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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n 16. 2020

'정중한 인종차별'이 미국의 민낯인가?

Polite racism

눈을 뜨고 안경을 끼고 여느 때처럼 인터넷을 천천히 훑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아시안계 남성이 살짝 미소 지으며 색색의 굵은 분필을 들고 있는 모습에 고정되었다. 처음엔 어른이 왜 분필을 들고 있을까? 에서 출발되었다가 트윗에 지금 엄청난 수의 조회 수를 올리고 있다는 말에 그의 비디오를 직접 찾아 들어가 비디오를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건은 리사(Lisa) 부부 즉 백인 부부가 산책을 하다가 한 필리핀계 남성이 낮은 담벼락에 "BLACK LIVES MATTER"라 쓰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부터다. 그냥 지나치면 될 일을 리사는 이 남성이 비싼 자신의 동네에서 비싼 집 담에 주인의 허락 없이 낙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중하고 상냥하게 말한다. '남의 소유물에 이런 낙서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남편은 한참 뒤에 떨어져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지 비디오를 찍고 있다.    


필리핀계 남자는 '이건 내 문제'라고 대답했지만 '그럼 안된다'고 리사가 재차 말했다. 남자는 '그럼 이 집이 내 집이면 문제가 되지 않는 거냐'라고 물었는데 리사는 천연덕스럽게 '내가 이 집주인을 잘 안다'고 대답했다. 남성은 너무 놀란 목소리로 '어? 그래? 그럼 당신은 경찰에 신고하면 되겠네..'라고 말했는데 리사는 아주 정중히 대답했다.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남자가 여자의 이름을 묻자 아주 상냥하게 '리사'라고 말하고 이번엔 리사가 남성에게 이름을 묻자 남성은 '난 대답할 필요가 없다'라고 한다.' 당신이 나를 신고하는데 왜 내가 당신에게 이름을 말해야 하는지' 이 남성도 아주 정중하게 대답했다.      


결국 리사와 남편은 자리를 뜨고 곧바로 경찰이 도착했다. 놀랄 일은 그다음이다. 그 집이 정말 이 남자의 집이었다. 다행히 그 상황을 리사의 남편과 동시에 이 남자도 비디오를 찍었고 며칠 뒤 이 남자는 비디오를 세상에 공개했다. 아주 빠른 속도로 파급되었다. 알고 보니 리사는 유명한 화장품 회사인 'Laface'의 최고 경영자인 Lisa Alexamker이고 자기 집 벽에 낙서(?)를 한 남자는 필리핀계 아메리칸 Juanillo였다.     


이 비디오 사건으로 Laface는 많은 사람으로부터 불매운동을 당하고 있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과하며 자신의 사업에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의 행동은 인종적 불평등으로 인해 무지했고 자기가 한 방식이 Juanillo에게는 무례했고 그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한다는 말을 전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이웃인 Juanillo와 커피를 마시며 직접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는 그녀의 제안에 공개적으로 응답하지 않았다. 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다. 커피를 어찌 하찮은 동양인과 우아하게 먹을 수 있을까나??      



난 이 비디오를 접하고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문제이긴 하지만 이 리사처럼 백인의 행동이 타인종에게 너무 정중하게 인종을 차별하고 있다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봤다.      


내가 처음 미국에 와서 느낀 점은 바로 백인들이 너무 친절하다는 사실이었다. 벌써 17년 전이니까 그때의 한국은 지금처럼 모든 사람이 대외적으로 친절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웃으며 지나치지 않았고 화나면 그 자리에서 서로 얼굴을 맞대고 화를 내고 결론이 나고 그러면 서로 사과하고 헤어지는 게 끝, 그런 사회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에 오니 모든 사람이 신기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마트에 가면 마트 직원이 친절하게 웃으며 대해주고 내가 설사 모르는 무언가를 어설픈 영어로 물어보면 알아듣는 척이라도 하며 나를 도와주려 애썼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내 아이들에게 웃음을 날렸다. 강아지라도 데리고 산책을 하면 모두가 웃으며 강아지의 이름을 물었다. 얼굴이 이쁘면 마음도 착하다는 말까지 내뱉으며 미국 사람들을 칭찬했고 내가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 미국 사람들은 종자가 다른가 보다고 왜 이리 순진하고 착한지 모르겠다며 우리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야 한다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더랬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났다.

