린이다.


천재는 하늘의 내림이 아닐까?

5살에 작곡을 시작한 모차르트는 35세에 생을 마감했는데 5살부터 천재적인 음악성을 알았을 것이고 혜린 또한 부모가 가르친 일어와 수학을 마스터하고 수학이 빵점인 점수로도 차석의 영예를 안고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사실만 봐도 이미 천재임을 증명했다. 하늘이 내린 천재는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이 세상에 많은 다른 이들에게 지식을 전파하고 생을 마감할 소임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하늘이 내린 천재이고 하늘에 답하는 길이 아닐까?


솔직히 모차르트는 너무도 방대한 음악을 남겼다.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많은 음악인들이 그의 음악으로 평가받고 평가하는 시대로 지금처럼 컴퓨터 하나로 연필 한 자루 쥐지 않고도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시대도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손으로 잉크를 묻혀 한음한음 그려야 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육체적 노동을 쏟아 냈을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기에 단명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혜린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그녀의 글들과 일기들을 영국 공원 호숫가에 처박아 버렸다는 혜린의 말처럼 그렇게 소멸되어 버린 많은 작품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저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의 수필집 한권와 그녀의 일기를 묶은 '이 모든 괴로움을 또다시'라는 수필집, 그것도 사후에 발행되어 짜집기 된 것이라 그녀가 진정 세상으로 보이고 싶은 글이었는지 알 수도 없다.


개인적으로 목숨을 스스로 좌지우지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해도 그리고 아무리 남다른 천재적인 철학을 가지고 근사한 죽음의 날개를 꿈꾼다고, 그것이 정의롭다고 정의한다 해도 난 그런 죽음은 비겁하게 생각된다. 타인의 절체절명의 위협이 아닌 스스로의 환상으로 지식의 풍만과 삶의 권태 그리고 죽음으로 남은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는 목적을 담보로 하는 자살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죽음이다.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철학의 메세지를 남겨주기를 빌어본다


전혜린의 뜻을 기리기 위한 글을 쓰다 일찍 생을 마감한 안타까움에 나의 개인적 원통을 말했지만 미친 광기의 철학을 다 쏟아내기도 전에 특히 생의 희망을 한 자락 맛보았던 자신의 어린 딸의 성장도 보지 못한 채 삶의 관념을 놓고 사라져 버린 그녀가 혹여 이 시대에 다시 한번 환생한다면, 부디 누군가의 가슴에 꽂혀 인간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짚어주고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철학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남겨주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이토록 소중한 책을 내게 선뜻 내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나이로 말하면 안 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