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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r 19. 2020

비상사태 선포와 함께 '출간된 책'

전 세계가 가장 우울한 선포를 받은 날, 가장 행복한 소식을 들었다

2020년 3월 13일 트럼프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한 국가비상 선포를 한 날, 나의 첫 책 출간을 했다는 소식을 한국에서 전해 들었다. 얼마나 기다렸던 나의 첫 책인데... 전 세계가 가장 우울한 선포를 받은 날, 난 가장 행복한 소식을 듣게 되다니...


그것도 모자라 출간 며칠 뒤 미국에서 책을 받는 날 하필 메릴랜드가 셧다운 된다는 말을 발표해 더욱 우울했다. 몇백 년 만에 듣게 된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돌림병, 전염병의 세계가 열린 이때, 나 또한 태어나 다시없을 책이 출간되는 역사적인 날,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이 살면서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절묘하게 국가비상 사태와 책 출간이 동시에 선포와 창간되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이 세상에 나온다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내가 쓸 수 있으니 남들도 맘만 먹으면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책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나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은 지금과는 반대인 기찬 타이밍이었다.



그 시작은 이랬다.

내가 기르던 반려견의 삶과 죽음의 스토리가 남달라 지인으로부터 글로 남겨보는 게 어떻게냐는 말에 '잭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잭키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오게 된 사연에서부터 치매에 걸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견생의 이야기를 썼다. 읽어보더니 재미있다며 다른 이야기를 써보라 했고 그렇게 쓰게 된 에세이가 쌓여갔다. 이런저런 글들을 이번엔 책으로 내는 게 어떻게냐는 제안에 한번 해보지 하는 마음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주위에 책을 내 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니 또 무식함이 용감을 이길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책의 출판사에 전화를 걸었다. 절대 내가 아는 출판사가 아니다.

여보세요?
네 00 출판사입니다. 무얼 도와드릴까요?
편집국장님 계세요?(드라마에서 보면 편집국장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걸 봤기에)
네, 누구신가요?
저는 김 00라고 합니다. 편집국장님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약속을 하셨나요? (꼭 약속을 해야 전화를 받는 건가?)
아니요. 약속을 해야 하나요?(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청 어이없는 질문이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너무 황당하면 상대방이 혼란스럽나 보다)
....
안녕하세요? 저는 편집국장 000입니다
네....(이때부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단호한 어조의 똑 부러지는 말투로 프로필과 5개 정도의 꼭지와 목차를 써서 보내라는 말을 했고 나는 어리바리 대답을 한 거 같고 또 어찌어찌 주문한 세 가지 것들을 꼬박 정리해 이메일로 보냈다. 그렇게 처음으로 통화된 출판사의 요구를 듣고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 너무도 많은 책 출간에 대한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출판사에 글을 투척하는 방법에서부터 프로필을 쓰는 요령, 목차를 근사하게 보이게 하는 방법.... 그리고 기고할 출판사에 어필하는 노하우며 단어도 생소한 새로운 앎의 신세계에 홀릭되어 들어갔다. 처음엔 신기하기도 하고 한번 파면 아주 깊게 파는 성격이라 점점 깊이 들어가는데 이건 알면 알수록 머리가 아파오는 별천지였다.


내가 잘 나가는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등단을 한 작가도 아닌데 누가 나를 알고 나의 글을 책으로 내줄 수 있을까? 어림없다는 걸 알아버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다. 그저 전화를 받아준 그 편집국장의 대화만으로 영광이었음을 알아버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렇게 허무하게 단 한 번의 전화통화로 출간을 포기했다. 깊게 아주 잠깐 들어가 봤으니 뭐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거니와 어려운 난간을 굳이 넘어야 하는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끝이다 생각했다. 미련도 없다. 오르지 못할 나무에 오랜 시간을 끌만큼 인내심이 없음이 그럴 때는 참 좋은 성격이다. 또 누군가가 브런치라는 카페를 소개해주었다



바로 이거였다.