집 앞에서 차 사고가 났다. 살짝 경미하게 부딪친 일이라 흠집 하나 남지 않았다. 거의 달랑 말랑 한 일이라 사고 수준에도 못 미치는 ‘일’이 일어났다. 서로 잘못한 일이라 나는 얼른 차에서 내려 ‘미안하다’ 말하고 돌아서려는데 바로 앞집 그것도 매일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는 아이 친구 엄마였다. 에구 잘됐다 싶었다. ‘하이’ 하며 서로 인사를 하며 안도를 하고 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였다며 가족들에게 말을 했다. 하지만 다음날 보험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상대방에서 나를 신고했다는 것이다. 내가 잘못해서 사고가 났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어이없는 말을 들었다. 분명 스크래치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분명히 그쪽에서 잘못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넘어가고자 내가 먼저 미안하다고 한 건데 내가 미안하다고 하니 나한테 죄를 덮어 씌우려는 모양이었다. 너무 분개했지만 내 보험회사에선 작은 일로 사건이 올라가면 괜히 보험료만 올라가니 서로 아는 사이라면 돈을 조금 보내고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을 거라고 나를 되려 설득했다.

     

정중하게 인종 차별하는 이런 종류의 인간이 많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한참 이곳에서 살고 난 후였다. 처음에는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얼굴 표정만 보고 친절하다 판단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조금씩 영어뿐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보게 되면서 이들의 문화를 알게 되었다. 절대 드러내 놓고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설사 불만이 가득하고 죽이고 싶은 일이 있어도 끝까지 예의를 지킨다. 그런 다음 돌아서서 변호사를 통해 일을 처리하면 그뿐이다. 얼굴 보며 언성이 오갈 일이 없다. 각자의 변호사끼리 처리하면 그뿐인 것이다.     


이게 미국 그러니까 백인의 민낯이었다.

지금 리사가 그 남자에게 했던 행동처럼 겉으로는 너무도 정중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웃으며 대한다. 이 비디오를 자세히 보면 리사는 소리를 높이거나 경악해서 대화하지 않는다. 웃는 얼굴에 자기가 생각한 말을 정확히 전달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과 일상을 이야기하는듯한 얼굴과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땡큐와 존칭도 꼬박꼬박 쓰면서 말이다. 남자도 정중하게 답하고 묻는다.


만약에 Juanillo에게 왜 여기에 낙서를 하냐며 물었을 때 대답을 회피하거나 영어를 못해서 답을 하지 못했다면 곧바로 돌아서며 경찰에 신고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마도 이 남자에게 웃으며 환하게 ‘하이’를 외치며 말이다. 이게 바로 이 사회 백인들, 특히 배운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의 정중한 인종차별이다. 말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이러한 정중한 인종차별이 이번 비디오를 통해서 미국의 민낯으로 고스란히 나타났다.


오히려 대놓고 무시하면 이쪽에서도 대놓고 대거리라도 할 수 있는 게 인지상정인데 앞에서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네, 선생님’ 하면서 ‘그러니까요, 당신 거 아니니까, 만지지 마시고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어요’라며 웃으며 대화하는 데는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난 모든 사람이 이 비디오를 보길 바란다. 그냥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직접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이들의 정중한 인종차별이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겉으로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의 BLACK LIVES MATTER (이하 BLM)는 비단 흑인 문제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왜 아시안의 인종차별은 어디 가고 꼭 집어 흑인 인종차별만 별개로 외치느냐고 한다면 이건 분명 잘못 알고 있는 일이다. 그 처음이 흑인의 목을 조른 백인 경찰로 출발되어 당연히 흑인 인권문제로 대두되었기에 BLM이 되었다. 거기에 아시안의 차별도 똑같으니 이를 백인을 제외한 전 인종차별 문제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 아시안은 흑인의 인종차별에 비하면 아주 미비하다는데 그 중요한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아시안은 길을 걷다 갑자기 뛴다 해도 최소한 도둑으로 몰려 백인 경찰에 의해 총을 맞아 죽지 않는다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흑인은 다르다. 피부가 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위압감을 줄 수 있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혐오를 준다는 통계는 이제 널리 알려져 있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아시안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고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 백인의 삶을 뛰어넘을 수 있어 경계해야 하는 인종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인종이라고 해봐야 10가지 무지개색으로 다양한 게 아니고 딱 흑 노 백 세 종류밖에 없는데 그나마 아시안은 중간층에 끼어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그 중간에 서 있는 인종이 중간을 지키지 못하고 흑이 아닌 백을 좋아하고 백인 편에 서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도 흑인보다는 백인을 99%는 선호할 것이다. 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이고 전 세계 사람들도 두 인종 중에 누구를 택할 것인가를 묻는다면 거의 같은 수준으로 백인에 손을 든다고 대답할 것이다.


