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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01. 2020

미국, 봉쇄령 해제가 되었다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두 달 반이 넘은 시간 동안 집에만 갇혀 지냈다.


정확히 3월 13일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곧바로 봉쇄령이 내려졌다. 마트나 약국이외 필수적인 상점이외에는 그 어느곳도 갈 수없다는 조치가 내려지고 두 달이 지나고 드디어 1단계를 조심스럽게 연다고 했다. 그러다 확진자가 줄지않아 더 미루어졌다가 주지사와 각 카운티장들의 의견이 맞지 않아 각 카운티별로 봉쇄를 해제하기도 해서 우왕좌왕한 시간이 모두 지났다. 1단계(stage 1) 즉 소규모 비즈니스는 완전 풀리고 10명 이하 모임도 가능해졌다. 식당은 테이크 아웃만 가능하다고 했다가 야외좌석에서 거리유지만 한다면 먹을 수 있다는 조치가 내려졌다.


봉쇄를 한다고 했어도 거리를 완전 차단하는 것이 아니니 어디든 갈 수는 있었지만, 식당을 비롯한 모든 먹는 장소와 공원까지도 폐쇄되니까 아무리 사람들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장소가 없어 자연스레 집에서 격리가 이루어졌었다. 견디다 못한 젊은이들은 간혹 집앞 마당에 간이 의자를 놓고 포장해 온 음식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텅 빈 주차장에서 둥글게 서로 주차를 하고 트렁크를 열어놓고 걸터앉아 각자 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으며 수다를 떠는 학생들도 늘어났다.



처음 봉쇄되었을 때는 봉쇄라는 말이 처음이라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전쟁 같은 극한상황과 드디어 맞닥뜨리게 되나 싶어 알 수 없는 미래의 공포가 엄습했다.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뿐이 아니라 내 이웃, 내 마을, 이 나라 전체가 똑같은 상황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다면 누가 이 상황을 잘 견디고 슬기롭게 오히려 즐기느냐가 관건인 시대로 진입했다. 뭘 모르면 무식하다고 일적인 스트레스가 1%도 없다는 전제하에 이렇게 길어질지는 아무도 예상 못하고 그 얼마동안은 편안하기까지했다.      


묵었던 집안을 정리하고 바쁘다 미루었던 잡다한 일들도 정리하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시선을 밖으로 돌려 정원을 손질하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는 과정을 거쳤다. 아, 그래도 시간이 남으니 이제는 자급자족하는 수준까지를 경험하게 이르렀다. 호박을 심고 고추며 상추를 심었다. 먹다 만 파 뿌리를 싱크 옆 자그마한 화분에 박아놓으니 하루가 다르게 손가락 한 마디 정도는 매일 자라는 걸 관찰하며 신기해하고 있는 살림의 고단수까지 올라간 듯했다. 아, 안 쓰던 재봉틀도 꺼내 놓았다. 이제는 수선해야 할 옷도 직접 해야 할 단계가 온 듯해서이다.


아이들은 쇼핑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서로 집에서 입지 않은 옷들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입고서 자기 옷을 직접 자기가 파는 일이 유행되었다. 입었던 옷이라 아주 저렴하게 팔고 사는 일을 내 딸도 동참했다. 우체국도 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다보니 직접 집까지 배달까지 해주는 나름 새로운 방식으로 기발한 탈출을 시도하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이없게도 재미난 일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자구책들이 모여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수단이 되고 고착될 수 있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정착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람간 마음의 거리가 되어
고립되고 쓸쓸해졌다


어른이 되면 왜 이리 걱정도 나이가 드는지 행여 전화 넘어로 바이러스가 전염이라도 되나싶어 친하게 지냈던 지인에게 까지도 거리를 두고 그저 웅크리고 이 시기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외로운 사람들이 되어갔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사람의 마음거리를 차단해 버린듯 씁쓸하다. 몸과 마음이 갇혀버리니 마음까지도 갇혀버려 더욱 쓸쓸한 코로나 생활이 되었다.


반대로 두 달이 넘은 격리 생활로 이제는 오히려 여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면도 없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니까 늦잠을 자는 여유로움이 생겼다. 늦게 일어나서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하루를 맞이하고 시작한다. 아이들도 늦은 아침을 맞이하고 나름 스케줄에 맞게 온라인 수업을 조금씩 하며 적응해가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이제는 학교에 어떻게 가나 싶을만큼 지금 이생활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 참이었다. 특히 나가지 않으니 소비할 일도 없어졌다. 자연히 생활비가 전에 비해 적게 든다. 집에만 있으니 사고 나는 일도 없고 특히 감기같은 전염된 병도 없고 특별비 명분으로 나가는 지출비용이 제로에 가깝다.



그러다 봉쇄령이 해제되었다.


이미 일주일 전에 소규모 비즈니스는 예약제에 한해서 오픈해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지만 다 같이 해제되지 않는 이상 섣불리 나올 수 있는 간 큰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메릴랜드에 확진자는 이미 5만명이 넘었고 사망자만 3천명에 육박한다. 한국과 비슷한 땅덩어리에 인구는 7배가 적은데도 확진자는 5배 이상 많으니 그 수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꼭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거나 꼭 해야 할 업무가 아닌 일 즉 개인의 일을 위한 일은 가급적 나갈 일을 만들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당장 1단계 즉 소규모가 열려 예약제로만 영업을 재개한다거나 10명 이하 소규모만 이루어지는 일을 지나 2단계인 조금 더 많은 인원이 모이는 집회가 열린다 해도 3단계의 완전한 해제가 아니고서는 사람들의 위축된 심리가 쉽사리 열리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확진자의 전수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제일 중요한 백신이 나오지 않는 이상 정상적인 일상이 되는일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밖에 나가지 않으니 돈을 지출할 일이 없어졌다.

