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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Dec 30. 2019

내 이름은 '글 쓰는 빨간 루즈'입니다

난 유 씨나 서 씨를 좋아한다.

왜 좋아하는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받침이 없어서 쉽고 부르기 좋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왠지 고급져 보인다. 타고난 성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망정이지 성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었다면 난 반드시 서 씨나 유 씨 좀 더 써서 민 씨 정도의 이름으로 바꾸었을 것이다.


이름이 주는 재미는 상당히 많다.

김 대중 전 대통령이 김 새중이나 김 대신이었다면 그 마력이 통했을까? 노 무현 전 대통령이 노 민호나 노 성빈처럼 세련되었지만 약한 이름이었다면 어땠을까? 김 일성처럼 강한 이름이 아니고 김 이성이나 김 이서였다면? 내 이름이 지나가 아니고 정숙이였다면 하고 생각하다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뻔했다. 익숙함이 강함을 만드는 건지, 강함이 이름을 만드는 건지 혹은 이름이 이름값을 하는 건지, 사람이 이름값을 해내는 건지 모를 일이다.


"브랜드 파워가 있듯 성에도 우선권이 있다"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만으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예전에 변호사를 선임해야 하는데 아무런 정보 없이 이름 책만 보고 찾을 일이 있었다. 난 유 씨 성을 가진 변호사에 끌렸고 얼굴도 모르고 이력도 모르면서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고를 때 기술적인 사양은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이 최우선 고려대상이 되는 나의 디자인 사랑이 반영되듯 맘에 드는 성 때문에 그대로 전화를 했고 선임했다. 브랜드 파워가 있듯 유 씨나 서씨성을 가진 사람의 우선권이 나에게는 있는 셈이다. 전에도 독일 베토벤 하우스를 가는 기차에서 이름에 신경 쓰다 멋진 유럽의 저녁 풍경을 놓친 적이 있는데 소크라테스나 빈센트 반 고흐, 세바스찬, 아인슈타인 등 얼마나 찬란한 이름인가? 크게 될 인물은 이름도 거창하다. 한 명회는 8삭동이로 태어나 키도 작고 못난 남자라고 알려졌지만 이름이 거하니 인물이 거하게 커진 것도 우연일까?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명0'란 이름이 너무 싫어 아주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우0'이라 개명을 하고 얼마나 좋아라 하는지 모른다. 이제는 개명하는데도 예전의 복잡한 절차는 사라지고 아주 쉬워졌다 하니 이름 바꾸기를 갈망하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나 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얼굴로 태어나 맘에 들지 않으면 얼굴 성형을 할 수 있듯 이름도 개명이라는 법이 있어서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고 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한 일이다. 아예 법적으로 성인이 되면 운전면허를 따는 것처럼 이름을 내 마음대로 지을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으면 좋겠다. 



이왕 이름이 얘기가 나왔으니  미국의 이름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나는 남편과 동성동본이라 처음엔 호적에도 올리지 못한 상태로 결혼을 했고 아이 낳기 직전에 한시법의 구제를 받아 미혼모 출산의 오명을 쓰지 않았고 버젓이 아빠의 의료보험 혜택과 부부의 아이로 호적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천만다행이었지만 같은 성이기에 오히려 미국에서는 혜택을 받은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미국은 결혼을 하면 여자의 성을 버리고 남자의 성으로 바뀌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름을 말할 때 엄마의 성과 아이의 성이 다르면 아빠가 다르다는 걸 이미 알게 된다. 필시 엄마가 재혼을 했다는 가망성이 높다. 왜냐면 엄마가 재혼을 하면 또다시 성이 바뀌는데 아직 호적에 올리지 않았거나 아이를 데리고 재가한 경우 이미 가지고 있는 아빠의 성을 그대로 쓰기 때문에 엄마와 아이의 성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미 남편의 성과 같으니 아이들이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런 오해를 받지도 않았고 영주권 받을 때나 시민권을 받을 때도 성을 바꾸는 절차가 필요 없었다.


아내가 남편의 성을 무조건 따르는 건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조건 아빠의 성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바꿀 수 있다는 게 참으로 희한하지만 자유를 인정하는 이면과 일맥상통한다는 면에서는 문화의 다름이 적용되는 단편의 모습이다. 하지만 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나라가 결혼을 할 땐 무조건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어이없는 어불성설이다. 우리나라는 절대 성을 바꿀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여자가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을 따라 바뀌는거에 찬성할수도 없다.뭐 미국은 개인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결혼은 가정을 이루는 최소의 사회라 구속성이 있다는 건가?


Fishman이나 Bakewoman 같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성을 미국에서는 쓴다


솔직히 이름은 우리나라의 철수나 영희처럼 흔한 이름도 많이들 쓰지만 성은 희한한 이름들이 많다. 예를 들어 고기 잡는 걸 좋아하면 Fishman이란 성을 쓰고 빵을 좋아하면 Bakeman 이라던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한 성을 가지고 있다. Fox라는 성도 있고 Longnail이라는 성도 있으니 참으로 가지각색이다. 반면에 내가 성이 kim이라 말하면 한국에는 김 씨와 이 씨 등 몇 안 되는 패밀리로 이루어졌다 생각한다. 오히려 미국 사람 중에 Kim이나 Lee라는 성이 아닌 이름으로 쓰는 사람에게 괜스레 정감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성은 대부분 1음절에 이름은 2음절로 획일화되어 있어서 성이 2음절인 '남궁'같은 성이 너무도 특이하고 이름이 1음절 즉 외자인 경우도 특이한 이름으로 속한다. 미국에 오는 많은 분들이 겪는 이름에 관한 실수 중의 하나가 우리의 중간 즉 미들네임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김 민지 Min Ji Kim 가 영어로 이름은 '민'이요, 성은 '김'이요, 중간 이름은 '지'로 굉장히 복잡한 이름이 되어 평생 '민'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가망성이 높다. 중간 이름 즉 미들네임 없이 민지로 불리고 싶으면 그냥 Minji Kim이라 써야 한다. 이름의 J를 대문자를 써서 MinJi라고 해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Min-Ji라고 해도 복잡해진다.  혹시 외국에 나갈 일이 있다면 이름에 관해서는 정확한 인지가 필요한 사안이다. 


Family Name이 Last Name이고 First Name 또는 Given Name이 이름이다

나는 '글 쓰는 빨간 루즈'라고 불리고 싶다.

그러고 보니 '늑대와 춤을'이라는 영화 제목이 그저 사람 이름이라는 사실이 처음엔 생소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재미난 일인듯하다. 특히 여자 주인공의 '주먹 쥐고 일어서'라는 이름에 실소를 금하지 못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난 내 이름을 '글 쓰는 여자'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고루하긴 한데 좀 더 특이함을 인정하는 사회가 된다면 '글 쓰는 빨간 루즈'라는 이름도 좋겠다. 세상에서 나만 쓰고 나만 불릴 수 있는 이름을 내가 짓고 남에게 불린다면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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