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국 메릴랜드에서 산다고 하면 한 마디씩 꼭 묻는 말이 있다.
"어디라고요?"
"메릴랜드요" 그러면
"메릴랜드? 처음 들어보는데... 어디에 있는 거죠?" 그러면 나는 꼭 이렇게 대답한다.
"아.. 워싱턴 DC는 아시죠? 백악관이 있는 곳, 그 워싱턴 DC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고요. 뉴욕에서는 차로 4시 시간 밑에 있어요. 동부 끝자락이고요..."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아 네..." 하면서도 잘 모른다. 그래도 나의 설명은 항상 여기까지이다. 좀 더 알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굳이 한마디 더 붙인다면 위도가 한국과 같아서 4계절이 똑같다는 말까지 하면 끝이다. 그만큼 LA나 뉴욕에 비해 메릴랜드주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메릴랜드가 네덜란드도 아니고 디즈니랜드도 아니고 하필, 랜드라는 이름이 붙어 여러 가지로 헛갈리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하긴 나도 처음 미국에 온 게 17년 전이고 메릴랜드가 50개 주중의 한 개라는 것도 모르고 어디에 붙어 있는지 동부인지 서부 인지도 몰랐으니 뭐 할 말은 없지만 처음 들었던 주이고 이름도 외우기 어려웠다. 네덜란드와 비슷한 이름이고 그렇다고 디즈니랜드는 아닌 곳이라고 생각하며 첫발을 디딘곳이 바로 이곳 메릴랜드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메릴랜드에 있는 존 홉킨스 대학이 세계의 코로나 지도를 매일 전 세계에 배포하고 그 자료가 세계의 자료가 되면서 그나마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존 홉킨스가 세계의 눈을 지목한다 해도 대학이 어디에 있는지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니 좋아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 수술한 지 꼭 6개월이 되어 중요한 검사를 하러 존 홉킨스에 가야 하는데 코로나 환자로 넘쳐나 갈 엄두도 내지 못한 일만 되었으니 좋을 일은 아니다. 당장 오늘이 검진 날인데 오라 가라 말 한마디 없고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설사 검사하러 오라 한들 갈 수 있으랴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그저 개탄스럽다.
어린 세 자녀를 둔 싱글맘이 자녀가 없는 싱글남을 만나 결혼을 하고 주지사에 당선되기까지 그리고 암투병으로 주지사의 위기가 오고 다시 재선을 하기까지... 역시 한국 부인이라 지극정성으로 병간호와 함께 다시 재기할 수 있게 만든 아내의 보이지 않는 내조가 큰 힘이 되었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일화가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초선 때부터 래리 호건은 한국의 사위라는 별명을 얻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에는 남편을 도와 조국의 힘으로 코로나 키트 50만 개를 미국 땅에 들여오는 작전을 제때 제대로 수행했다.
코로나 키트 50만 개를 무사히 들여왔지만,
덩치만 큰 바보는 의심하고 비난한다
3월 28일 처음 유미 호건이 한국과 코로나 키트의 작전을 시작했다. 한국과 원래는 14시간의 시간차가 있지만 지금은 서머타임 기간이라 13시간 차이가 난다. 13시간의 시간이 한국보다 늦다. 예를 들어 한국이 아침 8시면 메릴랜드는 그 전날 저녁 7시이다. 그러니까 한국의 직장이 시작되는 아침 8시면 이곳은 저녁 7시니까 그때부터 일이 시작되면 거의 밤을 새우며 전화통을 붙잡고 진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맞는 거니까 아마도 한국시간에 맞추어 일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진행된 프로젝트가 4월 18일 이루어졌다. 래리 호건은 보이지 않은 적들을 피한 싸움이라며 트럼프를 겨냥한 우회적 표현을 쓰며 위험한 작전이었음을 시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 키트를 제대로 들여놓은 성과에 대해 욕심쟁이 트럼프가 가만 둘 리가 없다. 그 즉시 메릴랜드 주지사가 어떤 생각으로 한국에서 들여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생각을 깊게 했다면 절대 키트를 한국에서 공수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도 미국에는 검사할 수 있는 코로나 키트가 많이 있다는 엉뚱한 말로 공개 비판에 나섰다. 어린아이가 친구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해서 부모님께 혹은 다른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소리치는 꼴이다. 지금의 상황을 조금만이라도 알고 있는 어른이라면 아니 어린아이라도 트럼프의 이 같은 말이 터무니없고 비상식적이고 아직도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덩치만 큰 바보임에 틀림없는 소리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코로나 증상이 없어서 받지 않는다면 정말 좋은 일일 텐데, 증상이 있는데도 검사를 받지 못해서 한국으로 어렵게 갔고 가자마자 양성 판정을 받은 기막힌 사연이 있다. 중증환자 즉 산소 호흡기를 쓰지 않을 정도라면 병원 근처에 오지도 말라는 내용이 버젓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나오는 지금의 현실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진단키트가 많다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워싱턴 근처이고 그 무섭다는 뉴욕과 불과 차로 4시간 거리라 일일생활권으로 충분한 거리이기에 뉴욕에서 생활하는 메릴랜드의 경제인들이 많다 보니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도시는 결코 아니다. 현재 만 4천여 명의 확진자와 5백 명이 훨씬 넘는 사망자가 나왔는데 검사를 한 사람은 고작 7만 명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검사량과 비교도 되지 않은 수치다. 확진자의 수에 비해 사망자의 수는 한국의 배가 넘어 검사수의 차이뿐만 아니라 의료의 수준도 차이가 난다.
