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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02. 2020

무릎꿇은 미국 경찰관의 앞과 뒤

미국의 백인 경찰관이 흑인의 목덜미를 무릎으로 제압하고 숨지게 한 사건을 계기로 지금 미국은 겉잡을 수 없는 들불이 되어가고 있다. 그에 반해 그 죽음을 같이 애도하는 뜻으로 경찰관들이 한쪽 무릎을 꿇어 그 슬픔을 애도하고 있다. 무릎으로 시작된 사건이 무릎으로 승화되고 있다.


'무릎 꿇기'가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된 것은 2016년 미국프로풋볼(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전 쿼터백 콜린이다. 그는 캐롤라이나의 팬서스와의 경기를 앞두고 비무장한 흑인이 백인 경찰의 총격에 잇따라 사망하는 사건에 따른 인종차별 항의 표시로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질 때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국민의례를 거부한 것에서 유래 되었다. 무릎을 꿇고 말없이 시위한 멋진 사나이다.        


콜린 캐퍼닉은 흑인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의미로 무릎을 꿇은 최초의 인물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시위가 6일째 접어들면서 미국 140개 도시는 물론 전 세계로 확산 되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는 말을 희미하게 뱉었지만 백인 경찰은 이를 무시한 채 9분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누르고 있었고 곧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끝내 숨을 거두었다.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조지 플래이드가 어느 상점에 들어가서 물건을 사고 $20달러 지폐를 냈다. 이 지폐가 문제였다. 주인은 그 돈이 위조지폐라고 신고를 하고 경찰 4명이 오고 (여기는 떼로 몰려다닌다. 신변 보호를 위해서) 이미 경찰차에서 조지는 4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모두 비디오 영상에 나와 있다. 그런 뒤에 그를 수갑 채우기 위해 무릎으로 목을 견제하다가 숨지게 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그 문제의 지폐는 위조가 아니었다.

정상적인 돈이라는 게 확인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객관적인 내용은 뉴스에 나오지 않고 그저 흑인이 백인 경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만 가지고도 이 사태가 벌어졌다. 결론이 정상적인 지폐라고 한다면 문제는 분명 달라져야 한다. 이건 인권유린의 차원을 넘은 사실을 조작한 정치적인 문제로도 확대 해석 할 수 있는 중대사안이다. 또한, 목을 조른 경찰관에게만 살인죄를 내릴 게 아니라 같이 있었고 죽음을 방조한 3명의 경찰관에게도 법의 심판을 해야 한다.     


처음의 시위는 비교적 평화롭게 이어졌다.

적어도 트럼프가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 된다"라는 트윗이 있기 전까지는....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분노해 폭동을 일으킨 시위대를 '폭력배'(Thugs)로 규정한 뒤 군 투입에 총격까지 운운했고, 과거 흑인 시위 때 보복을 다짐한 한 경찰의 문구까지 인용했다. 실제로 폭동이 일어난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일대에는 500명의 주 방위군이 배치됐다. "약탈이 시작될 때 총격이 시작 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은 기어이 거센 후폭풍을 불러왔다.           



미국은 다민족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합중국이다.


애초에 영국에서 메이호를 타고 아메리카 땅을 밟았을 때부터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민족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출발했다. 토착민이 인디언이었고 탐험가로 신세계에 발을 내디딘 사람이 백인이고 그 백인과 함께 온 사람이 흑인이니 황 백 흑이 다 섞여서 이 나라를 세웠다. 그러다 이제와서 백인만이 자기들 땅이니 주인이고 다른 유색인종은 하인 취급하며 차별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몇 백년 된 인종차별의 역사를 논할 필요는 없고 이렇게 사상 초유의 사태에 또다시 불거진 인종차별로 이 나라 미국이 어찌 돌아갈 판인지 심히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더욱 걱정스러운 사안은 인종차별적 행위가 폭력으로 가해져 서로 물고 뜯기는 과정에서 정말 힘없는 개인들이 죽고 다칠까 그게 더 염려스럽다. 폭력의 끝은 결국 힘없는 자들의 수많은 목숨이 사라질 것이고 폭력으로 제압한 윗선만이 남아 비보를 날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의 뼈아픈 과거에서 보여 주었듯이 폭력은 더 큰 폭력만이 남고 남은 자는 폭력의 희생양으로 상처만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촛불 시위 같은 비폭력 시위가 얼마나 대단하고 뜻깊은 일인지 새삼 알게 된다.      



