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멜랜Jina Apr 09. 2020

빨간 '불주사'가 찌릿하다

코로나 백신이 없다는 암울한 소식에

왜 하필 초등학교 양호실에서 한 줄로 길게 서서 한쪽 팔을 어깨까지 올리고 공포스러운 몸짓과 도망쳐야 한다는 흔들리는 눈빛으로의 기억으로 소환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앉은 등 뒤에서 내 눈앞까지 길게 비추는 따사로운 봄 햇볕에 눈이 시린 탓이다.



그때는 모두가 없이 살아서 그랬는지 모두가 삐쩍 말라있었다. 유독 키가 크고 살이 포동하게 피워올라 피부도 하얗게 보이는 귀티 나는 내 단짝 친구가 있었다. 모양새로만 보면 깡마른 지금의 연예인이 돋보이듯 그때의 그 시절엔 포동한 이미지가 귀티의 산물이었다. 그 시절엔 그 친구가 왜 눈에 띄는지 잘 몰랐지만, 세월을 뒤돌아보니 포동한 이유 하나로 유독 눈에 띄고 그로 인한 아이들의 시기 어린 눈빛과 질투의 화신이 되어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나를 포함 모든 아이들의 귀와 눈의 표적이 되었나 보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양호실까지 줄을 세워 복도를 걷게 했다.

뭐 어디를 가든 단체로 가야 하는 상황에는 한 줄로 복도 한쪽을 그것도 발을 살짝 들으라 말하며 조용히 걸으라는 암시적인 묵언으로 모두가 따라 하는 규칙이었다. 뭐 뻔한 일이었다. 아파서 가는 양호실에 모두가 줄을 맞춰 가라는 말은 팔 언저리에 무서운 주삿바늘이 깊게 들어간다는 사실임을 초등학교 고학년 쯤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나와 포동한 그 친구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들리는 소문대로 얼마나 아플까의 공포로 거의 하얗게 질려 있었다. 누구는 맞다가 쓰러졌다는 둥 주사에 불이 붙어 크게 화상을 입었다는 둥 고름이 너무 나와 흘러내렸다는 둥 선생님이 팔을 너무 잡고 있어서 피가 안 통해 울다 더 맞았다는 둥 별의별 근거 없는 이야깃거리로 점점 그 공포가 다가올 때쯤이었다. 내 바로 뒤에서 한 손으로 허연 오른쪽 팔을 부여잡고 떨던 포동한 내 단짝이 냅따 뛰기 시작했다. 순간 나의 머릿속이 빠르게 회전되었다.


같이 뛸까 그냥 있을까 뛰쳐 도망가면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그래도 같이 도망칠까 어어 안 되는데 그래도 뛰어야 할까... 멀리 사라지는 펄럭이는 치마 사이로 하얗게 포동한 다리를 보며 숫하게 되뇌는 말들... 뛸까... 말까... 그러다 내 차례가 거의 왔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앞 친구의 팔이 잡혔다. 나의 오래된 기억의 필터가 낄 수 없는 명장면이다.


'팔을 어깨 위로 바짝 올리라'


허연 팔이 새파랗게 질려 있는 듯 푸르다 못해 보랏빛 같이 창백하게 생각되는 걸 보니 이미 겨울이었나 보다. '팔을 어깨 위로 바짝 올리라'라고 선생님은 소리친다. 일제히 왼팔 소매를 어깨까지 넘기고 거무스름한 목 언저리까지 불끈 올려붙이는 말라깽이 남학생들도 있다. 여자들은 그저 얼굴이 상기된 듯 불그스레해진다.


왜 하필 왼팔에만 놓아야 하는지는 모를 일이다.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었던 그 시절에는 되묻는다거나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 왜 왼팔에만 주사를 놓느냐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의 왼팔에는 오목 들어간 자국 하나와 볼록 튀어나온 자국 두 개 모두 세 개가 있고 오른팔에는 조그맣게 볼록한 흉터 하나가 여적 자리 잡고 있다.


