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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Nov 01. 2020

'화성으로 놀러 와요'

지구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스페이스 X'를 통해 '화성 독립선언'을 내놓았다. '스페이스 X'는 최근 화성이 자유 행성이라는 내용을 담은 위성 인터넷 이용 약관을 고객들에게 배포하고 지구에 의존하지 않는 자급자족의 화성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의지와 관련 지구에서 쏘아올린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향후 화성에서 제공한다는 법적 구성을 설명했다고 한다. 황당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이런 또라이적 발상이 지금의 전기차를 발전시켰고 앞으로도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몇 해 전에 지인의 소개로 경기도 화성에 땅을 조금 매입했다. 미국에 살지만 한국에 살고 싶은 마음에 땅을 매입한 뒤로는 한국에서 살 수도 있다는 구체적인 계획들이 조금씩 싹트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필 내가 산 땅이 화성이고 머스크의 화성 입성이라는 말들이 나를 자극하는 것은 나와 비슷한 딴곳으로의 이주라는 공통어이기 때문일까? 그러기에는 너무 먼 세상 이야기 같지만 나처럼 나라를 바꾸어 산 사람들에게는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닐듯해 이런 글을 쓴다.


나의 첫 이주 또한 머스크의 화성처럼 만만치 않았다.


미국나이로 7살과 2살된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당당히(?) 미국 땅에 입성했다. 그전에 한 번이라도 미국으로 여행을 갔냐? 물으면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미국이라는 땅 근처 캐나다나 남부 멕시코에도 와본 적도 없는 그야말로 15세기 콜럼버스가 메이호를 타고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민 것과 동일 선상이라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에 우리 부부가 알고 있는 사람 하나 없이 맨땅에 헤딩을 했으니 말이다. 비교가 너무 심했나??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주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나라에서 나라를 거기에 언어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른 생판 처음인 나라에서 무얼 어떻게 아이들과 살 수 있을 거라고 겁도 없이 도전을 했는지는 그때로 돌아가 본들 답은 나오지 않을 거 같다. 왜냐면 인터넷이 없다는 말로 무장하고서도 말이  되게 무지했고 아무런 대책 없는 결정이었기에 아무리 현란한 긍정언어로 가져다 붙인다 해도 할 말이 없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나에게 '지금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힘듦이 있었나?’ 그리고 '우리에게 교훈이 될 몇 가지 팁이라도 알려주면 도움이 될 거다’ 라고 꼬셔댄다 해도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나버린 그 당시의 교훈적 대답은 죽어도 없을듯해 미안한 마음이다.


이런 미안한 마음은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

그 이유 또한 한 바가지로 많다. 떠나올 때의 내 나이가 어리지 않았다. 35세로 이미 아이 둘을 낳았고 적당히 직장생활도 했고 회사를 운영하는 여사장으로서 아주 착해빠진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냥 남편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으로 미국에서 한 3년만 살다 오면 어떨까라는 의견에 그저 동참했을 뿐 아이들의 장래나 지금의 엄마들처럼 ' 영어 하나라도 건지면 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1도 없었다. 그때의 감정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 해서 그 당시에 떠나면서 내가 가족들에게 했던 말을 되씹어봐도 아이들의 장래를 위한 결정은 우리의 결정에 1%도 자리하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인시켜 주었다.


그렇게 지구인이 화성에  발을 내밀며 신기해하듯, 나와 우리 가족의 첫발은 신기함  자체였다.


뭐든 처음의 설렘은 그 짜릿함의 강도에 따라 기억의 저장창고에서 오래 기억되고 되새김질할수록 진해진다는 거 누구나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나의 미국 땅의 첫발은 남편이 먼저 미국에 가서 집을 구해야하는 이유로 먼저 가버리고 남편없이 홀로 아이들과 출국을 해야 했다. 우리 둘째 딸이 2살배기 천방지축이라는 걸 상기했어야 했다. 그래도 3년 동안 생활해야 할 캐리어가 몇 개겠는가? 정신없이 그 무거운 캐리어를 큰아이와 찾다가 그만 작은 아이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짐을 다 찾고 잠시 안도하는 틈에 알게 되었다.


