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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r 12. 2020

'빈 둥지'를 지키는 미국 엄마들

처음 큰딸을 대학 기숙사로 보내는 날이었다.

그날로 보면, 아이에게나 나에게나 한 아이를 아주 오랫동안 떠나 보낸다는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몰랐었다. 왜 그리 미국 엄마들이 울며 자식을 떼 놓는지, 아이들도 부모와 헤어지며 왜 그토록 슬퍼하는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은, 미국 부모들은 자식을 너무 어린 나이에 독립을 시켜 성숙되지 못한 이탈 행동을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대학에만 들어가면 술이나 마약 등 방탕생활을 하고 아니면 혼자만의 생활로 우울증에 빠지거나 이기적인 삶을 산다고 해서 마치 너무 이른 독립이 주는 폐해가 많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일단 독립의 첫 번째 단계는 운전면허이다.

15년 9개월의 나이가 되면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워지고 빠르게 준비하면 그 즉시 시험을 볼 수 있다. 면허증을 획득하고 준비해 둔 자동차로 학교에 다니며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꾀한다. 차를 직접 소유하기도 하고 부모의 차를 빌려 타기도 하면서 부모가 라이드를 해 줄 필요가 없어 서로가 자유로움을 느낀다. 점점 아이들의 순발력과 사물을 보는 영특함이 나이 든 부모의 경험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한방에 날려 그저 놀랍다. 서로가 서로의 걱정을 뒤로하고 운전 실력에 자신감이 붙고 슬슬 부모가 자녀의 운전실력에 안심하게 된다.


이제는 부모가 심부름을 아이에게 시키기도 한다. 동생 라이드도 시키고 마트에서 먹을거리도 부탁한다. 아이들은 처음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대한 환상과 부모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받았으니 그보다 좋을 순 없다. 운전을 하며 어른 흉내를 낼 수 있고 혼자 어디든 갈 수 있는 차가 있기에 독립의 첫 신호를 힘차게 울린다. 


일은 살짝 운전이 노련해지면서 발생한다.

운전에 자신이 생길 때쯤 친구들의 동행이 시작되고 처음엔 집 반경 10마일로 다니다가 하이웨이도 타고 친구들과 크게 음악도 듣고 즐기다가 사고라도 난다 치면 그때부턴 아뿔싸! 면허를 따고 6개월 이내에 사고가 나면 면허가 취소되어 다시 시험을 봐야 하고 보험 프로세싱이 안된 상태가 많아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다. 일반 사고보다 몇 배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의 운전미숙이 가장 큰 원인이므로 평생 씻을 수 없는 장애로 남을 수 있다는데 가장 큰 문제이다.


대학이라는 인생의 큰 문에 입성하면서
 완벽한 독립을 한다


그런 아슬아슬한 초짜 운전 실력이 어느 정도 익숙하다 보면 대학이라는 인생의 가장 큰 문에 입성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선언한다. 대학을 가면 그렇게도 자유스러움을 선사한 차를 소유하기는 어려워진다. 대학생활 2년의 의무 기숙사 생활은 그 누구도 이의를 달수 없다. 아주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학마다의 규칙으로 1년 혹은 2년 동안 집단생활을 해야 한다. 워낙 땅덩어리가 크다 보니 등하교가 불가능한 이유도 있지만 집단생활로 부모와의 분리를 꾀하면서 아이의 독립을 자연스럽게 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대학생활 4년을 마치는 동안 매년 3번의 방학을 맞이하는데 비행기로 집에 가야 하는 거리이다 보니 미리 티켓팅 예약을 해야 한다. 한꺼번에 몰리는 성수기라 비용이 하늘 높은지 모르고 아이들은 집에 간다는 게 걱정스럽다. 부모가 비용을 대주는 건 한국이나 중국 부모뿐이라는 말이 있다. 대부분 미국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며 어렵게 아르바이트로 티켓팅을 하기 때문에 돈이 부족해 매번 갈 수 없고 그런 돈을 아껴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한국의 추석)에는 반드시 집에 간다. 그러므로 일 년에 한 번 부모와 상봉을 한다. 그나마도 1.2학년 때 이야기이고 3학년이나 졸업반이 되면 방학마다 학교에서 인턴을 하고 돈을 벌어 다음 학기에 쓸 용돈을 저축해 놓느라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을 졸업한다 해도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학교 근처에서 인턴을 하거나 직장을 잡기가 쉽고 설사 대학원에 간다 해도 홈타운에서 간다는 보장도 없고 부모님이 계시는 홈타운에 있는 대학교를 간다 해도 부모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거는 거리상 불가능한 이야기다. 대학이 결정되는 순간 자식의 홈타운이 평생의 자리로 바뀌는 순간임을 왜 그때는 알지 못할까? 한국에서도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했다. 어디에서 독립적인 삶을 사느냐에 따라 큰 변동없이 한 평생 그곳에서 살 수밖에 없는 자리매김과 같다.



자.. 결혼을 하면 좀 나아질까?

아니다. 다른 주에서 온 아이들이 대학에서 만난다. 학교가 다른 커플은 '롱디'라 해서 먼 거리의 만남이 쉽지 않다. 그럼 같은 학교 내의 연애가 대부분인데 같은 학교지만 사는 곳은 모두 달라 결혼을 해도 부모의 집과 가깝게 산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니 결혼을 해서 아이가 태어나도 자주 볼 수 없고 그냥 먼 친척이 미국에 사는 것처럼, 자식이지만 자주 볼 수 없는 만남으로 만족할 수밖에는 없다.