암튼 왼팔을 걷어붙여놓고 줄에 서서 앞사람이 주사 맞는 얼굴 표정만 봐도 도망을 가지 않았던 그때의 내가 원망스러울 만큼 무섭다. 일단 한 선생님은 학생의 가느다란 팔을 단단히 부여잡고 책상에 앉아있는 양호 선생님은 커다란 주사기에 가득 들어있는 주사액을 한번 쓱 확인하고 (아마 양이 제대로 들어 있는지 확인하는듯하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놓인 투명한 램프에 알코올 용액이 똬리 튼 하얀 밧줄을 타고 검게 그을린 램프의 끝에  꺼질 듯 위태로운 빨간불꽃에 주삿바늘이 쓱 스친다.


'잘 잡어!'


절대 소독 차원의 긴 타임이 아니다.

그리고선 바로 아이의 팔이 떨리든 말든 '잘 잡어!' 한마디에 아이들은 움찔하고 그 사이에 그렇게 커다란 주삿바늘이 사정없이 그 여린 팔에 쑤욱 들어간다.  시퍼런 아이의 떨림이 그대로 나에게 전해져 거의 동시에 부르르 떨고 있는 나와 뒷줄의 아이들... 동시에 몇몇의 부르름이 끝나니 내 팔이 스르르 그 선생님의 손아귀에 잡혀있다. 주삿바늘이 흔들리는 알코올램프의 불빛에 다시 슬쩍 스치고 나의 왼팔에 꾸욱 들어간다. 에이! 친구 따라 도망갈걸 후회막급이다.


워낙 물자가 귀하고 위생개념이 없어서 그나마 알코올의 불꽃으로 소독을 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상태를 한 명 한 명 체크하지도 않았고 주삿바늘 하나로 아마 전교생을 하나의 바늘로 사용했을 터이다. 그래서 지금도 알코올 램프를 절대 잊을 수 없는 용어가 되었고 그 불꽃의 이미지를 지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시절의 비이커니 암모니아 냄새며 개구리가 식염수에 둥둥 떠있는 과학실이 보인다. 그런 모습은 어렴풋하고 흐릿한 게 아닌 너무도 선명한 무시무시한 교실로 자리 잡아 버렸다.



그때의 아픔은 뭐랄까?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과는 분명 다르다. 아이를 낳는 고통은 고통을 넘어선 희열이고 만족이고 성취다. 하지만 불주사의 아픔은 배고픔이고 나약함이고 절대권력의 힘없는 소심함이다. 당당하지 못한 비굴한 아픔이다. 그때부터인지 모르겠다. 개인의 인권은 무시되고 절대권력의 압권이 먹혔는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 지금의 단결된 힘의 원천이 바로 그 시점이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그 시절의 독재가 민주로 변환되지 못하고 아프다 말하지 못하는 개인의 인격이 무시되는 묵언의 줄 서기로 머물렀다면, 세계의 표준이 된 한국의 코로나 19 대처의 훌륭함을 세계만방에 고하지 못했으리라. 말이 옆으로 샜다.


불주사는 맞은 그다음이 문제다. 밴드 하나 붙여주지 못하고 그저 작은 거즈 하나 주면서 손바닥으로 꽉 누르라는 말만 듣고 뜨겁게 부어 오른 왼팔을 부여잡고 집에 간다. 엄마는 밥주걱만큼 부어오른 팔 주위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주시며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그래도 피아노는 쳐라 아빠한테 혼난다' 에구 그놈의 피아노...


핑크색으로 봉긋 솟아오른 자국이 점점 부풀어 빨개지고,
 뜨거워지고, 딱딱해진다.


그런 무뎌진 팔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팔 근육에 전해져 욱신하게 아파온다. 왜 그리 예외 없는 규칙만을 고수하시고 그 규칙을 어길라치면 아주 큰일 난 것처럼 지켜보셨을까? 그래서인지 난 지금도 규칙이 있는 행동을 싫어한다. 딱 짜인 규칙은 나를 동여 메고 꼼짝 못 하게 하는 쇠사슬처럼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난 미리 만드는 약속도 싫다. 자기가 정한 스케줄대로 하루를 소화해야 뿌듯하고 그래야 하루를 잘 살았다는 사람이 있는데 난 그런 사람을 보면 존경한다. 