헐, 아이가 없어졌다.


겨우 두 살이고 한국말도 익숙지 않은 아무 말이나 재잘거리는 아이인데 어디로 가버렸을까? 지금처럼 코로나 시대면 공항이 한산했을 텐데 지금부터 정확히 18년 전에는 공항이 바글바글 여행객들로 꽉 찬 상황...  순간 정신이 나간 미친 동양사람처럼 보였었으리라.... 영어에 영도 모르는데 어딜 가서 누굴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고 정말이지 하늘이 노랗다 못해 순간적으로 깜깜 해지는 충격을 받았다.


설마 잃어버리는 않았겠지!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멀쩡히 아무 생각 없이 돌아 뎅기다 나와 눈이 마주쳤고 울고불고할 겨를도 없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봉을 했고 막상 지금의 그 아이는 그 당시를 기억하지도 못하고 있는 거 보면 나만 놀랬지 아이는 천진한 눈으로 미국 공항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다 엄마를 만난 것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지나가는 기억 중의 한 장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첫발이 그러한데 일론 머스크의 화성 입성은 어떤 의미를 주는 걸까?


나처럼 '그래 미국에서도 한번 살아 보지 뭐'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된 삶의 변화만을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일까? 화성에 여행을 한다는 당찬 계획을 세상에 발표하더니 이제는 2050년까지 100만명을 입주를 시키고 더 나아가 인터넷 설치를 한다니  그 가능성에 대한 설렘이 나에겐 상당히 크고 정말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커진다. 2050년이면 앞으로 30 뒤인데 100 시대를 감안하면... 나에게도 기회가 없지는 않겠다. ㅎㅎ


어렸을 때 까만 하늘에 노랗게 떠있는 달을 보며 나도 달나라에 한번 가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 거 같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의 날개를 달고 달나라를 다녀온 적이 있었을 것이지만, 해 나라는 그 누구나도 상상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뜨거울 것이기에... 상상도 정도껏 시나리오를 짜는 게 상상이니까.


그나마 화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중 하나이고, 수성과 금성과 같은 극단적인 환경의 행성들과는 달리 비교적 조용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라고 한다. 중요한 건 지구의 입장에서 봤을 때 건조하고 중력의 힘이 약해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것인데 광합성을 하지 않는 식물이 우주 어딘가에 존재한다거나 몸이 물이 아닌 실리콘으로 되어 있다거나 산소가 아닌 유황이나 탄소로 숨 쉴 수 있는 생명체가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화성에서도 그러한 환경적 요인을 갖추기만 한다면 머스크가 꿈꾸고 있는 화성살이가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지구의 그 누구도 화성 땅의 권리는 없다.


그 땅의 가격 또한 아무도 메길 수 없고 그저 그곳으로 먼저 간 사람 마음이다. 언젠가 화성 땅을 사고파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그 사람들도 살 수 없음을 아는데 그런 가짜 페이퍼가 위안이 된다는 것이다. 내 땅이 있다는 마음 하나가 주는 든든함이 있다는 것인데 난 충분히 이해한다. 내 땅이 있다는 것에 위로가 되고 언젠가는 돌아갈 수 있다는 든든함이 땅이 주는 매력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땅에 대한, 특히 내 집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었다. 어릴 때 부유하게 자란 편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아빠의 사업실패로 심하게 집안이 흔들린 적이 있어서 내 집에 대한 애착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항상 부자이거나 항상 가난하게 살았다면 생활의 비교가 없었텐데 잘 사는 집에서 힘들어진 집으로 하락한 케이스라 자기집이 없어졌을 때의 서러움을 알고 있다.


