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CNN 뉴스를 진행하는 앤더슨 쿠퍼가 아버지가 되었다. 헤드라인은 50대 성소수자 CNN 앵커 쿠퍼, 대리모 통해 득남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누구보다도 와이어트(아들의 이름)를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보살펴 준 대리모에 대한 큰 고마움을 영원히 간직하겠다"라고 밝혔다. 재난 기자로 유명한 기자이지만 성 소수자로 더 알려진 앤더슨 쿠퍼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귀에 들려오는 말은 그저 나불라나불라요, 보이는 건 노랑머리 일색이고 내 머릿속은 단어 하나를 봐도 한글로만 빠르게 번역되는 그럴 때,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장면이 있었다. 분명 젊고 미끈하게 생긴 남자가 은빛 머리칼에 당당한 저음으로 작은 화면을 꽉 채우는데 순간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그때의 쇼 이름은 'Anderson cooper 360'이었고 당연히 호스트는 앤더슨 쿠퍼였고 그 해에 처음으로 단독 쇼를 진행했다.
그는 재벌 3세로써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른 부재와 어린 나이에 자살한 형에 대한 마음의 병이 심해 우울증이 있다는 내용과 가족사의 비극 그리고 앤더슨의 예일대학 시절 등 평범한 삶을 살아도 될 듯하지만 어려운 도전의 삶을 택한 이야기를 자서전 형식으로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나처럼 앤더슨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2006년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자서전 'Dispatches from the edge'를 출간했다. 한국에서는 '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2010년에 출간되었다.
금기어라는 게 있다. 바람으로 인해 힘들었던 부부라면 바람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입 밖으로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된다. 가족 중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 누군가가 우울이라는 말만 나와도 신경이 곤두서고 회피하고 싶은 단어일 것이다. 깊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라면 장애라는 말이라도 새어 나오지 않게 단단히 잠그는 금기어이다. 성수자의 이야기는 이런 수준보다 훨씬 민감한 사항이다.
대리모가 주는 억양 때문일까? 대리모는 무엇일까가 일단 궁금하다.
물론 앞으로의 세상은 코로나의 영향으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겠지만 인공 자궁이 개발되어 더 이상 여자의 몸을 통한 직접적인 아기 출산은 없어질 거 같다. 이미 진행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물이 있지만, 생명의 탄생을 기계가 대신한다는 건 반인류적 행위라 규정짓고 반대 여론에 출시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싶다. 인공 자궁이 있다면 대리모가 있을 필요도 없었을 텐데... 대리모는 앤더슨의 정자와 대리모의 난자를 인공 수정해 여자의 자궁에서 키우게 하는 것일 텐데 기발한 발상이고 이렇게라도 아기가 부모의 씨앗을 받아 출생해서 행복한 삶을 이 세상에서 영위한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처음 성 소수자를 본 건 우리 아이의 재즈 학원에서다.
초등학생들이 모여 재즈를 하는 반인데 예쁘게 생긴 남자아이가 수줍게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그러면 안 되는데 아직도 내 뇌리에 있는 장면인 게 이상하다 싶을 만큼 꽤나 충격적이었나 보다. 그 아이는 분명 그 옆에 있는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옆 아이를 보며 수줍어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내 아이에게 물었다.
"제, 여자니?"
"아니, 남자야"
"그래, 근데.... 여자 같아, 아니니?"
"엄마, 저스틴은 남자고,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야"
너무도 당연한 말인 것처럼 엄마는 왜 그런 말을 묻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에서 크는 아이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는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 뒤로도 아이들의 친구들을 통해 당연히 이성간의 교제와 이성간의 결혼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살았던 나의 無생각에 조금씩 성 소수자의 자리가 존재한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다.