지금 같으면 주사 맞은 날 타이레놀이나 해열제를 먹으라고 의사가 권고한다. 내 몸에 예방접종을 하는 백신이 들어가면 그 백신이 내 몸의 면역체와 싸워야 해서 열이 날 수도 있고 다른 합병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백신을 접종한 다음의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그때는 그런 상식이 있을 리 없고 만약 알았다 한들 그런 약들이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암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쓰러지지 않고 피아노 연습을 완주해야 하고 그래야 잠을 잘 때까지의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다.


솥뚜껑만큼 부풀어 올라와 왼팔을 거의 들 수도 없을 만큼의 아픔과 주삿바늘이 들어간 그 자리에 벌써 고름이 찬다. 그 주위는 가히 생리 때 배를 살짝만 스쳐도 천둥이 칠만큼 아프고 신경이 예민해져 소리를 내지르는데 꼭 그만큼의 아픔과 예민한 고통이 따른다. 부모님이 보기에도 너무한지 피아노 치라는 말씀은 못하시지만 학교를 가야하는 등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때의 학교는 거의 목숨이었다. 죽더라도 학교에 가서 죽으라고 했으니 말하면 뭐할까?


코로나 이후의 학교에 대한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아프면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 학교나 회사가 되어버렸다. 아픈 채로 학교나 회사에 가면 격리해야 되고 몰상식한 부모나 동료가 되어버린 현실이 참 재밌다. 죽더라도 학교에 가서 죽어야 하는 시대를 걸어온 나의 세대 사람들은, 왼쪽 팔에 두 개나 세 개의 불주사를 맞은 세대들은 혼란스러운 양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도 며칠이 지나면 주사 맞은 딱 그 동그란 부분에서 고름이 계속해서 나온다. 꼭 같이 맞고도 누구는 금방 아물어 깨끗하게 낫고 나 같은 팔은 며칠이 지나도 계속해서 고름이 질질 흘러나온다. 처음엔 하얀 고름이 나중엔 노랗고 진득한 고름이 나온고 급기야 아문다.


그때의 불주사를 생각하니, 
몸이 기억하고 찌릿하다


그렇게 어린 팔에 들어간 주사 맞기 전부터의 고통과 주사를 맞고 난 이후의 고통과 아픔도 끝이 난다. 그러면 내가 언제 아팠나 또 언제 주사를 맞았나를 잃어버릴 만큼의 세월이 흐른다. 하지만 지금도 그때의 불주사를 생각하니 몸이 기억하고 찌릿하다. 몸으로 기억되는 아픔은 순간순간 숨어있다 이렇게 한 올 한 올 실타래 풀듯 회상하다 보면 지금 막 느껴지는 고통처럼 생생하게 기억된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다.

그렇게나 무서운 불주사가 실은 결핵백신이었고 요즘 스웨덴이 실시하려던 것처럼 집단 면역 체계를 구축하고자 국민 누구에게나 결핵의 백신을 맞아 집단적으로 항체를 형성해 질병에 대한 면역을 키우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다. 파스퇴르가 발견해 실행된 그 후로 백나라가 넘는 곳에서 시행되고 BCG라는 예방접종으로 세계 누구나 맞아야 하는 결핵 방지 예방접종이 되었다. 만악 그때 그 시절에 강력한 국가의 힘이 작용되지 않았다면 결핵환자로 넘쳐났을 것이다. 지금의 코로나처럼..



지금의 코로나가 아마 몇 년이 흐르고 또 몇백 년이 흐른 뒤,

코로나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내가 불주사를 또렷이 기억하듯 코로나 백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전염병이 무섭다한들 지구가 멸망하진 않을 것이고, 코로나가 아무리 무서운 바이러스라 한들 백신을 만들어내지 못할 우리 현대인들이 아니다. 이름도 무섭게 발음되는 코로나는 어떤 극적인 백신 개발로 핵폭탄급 주사가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역사의 세월 안에 볼 수 있는 찬스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그때 도망간 그 포동한 내 친구는 불주사를 끝내 안 맞았을까? 만나면 왼쪽 팔부터 확인해봐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글, 작품을 넘어 세계를 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