개스비도 절약되고 아이들이 필요한 물품도 없고 외식비도 줄고 그저 마트에서 식료품을 사서 먹고 사는 일만 남았다. 이러한 소비형태로 봐서는 특정 기업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구조라 불평등한 시장이 될 수 밖에 없다. 앉아서 모든 걸 소비해야 하는 시스템으로는 소규모 상업인은 아마존 같은 대기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고 창고만 있어도 인터넷으로 팔 수 있는 형태의 시스템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어 그동안 온라인을   없었던 비즈니스나 나같은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더욱 어려운 시기일 수 밖에 없다.


지금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사태를 우리 같은 기성 세대에 비해 더욱 빠르게 받아들이고

시대에 맞는 사고를 빠르게 전환해야 한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지금 막 직장 새내기들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를 공존한 마지막 세대이다.

스마트폰을 잡고 태어난 현재의 중고등학생들은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나 같은 기성세대는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 만나게 된 디지털이 너무도 생소했다. 컴퓨터가 대학을 졸업하고 나왔기 때문에 타자를 칠 일도 없었기에 당장 컴퓨터가 있어도 독수리타법으로 아이들에게는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이 생겨 그나마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도 손가락 하나로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 할 수 있는 기회는 생겨 다행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그 정도만 해도 살아갈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격리(qurantine)라는 극단의 조치가 온 세상을 바꾸면서 이제는 스마트폰의 클릭 하나로 물건을 사고파는 시대가 개막되었다. 내가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 무언가를 살 수 있다면 반대로 손가락 하나만 움직여도 팔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격리가 가져다준 손가락 삶이 급작스레 변화된 본격화된 삶이 되었다.


이제는 번듯한 인테리어로 치장한 샾의 의미가 없어졌다. 옷을 파는 곳에서부터 보석, 시계며 겉으로 치장하는 모든 물건의 샾이 온라인 샾으로 전환되고 그 표면에는 디자이너의 쇼가 장식하고 그 모델들의 움직이는 비디오로 구매하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정교하게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구매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우리를 치장하는 것에서부터 생활에 필요한 무엇이든 꼭 매장에 가지않고 살 수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질 것이다.


문화는 역사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으로 대변된다


오랜 습관이 모이고 모여서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하나의 문화가 되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었을까? 각 나라가 가지고 있는 그런 문화가 생기기까지의 세월은 몇천 년이 결렸다. 세월이 흘러야만 자리잡는 문화가 지금은 갑자기 긴박하게 전환되는 시점이 아무도 모르게 왔고 그 전환을 누가 빠르게 받아들이고 실행하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삶을 살 수 있다. 대대손손 내려오는 가풍도 필요 없고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는 보장 또한 없다. 인간의 긴 역사가 문화를 대변한다면, 코로나로 인해 갑자기 변한 문화는 역사가 아닌 사건에 의해 바뀔수도 있다는 단순한 콘텐츠로 바꿔 말해야한다.  


아마존의 온라인 쇼핑은 천문학적인 부를 가져다주고 있고 인간의 손으로 생산해야 하는 모든 기업의 손은 그저 집안에서 땅이나 일궈야 하는 노동의 일로만 전락할 것이다. 자택 근무를 할 수 있는 오피스일은 생존이 쉬워진 반면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사람의 손으로 할 수 있는 단순한 업무는 로봇이 대체될 것이고 일정한 데이터로 판단하는 리서치 잡도 서서히 사향 되는 일이 될 것이다. 의사도 수술 로봇의 정교함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도태될 것이고 판사의 판단도 엄청나게 쌓인 컴퓨터의 사건 사고의뢰를 따라가지 못하면 더 이상 그 높은 위치를 유지하지 어려울 것이다.  

   

코로나가 너무도 많은 일상을 한꺼번에 쓰나미가 되어 바꿔버렸다.


일상 정도가 아니다. 문화를 하루아침에 바꾸어 버렸고 보편적인 사실을 뒤집어 버렸고 당황만 하고 있다가는 앉아서 코 베가는 속담이 다시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지금보다 더 큰 팬더믹이 올 가을에 반드시 온다는 많은 예언들과 더 많은 전염이 염려되어 지금 반짝 일상처럼 되었다가 다시 꺼질 수 있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서인지 더욱 암울하다.



하지만 지금,


많은 샾들이 방역하고 대청소를 하고 손님맞이 준비가 끝났다며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손가락으로 모든걸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우리모두 지금까지 해왔던 손을 일시에 놓아버릴수는 없지 않은가? 디지털 세대가 알지 못하는 아날로그 세대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분명이 있을 것이고 우리 기성세대는 또 그것을 유지하면서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한다. 몸을 움직이면 돈이 되는 노동력이 돈이 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하더라도 우리만이 할 수있는 대면 했을때 감성이 통하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거리 곳곳에 붙은 사인이다


우연히 '응답하라 1988'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그때의 청춘시절로 잠깐 돌아갔다. 나에게도 청춘시절이 있었고 그때의 힘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고 그때의 우리의 부모가 우리를 받쳐주고 우리또한 다음세대를 이끌어주어야 한다. 바뀌었다고 당황만 하지말고 바뀐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겠다. 한국은 폐쇄니 봉쇄니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해보지 않아서 지금 이러한 말들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누구나 가본 만큼만 보이고, 아는 만큼만 이해하는게 사람 사는 일이니까... 어렵겠지만 난 내일 시작할 나의 일에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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