한 번은 큰딸 프람 파티에 자기 친구를 한국 여자에게 소개를 해주었다. 프람 파티는 고등학교에서 학기 초에 남자나 여자가 같이 가고 싶은 사람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승낙을 하면 학교 파티에 같이 가는 미국에서는 매년 치르는 연례행사이다. 그러나 프러포즈를 받은 여자아이의 엄마가 나에게 크게 화를 냈다. '어떻게 흑인을 자기 딸에게 소개했는지 모르겠다'며 나에게 따져 묻는데 난 할 말을 잃었다. 결혼하는 사람을 소개한 것도 아니고 학교 파티에 같이 가는 아이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화를 낸다는 사실에 난 그저 놀라웠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당하며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누가 누굴 차별하는가? 피부색만 다를 뿐 몸 안의 모든 기능은 똑같다. 피부색 하나로 판단해서 피부가 하얀 미국인은 좋은 사람이고, 피부가 검은 미국인은 나쁜 사람이 된다. 오바마도 흑인이다. 얼마나 뛰어난 지식인이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통령이었나? 미셀 오바마 또한 얼마나 대단한 영향력 있는 퍼스트레이디인가? 왜 흑인이라서, 동양인이라서 무언가를 손해 보며 살아야 하는 걸까?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말이다.
인간의 다양함을 배우며 자랐고 다양함 안에는 성 소수자뿐 아니라 인종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나라가 다르고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정당하다며 믿고 살고 있다. 다양성을 논하는 건 아주 사소한 개인의 성향에서부터 지구 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들의 다름을 설명해야 한다. 그 종 중의 하나인 사람은, 다양한 환경에서 다른 경험으로 매일 다르게 살아가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다.
남이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다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자 소신 있게 각자의 소중함을 알고 서로를 존중해주고 살아갈 때 우리는 개인의 행복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남이 나와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니다. 정답은 없다. 살면서 우리가 공통으로 지켜야 할 것을 만드는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답일 수는 없다. 그 속에서 말없이 소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앤더슨은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세계의 중요한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 유명하다. 재난 기자답게 방탄복도 입지 않은 상태로 취재를 하다가 어린아이를 구하는 일도 있었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는 직접 달려가 긴박한 뉴스를 실시간으로 전했다. 일본 지진 때나 올랜도 나이트 총격사건 때도 며칠을 직접 취재하며 희생자의 입장에서 보도해 큰 상을 받기도 한 진짜 기자다운 기자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새치 머리를 패션으로 승화해 쉰 살이 막 넘은 나이에 머리가 하얀 게 꽤나 인상적이다. 어머니가 미국의 철도 재벌이었던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의 후손이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귀족적인 인물보다는 어느 재난이 터지면 제일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 상황 보도를 하는 언론인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지금은 앵커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예전처럼 현장에 나가서 취재를 해오기보다는 스튜디오에서 뉴스 앵커로 보도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특히 2002년부터 타임 스퀘어에서 생중계를 하는 앵커가 앤더슨 쿠퍼고 2012년 싸이의 말춤을 같이 추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은색의 머리칼을 가지고 있으니 Silver Fox나 White Fox라는 별명이 맞다. 거기에 날씬하고 학벌 좋고 집안까지 좋은 그런 매력적인 남자가 여자가 없을 리 없다며 누구나 관심을 갖기에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럴 때마다 회피하는 앤더슨을 보며 이미 게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히 떠돌았지만 커밍아웃하지 않아 궁금증이 증폭된 가운데 친구에게 메일로 커밍아웃을 하고부터는 성 소수자의 우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는 고려 공민왕이 처음으로 활자 되어 묘사된 인물이 아닐까 싶다. 그 뒤로도 신라 혜공왕의 기록에도 성소수자에 근거한 유사한 내용이 있다.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이름인 소크라테스, 미켈란젤로 그리고 차이코프스키 같은 예술인도 대거 이 안에 속한 사람들이다. 내가 어릴 때 유명했던 팝가수 보이 조지는 정말 여자인 줄 알았으니 그때만 해도 여장 가수라는 이미지로 그려진 대중적 인물도 많았다. 지금 시대의 대표적 인물로는 애플의 CEO 팀 쿡을 빼면 섭섭한 일이다.