마이애미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고 있을 줄 알았던 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검은 옷을 입고 한 손에는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이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마스크 쓰고 썬그라스 끼고 아주 잠깐 시위를 하고 왔다고 한다. 갔다가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했다는데 다행인 건 이름과 사진은 나오지 않고 인터뷰만 했다는 말에 안도했다. 다행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 내가 이 나라 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안다.      




우리 둘째는 한술 더 뜬다. 흑인 친구를 유난히 좋아하는 딸은 더욱 슬픈 눈이 되어가며 말을 이어간다. 한국말로 자기의 생각을 전달하느라 애쓰면서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라고 했다 '그래도 우리 아시안은 길거리를 가면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는데 흑인은 자기의 아이들에게 경찰 앞에서 절대 뛰지 말고 천천히 걸으라는 당부를 꼭 한다고 한다. 뛰면 바로 총으로 죽을 수 있다'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나라에서 자기를 보호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에게 왜 위협을 느끼며 살 수밖에 없냐며 그게 가장 가슴 아프다며 눈물이 가득고여 흐느낀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으로 또 한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폭동이 일어나고 한인 마켓이 털리고 사상 초유의 대혼란을 겪고 있는 위험속에서 나와 내 가족만을 염려하고 내 가족과 내 민족의 사고가 없기만을 바라고 있는 내 개인주의가 부끄러웠다. 우리 아이들은 직접 발로 뛰며 소셜미디어에 동참하며 앞장서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폭력시위에는 반대의 의사를 분명히 전했다. 아무리 훌륭한 정치견해와 뚜렷한 자기 생각을 표출한다 해도 그 방법이 폭력과 방화 그리고 약탈이 동반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광주 민주화 사건이 있었던 80년대의 긴박한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이 길거리에서 죽음을 맞이했어도 단 한 건의 약탈이 없었다고 지금까지 전해온다. 양심에 호소하는 시위에 폭력으로 맞서고 대치할 수는 있어도 그 안에 약탈이라는 탈을 쓸 필요는 없다. 개인의 생각을 표출하는 시위에 약탈이라는 오점을 남길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물론 지금까지 마틴 루터킹의 선언 이후에 평화시위를 지켜오고 있었다.


엘에이 폭동이나 볼티모어에서 일어난 폭동으로 먹칠을 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처럼 주 단위로 연방정부 단위로 군이 투입되고 그에 맞서는 폭력이 난무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평화로 시위를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인권이 나아진 건 하나도 없다. 폭동이 일어나니 무서워서 귀 기울이고 있다. 거기다 트럼프까지 불을 지피고 있으니 폭력에 폭동에 거기에 약탈에 걷잡을 수 없는 화염의 불길로 휩싸이고 있다. 안다. 피끊는 젊은이가 지금 안주하면 안 된다. 나 또한 젊었을 때 정부의 힘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았던가?     


흑인은 약자다. 우리 아시안도 약자다.

약자와 약자가 손을 잡고 강자에게 타협하자 손을 내밀면 좋으련만 아시안은 흑인을 무시하고 흑인도 아시안을 무시한다. 약자끼리도 무시를 하니 칼자루를 쥔 강자의 태도는 어떻겠는가? 양쪽을 더욱 멀어지게 이간질해야 강자가 더 오래 강자 노릇을 할 수 있다. 흑인이 또 하필 우리 한인의 상점을 약탈의 타겟으로 삼은듯하다. 이미 LA에는 주 방위군이 한인타운에 제일 먼저 투입되었다고 한다.     


