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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y 20. 2020

이 나이에 게임중독이라니,

게임의 처음은 중학교 2학년 때이다.


갤러그라는 게임인데 일단 5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검정 사각 볼록렌즈 화면에 작은 벌들이 반짝거리며 날아다니고 경쾌한 음악과 함께 게임의 시작을 알린다. 작은 벌들이 내려오다가 다시 올라가기도 하고, 옆으로 가면서 내가 조정해야만 움직이는 제트기를 향해 내려온다. 벌을 피하지 못하면 그대로 아웃! 3대의 제트기가 부딪치면 모든 게 끝이다. 처음엔 내려오는 족족 부딪치고 속수무책으로 아웃당한다. 그다음 50원을 넣으면 화면이 두 번쯤 바뀌고 아웃되고 또 넣으면 화면이 세 번쯤 바뀌기를 반복한다.


한 번만 더하면 마치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거처럼 한 번만, 한 번만을 하다 결국 가지고 온 동전을 모두 다 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곤 했다. 돈 먹는 귀신이 붙은 것도 아닌데 동전 먹는 귀신에게 자꾸만 동전을 집어넣는 내 손도 죽도록 밉지만, 내 손이 날아다니는 마법이 되어 동전을 넣으면 1시간쯤은 멈추지 않고 연속해서 벌이 모두 사라지는 걸 보는 게 소원인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갤러그 게임은 좌우로만 움직이며 벌을 향해 사격하는 가장 기초적이고 단순한 게임이다. 삼각형 모양의 제트기가 양쪽에 불총을 장착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잔챙이 벌들을 불총으로 격파하던지 아니면 피하며 위로 전진해야만 점수가 올라간다. 연속으로 점수가 올라가면 두대가 빙그르 돌며 쌍으로 연결되어 쌍불을 발사해 한꺼번에 여러 벌들을 파괴하는 괴력을 낼 수 있다.


쌍으로 연결할 수 있는 그 점수대까지 가는 것도 엄청난 돈과 그만큼의 실력이 필요했다. 그때까지 동전 잡아먹는 귀신에 집어넣은 동전을 쌓으면 집 높이만큼 되지 싶다. 50원짜리 동전과 땡땡이친 시간이 게임 실력을 가늠하는 비례곡선이 되었다. 엄마한테 받은 천원이 비례곡선의 정점을 올리는데 절대적인 힘이었고 덤으로는 엄마의 꾸지람 또한 실력만큼이나 늘어났다.


대학교 때쯤엔 버블 게임과 테트리스라는 퍼즐게임에 푹 빠져 지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동전을 넣고 해야 하는 오락실 게임이 그저 당연했던 게임의 세계였는데 컴퓨터가 집에 들어온 시점부터는 집에서도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인터넷이 개통되면서 시작된 게임으로는 역시 고스톱이 단연 인기였다. 가상의 돈이 내 주머닛돈이 된 것처럼 이기면 돈이 쌓여가며 흥분되고 지기라도 하면 폭삭 망한 주식이라도 된 양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번은 나는 집에서 고스톱에 열을 올리고 남편은 다른 장소에서 고스톱에 올리고 있다가 서로 닉네임을 보고 같은 판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이없었다는 후문도 있더랬다. 하하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고

이젠 손안에 쥐고 언제 어디서든 그것도 공짜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도래되었다. 하루 종일 손가락만 까닥까닥 움직이면 모든 게 해결되었다. 돈을 넣지 않아도 1시간이고 10시간이고 내키는 데로, 내 맘 데로 게임을 할 수 있는데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가? 집에서 편안하게 누워서 해도 되고 화장실에 앉아서 지루한 시간을 달래기도 하고 게임 한판으로 승리의 맛도 쓰라린 패배의 맛도 볼 수 있는 나만의 게임에 푹 빠져 있다 보니... 나의 손가락 관절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희한한 건 남들은 검지를 사용한다는데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사용하는 게 훨씬 편했다. 하긴 E.T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나중에는 이티처럼 가운데 손가락만 발달되어 비정상적인 손가락이 될 거라는 말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가운데 그것도 중간 마디가 미친 듯이 아팠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아픔이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시작으로 마디마디가 아프더니 이제는 팔꿈치가 저릿하니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아프다. 퇴행성 관절염 인가하는 불안감이 있지만 나이가 참 애매하다. 애매하지만 시작은 되었다.


특히 카카오에서 개발한 프렌즈 팝의 인기는 가히 남녀노소를 불문한 게임이었다.

주어진 시간 안에 깨야하는 긴박함과 눈의 놀림이 빨라야 하고 거기에 머리 회전을 요하는 긴밀함까지 필요한 게임이다. 게임의 적재적소에 적절한 폭탄을 사용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서 잽싸게 판단해야 하고 전체를 한눈에 파악해야 하는 눈뿐만 아니라 손가락 움직임의 민첩함을 요하는 게임에 나는 그야말로 푹 빠져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카톡 친구들과 보이지 않는 경쟁 심리까지 겹쳐 승부욕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레벨이 1000을 넘긴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높은 단계를 자랑했지만 거기에 쏟아부은 수많은 시간과 끈질긴 노력은 아이들이 보기엔 좋지 않은 사례이다.



