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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Feb 17. 2021

밥 먹다 코를 팽 푸는 게, 미국 문화라고?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겪은 일이다.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물건을 보고 있는데 한 미국 여자가 걸음을 멈추고 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난 그 여자에게 손짓과 눈짓으로 왜?라는 물음을 던졌는데, 그 여자는 자기가 내 앞을 지나가도 되냐는 듯한 행동을 보이며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말을 했다.


마트나 공공장소에서 무언가를 보려고 잠시 서 있으면 누군가 내 앞을 지나간다해도 아무렇지 않은 게 보편적인 일이고 상식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먼저 온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그 사람의 시선을 방해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행동 하는 게 매너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뒤로 살짝 어깨를 스치거나, 스치기는커녕 순간적으로 내 옆을 바짝 붙어 지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Sorry’ ‘Excuse me’라는 말을 꼭 한다는 사실에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버스 안에서 살짝 발을 밟는다거나 빠르게 걷다 툭 치고 지나가는 정도의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걸로 알고 살았던 35년간 길들여진 습관된 생활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내 남편은 마트에서 다른 사람의 시선엔 아랑곳 하진 않고 빠르게 그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종종 보며 몸에 밴 습관을 바꾸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싶고 벌써 20년 전의 일이었으니 먼 이야기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예절이 여기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모습이 있다.


예를 들어 어른에게 인사를 하는데 목례를 하지 않고 오히려 아랫사람이 악수를 건넨다거나 포옹을 한다거나 어깨에 손을 자연스럽게 올리는 모습에서 위아래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한 번은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교장 선생님이 아이에게 상장을 주는데 달랑 한 손으로 상장을 받고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쑥 내려오는 모습에 내 얼굴이 화끈했다. '에구 저 버릇없는 아이 좀 봐, 어른이 상을 주는데 한 손으로 뺃어들고 그것도 웃지도 않고 그냥 저렇게 내려오나?' 그랬는데 뒤이어 내 아이도 미국 아이와 똑같은 행동을 하고 내려왔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차이라는 걸 더 알게 되었다.


매너는 나이로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었다. 특히 동양의 경로우대사상이라는 건  눈을 씻고봐도 없다. 나이와 상관없이 개인과 개인이 만나는 일이고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일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어른과 아이가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른끼리 이야기하는데 무슨 아이가 어른 대화에 끼느냐며 호통을 치던 예절이 여기에선 매너가 아니라  어른 대화에 끼지 않는 것은 어른이나 아이의 개인감정일 뿐이다.  나에게도 70이 넘은 미국친구가 있고 30대인 친구가 있다.


나이뿐 아니라 문화의 차이에서 나타나는 예절과 매너가 상당히 다르다.


한국에서는 예절이라는 것을 미국에서는 매너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이것이 자칫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엔 큰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끼리 하는 말은 어떤 행동은 한국식이라 이해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행동은 미국식으로 이해해야 무리가 없다는 말을 하는데 한마디로 두 가지 문화가 섞여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중국적으로 태어나 이중언어를 사용하고 이중문화로 살아가야는 우리네의 아픔이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을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아이들은 집안에서는 한국식 예절을 배우고 나가서는 미국식 매너를 배우는 문제가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이다.   


한국에서는 아빠가 집안에서 크게 트림을 하는 일이 밥 먹다가 코를 팽하고 푸는 일과는 비교되지 않게 크게 실례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매너는 밥을 먹다 휴지로 아무리 크게 코를 푼다 해도 한국에서처럼 실례가 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코를 훌쩍이며 들어마시는 행위를 아주 메너 없는 불결한 행위로 간주한다. 또한 입을 쩍쩍 벌려 밥 먹는 소리를 쩝쩝 낸다거나 밥을 입안에 넣은 상태로 이야기하는 행위를 혐오할 정도로 큰 실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집안에서 가족끼리 식사를 하다가 일어나는 예절과 매너로 해프닝이 일어난다. 밥을 입안에 넣고 이야기하거나 쩝쩝 소리를 내며 아이들과 습관적으로 이야기를 하면 왜 매너를 지키지 않냐며 미국에서 크는 아이들은 어른에게 미국의 매너를 말한다. 반대로 아이들이 밥 먹다가 밥상머리에서 큰소리로 코를 팽 풀면 우리 어른들은 어디서 그렇게 더러운 행동을 하냐며 한국의 예절을 가르치려 한다. 이것이 문화 충돌이 일어나는 단적인 예이다.  