나처럼 글을 조금 쓴다 싶으면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글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 글을 통해 위안과 격려를 할 수도 있다. 지금처럼 세계적인 바이러스의 대처방안 그리고 실시간의 교류로써의 장으로 이만한 카페가 또 있을까? 난 물 만난 고기처럼 일주일에 2,3개의 글을 꾸준히 올렸다.


그러면서 한 출판사와 만나게 되었고 한국에서 12월 25일 계약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타이밍도 지금처럼 기막혔다. 미국에선 가족들이 모두모여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즐길 때 난 혼자 한국에서 출판사 대표를 만났다. 3년의 기간 동안으로 계약기간을 정하고 약간의 밀당으로 출판 인세는 8%로 타협을 했다. 첫 책은 2-3달 사이에 출간된다는 그것도 연속적인 책 출간으로 도장을 찍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하는 말이 생각났다. 단 한 번도 글을 써보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나의 꿈이 단 한 번도 작가의 'ㅈ'도 없었던 지라 나 자신이 놀라는 중이었으니 나를 포함한 나의 지인들은 얼마나 놀랄 일인가? 난 미대를 졸업했다. 그리고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던 청소년기를 보내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으로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인테리어 사업을 해서 인테리어를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한 패션일을 하고 있으니 패션계에서 뭔가를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터인데 난 그도 저도 아닌 완전히 방향을 튼 글쟁이가 된다니 누가 믿겠나 싶다. 하긴 글 쓰는 일이 예술의 한 분야라고 생각한다면 일맥은 상통하니 다행이긴 하다.


난 미국에서는 뷰틱샾을 운영하고 있다.

매일 정성껏 가장 이쁜 모습으로 힐을 신고 화장하고 고객 대응을 하는 모습과 두꺼운 안경을 끼고 사색에 골똘해지는 작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쯤은 나도 안다. 그래서 더욱 나와 작가를 동일시하기에는 동떨어진 이미지이고 작가는 지식을 품고 전쟁에 나갈 때 총 대신 펜을 장착해야 하는데 나는 그럴만한 지식과 지성을 품고 있을까 의문이긴 하다.


이런 일에도 가지고 있는 성격이 여지없이 드러나니 그게 문제이다. 남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를 세세하게 챙기고 따져 한치의 실수도 없이 진행하고자 미리 머리가 아프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치고 또 고치는데 난 영 딴판이다. 책이 나오니 고치고 또 고칠게 투성이니 많이 부끄럽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한국과 미국의 거리가 있다 보니 출판사와 나와의 거리도 있다는 걸 미쳐 알지 못했다. 나도 처음이고 이런 장거리 작가와의 출판도 처음이라 아무리 메일과 카카오톡이 있다 해도 얼굴을 보지 않고 하나하나 의견 조율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처음엔 그저 작가는 원고만 넘기면 끝이다라고 했다. 작은 출판사도 아니고 유명한 책들을 많이 출간한 출판사라 믿었지만 다만 에세이집을 내는 건 처음이라는 게 좀 걸리긴 했다. 그래도 내가 뭘 알겠는가? 그저 황송할 뿐....


본문이 완성되었으니 확인하라고 했다. 본문이라 함은 원고를 바탕으로 표지와 제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단계였고 대용량 파일을 이메일로 받아 들었는데.... 아 어쩌지 이건 내가 생각했던 방향과는 정 반대가 되었다. 꼼꼼히 따져볼 일도 아니었다. 이 책은 내가 아니다. 용감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표에게 전화를 했다.

잘 받았습니다.
어때요? 잘 나왔죠?
음.... 죄송한데요 이건 제가 아니에요....
...(대표님은 한참 말이 없으셨다) 모든 작가님이 처음 책을 내실 때 똑같은 말을 해요 작가의 색을 처음부터 낼 수가 없어요.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지면 그때는 작가의 색이 중요하지만 처음엔 출판사의 판단을 믿으셔야 해요. 광고다 생각하시고 맘에 안 들겠지만 우리 뜻을 따라주세요...
...(내가 한참 말을 못 하다 말을 꺼냈다) 맞는 말씀인데요. 저는 이데로 책이 나간다면 제가 아니라서 부끄러워질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이건 제책이 아닙니다. 출간을 못하더라도 이건 아닙니다.
...(또 한참 말이 없으시다.. 안다.. 이게 돈이 얼만데 그리고 무명인 주제에, 이 판도 모르면서...)네, 그럼 어떻게 하길 원하십니까?
네...., 저는.... 불라불라...