세 가지 인종 중에 백인은 흑인을 제일 싫어하고 그다음은 동양인을, 동양인은 백인을 좋아하고 흑인을 싫어하는데 그럼 흑인은? 흑인 또한 백인과 동양인 둘 중에 하나라면 백인을 선호한다에 90% 이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런 사태에서 우리 중간 인종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 우리의 인권도 중요하니 약싹 빠르게 어찌 흑인 너희만 살겠다고 하느냐? 우리도 같이 가자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일단 너희가 너무 심한 상처 받았으니 너희의 인권을 위해 같이 소리치자고 손을 잡아주는 게 맞는 일인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하긴 한국에서의 상황도 만만치는 않을 듯하다.

그럴듯한 부잣집 동네에서 동남아인이 고급스러운 담벼락에 인종 차별금지라는 낙서를 하고 있는 사람을 본다면 그 동네 사람 누군가는 지나가다 시비를 걸 것이다. '감히 이런 동네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살리는 없고 당장 꺼져라'는 불호령이 떨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백인처럼 ‘네네’ 하며 정중하게 웃으며 ‘여기서 이러면 안 돼요. 여긴 내 친구가 사는 집이랍니다’라고 거짓말하며 뒤돌아서 경찰에 신고하는 이중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종차별은 나는 잘났고 남은 못났다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에서 출발한다.

나는 당신보다 우월한 인자이고 나는 당신의 위에서 군림한다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백인은 다른 인종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흑인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은 것과 같다. 피부가 검다고 해서 마음도 검고 생각도 검은  결코 아니다. 마찬가지로 피부가 노랗다고 생각도 노란  아니다. 나 또한 내가 만약 한국에서만 살았다면 인종에 대한 깊은 고찰이 없었을 것이라 단언한다. 이들이 결코 뼛속까지 나쁜 건 아니다. 또한, 백인이라고 모두가 인종차별을 하는 것도 아니다. 미꾸라지  마리가 흙탕물을 만들어 버려 백인 사회 전체를 흔들어 버리는 결과가 되는 일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호수에 장난으로 던진 작은 돌 하나에 어떤 개구리는 피 토하며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백인인 리사가 아주 정중하게 Juanillo에게 ‘남의 소유물에 낙서하면 안 돼’라며 웃으며 이야기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었다. 리사는 분명히 인종차별을 했다고 시인했지만, 그 내면의 마음까지 용서를 받고 상처를 덮기에는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동양인은 절대 그런 고급진 집에서 살 수 없다는 생각만큼 그렇게 높게 쌓아 올려진 인종차별의 굳은 믿음을 무엇으로 깨트릴 수 있을까?     


이번 일로 흑인과 백인 그리고 동양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시각과 백인에게 잠재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인종에 대한 차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대놓고 목을 졸라 흑인을 숨지게 한 백인 경찰의 인종차별을 넘어 정중하게 인종 차별하는 소위 화이트 칼라의 백인들의 만행은 이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절대 풀릴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왜 한 가지가 아닌 세 가지 종류의 인간을 만드셨는지 그걸 원망하는 일밖에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우리가 남녀를 알 수 없이 태어나듯이 흑백도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거, 그냥 인간의 색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그런 날이 오기만을 슬프지만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을듯하다. 정중한 인종차별이기에 더욱 슬프다.


https://www.facebook.com/1440770398/videos/10223730465276552/ (사진을 꾹 누르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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