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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y 23. 2020

당신이 '욕'을 하는 이유는?

인간 수업을 보며 가장 쇼킹한 것은 고등학생들의 '욕'이었다. N번방과 비슷한 코드의 획기적인 내용도 아니고 학생들의 어긋난 행동으로 사람이 잔인하게 죽는 마지막 신도 아닌 바로 '욕'이 나에게는 가장 크게 와 닿았다.


'씨 X'과 '좆 X'가 말끝마다 그냥 입에 붙어 다니는 추임새이고, 말끝마다 욕이 들어가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는 듯 보인다. 예쁘장하거나 어려 보이거나 단정해 보이거나 너 나 할 거 없이 여자건 남자건 욕을 한다. 너무 생소해서 설마 학생들이 이 정도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지금 한국의 보편적인 학생들의 모습이라는 한국 지인의 말에 놀람을 넘어 기절초풍할 일이다.



어릴 때부터 내가 아이들에게 철저하게 보인 철학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욕'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 엄마라는 타이틀이다. 아무리 멋진 모습이더라도 그 입에서 욕이 나오면 그 누구를 막론하게 급격하게 이미지가 실추되고 한없이 땅으로 추락해 무 메너에 글자 하나도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으로 낙인찍혀 버린다. 아무리 크게 싸우는 부부 싸움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아이들에게 심하게 야단 칠 일이 있어도 절대 하지 않았던 것이 바로 '욕'이다.


우리 아이가 중학교 때쯤 큰아이가 동생에게 'SHUT UP'이라고 큰소리치는 걸 보고 크게 혼낸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나중에 이런 말은 미국에선 욕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하라는 말이고 애교로 봐주는 정도라고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끼리 놀다가 웃으면서 쓰는 ‘SHUT UP'은 의사소통을 위한 '조용히 해'라는 의미고, 그냥 조용히 이야기하다가도 쓰는 'SHUT UP'은 '조용히 하렴'이라는 명령어고, 정말 화가 난 사람들끼리 쓰는 ‘SHUT UP'은 '입 닥쳐'로 세게 요구하는 말이었다. '조용히 해'라는 말이 상황과 장소에 따라 적절히 쓰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단어와 같은 맥락이었다.


그래도 설마 '씨 X'과 '좆 X'가 '조용히 해라'는 말과 같은 뉘앙스로 쓰일까?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연속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듣는 사람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듣고, 또 되받아쳐 똑같이 말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듣고 보다 보니 듣고 있는 나도 그냥 아무렇지 않은 말이 되어버린 듯했다. 이렇게 글로 욕을 쓸 정도가 된 거 보면 나도 자연스레 전염되어 버렸나 보다.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보낸 적 없는 금기어였는데 이렇게 글자를 자판으로 그것도 내 손으로 두들겨 글을 조합해 글로 옮겨 적고 있다니 정말이지 나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반복된 학습이 무서운 교육이고 무분별한 교육은 지양해야 마땅하다.


남편과 연애를 할 때 나에게 자기의 고등학교 때 별명이 '욕펠래’였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엔 별명의 뜻도 이해할 수 없어서 크게 실망할 만큼 욕과는 거리가 먼 나였다. 남편은 가히 욕을 잘했다. 운전을 하다가도 욱하면 '에이 X 저 XX... 이러고, 저 나쁜 XX...'라는 말을 자주 했고 난 대번 이렇게 받아쳤다. '난 이 세상에서 욕하는 사람을 제일 경멸해'라고... 그 뒤로는 거의 내 앞에서 욕하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예 잊고 살았나 보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는...



둘째가 고등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둘째가 막내에게 'SHOT UP'이라는 말을 했고 난 그전의 반응보다는 조금 톤을 낮추어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이쁜 말로 해라'고만 타일렀다. 처음의 경험이 있으니 크게 놀라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 뒤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엄마, 언니는 진짜 욕 잘해요"
"뭐? 언니가 욕을 한다고? 그것도 잘한다고?"
"응 엄마 그래서 나도 잘해요 ㅎㅎㅎ"


아뿔싸 내가 미국에서 쓰는 욕을 모르니 아이들이 쓴다 해도 내 귀에 들리지 않은 거였다. 나는 욕의 근원을 오롯이 남편 탓으로 돌리기로 했다. 난 태어나서 해본 욕이라고는 '에이 저 나쁜 XX!'가 나의 최대치 욕이고 귀여운 우리 아들한테 너무 이쁠 때 하는 말이 '에구, 이 놈의 시끼'가 가장 정감 있는 말이자 욕이라면 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리 아이들의 수준(?) 높은 욕의 근원은 당연히 아빠의 근간에서 찾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러더니 점점 아이들이 한국 욕도 가끔 하는 걸 들었다.

