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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pr 12. 2020

‘Egg Hunting' 없는 미국의 부활절은,

앙금 없는 찐빵이다

미국에 온 첫해였다.

3월 말쯤에 미국에 도착하고 한 2주가 흘렀으니 꼭 이맘때가 되었나 보다. 새로운 세계로 입성한 새 입주민이라 모든 게 낯설고 설레고 그리고 어설픈 미국 생활이 아슬아슬할 그때였다. 똑똑 소리가 났다.


Excuse me!
Who are you?
I'm your neighbor.


검게 그을린 아이손에 들린 건 파랗고 빨간 계란이었다. 거기에 'Welcome'이라는 검은 글씨와 함께.. 난 겨우 땡큐 한마디만을 했지만, 내 마음의 말은 '어머나 이렇게 귀하고 이쁜 계란을 나처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그것도 직접 이렇게 올라와서 직접 전해주다니 너무 고맙다"였다.


말이 서툴고 이 문화의 정서가 뭔지 몰라 모든 게 신기하고 모든 게 서툴렀던 그때 두 알의 계란은, 개인주의가 팽배해 힘들었던 나라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있던 나에게는 한줄기 희망의 메시지였던 게 분명하다.



부활절이 되어 여기저기 나붙는 싸인이 바로 "Egg Hunting"이다.

한국처럼 눈에 띄는 교회가 없어서 어디에 교회가 있나 싶다가 부활절만 되면 여기저기 교회가 보인다. 교회라는 간판도 없이 멀리서 보이는 십자가만 달랑하나 걸어두고, 더군다나 아주 조그만 글씨로 문 앞에 교회인지 성당인지가 씌여있으니 가서 확인하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


그러다 큰 거리에 ‘Easter Egg Hunt’라고 씌여진 현수막이 나부끼며 부활절임을 알리고 그때부터 거리는 시끌벅적해진다. 일단 마트에 계란을 담을 커다란 바구니가 형형색색으로 진열되어있다. 아이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토끼 모양의 털 바구니에서부터 귀여운 동물 캐릭터가 그득하고 마트마다 대목을 잡는 상품성 있는 것들로 채워진다. 각종 캔디나 계란 모양의 초콜릿이나 토끼 모양의 머시매론과 각양각색의 이쁜 초콜릿에 현혹되어 구매충동을 일으킨다.



그러고 보니 헌팅이라는 말이 생소하진 않다.

대학 다닐 때부터 숱하게 들었던 말이 '미팅할래?' 였다. 고딩끼리의 미팅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주범들은 소위 날라리라는 아이들이었고 그네들의 은밀한 사교 전유물이었다. 그 몇 해가 지나니 어떤 장소에서의 만남이 이젠 맘에 드는 상대를 즉흥적으로 길에서 만나는 길거리 헌팅이 결코 흉이 아닌 사회적 흐름으로 이어졌다. 연예인을 직접 발로 뛰어 발굴하는 차원의 길거리 캐스팅의 붐도 그때쯤 일었다.


미국의 헌팅은 사냥에서 쓰이는 헌팅이 지배적이다. 헌팅 즉 사냥하는 아빠가 총을 가지고 일정 시간과 일정 장소에서 사냥을 하고 사냥한 동물의 머리를 박재해 자랑스럽게 거실에 거는 문화가 바로 미국이다. 나 또한 동네 파티에 가서 그런 동물 머리를 벽에 진열해놓고 남편이 혹은 시아버지가 헌팅한 결과물이라며 자랑스럽게 너스레 떠는 모습에 적잖이 놀랄 일도 있었다.


이런 헌팅 문화가 자연스러운 이곳에서 계란을 헌팅한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동물을 헌팅하는 그런 단어를 성스러운 예수 탄생의 의미인 계란을 헌팅한다는 단어로 같이 쓴다는 건 어쩌면 불경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한국적인 마인드로 불경스러운지 아니면 언어의 속성상 맞는 단어인지 모르지만 내 생각엔 한 단어로 같이 쓰는 영어가 맞지 않다고 본다. 영어에는 그런 동사가 참 많다.


예를 들어 옷을 입다라고 할 때 wear라는 동사는 옷을 입다라는 의미뿐 아니라 몸에 걸치고 붙이고 끼고 신고하는 모든 행위를 이 단어 하나로 통한다. 쉽게 말해 안경을 끼다도 wear, 양말을 신다도 wear, 반지를 끼다도 wear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가끔 안경을 입는다고 말하거나 신발을 입는다고 말한다. 한글이 가지고 있는 방대한 동사를 영어의 단순함이 따라갈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렇다 해도 헌팅보다는 계란 줍기(Egg Grabbing)라던가 계란 찾기(Egg Finding)등 얼마나 많은가? 좀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


계란이 어디에 숨겨 있는지 누구나 안다


에그헌팅이 있는 아침에 아이들은 가장 멋진 옷을 입고 신발을 단단히 동여 메고 커다란 바구니를 부여잡고 선생님의 휘슬에 맞추어 헌팅에 달려 나간다. 계란을 어디에 숨겨(?) 놓았는지 누구나 안다. 그냥 잔디에 던져놓는 게 다반사이고 가끔은 나무 틈 사이나 봉긋한 낙엽 사이에 아니면 나무기둥에 메달아 놓기도 하고 담벼락 밑에 가만히 놓아두기도 한다. 대부분 아이들 눈에 쉽게 띄게 해서 누구나 빨리 그리고 많이 바구니에 쓸어 담기를 바란다. 그 양이 어마어마해서 그 많은 아이들의 커다란 바구니를 순식간에 채우고도 남는다. 그럴때면 역시 미국의 대륙 기질이 엿보인다.