홍ㅇㅇ이 커밍아웃을 할 당시에만 해도 신문에 대서특필할 만한 내용이었고 실은 지금도 그리 많이 달라진 건 아니다. 미국도 똑같다. 앤더슨 쿠퍼가 아들을 득남했다는 내용이 이런 코로나 사태에서 실검 1위를 하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참으로 묘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개인의 성적 지향은 인정하지만, 동성결혼은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을 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다른 여러 나라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제도를 속속들이 구축해 가고 있고 미국은 2015년 모든 주에서 동성결혼을 금지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인정함을 넘어 제도적 차원에서 끌어안고 보호하겠다는 의미로써 큰 획을 그은 셈이다. 국가 차원에서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에 성 소수자를 위한 아시안 큐어 대회가 열렸다. 이로써 전 세계 선진국 흐름에 동참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큰소리로 반대를 한다는 건 찬성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겠다는 일종의 목소리를 내는 것인데 암묵의 표현, 반대조차 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더 문제이다. 쉬 쉬 숨기고 밖으로 삐져나오려는 머리카락을 밀어 넣어 숨으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에 의해 성소수자들은 밝은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자꾸 음지로 밀려 들어간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동성애자들이 에이즈를 퍼트 린다라는 말이다. 이는 극히 잘못된 말이다. 동성이 아니라 이성끼리도 혈액이나 침으로 옮길 수 있는 문제를 구태여 동성애자에게만 화살을 꽂는다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다. 보통 남성 동성애자를 비하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평범한 학술적인 논의조차 이런 목적으로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특정 집단에서 특정 질병이 많이 일어난다고 해서 그 집단을 매도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문제이다. 이번에 경험한 코로나 19가 우한 혹은 중국 바이러스라 이름 지어져 집단 인종차별까지 가는 심각한 상황을 보았다.
다음으로 많이 하는 말은 기독교적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 정신이 무엇인가? 낮은 자에게 선의를 베풀고 궁극적으로는 사랑이라는 한마디로 하나 되는 게 기독교 정신인데 감싸야할 동성애자를 왜 비난하는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하나님이 만든 사람을 왜 다르다 비난하는가? 종교적 잣대의 죄가 사회의 죄로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이들을 고칠 수 없는 정신이상자라 한다. 정신적으로 자기 성적 지향을 바꿀 수 있을까? 여자를 보고 '넌 남자니까 정신적으로 이겨내라'라고 하면 그게 말인가? 왜 이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거기다 '넌 남자로 태어났으니 남자로 살아야 해 그게 정답이야'라고 누가 결정하는가?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남자의 성향이 싫으면 정신이상인가? 여자로 태어났으니 남자만 사랑하라는 법은 누가 만들었을까? 솔직히 동성결혼 합법을 선포하는 자체가 아이러니한 법이다. 이성끼리 결혼하는 게 합법이라는 법도 있나? 이성끼리 결혼하는 건 당연한 법이라 법으로 쓰일 필요도 없는 것이 왜 동성끼리의 결혼은 법으로 합법해야지만 합법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언젠가 아이들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동성과 결혼하는 걸 찬성해요?"
"엄마는 그런 걸 찬성하고 반대할 권리가 없어. 그런 질문 자체가 이상한 거야. 그럼 '이성 결혼은 찬성해'라고 물어봐야 하는데 그것도 말이 안 되잖아. 동성이든 이성이든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되는 거야"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말한다. 정말 내 자식이 동성 친구를 데리고 온다면 찬성할 수 있냐고..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Why not?"
또 묻는다. 아이들이 흑인을 데리고 와서 결혼한다고 하면 어떻겠냐고.. 난 또 자신 있게 대답한다.
"Why not?"
옆에서 남편이 한술 더 뜬다.
"난 손주 낳으면 바로 농구장으로 데리고 가야겠다"
다행이다. 부부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