시집 갈 때 4천만 원짜리 전세를 얻어주신 시부모님께 아주 아주 작은 집이라도 우리 이름의 집을 사달라고 말하고 싶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전세금이 어딘데... 그 뒤로 난 집을 늘리는데 최선을 다했다. 집이 인생에서 안정감을 주는 데는 일등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그러니 우주의 화성에라도  이름으로 된 내땅을 갖고 싶겠지.. 충분히 이해한다. 그 마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한국을 떠나 이역만리 미국 동부 끝자락으로 여행 삼아 왔다가 정착해 버리듯 그 누군가도 아무 생각 없이' 화성이나 한 번 가보지 뭐' 하며 머스크를 따라 이주할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18년 전의 그때로 돌아간다면 미국에 간다는 사실에 겁이나 포기하고 그냥 한국에서 아이들과 살았을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난 지금도 그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아마도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일에 대한 성취도가 더 있었을 거라는 미련을 버리지는 못하겠다.하지만 나의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를 맞바꾸었는 생각을 하고 그걸로 만족하는 걸 보면 나도 진한 모성애가 없지는 않나 보다.


아이들은 지금에서야 이렇게 묻는다.


'엄마 아빠는 어떻게 영어를 못하는데 미국에 올 생각을 했어요?' 만약 자기들한테 중국말을 못 하는 중국 땅이나 스페인어를 못하는 스페인에서 아이들과 살라고 하면 절대 가지 못했을 거라며, 그런 곳에서 자신들을 키워내신 부모님께 존경의 뜻을 보낸다며, 이제 자신들이 크고 성장한 배경이 미국이라는 곳에서 이민 1세대의 아픔을 몸소 느끼는 중이라며, 그리고 자신들은 아이들은커녕 혼자서도 절대 살 수 없을 거 같다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에서 '내가 그랬었나?' 살짝 뿌듯해진다.


몇 년 뒤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막내가 대학에 들어가면, 일단 내가 엄마로서 아이들의 양육은 다 한셈이다. 내가 항상 생각하는 아이들의 인격은 18살이 되면 모두 성장하고 채워지는데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이다. 18살이 되고 대학을 가는 그 순간부터는 부모의 동의 없이 모든 페이퍼에 사인을 할 수 있다. 그 말은 모든 일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라는 것이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다는 말이다.


물론 나이가 같다고 생각의 성숙도가 같지는 않겠지만, 일단 18살까지 부모의 품에서 부모의 교육을 받고 큰 아이들은 독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의 삶은 잘되든 잘못되든 각자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홀로 일어서야 한다. 나 또한 그런 삶을 살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실천했으니 오롯이 나의 책임이고 그 누구의 탓이 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막내가 18살이 되는 4년 뒤, 나의 삶은 자유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철없이 아이를 낳아 키우고 평탄하지만은 않은 결혼생활을 하고 아이들 스스로 잘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준 것만으로 나는 내 일을 다 했다. 그 자유를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할지 생각 중이다. 그곳이 우주의 화성이 될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나의 놀이터를 만들어 현재 가장 좋아하게  글쓰기와 새롭게 시작한 소통의  유투버로 세상 사람들과 즐겁게 놀고싶다. 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내 땅이 한국 어디엔가 존재하고 그 조그만 밭 옆으로 지하철도 개통되고 점점 커지는 위성도시가 된다니 그저 즐거울 뿐이다.


참 이상한 건 한 번도 살아본 적 없고, 알고 있는 사람도 없는 화성이라는 곳에 내 이름의 땅이  있어서인지 뉴스에서 화성이라는 말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고 관심이 가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금도 인터넷에 화성 독립선언 어쩌고 하니 관심이 가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는 거 보면 내 땅이 주는 의미는 대단한 거 같다.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땅 화성에서 이렇게 쓰고 있을지 모르겠다.


"미국에서 화성으로 이민  멜랜jina 인사드립니다 . 화성으로 놀러오세요" 하하


https://www.youtube.com/watch?v=4FHBcZgmehg&t=88s


 https://www.youtube.com/watch?v=1fdbIIGofAY&t=37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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