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릴랜드 역사가 되다
코로나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 가물가물할 정도의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이런 시국에도 절대 변하지 않은 우리 집만의 전통이 있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일요일에도 크리스마스가 낀 일요일에도 심지어 생일 당일인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먹어야 하는 일요일 메뉴는 떡볶이다. 어느 광고에서 '일요일엔, 짜~파게티'라는 로고송이 있듯 우리 집은 '일요일엔 빨간 떡볶이'다.
그 시작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나서부터였으니 적어도 20년은 족히 흘렀다. 한국에 있을 때는 주중에는 서로 바쁜 탓에 대충 식사를 때우고 일요일에만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를 했었다. 일요일에만 음식을 했던 탓에 일요일 아침을 떡볶이로 정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다 미국에 오고 매일 식사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한국에 있을 때 특별히 한국음식을 좋아하진 않았고 오히려 양식을 선호한 편이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도 김치를 빼먹는 일이 잦았고 김치 없이 몇 달을 살아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별 수없는 한국 사람이었다. 김치도 먹고 싶고 매운 음식에 대한 향수가 심해졌다. 그렇다고 비싼 한국 마트에서 김치를 사서 먹자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몇 번 시도를 했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김치를 배울만한 곳도 없어 혼자 쿵짝쿵짝 내 맘 데로 담가보았다. 한두 번은 먹을만했지만 거듭되는 실패로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지금이야 맘만 먹으면 인터넷을 뒤져 잘 담가 볼 수도 있겠으나 이제는 꾀가나서 담그지 않고 조금씩 사서 먹는 게 낭비하지 않고 저렴하다는 말로 정당화시키고 있다.
한국음식은 먹어야겠고, 거창한 전통음식을 만들자니 재료비가 미국 음식에 비해 비싸고, 매콤한 맛의 유혹도 충족시키면서 저렴한 음식으로 떡볶이만 한 게 없었다. 그래도 한인타운에 살고 있는 관계로 마트에 떡이며 고추장이며 떡볶이에 필요한 재료는 거의 다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떡집이 없어서 한국에서 수입한 떡이 오래되고 차갑게 냉동되어 진열된 떡볶이 떡밖에 없었지만, 떡과 고추장만 있으면 얼추 누구나 흉내 낼 수 있었다.
음식이 주는 행복이
그때그때의 추억으로 쌓여간다
떡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팸은 지금까지도 빠지지 않는 재료고 매번 바뀌는 부재료는 때에 따라 달라진다. 첫째 아이가 중요한 시험날이 다가오면 첫째가 좋아하는 어묵을 듬뿍 넣고, 둘째가 중요한 날이 다가오면 소시지와 만두를 넣어준다. 그리고 가끔은 남편이 좋아하는 북어포를 넣기도 한다. 요즘엔 막내가 합류되어 에그를 넣어주는 날이 빈번해지고 있다. 자기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 있어 골라먹는 재미도 있지만 왠지 그날의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날이 되기도 해서 음식이 주는 행복이 그때그때의 추억으로 쌓여갔다.
언제 어디서든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는 케이크가 지금은 디저트로 알고 있지만, 그전의 케이크는 생일이나 기념일 때만 먹을 수 있는 귀중한 음식이자 선물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케이크라고 하면 귀중하고 특별한 음식이라는 인식이 되었다. 김밥도 마찬가지다. 김밥도 지금은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한 영양을 가지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단골 음식메뉴가 된 지 오래지만, 예전의 김밥은 소풍을 가는 날만 먹어 볼 수 있는 아주아주 귀하고 또 귀한 특별한 음식이었다.
먹을거리가 귀한 그 시절에는 마른 사각 김 구하기도 어려웠을 테지만 소시지나 계란 또한 풍부하게 먹을 수 있는 먹거리 재료가 아니었다. 일 년에 한 번 가는 소풍날 이른 아침부터 정성껏 한 줄 한 줄 싸시던 엄마들의 마음 또한 맛있게 먹을 아이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들떴을 것이다. 그런 귀중한 음식이 이제는 분식 메뉴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메뉴가 되고부터는 그 전의 귀한 맛을 잃어버렸다. 희소성의 가치는 대중화되는 순간 그 가치가 소멸된다.
