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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an 08. 2020

미국나이로 말하면 안 되나요?

너 몇 살이니?
음.. 미국나이로 50이야
넌 몇 살이니?(무슨 소꿉친구 대하듯 만나면 나이부터 서로 묻는다. 나이가 들어도 나이의 상하는 확실하게 챙기는 게 습관처럼 되어있는 문화다. 미국은 나이 묻는 게 큰 실례다.)
난 52인데? 왜 넌 50이야?(내가 한 살이라도 적은 게 영 못마땅한 물음이다.)
미안, 내가 미국나이만 계산을 하나 보니 그러네.. 그럼 한국 나이로는 52인가 봐..
좋겠다, 나도 미국나이로 하고 싶다..


나는 지금 정확히 50이 되어 반백년을 살았고 반백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기억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찾아내고 다시 그 추억의 기억을 재저장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는 중요한 나이임을 안다. 아이가 크고 나이가 들면서 이제 어느 정도 나를 찾고자 뒤를 돌아보니... 정말 내 옆에 남아 있는 건 가족뿐이었다. 일 년에 한두 번 한국에 나오면 만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있고 2~3주가 지나면 슬슬 나를 피하는 가족들도 생기고... 해서 이번해에는 출판 목적과 함께 친구 찾기의 목표를 함께 세우고 야심 차게 매년 한두 명씩을 찾기로 했다.


오래된 앨범에 항상 머리에 남아있는 사진이 하나 있다. 베이지색 걸스카웃 짧은 원피스에 모자를 쓴 아이와 쓰지 않은 아이가 있는데 두명은 앉아있고 두명은 서있는 각자의 시선도 앞 옆 웃는사람 살짝 찡그린 사람 모두 제각각인 얼굴과 폼이 다른 나포함 4명의 앳되고도 앳된 4인방을 먼저 찾고자 했고 드디어 그중 한 명을 수소문 끝에 찾았다. 어렵게 전화통화를 했다.


혹시 00이니? (내가 좋아하는 유 씨라서 더 반가웠지만 40여년이 흘러 변해버린 목소리는커녕 얼굴도 모르는 생판 모르는 중년 여인끼리 그냥 반말이다)
응, 맞아 넌 김 지나?
응, 오랜만이다 한번 만나자 아는 친구 있으면 같이 나올래?


그렇게 만난 친구가 3명 모두들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그저 같은 해에 졸업했다는 사실과 오래된 기억을 서로 끄집어내어 짝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짝이 안 맞으면 또 다른 기억으로 끼워 맞추다 보니 별별 이야깃거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에 담을 넘어 떡볶이 먹던 시절의 웃음거리며, 작은 쇠뭉치 놀이터, 그렇게 길었던 학교길에서의 장난치던 모습들, 한쪽 벽에 일그러진 얼굴로 쇠망치를 들고 있는 절의 대문을 피했다는 말에 그 절에서 자기가 살았노라 말하는 친구에서부터... 어른들의 주름진 입에서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조그마한 입으로의 추억여행이 시작되었다. 


중학교 친구도 한 명 찾는 기염을 토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그 아이를 기억하는 모습은 하얀 손을 가지고 글씨를 너무도 정직하게 또박또박 쓰는, 얼굴도 하얀데 거기에 공부도 엄청 잘해서 한두 번 도서관에도 같이 가보았던 친구이다. 내 직업으로써의 로망이 그 친구를 통한 하얀 가운을 입은 여의사였는지도 모르겠다. 몇십 년 만에 만난 그 친구가 기억하는 나는 뭐든 잘하는 팔방미인이었단다.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그래서 내가 부러웠었다고... 알고 보니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는 사이였었나 보다. 아무튼 나보다 훨~~ 씬 어려 보이는 외모에 그 작은 체구에 아이를 나처럼 3명이나 낳아 잘 살고 있으니 열심히 살고 있는 대견스러운 동생 같은 친구였다.