이러면서 돈과 시간을 들인 일러스트를 몽땅 빼고 내가 그려놓은 그림으로 대체하고 올 칼라를 빼고 단 2도 색상으로 거기에 그린칼라 하나만 추가하기로 했다. 강하게 밀어붙인 건 양장본이다. 양장본에 관한 멋짐의 이유는 수없이 많겠지만 두껍게 손에 쥘 수 있는 그립감과 실 줄이 있어 굳이 책갈피가 필요 없는 올드 버전이 그리 좋을 수가 없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주문을 한 건데 결과적으로는 나도, 출판사도 덕을 본 셈이다. 입을 모아 내용에 상관없이 고급지고 읽고 싶은 충동이 넘쳐난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것으로 땡큐다.


그렇게 해서 원래 일정보다 한 달 이상 늦게 세상에 나왔다. 이미 코로나의 절정은 한국에서 치솟고 있었고 출판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국이 조금씩 진정세로 돌아가는 찰나 이젠 미국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첫 책이라 나름 출판기념회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의견이 분분하던 참이었는데 출간 날에 맞추어 트럼프가 국가비상 선포를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13일의 금요일 3시 30분에 딱 맞추어 말이다.


이렇게 기막힌 타이밍이 살면서 몇 번이나 맞아떨어질까? 동시에 같은 말을 하면 서로가 찌찌뽕이라 하고 하늘을 보는데 새똥이 차 유리에 떨어져 눈을 감아 버리는 그런 동시에 일어나는 일도 살며 한두 번밖에 겪지 않는데 어찌 한날한시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국가 비상 선포를 고한 날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책을 출간하는 날이 같다니..
 빌어먹을 이런 동시성이 어디 있나?



책이 나왔는데 아무도 나오질 않는다.

꽃다발은커녕 축하해라는 말 한마디 듣기가 어려운 때이다. 축하보다는 서로의 안위를 물어야 할 때이다. 비즈니스를 하는 특히 식당을 하는 분들은 아예 문을 닫아야 하고 미용실이며 마사지 샾이며 집에만 있으라니 누구 하나 이득인 사람이 있겠는가? 일주일 전에만  책이 나왔어도 이럴 때 집에서 굴러다니는 책이라도 읽고 싶을 텐데.... 이래서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세상사라는 말이 딱 맞다. 


비상 선포가 되어 모든 공공장소가 폐쇄되었다. 모든 학교나 관공서 백화점이나 극장 피트니스 센터 등은 아예 문을 닫았고 식당 등 케이 아웃이나 심지어 카페 등은 테이블에 앉아 먹을 수없고 테이크아웃만 가능해졌다. 아직은 마트와 약국만 정상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전 글에서처럼 사재기의 끝판을 뒤집을 만한 마구잡이 구매 열기로 지금도 마트는 몸살을 앓고 있다.  


스타벅스의 테이블도 모두 의자를 엎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텅 빈 스타벅스는 처음이다


이런 와중인데, 누구 한 명 맘 편히 책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나마 온라인으로 책을 구매할 수는 있는데 미국이라 한국 정가의 두배 이상이니 온라인 구매를 하라 말도 할 수 없다. 그래도 아직은 온몸을 알코올 스프레이로 뿌리고 손세정제로 손도 말끔히 닦고 마스크를 쓰면 우리끼리는 만날 수 있어 책을 전해 주고는 있는데 이나마도 며칠이나 할 수 있으려나 싶다. 참으로 기막힌 타이밍으로 첫 출간을 해서 대표에게 문자를 했다. 그래도 '우리끼리 자축하자' 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이다.


“자축은요, 타축도 받으셔야죠”란다. 역시 출판사 대표라 글의 표현도 남다르다. 맞다.

 나도 타축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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