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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y 21. 2020

미국에서 '부부의 세계'는,

한국처럼 보기 어려워요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물론 미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한국에서처럼 편히 그리고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넷플랙스에 있는 드라마만 볼 수 있고 개인적으로 보고 싶은 드라마는 인터넷 서핑을 오래 한 뒤에 보물 같은 사이트를 발견해야 볼 수 있다. 


갑자기 미국에 처음 도착하고 한국 방송을 봤던 생각이 물밀듯이 생각난다. 


그러니까 2003년도의 방송 실정은 오롯이 비디오테이프에 의존하던 시절이었다. TV만 틀면 한국말이 자동으로 흘러나오는 TV만 보다 TV만 틀면 솰라솰라 영어만 윙윙거리는 미국 말이 도대체 저게 말이야 노래야 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니 완전한 소음이었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멀리 가지는 못했지만 다행히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한국 비디오 샾이 있었다. 매주 한 번씩 하나에 $1 하는 비디오를 10개씩 빌렸다. 주로 드라마였는데 이영애가 나오는 대장금을 한 회도 빼지 않고 손꼽아 기다리며 너무도 재밌게 봤던 기억이 난다. 타국에서 어렵게 한편씩 귀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라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집중 또 집중해서 봤던 때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마 한국 나이로 네다섯 살 정도?

내 머리맡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는 장소에 다리가 4개 달린 TV를 아빠가 가져다 놓으셨다. 옆으로 기다랗게 긴 직사각형 나무상자였고 가운데에 정사각형 브라운관이 있고 양옆으론 위에서 아래로 길게 검은 스피커가 붙어있었다. 브라운관을 보호해야 하는 차원이지 싶게 아코디언 같이 세로로 길게 쪼개진 나무가 문처럼 손잡이가 있고 그 손잡이를 잡고 양옆으로 틈 사이로 밀어 넣으면 신비한 마법의 세계가 펼칠 것 같은 검고 차가운 물체가 앞으로 볼록 튀어나온 볼록렌즈 지금으로 말하면 스크린이 나왔다.


지금이야 리모컨 하나로 모든 작동을 한자리에 앉아서 완벽하게 해내지만 그때는 티브이에 딱 달라 붙어있는 동그란 다이얼을 돌리면서 채널을 맞추어야 했다. 지금도 기억이 난다. MBC와 KBS, 그리고 TBC 채널만 있었다. 빨리 돌리면 고장이 난다고 해서 조심히 천천히 돌리면 화면이 금세 바뀌는 마법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조그만 브라운관 안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고 그런 TV만 하루종일 보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고해서 바보상자라는 별명을 TV에 붙여주기도 했었다.


어릴 때는 그 안에 조그만 사람들이 연극을 하는 듯 보였다.

지금처럼 하루 종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오후 5시부터인가 시작해서 12시면 동해물가 백두산이 울리며 마감을 알리고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 채 자바라 문을 닫아야 했다. 그래도 토요일엔 정오부터 일요일엔 아침부터 저녁 가지 하루 종일 시청할 수 있는 방송국의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책가방을 내던지며 TV 앞에 앉아 캔디를 보며 울지 않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조그만 손이 생각난다.


아빠는 티브이에 시간제한을 두는 꼼수를 쓰셨지만, 나에게는 절대적 내 편인 할머니가 계셨다. 일요일이면 하루 종일 할머니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이불속에서 이것저것을 돌려보다 할머니가 꼭 보셔야 하는 전설의 고향을 틀어 드리면서도 너무 무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을 가늘게 뜨고 소리를 죽여가며 할머니 품에 숨곤 했다. 그래도 주말드라마는 그때도 가족 모두 꼭 시청해야 하는 필수 프로그램이었다. 


김혜자와 최불암이 정말 부부라는 생각은 다 커서야 그 환상이 깨질 정도로 실제 부부라 착각했던 '전원일기'는 그 시절의 농촌생활을 정확히 대변해주는 역사 드라마로서의 역할 수행을 이행한 장수 드라마가 되었다. 수사반장도 있었는데 그 외의 다른 건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배우들이 움직이는 인형들이 바보상자 안에서 웃고 우는 모습들이 그저 황홀했던 거 같다.


주말 저녁을 먹고 가족 모두 둘러앉아
과일을 먹으며 본격적인 TV를 시청한다.


7시인가 '웃으면 복이 와요'를 시작으로 우리는 코미디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어서 8시에 시작되는 주말드라마 시간은 어찌 그리 빨리 지나가 버리는지 드라마 끝장면이 일주일의 목마름을 적셨다가, 다시 애타게 하는 줄다리기는 월요일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 꽃에서 피어난다. 드라마가 끝나면 어른들만 남게 되고 우리는 각자 일을 하고 다시 모여 10시에 '전설의 고향' 그리고 11시엔 '명화극장'을 끝으로 주말의 저녁시간의 스케줄이 모두 끝난다. 12시가 넘어서야 끝나는 명화극장이 그 시절 유일한 영화 감상이었다. 참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흑백으로 본 외국영화는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 먼 미래의 이상 세계였고 꿈의 동경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 봤던 프로그램 시간대와 채널까지 기억이 나는 거 보면 얼마나 단순하고 변치 않은 프로그램이었나 싶다. 그만큼 주어진 틀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거 같은 위태로운 시절이었다는 반증이다. 내 기억으로 방송국의 반란이 한 차례 있었다. 온 지구의 방송국이라 하면 MBC 문화방송과 KBS국영방송국만이 존재하는 줄 알고 있었다. 90년대 초에 SBS라는 방송국이 생긴다는 풍문이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나에게는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방송국이라는 게 다를 수도 있고 새로 생길 수도 있는 큰 기업이었구나 생각되었다.  그만큼 티브이가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았고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는데 그 정해진 패턴에 이상이 생기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야릇한 세계의 도전 같은 흔들림이었다.