나의 로망은 여자 한 명에 더벅머리 남자들에 둘러싸여 술 기울이는 모습


다시 초등학생을 만났다. 이번에는 남자 여자 모두들 모이는 번개팅이었다. 솔직히 번개팅이란 단어가 나에게는 꽤나 획기적이고 설레는 모임의 단어인데 말 그대로 사전약속 없이 시간 나는 사람끼리 모이는 자리라 누가 나올지 기대되는 그런 모임이었다. 나를 기억하는 여자들과 나를 호기심 있게 보는 남자들의 만남 살짝 어색한 시간으로 서로 탐색전에 들어갔다. 어디에서 사니? 누구랑 친했니? 몇 반? 담임 선생님은 누구셨지? 첫사랑이 누구였나?... 탐색전이 끝나니 흥미를 잃거나 집에 가야 하는 친구들이 먼저 인사를 하고 가버리고 나의 로망이었던 나 혼자 여자이고 남자에게 둘러싸인 모습이 되었다.


솔직히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여자 학교에만 다녀서 남자 친구를 구경도 못해본 게 사실이고 지금의 남편을 너무 일찍 만나 선한 번 보지 못하고 남자들과 술 한번 먹어보지 못한 참으로 재미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에서 남자를 여자가 형이나 선배라고 부르며 더벅머리 남자들이 이쁜 여자 한 명을 둘러싸고 막걸리 먹으며 왁자한 모습을 보면 그리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 드디어 여자인 나 한 명과 남자 5명이 되었다.

하하 즐거웠다. 솔직히 미국에서 동창생으로 여자가 나온다 하니 엄청 궁금했나 보다. 남자와 여자가 이 나이에 아무런 조건 없이 아무런 이해관계없이 야나 자로 불리며 이야기할 수 있는 모임이 있을까? 시절이 좋아져서 그나마 쉽게 친구를 찾을 수 있는 때가 일찌감치 도래했고 난 이제 와서 무슨 뒷북이야 싶겠지만 만난 기억도 없거니와 헤어진 지가 40년이 된 머리 희끗한 중년들이 그래도 반가워하고 하하 호호할 수 있다는 자체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또 대견하게들 잘 살아주고 있었다.


그중에는 유명을 달리해 아타까움을 전한 친구도 있고 학교 때는 눈에 띄지 않았던 친구가 지금은 누구보다 잘 나가는 멋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대기업을 다니다 은퇴 후 트럭을 혹은 택시를 운전하는 친구도 있고 출간을 앞둔 나에게 작가 친구가 있다며 농담 겸 우쭐하게 추켜세워주는 친구도 있었다.


중년의 만남은 세월의 기억과 그 기억의 퍼즐에 관한 회환


젊었을 때의 만남은 황홀함과 설렘이지만 중년의 만남은 세월의 기억과 그 기억의 퍼즐에 관한 회환이지 싶다. 이제 우리의 자식들은 모두 커서 각자의 자리와 위치에서 우리의 젊은 날처럼 눈물 나는 환희와 좌절을 겪느라 바쁘고 그 자식들을 등 뒤로 우리는 홀로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고 건강에 조금씩 금이 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폐경기와 갱년기의 줄다리기를 아슬아슬하게 넘기며 젊은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인도 아닌 어중간한 사이에 껴버려 조용하지만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아직은 자식도 더 돌봐야 하고 부모도 보살펴드려야 하는 세대가 바로 우리 중년 세대이다.


가끔은 억울한 생각도 든다. 이만큼 열심히 달려왔으면 이젠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하다가도 이렇게 넋 놓고 있다가 남들은 열심히 아이들 뒷바라지며 부모 공양에 열을 올리는데 조금 더 힘을 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몸이 예전 같지 않으니 조금 쉬면서 해야지 하다가도 그러다 정말 나이가 들면 못하지 싶어 있는 힘 모두들 쥐어짜 젊은이들과 경쟁하려 하고 그러다가 나이가 이젠 그전 같지 않다는 그런 내 몸을 보며 나이 듦의 회환을 한가득 품기도 하는 나이이다.