오늘은 부활절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부터 거리마다 'Egg Hunting' 싸인이 펄렁이고 엄마들은 아이들의 계란 바구니를 만들고 구매하느라 열을 올리고 집집마다 부활절 장식에 바쁠 미국 사람들일 텐데 마트엔 부활절의 장식은 커녕 계란에 색을 칠하고 계란을 포장하는 일들이 없어졌을 것이다. 며칠째 문밖 출입을 못하고 있는 격리 상태라 바깥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 아이들의 축제인 에그헌팅은 없을 것이다. 아마 아이들이 있는 엄마들은 계란을 집에서 삶고 이쁘게 만들어 집안 여기저기에 숨기고 찾으며 아이들과 부활절의 전통을 이어갈 것이다. Egg Hunting없는 부활절은 앙금없는 찐빵이니까...


Egg Hunting뿐 아니라 모든 종교의식이 없어진 최초의 사라진 부활절이 될 것이다.

부활의 의미로 이번 코로나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나는 계기를 분명 미국 사람 누구나 간절히 바랬을 것이고 그 중심에는 트럼프의 계획이있었다. 하지만 어림없는 계획이 되었다. 확진자와 사망자는 사상초유의 수로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고 뉴욕은 거의 죽음의 도시로 붕괴되어가고 있다. 부활의 의미가 실종되었고 상실되었다. 다른 여러 나라가 점차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 미국은 수직 곡선을 항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누구는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미국 시민권을 받았다고 한숨 쉰다. 지금처럼 미국 시민권이라는 자리가 부끄러울 수 없었다고도 한다. 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의 자랑스러움이 눈물 나도록 고마울 때가 많았고 Made in Korea만 봐도 가슴이 울컥해 뜨거워진 애국심에 불탔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에 나의 자녀들에게도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만큼 설교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미국의 자랑스러움을 되새겨야 할 때가 되었다. 미국의 민낯을 보고 미국이 위험하다며 자국으로 되돌아 가려는 한인들이 속출한다고 한다. 이제는 미국이 측은한 생각마저 든다. 덩치  바보의 모습이 되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그리고 앞으로 아이들과 살아야 하는 사람으로 미국을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동안은 한국의 자랑스러움을 세계에 알려야만 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었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뿌리를 심어줘야 이 미국에서 버티며 살 수 있는 힘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삶은 분명 달라질 것이다.


Egg Hunting   없는 나라가 되어버렸고 어느 나라보다 후진국의 의료체계와 후진국의 자원 물자 지원으로 미국 사람 모두가 고통받고 있다. 정부가 돈을 마구 풀어 시민들의 경제 붕괴는 막는다지만, 실제로 내 손에 돈이 들어오기까지는 미국의 느린 체계로 봤을 때 언제 그 돈이 들어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미국이 부강하고 한국이 힘들 때 미국에 있었고 미국의 교육을 받고 자라면서 한국이 자랑스럽게 느낄 애국심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힘들고 한국의 위상이 하늘을 찌른다. 이때 난 미국의 대륙 기질에 박수를 보내 힘을 보태야지 싶다. 그래야 내 아이들이 이 땅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미국이 쓰러져선 안된다.  


우리는 살아있고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밖에서 Egg Hunting을 하지 못하면 집에서 열심히 재미있게 하면 될 것이고 10만 명이 죽을 수도 있다고 했던 경고가 훨씬 아래의 숫자로 예견됨을 다행이라 생각하고 힘을 내자. 뉴욕의 의료시스템이 붕괴되어 쑥대밭이 되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택근무를 할수 없는 마트나 필수 노동인은 죽을 각오를 하고 시민을 위해 일하고 있고 의료종사자들은 죽을힘을 다해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미국 사람이 모두 죽을 거 같이 생각되지만, 우리는 살아있고 또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일단 이겨내고 잘잘못을 가리고 고쳐나가면 된다. 반복되는 실수는 어리석음이고 잘못됨을 알고 고쳐나가면 더욱 크고 강대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의 메르스 사태 경험으로 지금의 코로나 대처를 훌륭히 해낸 것처럼, 이번을 계기로 미국의 오명을 털기 위해선 의료의 국영화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


첫해에 내가 받아 든 두 알의 계란이 이천개 아니 백만 개의 계란으로 부활되어, 미국과 세계의 코로나로 앓고 있는 모두에게 치료제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활절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다음 해 2021년 부활절엔 'Egg Hunting'이든 'Egg Finding'이 되든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즐거운 휘슬이 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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