내가 미국에 오고부터는 어떠한 판도가 바뀌었는지는 모르지만,


드라마 천국이라는 국제적 위상이 올라가고 주말 드라마만 존재하는 드라마가 이제는 매일매일 각 방송국마다 다르게 탄생하고 신인배우들의 등장으로 이제는 아주 오래되고 익숙한 배우 몇을 빼고는 아예 처음 보는 신인들이 판을 심하게 바꾸어 놓았다. 한 드라마당 10%대 시청률만 나와도 대박이라는 말은 그만큼 드라마가 넘쳐난다는 것이다. 브런치의 글들이 매시간 쏟아져 나오는데 그 많은 글 중 메인글로 뜬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는 거와 같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부부의 세계'는 익숙한 김희애가 나온다는 소식과 어마어마한 시청률과 우리 나이에 꼭 봐야 한다는 한국 지인들의 사명감으로 정말 오랜만에 드라마를 찾게 되었다. 넷플랙스가 나오기 전에 우리는 미국 방송에서 한국 채널 3개를 옵션으로 넣고 그중  YTN은 실시간으로 뉴스를 시청할 수 있었고 다른 3개 방송사는 편집된 지난 것들을 보며 만족해야 했다. 그러다 넷플랙스 시청이 가능해지면서 이제는 브라운관 시대가 가고 일인 컴퓨터로 시청을 하게 되었다. 화면이 점점 커져 75인치 까지도 대중화 되었다가 이제는 구매자가 없어 가격이 말도 안 되게 하락하는 시대가 됨도 같은 맥락이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둘러앉아 봤던 기억 때문이었는지, 한국의 정서와 한국말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생각된 가족이 함께 보는 주말드라마는 큰 아이가 대학을 가면서 무너졌다. 공감하면서 보면 훨씬 배가 되는 재미의 맛을 아는 우리 세대들에겐 홀로 보는 티브이 시청이 좋을 리 없다. 각자 보고 싶은 걸 자기 시간에 맞추어 드라마나 예능 프로를 보게 되니 혼자서 놀며 컴퓨터를 하는 아이들의 정서에는 홀로 시청이 훨씬 만족스럽나 보다. 아무튼 함께하는 시청은 이제는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부부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부부의 세계에서 나오는 준영이가 내 아들의 나이와 같은 또래여서인지 준영이의 말할 수 없는 외로움과 아픔이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왔다. 다른 어른들의 감정선에는 동요되지 않는 슬픔이 꼭 준영이의 눈빛과 행동에서 나의 마음이 진하게 흔들려 매 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나 또한 지금까지 살면서 어찌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굽이 굽이 부부의 세계가 심하게 요동쳤었고 자칫 부부의 세계에 이혼이라는 날카로운 칼이 세계를 흔들어 버렸을 순간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순간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의 자리가 그 흔들림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말 못 하는 어린아이들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르는 순간들을 잘 이겨냈다는 사실이 대견할 뿐이다.



부부의 세계는 결국 부부가 가족이 되어 가족의 세계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내가 젊고 어릴 때는 '난 사랑 없이 아이들 때문에 결혼생활을 이어가지는 않을 거야'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거의 사랑 지상주의에 가까운 생각으로 사랑 없는 결혼은 있을 수 없고 사랑 없는 결혼생활은 아이들의 정서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사랑이 끝나면 부부의 세계는 당연히 종지부를 찍어야 맞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행복이 아이들의 행복으로 연결되어 내가 불행하다면 아이들도 불행하고 그러므로 내가 결혼생활이 불행하게 생각되고 사랑이 없어진다면 나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이혼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었다.


부부의 세계가 갑자기 나의 부부에 대한 정의를 흔든 건 아니다.

확고하게 정돈되지 못한 정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준 거뿐이다. 하지만 그 정리가 우리가 살아가는데 근간이 되는 아주 작은 일중에 하나로, 뿌리 하나가 뻗어 땅 속 지도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면, 그 파급은 단순한 하나의 드라마가 아니다. 아주 복잡하게 얽히고 얽힌 회로라도 희미하게 이어져만 있으면 그 끝엔 빛이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굵은 전선줄이라도 살짝 금만 그어져도 그 끝의 빛은 결코 밝혀지지 않는다.


나의 판단의 착오로 아이들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 어릴 때의 교육과 가정환경은 아이들의 힘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고 성장할 때까지는 어른인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거의 모든 동물은 일 년 이상 새끼를 품에 끼고 돌보는 일이 없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태어나서 두 발로 서기 까지의 직립시간이 일 년 이상 걸리는 동물도 없다고 한다. 인간만이 아기 때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 일을 더디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등 동물이지만 아주 약한 동물에 속하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커서 자립할 때까지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서 부부의 세계를 지켜 나감이 이 드라마의 핵심 내용이 아닐까? 


그런데 마지막 회는 실망이다. 왜 준영이가 가출을 하고 1년 뒤에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인지 아무런 연관성도 개연성도 부족했다. 준영이가 핸드폰을 던지며 돌아서 뛰어가는 모습에서 또 한 번 눈물을 훔치긴 했지만 그럴만한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마지막 회가 드라마의 꽃인데 잘 피워온 꽃이 사그라드는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승전결이 글의 전개를 담당한다면 다른 건 몰라도 결론이 잘 내려지면 왠지 글의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것과 같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랴! 나의 마지막이나 잘 마무리하자. 준영아 힘내^^



미국에서 부부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싸이트 https://www2.dramacool.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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