아무리 세계적인 존 홉킨스가 눈앞에 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만약 코로나가 의심된다 한들 보험이 없는 사람은 비싼 의료비로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아예 검사 자체를 꺼리고 있는 실정이다. 50만 개의 검사 키트가 문제가 아니라 실은 코로나로 입원할 병원이 없는 게 문제이고 입원을 한다 해도 상상을 초월한 의료비가 더 큰 문제이다.
며칠 전에 존슨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안 베트남전에서 사망한 미국 군인의 사망자 수를 보고 개탄해 책상에 엎드려 오열하는 듯한 사진 하나가 미국의 칼럼니스트에 의해 공개되었다. 그것도 트럼프가 입을 오므리며 코로나로 4만 명밖에 죽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하는듯한 표정을 짓는 사진과 말이다. 열 마디 말보다 말없는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담아낸 스토리였다. 자국민의 죽음을 대하는 수장의 태도가 극명하게 대립되었다.
이 와중에 트럼프는 아예 미국 비자를
전면 폐쇄한다는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란다.
처음 코로나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며 당장 빗장을 걸고 이미 퍼져 있는 자국의 코로나는 신경도 쓰지 않아 지금의 악 상황을 만들더니 이제는 아예 전 세계를 향해 빗장을 걸 모양이다. 한마디로 덩치 큰 녀석이 집에만 있을 거니 아무도 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언포를 놓는 겪이다. 처음엔 덩치 큰 녀석의 힘이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점점 덩치만 큰 바보를 아무도 찾지 않을 것이고 곧 왕따가 되겠지. 이젠 바보 집에 아무도 안 들어갈 생각이다. 왜 그걸 모르는가? 리더십의 부재는 큰일이 생겼을 때 나오는 법이다. 그래도 합법적인 경제활동을 위해 비자 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무수한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힘듦과 동시에 비자의 폐쇄가 주는 압박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국에서도 미시간주를 시작으로 가까이 버지니아주의 성조기 부대까지 몇몇 주 사람들이 트럼프를 업고 경제 재개를 위한 성조기를 힘차고 흔들고 있다. 아직은 거리두기를 해야 맞는 상황이라 팔짱 낀 의료진들이 맨 몸으로 막아서고 있긴 하지만 역부족이다. 트럼프의 발언이 그들을 부축이고 마스크도 쓰지 않는 사람들이 거리로 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물론 생명의 위험에 있어서 먹고사는 문제가 병보다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나라의 수장인 트럼프가 연일 정확하지 않는 데이터로 국민에게 브리핑을 하고 거짓말로 수치를 말한다. 정당하고 어렵게 공수한 키트마저 비난하는 실정이니 누구를 믿고 따르겠는가? 한국의 태극기 부대는 극우가 틀림없지만 미국의 성조기 부대는 극우뿐 아니라 살기 위한 몸부림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트럼프는 알아야 한다.
존슨은 전시상황이라 재선에는 눈 돌릴 틈이 없어 그 당시의 상황에서 재선은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지금 똑같은 상황에서 트럼프는 재선 때문에 코로나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로 지금의 상황을 선동하고 있다. 리더십의 부재가 큰 재앙을 불러오고 있다. 현재의 내가, 내 가족이 그리고 미래의 내 자손이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지금의 리더가 미국을 잘 잡고 버텨주어야 그 전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이제는 세상이 분명 바뀌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삶으로 세상이 완전히 바뀌게 됨을 누구보다 트럼프가 알아야 한다. 전처럼 미국이 최강이고 독불장군처럼 홀로 나간다고 이젠 누구나 뒤따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약자를 돌보고 세계의 경제를 아우르는 통 큰 리더가 되어야 한다.
내 딸이 사진 한 장과 한 줄의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 미국 성조기와 메릴랜드 국기 사이에
한국 태극기가 펄럭이는데
너무 자랑스러워요"
이 말에 난 마음이 울컥했다.
한국은 지구 상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분단국가이다. 그리고 땅 속 어디에도 지하자원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100% 남의 나라에 의존해야 하는 나라이다. 또한 중국이나 일본과의 전쟁을 한두 번 치렀는가? 무엇이 한국을 움직이게 하는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이제는 미국이 한국의 원조를 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것도 같은 나라 안에서, 발 빠른 곳에서 먼저 원조를 받았다며 제일 윗선에서 되려 화를 내고 시기받는 그런,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전쟁에 나가 함께 싸워줬다는 이유로 한국은 지금까지 군사 작전에도 공수를 받는 나라였다. 작게는 홍콩 배우를 부러워했던 나라였고 일본이 독도는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한 힘없는 나라였고 민주주의의 열망으로 최루탄 연기를 마셔가며 피 터지게 자유를 외쳤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이제 세계를 들었나 놨다 하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에서 보는 잣대로 줄을 세우고 있다. 그 줄에 웃고, 우는 나라가 선진국의 타이틀을 가진 나라들이다. 한국의 의료장비를 못 사서 안달이고 한국의 민주선거를 앞다퉈 보도를 하는 민주정치의 표본이 되고 있다. 너무 자랑스러운 날이라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감동이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유미 호건에게 이 영광을 돌려야 하고 그녀를 뒤에서 묵묵히 받쳐주고 응원해준 그녀의 남편이자 메릴랜드의 주지사 그리고 한국의 사위 래리 호건에게도 50만 번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PS : pen name이 왜 '멜랜jina'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멜론도 아니고 메롱도 아니고 하필 왜 멜랜이냐면, '멜랜'은 메릴랜드를 빠르게 발음하면 멜렌이 된다. 난 메릴랜드에 사는 jina고 그래서 멜랜jina가 되었다. 오늘은 메릴랜드가 자랑스러운 날이기에 나의 이름 풀이도 공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