1992년 폭동 당시에는 한인의 위상이 높지 않아 제일 먼저 한인타운을 열어 주었기에 한인들이 직접 그들과 총을 들고 싸우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번엔 어느 정도 한국의 위상이 올라서인지 중국이나 일본 타운에 비해 먼저 주 방위군이 투입된 모양이다. 일단은 안심이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는 흑인과 아시안이 서로 같은 편에서 유색인종으로 싸워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오히려 의식 있는 백인들이 흑인의 인권을 옹호하고 보호하고자 같이 일어나 앞장서는데 같은 유색인인 아시안은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니 같은 편이 될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하게 남을 수도 있겠다.     



이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적극적인 대처안을 내놓았다.

일단 흑인 커뮤니티에 기부금을 내놓기로 했다. 큰돈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으나 가장 가까이 도울 수 있는 곳을 찾아 후원하는 걸로 시작을 하려고 한다. 큰아이는 시간이 나는 대로 친구들과 연대해 피켓시위에 참석하기로 했다. 둘째는 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 소셜미디어에 남을 만한 정치색은 안내는 게 우리 어른들의 걱정이지만 젊은 혈기를 막을 수는 없다. 적극적인 소셜미디어에 흑인 옹호 글을 기재하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을 하기로 했다.      


브런치는 세계 각국에서 볼 수 있는 리포터 역할이기도 하고 내 구독자 수가 천명에 이르러 엄마의 목소리도 한국 사회에는 낼 수 있다니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한다. 후원금은 아빠가 내고, 한국 사람한테는 엄마가, 그리고 미국 사람들에게는 아이들이 이번 사태를 정확히 알리고 인종 차별없는 나라를 만드는 데 동참하기로 한 우리 가족이 참으로 뿌듯하다.      


참으로 다행인 건 미국 경찰 전체가 무릎을 목덜미를 누르는 데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시위대와 진압 경찰의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 일부 지역 경찰관들이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표시인 한쪽 무릎 꿇기를 하거나 시위자와 포옹, 악수를 하면서 시민들의 분노에 공감하고, 시위대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오클라호마시티, 워싱턴주 스포캔,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 뉴욕 타임스퀘어 등에서도 경찰들이 시위대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포옹을 하는 등 플로이드의 사망을 애도하고 평화적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였다.   

  

남자가 누군가에게 '무릎을 꿇다'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한쪽 무릎 꿇기는 절대 굴복할 수 없는 상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되 나의 자존심도 지키며 나의 뜻을 말없이 관철시키고자 할 때 행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양쪽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상대방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의미로 꿇림을 받는 입장에서는 민망하기도 하고 나름 승리했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는 충성과 비굴 사이에서의 무릎이라고나 할까? 양쪽 무릎을 꿇는 행동은 그리 유쾌한 모습은 아니다.     


무릎으로 시작된 일이 무릎으로 끝이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코로나 사태로 일시에 정지된 이 사회가 막 열려는 시점에 시위로 인한 통행 금지가 다시 선포되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이가 멈출 수 있다는 걸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았고 상상조차 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었지만 해냈다. 두 달 반을 집에만 머물렀다. 이번 사태도 마찬가지다. 한두명의 경찰이 아니라 이나라 전체 경찰관이 애도의 뜻으로 모두가 한날 한시에 한쪽 무릎 꿇기를 단행한다면 이 사태는 끝나지 않을까?   


미국의 역사가 250년이 되어가면서 그동안 자행해왔던 인종차별을 이제는 끝을 내야 한다. 뭐든 일시에 한 번에 동시다발로 해버리면 한방에 끝이 나는데 지지분하게 끌면 끝이 나지 않는다. 트럼프가 재임하는 동안은 코로나도 인종차별도 나아지지 않고 불만 더 붙일 게 뻔하다. 그래 재임까지만 기다리며 준비하고 토론하고 싸우자.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면 코로나도 종식되고 인종차별도 종식되어 행복한 미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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