그러다 이번에 손을 대지 말아야 할

게임에 결국 살짝 맛만 본다는 게 아주 또 푹 빠져버렸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그만 슬그머니 하나의 게임에 홀릭이 되었다. 나 스스로 이건 코로나 때문이고, 이건 시간이 많아져서이고, 이건 일반 게임이 아닌 머리 회전만을 요하는 게임이라, 아마 치매예방에도 좋을 거라는 둥 몇 가지 이유를 굳이 붙여가며 시작을 했다. 아뿔싸 또 빠져버렸다. 티브이를 보면서도 손은 핸드폰에 신경이 쓰여 중간중간 틈틈이 한게임씩 하고 화장실에서도 발이 저리도록 앉아서 하고 잠깐의 짬이 나도 이놈의 게임 속으로 들어가게 되니 미칠 노릇이다.


남편은 장기 게임 때문에 매번 밥시간을 넘겨 아이들 보는 앞에서 핀잔을 들으면서도 중단하지 못해 불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식사시간을 지키라며 나무라던 시간들이 반복되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엄마인 내가 빨래를 개다, 티브이를 보다, 광고시간 잠깐 사이에 게임 한 판을 하고 그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물어보면 대답을 하고 또 그 사이에 게임을 하고 강아지들을 챙기고 또 게임을 한다.


이러기를 지금 거의 일주일째 진행 중이다. 그러다 아이들은 엄마의 글이 안 올라오니 엄마의 글감이 떨어졌는 줄 알고 글감 주제를 보내왔다. 남편은 '요즘 좋은 글이 안 올라오네?'라며 한마디 한다. 한국의 친구도 요즘 뭐하니? 라며 걱정스럽게 묻는다. 신문 칼럼도 나가야 하는데 주제는커녕 아무런 생각도 없으니 요즘의 나는 코로나를 핑계 대며 우울해서 글을 쓰지 못하겠다는 말도 할 수 없는 게임중독에 빠져있다. 



왜 이렇게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까?


딱 1년이 되었다. 갑자기 글을 쓰기 시작하고 책을 내기까지 그리고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매주 두세 편을 올렸다. 그러면서 드라마 한 편 제대로 보지 못하고 솔직히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너무 급히, 깊게 글 세계에 들어가서 자는 시간도 아까워 매일 쓰고 또 쓰기를 반복했다. 그전에 글뿐이 아니었다. 뜨개질도 미친 듯이 , 재봉질도 밤을 새워가며 돌려대고, 유화에도 손을 대서 캔버스가 수북이 쌓여가고, 공부도 미친듯히 해서 자격증을 땄다.


이렇게 시작이 신중하지 않고 내지르는 성격이라 시작하는건 쉬운데, 그만큼 그만두는 일도 쉽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팔방미인이라는 말도 듣는 편이다. 누구는 그런다. '집중력이 대단해서 천재적인 기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인다'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나를 위로한다. 하나에 빠지면 그 외에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그 일이 끝날 때까지 깊게 들어가 거의 병적으로 올인하는 것은 확실하다. 


나의 이런 집중된 편협적인 행동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뭐든 이유나 과정 없는 결론은 있을 수 없고,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듯이 지금의 나는 어릴 때부터 연속된 나의 습관이 모여 성격이 형성되었음에 틀림없다. 물론 같은 형제고 똑같은 가정교육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형제자매의 행동이 모두 다른 이유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거기엔 타고난 자기만의 본성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같은 환경과 같은 교육을 받고 비슷한 습관으로 길들여졌다해도 같은 행동이 나타나지는 않는다. 타고난 본성 위에 교육적인 면이 들어가 인성이 형성되고, 그 인성 안에 반복된 습관이 만들어져 결국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것이다.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의 매일 6시간 이상 피아노 연습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두 시간을 쳐야 하고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두 시간, 그리고 저녁을 먹고 두 시간을 피아노 치는 건반에 할애해야만 했다. 죽을 만큼 힘든 일이었고 체벌이 무서워 그만둔다는 말조차 꺼낼 수도 없었다. 부모의 학대 아닌 학대가 어린 나의 자아에 뿌리를 내리고 그 습관이 나한테는 보이지 않게 집중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좋아하지 않았고 거의 반강제로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일상이 끝없는 습관만을 만들었지만 그 속에서 형성된 끈질긴 승부욕이 나도 모르게 길러지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뒤로 해야 하는 슬픈 습관이 결국은 또 다른 습관을 쫒게 되고 그게 반복되는 습관으로 무언가를 계속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인격형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다행히 게임을 중단해야 할 일이 생겼다.

브런치에 글을 올려야 한다는 재촉이 내 마음을 살살 달래 컴퓨터 앞으로 이끌었다. 브런치의 강한 힘이 게임 중단령을 발동한 셈이다. 브런치의 힘은 강하다. 시대를 탓하는 것도 편집적인 집중된 행동에도 이유를 알면 이제 그 습관을 버리는 일만 남았다. 그래도 나는 생각을 하고 정리를 하고 문제를 바로 보고 고치려는 의지가 있는 습관된 노력이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눈만 뜨면 새로운 기술로 눈을 뗄 수 없는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시대가 불안하기도 하다. 시대를 탓할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시대를 거스르게 아이들을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태어나자마자 스마트폰을 쥐고 태어나 게임 세계의 중심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부모로서 할 말이 없어지면 안 될 텐데라는 조바심도 없지 않다. 또 하나의 게임 중단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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