떡볶이는 출발이 다른 음식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떡볶이는 서민 음식으로 출발했고 지금도 남녀노소 누구나 아무 때나 즐길 수 있는 분식이다. 한 끼 식사대용이라 하기엔 조금 부족하고 사이드 음식처럼 떡볶이에 김밥 아니면 어묵이나 순대를 곁들여야만 한 끼 식사가 가능하다. 그래서 떡볶이는 귀한 음식도 아니고 특별한 날만 먹는 음식도 아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우리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 살기 때문에 특별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음식은 시대에 따라 장소에 따라 다른 대우로, 다른 얼굴로 나타난다. 특히 그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음식의 척도를 가늠해준다.
어른들 틈에 떡볶이를 먹을 수 있는 큰아이는 동생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렇다고 매운맛을 뺀 덜 매운맛의 떡볶이를 만들어 주는 건 의미가 없다. 무조건 매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못 먹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러워만 했던 둘째가 조금씩 시도를 하고 고등학교쯤 되어서야 제대로 된 떡볶이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드디어 어른 대접과 함께 매운 한국인이 되어갔다. 희한한 건 음식의 성장과 함께 자기의 아이덴티티를 찾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음식이 주는 문화 습득은 그 어떠한 행위보다 빠르다.
떡볶이를 먹으며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대화의 중심이 되고 그런 식사시간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어린 동생들은 그렇게 매운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한다는 자체가 어른으로 인정되어 자기들도 언젠가는 어른들의 대화에 동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나 보다. 둘째가 떡볶이를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서 어른들의 대화에 합류가 되었다.
한국의 정치 경제를 함께 논하고 한국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나아가 이민 1세대의 아픔과 더불어 2세대의 고충도 함께 고민하고 발전하는 대화의 장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 한국 드라마가 있었다. 한류에 대한 높은 위상이 아이들에게도 쉽게 한국 문화를 접하게 하고 그 자신감이 아이들의 어깨를 높일 수 있었다.
스팸이 빠지면 떡볶이가 아닌 듯 생각하고 있어 함께 한국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아니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나이라 예외조항이 하나둘 늘고는 있지만 일요일 아침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우리 집 규칙은 어길 수 없다. 큰아이들이 대학을 가면서 기숙사로 들어가고도 달라지진 않았다. 우리는 막내만을 데리고도 훌륭히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고, 각자 기숙사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즐겨 만들어 먹는 메뉴가 떡볶이이고 친구들에게도 떡볶이 전도사가 되었다.
단순한 떡볶이 습관이,
이제는 우리 집의 전통이 되었다.
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다음에도 제일 먼저 찾는 음식이 되었고 방학에 돌아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찾는 음식이 엄마표 떡볶이니 난 그저 반가울 뿐이다. 솔직히 나의 스페셜한 레시피는 없다. 이것저것 넣어보고 의견을 들어보면 역시 떡볶이는 오리지널 길거리표 쌀떡볶이를 따라갈 수가 없다. 시중에 파는 고추장에 웬만한 양념이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른 시즈닝은 필요 없고 딱 한 가지 꿀만 첨가해 넣는다.
특급 메뉴답게 거창한 메뉴들이 많을 것이다. 아귀찜일 수도 있고 어려운 갈비찜일 수도 있고 뭐 족발일 수도 있겠다. 아주 특별한 날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서너 개쯤 가지고 있다는 것은 엄마로서 매우 큰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떡볶이는 특급 메뉴 축에도 끼지 못하는 하찮은 음식이다. 특급이 아닌 늘 먹는 음식으로 전통을 논하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 전통이 특별한 음악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책을 읽고 토론하는 근사한 독서모임도 아닌 음식, 그것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소박한 떡볶이 하나로 가족의 우애를 다지고 우리의 문화를 습득하고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오히려 좋은 일이라 생각된다. 아이들 친구들도 신기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참 별난 전통이지만 어느 가정이나 그들만의 습관 된 규칙으로 자신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건 어떨까?
처음부터 작정하고 계획된 습관은 아니다. 계속하다 보니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몸에 배다 보니 이제는 그 습관이 넘어 거의 규칙이 되어버렸다. 몸이 기억하는 습관은 바꿀 수 없을 듯하다. 하지만 걱정은 있다. 점점 나이가 들어 소화능력이 떨어지는데 언제까지 매운 떡볶이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고사하고 아이들은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까 싶어 아들에게 물었다. 장가가면 어떻게 먹을 거냐고 물으니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엄마한테 매주 일요일 올게요. 떡볶이 먹으러..."
"인마, 너 와이프가 싫어해"
"그럼 뭐 제가 만들어서 와이프도 주고 아이들도 줘야지...
엄마, 꼭 레시피 주세요..."
아.. 이래서 음식의 문화가 대를 이어 전수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