조금  나아가 운전하면서 느끼는 예절과 매너를 보면,


한국에서 끼어들기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거나 미안한 행동을 했을 경우 곧바로 비상등을 서너 번 깜박여주는 게 매너고 예절이다. 만약 진입로 가까이에서 급하게 끼어들기를 시도할 경우, 아니면 시도를 위한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옆 차 바로 앞에 들어섰다면 정말 곧바로 비상등을 켜며 손인사와 함께 백미러로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한다면 곧바로 화가 누그러지는 듯하다.


만약 그러한 손인사나 고마움의 비상등 인사를 하지 않는다면 요즘엔 스커트 폰으로 그 순간을 찍는다거나 심하면 차에 장착되어있는 블랙박스를 돌려 위반장면을 포착해서 경찰에 넘긴다고 한다. 그러면 차선 변경 금지 구간에 들어선 차는 범칙금이 차 주인에게 날아간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다. 손인사나 비상등 인사가 예절의 정중한 표현은 한국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예절에 속한다.


하지만 이곳 미국에서의 운전 매너는 그런데 있지 않다.


끼어들기를 시도하면 웬만해선 끼어준다. 내가 사는 곳이 뉴욕이나 엘에이 정도의 대도시가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급하게 운전을 하지 않을뿐더러 적은 교통량으로 끼어들기를 힘들게 하는 편은 아니다. 아무리 급하게 끼어든다 해도 결코 비상등을 켜서 고마움을 표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왜 저러지? 무슨 급한 일이 있나?를 먼저 생각할 것이다.


또한 끼어들기로 화가 난다해도 결코 싸움을 할 수 없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총기가 자유로운 나라이므로 차 안에 개인 총을 장착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에 결코 차에서 내리는 법은 없을 것이다. 경찰이 온다 해도 내리지 못하는데 무슨 차 시비로....


대신 미국에서 매너를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밤칙금은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 변경을 하는 차에 대해서 범칙금은 주마다 다르겠지만 최소 $100은 넘을 것이고 신호등이 아닌 STOP싸인판에서 서지 않고 그냥 가다가 걸리면 범칙금 뿐만이 아니라 벌점이 어마어마하게 부과된다. 예절을 떠나 매너를 지키지 않는 벌에 대한 관대함은 결코 없다.


한국은 예절을 벗어난다 해도 서로에게 수신호로 고마움을 표시하면 봐줄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지만, 미국은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돈과 시간으로 메꿔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개개인이 알아서 잘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한 번은 아파트 관리실에서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영어를 잘하지 못할 때라 사전을 끼고 해석을 하며 읽는데 처음에는 나의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다. 아무리 읽어보아도 베란다에서 빨랫대에 빨래를 말리지 말라는 내용인데 그 이유가 옷을 밖에다 널어 놓는 행위는 미관상 좋지 않고 특히 옆집에서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기막혀!  베란다에서  옷을 말리는 행위가 비난받아야 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했지만 정말 그 편지 이후로 빨래를 밖에다 널어놓은 집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화장지 휴지를 버젓이 식탁 위에 놓고 사용하는 한국의 문화를 미국 사람들이 이해 못하듯 빨래를 밖에다 널지 못하는 행위를 한국 사람인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개인의 자유를 공동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미국의 자유주의가 마스크 쓰기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 모습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 주는 게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로 인해 대중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끼칠 수 있다면 개인의 자유는 대중을 위해 희생되어야 함이 당연하다고 배운 우리 한국사람들의 눈에는 미국인들의 마스크 거부와 같은 행위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가 중요하다면 빨래를 밖에다 널든 화장실 휴지를 식탁에서 입을 닦든 무슨 상관이냐며 말해야 맞는 건데 이러한 매너가 있다는 건 알다가도 모를 상반된 모순이고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여기에서 근 20년 가까이 살고 있지만 겉으로 소리 내어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차사고가 나면 그 자리에서 큰소리치며 잘잘못을 가리는 한국문화의 동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비해,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미소 띠며 정적이고 조용하게 개인 변호사를 부르는 미국 문화를 어찌 비교할 수 있을까?


그러한 행위들이 관습으로 내려오는 전통이 되었고 생활이 다른 문화로 고착되어 버렸는데 어떤 쪽의 문화가 더 좋다 나쁘다 논할 수는 없다. 그나마 바이든 대통령이 개인의 자유를 잠시 미루고 마스크 쓰는 것을 법으로 행정명령 한 결과,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처음으로 줄었다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러고보니 코를 팽하고 풀고 기침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코로나 없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무슨 예절이고 매너인가? 배부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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