회사를 부모님 집에서 다닌다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구하기 위한 잠시의 시간을 부모님 집에서 보낸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이때 시집 장가를 가기 전의 짧은 동거는 좋은 일이다. 그렇다고 캥거루족이 되어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부모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는 둥지로 되돌아온 새들은 결코 반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이 또한 한국이나 미국이나 같은 말이다. 자식이 때가 되면 자기 짝을 만나 아들 딸 낳고 살아야지 혼자 산다거나 부모와 같이 기거한다는 건 불효자나 다름없다. 보통 시민이 되어야 보통 행복으로 만족이고 이것은 전 인류의 공통적인 행복의 기준이다.


이래저래 한번 떠난 새는 '빈 둥지'로 다시 날아 들어온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대학으로 가는 특히 기숙사로 들어가는 첫날... 그들은 이미 이 모든 일을 알기에 그렇게도 서럽게 울었나 보다. 이런 미국의 독립 시스템은 우리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결혼하기 전에 혼자 산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불손한 생각이려니와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경제적인 손실 또한 계산에서 뺄 수 없는 일이다. 설사 경제적인 독립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해도 직장을 위한 타도시로의 이주가 아닌 다음에야 힘든 일이다.


미국의 부모들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아이를 돌본다는 의미에서 아이를 완전한 하나의 인격체로 격상시킨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부모가 아닌 아이 스스로가 졸업을 하고 학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결정할 때에도 학교에 대한 인포나 학비 등등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결정한다. 그래서 대학 입학 비율이 높지 않다. 학교 결정의 전반적인 책임을 아이가 지게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독립은 경제력의 독립과 함께했을 때 완전한 독립임을 일깨워 준다.


경제적인 독립이 진정한 부모로부터의 독립이다


경제적인 독립은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고 책임을 지게 하는 당위성이 주워지고 그렇게 하지 못했을 때의 책임 또한 개인에게 달렸음을 일깨워 주는 일이다. 대학을 들어가는 나이가 만으로 17세이기 때문에 겉모습은 자유분방한 모습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공부와 학비의 부담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상당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대학 학비(사립 평균 $45,000, 공립 평균 $20,000)가 한국의 10배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학비를 학생 스스로가 책임져야 한다는 자체가 독립이다.


그만큼 책임감이 따라야 하는 일이므로 철이 일찍 들 수밖에 없다. 남자의 경우 군대 문제가 없어 최소한 2년의 단절 없는 사회생활의 시작이 한국 남자들보다 빠른 사회인을 만드는 일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버는 순간부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대학을 가는 시점까지도 자신의 대학 대출금을 갚아야하는 인생이라 미국의 중산층은 집도 대출, 학비도 대출....대출인생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걸 보면 미국인들은 부모로서 어린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으로 볼 수도 있는데 오바마의 일화를 보면 재밌다. 결혼을 하고도 오랫동안 대학 다닐 때의 학비를 계속해서 내고 있어 미셀 오바마가 어려움을 호소하는 글을 썼다. 부모도 계속 자신의 학비를 충당하고 있으니 배운 대로 자신의 자식 또한 스스로의 학비를 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여기에서도 자식 사랑이 남다르다. 어떡해서든 부모가 학비를 대주고 여력이 안되면 아이가 받은 대출을 대신 내주어야 한다는 사고가 있다. 분명 다른 문화의 이해이고 다른 사랑의 방식이다.


대를 잇는 교육이고 대를 잇는 가르침이다. 그것이 곧 그 나라의 문화이다.


미국 사람들의 '빈 둥지'는 그렇게 자식이 17살이 되고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는 첫날 '빈 둥지'가 시작된다. 기숙사가 의무가 아닌 한국보다 최소 4년은 먼저 시작이고 다시 둥지가 채워지지 않는게 보통이다. 옆집에 사는 코니의 아들은 머리가 희끗해져서 늙은 노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특이한 케이스이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노모를 돌보기 위해 일부러 온 거 같지는 않은 게 들어온 지가 몇 년인데도 지금까지 차고에서 생활하는 걸 보면 알 거 같다. 그러한 특수한 예를 제외하고는 부모와 2대가 모여 산다는 자체가 어떠한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빈 둥지' 생활을 몇 년 하다 몸이 아파지고 더 이상 개인집을 소유할 이유가 없어지면 노인타운에 들어가 그동안 냈던 세금을 환급받으며 노후를 맞이한다.



난 두 아이를 대학으로 보낸 '빈 둥지' 엄마다. 그나마 막둥이를 늦게 낳는 바람에 내 또래 엄마들의 '텅 빈 둥지' 행렬에서 족히 몇 년은 늦게 시작될 예정이다. 오늘 그런 막내가 오케스트라 합숙에 들어가면서 아주 짧지만 '빈 둥지 놀이'를 해야 할 참이다.


'빈 둥지'에서의 생활은 조용하다.

아들은 말이 없어져버린 사춘기 소년이지만 방에서의 기척이 안심이었고, 나에게 피식 웃는 미소가 엄마임을 깨닫게 해주는 신호였는데 인기척 하나 없는 텅 빈 집의 기류는 아주아주 삭막하다. 아들의 친구이자 나의 강아지 아들도 형의 부재를 감지했는지 배를 바닥에 붙이고 널브러져 따뜻한 자리만을 고수하고 있다. 워낙 같이 있어도 따로 있는 듯한 각자의 생활에 익숙하지만 사람의 온기와 사람의 뒤척임이 있고 없고는 하늘과 땅 차이임을 실감한다. 이러다 큰아이들처럼 몇 년 후엔 완전한 독립을 할 텐데 그때의 허전한 '텅 빈 둥지'를 어찌 채울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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