그러니 나이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다. 내가 50이 되니 어릴 때 친구들이 그리워 이렇게 친구 찾기를 했다 하니 모두들 놀란 토끼눈이다 어? 난 오십하고도 둘인데? 엥? 왜 오십 둘이야 난 오십인데... 그러다 그동안 알고는 있었지만 나이의 무게만큼이나 깊은 주름의 나이 듦이 싫어짐에 따라 모두들 한국 나이가 틀리다며 미국나이이고 싶다며 나이 계산법에 대해 논하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나이 계산법


한국 나이는 정확히 3가지의 다른 나이가 있다. 세는 나이와 만 나이 그리고 연 나이가 있는데 거기에 빠른 해 나이라는 말도 있어서  정말 머리가 좋아야지만이 알 수 있는 나이 계산법이다. 먼저 세는 나이는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되고 해를 넘기면서 똑같이 또 한살이 더해지니 만약 12월 31일에 난 아이는 십중팔구 다음 해 1월 1일에 낳았다 출생 신고할 확률이 거의 100% 일 것이다. 만 나이는 미국나이와 같이 태어나고 1년 후에 한 살이 되는 나이이고 연 나이는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나이를 말한다. 빠른해 나이는 3월에 입학기준을 잡고 1,2월생이 제나이보다 빨리 학교에 입학해 같은 나이지만 띠가 달라질때 하는 말한다. 참으로 복잡한 계산이다.


한국에 비해 미국은 아주 단순한 계산법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통용되는 법이다. 일본이나 하물며 북한에서도 태어나서 1년까지는 달수를 말하고 1년이 되어 생일이 되면 그때가 1살이 되고 그 후엔 1살 0달 이런 식으로 어릴 땐 나이와 달수까지를 따져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몇 달까지를 계산에 넣어 정확한 나이를 말하고 조금 큰 후에는 달수를 빼고 반드시 생일이 지나면 한살이 보태지는 계산법이다. 한국도 태어나 어느 정도까지는 개월 수만을 말한다. 그 이후부터가 달라진다.


미국은 연도가 아닌 각자의 생일 유무에 따라 나이를 헤아리는 모두가 다른 개인주의를 철저히 실행하고 반대로 한국은 해가 바뀌면 똑같이 한해의 한띠로 묶어 나이를 통일화 시키는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군대식이다. 나이 계산법에서도 문화의 차이가 극명히 나타나는 중요한 대목이다.


어릴 때는 친구들끼리 한 살 많은 게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양 으쓱되었던 때도 있었고 재수를 하고 학교에 들어가면 언니 대우받지 못해 안달난 것처럼 꼬박꼬박 언니 소리 들어야 직성이  풀렸고 사회에 나가선 입사 동기니 선배니 해가며 직장에서도 언니 동생 가려가며 나이를 묻고 또 물었건만 이젠 거꾸로 한 살이라도 어리고자 미국나이로 말하기를 원하니 이러한 아이러니함이 서글프다. 왜 하필 한국만 햇수 나이로 헤아리는지 이 시점에서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한국 국민 모두가 동시에 한두 살이 어려질 것


가까운 외국에 한번 나가보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고 여권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외국에 나갈 자세가 되어있는 요즘에 다른 나라에선 모두 만 나이를 쓰는데 굳이, 구태여, 기분 나쁘게 한살이나 두 살을 꼬박꼬박 더 높여가며 그것도 외국에 나가면 헷갈리는 이런 나이 계산법을 왜 쓰는 걸까? 우리나라는 머리가 좋은 민족이고 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귀를 열고 있고 모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고 또 누구나 입을 열 준비가 되어있는 민족임을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빠름이 가장 큰 장점인 한국 사람이 왜 이런 구태의연한 나이를 붙잡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일 당장 나이 계산법을 만나이로 바꾸자 공표하면 아마도 100% 만장일치로 찬성할 것임에  틀림없고 당장 법이 바뀐다 해도 정부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에서 실행하고 실천되어 하루아침에 한국 국민 모두가 동시에 한두 살 어려질 것이다.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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