한국 사람이 영어를 쓰다 한국 발음을 하면 가끔 박장대소할 일들이 생긴다. 예를 들어 식빵이라는 말을 할 때 그냥 생각 없이 들어보면 '쉬~빵'하면서 심한 욕으로 들린다. 신발도 그렇고 앞글자에 ㅅ이 들어가는 말을 할 때 특히 욕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욕을 하나씩 섭렵해 나갔다.


거기다 '응답하라 1988' 같은 걸 보면 경상도 욕이 귀엽고 매력적이라며 따라 하고 전라도 욕을 들으면 구수하고 실감 나게 재밌다며 따라 한다. 오히려 '왜 엄마 아빠는 사투리 욕이 없냐'며 앙탈이다. 희한한 건 미국 발음으로 한국 욕을 하면 정말 웃긴 욕으로 들리는 게 문제다. 만약 이런 욕을 한국에서 싸우다가 한다면 화가 나는 게 아니고 웃겨서 그냥 같이 웃어버릴 거 같다.


급기야는 아이들이 엄마인 나에게 신경질이 날 때 욕을 한번 해보란다.


욕을 하면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하면서 적절하게 쓰는 건 아주 나쁜 행동은 아니라고 나에게 가르쳐 준다. 욕은 때로 카리스마가 필요할 때 먹힐 때가 있다고도 한다. 살아남기 위한 방한 책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슬픈 일기도 한다. 하지만 욕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는 남에게 나쁜 감정을 더하는 일 뿐아니라 지워지지 않은 상처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일깨워 주었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인종차별을 심하게 느껴본 적은 없지만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내가 살고 있는 메릴랜드가 그래도 민주당 표밭이라 고루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그런 주가 아니라서 대놓고 심하게 인종을 차별하는 못된 사람은 없다. 정말 가끔이지만 나만 느끼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 벌어질 때 그럴 때 욕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때가 있다. 혼잣말을 하는 것이다. "에이 X, 나쁜 것들, 너네는 한국 같으면 다 죽었어, 이 멍청이들아!!" 이렇게 말을 하면 좀 시원해지곤 한다. 이래서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고 하나보다. 하지만 다른 언어로 대답을 하면 절대 안 된다는 조항이 있는 자리에선 삼가야 한다. 욕이라는 뉘앙스는 어느 언어를 막론하고 똑같이 느껴지는가 보다.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수 없이 내뱉게 되는 욕.


이 드라마에서는 씨 X, 개 XX 등 셀 수 없을 만큼 종류가 많은 욕을 시작으로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욕을 썼다. 더 놀라운 것은 이 학생들은 문제아나 불량학생이 아닌 극히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이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사랑하는 연인끼리도 욕을 주고받는 모습에서 학생들의 욕은 친밀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묘사되었다. 하물며 친구끼리 쓰는 욕은 얼마나 더 자연스러운 일 일가 싶다.


뇌를 연구하는 한 과학자가 말하기를,

우리의 뇌는 생명의 뇌, 감정의 뇌, 이성의 뇌로 이루어지는데 감정의 뇌에 존재하고 있는 변연계는 사람의 기억·감정 호르몬을 관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욕을 하게 되면 변연계에 문제가 생기게 돼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이 사라져 심해지면 자신을 화나게 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바른말 교육이 절실한 대목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어 신조어가 생기고 줄임말과 영어와 한글의 조화로 도저히 해석 불가한 외계어 수준의 말들로 어른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거까진 우리가 양보할 수 있다. 하지만 쌍스러운 소리로 지레 입막음을 하고 감정을 억누르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미국에서 오래 살아서 한국 사회가 변한 모습을 보지 못해 혼자 놀래서 이런 글까지 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이런 욕 문화가 정착되어 일상이 되는 건 큰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화가 발달되고 시대가 바뀌었으니 뭐든 변하겠지만 욕을 하는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욕이 일상생활이 되고 어른들이 아이들의 욕을 눈감아 주는 문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의 가르침을 하찮은 꼰대로 몰아가는 사회적 문제도 다시 한번 짚어야 하겠지만, 어른들 스스로가 꼰대라 칭하며 시대적 전유물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어른의 자리를 실추시키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한다. 아무리 무서운 10대라 해도 어른들이 올바른 가르침으로 인도할 때 그 깊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어찌 욕 한번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가벼운 욕은 생활에 활력을 줄 수도 있고 우리 아이들이 말한 것처럼 어느 정도 스트레스가 해소될 수도 있다. 너무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이다. 언어가 순화되어 아름답게 사용될 때 우리의 감정도 따뜻하고 맑게 정화되고 깨끗하게 상대방에게 전해질 수 있다.


그나마도 바꿔야 되지 싶다.

'에구, 이쁜 이놈의 시키'가 아니라 '에구, 이쁜 내 똥강아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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