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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May 19. 2021

보이지 않는 invisible,
아시안 아메리칸

하늘을 찌를듯한 높다란 나무가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고 집들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오래된 동네로 이사를 하고 보니 너무도 외딴섬에 사는 생각이 들던 차에 누군가 한국 유기견을 데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다른 종도 아니고 오리지널 진도에서 온 진돗개! 진돗개의 특성상 집안에서 키우는 게 거의 불가능해 우리는 집 밖에서 키우기로 결정하고 일단 아주 큰 개집을 구입하고 보니 그 넓은 정원에서 홀로 묶여있다는 게 여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니었다. 


미국의 거의 모든 개가 집안에서 편안하게 사람들과 친구처럼 뒹구는 모습이 그려지고 또 이미 우리 집 안에는 자그마한 멀티즈가 있었기에 그 광경을 부러운 눈빛으로 보는 진돗개에게 차마 사람으로 할 짓이 못된다 싶을 그때쯤 내 눈에 확 들어온 광고가 있었다.


'INVISIBLE FENCE' , 보이지 않는 울타리


정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게 땅속으로 아주아주 가느다란 전선이 들어가서 전류가 흘러 개의 목에 걸려있는 목걸이로 연결되어 있다. 그 전선의 근처에만 가도 1미터 전쯤부터는 부르르 전기가 통해 엄청난 아픔이 오기 때문에 몇 번의 훈련을 통해 익혀놓으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시스템이었다.


옳거니.. 바로 내가 찾던 그것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이 있다는 훈련만 한다면 개가 아이들과 자유롭게 정원을 뛰어다니 놀 수 있겠구나! 당장 전화를 했다. 이리저리 제 볼 시간이 없었다. 


"Hello, I'm Jina......."

"Can you come to my house..."

"Ok, Thank you..."


능숙하지도 않은 영어 실력이었지만 집 사이즈가 얼마나 되는지 직접 와서 재보고 가격을 알려준다고 아주 착실하고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어 아주 만족스러운 대화로 마무리했다. 드디어 영업사원이 오고 정원 사이즈를 재고 어떤 시스템으로 작동이 되는지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만 작은 난관에 부딪쳤다.


딱 우리 울타리 즉 우리 집을 둘러싼 네모 반듯한 정원까지만 전선을 넣으면 아무 무리가 없는데 욕심을 냈다. 정원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는 곳까지 전선을 넣으려면 옆집과 옆집의 사이로 약 100미터 정도를 깔아야 하는데 난 그 지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아침 등굣길은 이른 시간이라 짧은 거리지만 개와 같이 동행하고 같이 버스를 기다린다면 안전하기도 하지만 얼마나 아이들과 개의 교감에 좋은 일일까? 또한 하굣길에도 우리 진돗개가 버스 스탑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과 만나며 즐겁게 그 길을 함께 걸어오는 상상만 해도 너무도 아름답고 행복한 그림이었다.


당연히 아무 일도 아니니라 생각되었지만, 그 영업사원의 생각은 조금 달랐나 보다. 견적을 내기 전에 옆집에 확인을 받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물론 말은 해야겠지만,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동물을 사랑하는데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얼마나 이뻐했는데... 그리고 땅속으로 들어가는 아주아주 가느다란 전선이라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땅을 파서 깊숙이 심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띄지 않게 감쪽같이 넣는 수준이라 누가 상관이나 한다고...


그래도 뭐 이웃 간의 예의니까 물어는 봐야지!


나랑 영업사원은 옆집 초인종을 눌렀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영업사원이 설명을 했다. 라불라 라불라.. 내가 어설프게 영어로 설명하는 것도 아니고 같은 백인끼리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하는데, 어라? 아주 단호하게 "Nope"이라 말하며 그것도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가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영업사원은 나에게 간혹 이런 이웃도 있다며 속상해하지 말라는 어투로 위로하는데 난 여간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었다. 동네 파티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렇게 오래된 동네에 아이가 있는 동양인이 왔다며 반갑다고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이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일에 단호하게 거절을 하다니... 역시 미국인들은 분명 두 얼굴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그때 그 당시에 했던 거 같다.


결론은 뭐 당연히 버스 스탑까지 전선을 넣지 못해서 우리 진돗개는 아주 멀리에서 아이들이 오는 길을 쳐다만 봐야 했다. 목줄을 메지 않아도 되는 건 분명 자유를 주어 행복했지만 가장 중요한 아이들과 인사하지 못해 그저 꼬리만 바닥을 쓸어야 했던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큰아이와 둘째는 버스에서 졸업을 했지만 여전히 막내는 버스를 타는 나이지만 전선이 없어 슬픈 우리 강아지들과의 안타까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 뒤로도 우리 진돗개는 그 전선을 뚫고 전기를 맞아가며 탈출을 여러 차례 시도했고 그러기를 반복하다 저세상으로 간지 오래된 이야기다.


자, 여기에서 왜 보이지 않은 울타리에 관한 이야기를 이리 장황하게 설명하는지 말해야겠다.


오늘자 미주 한국일보 신문에 '아시안 아메리칸은 영원한 외국인'이라는 주제로 기사가 하나 실렸다. 미국인 42%는 아시아계 유명인 가운데 단 한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백인 1/3은 아시안 증오범죄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다. 더군다나 아시안은 미국보다 자신의 출신 국가에 더 충성하고 2세기가 넘는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아시안 아메리칸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외국인'으로 인식될 뿐이라는 지적 또한 했다.(미주 워싱턴 한국일보 5월 17일 자)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시작으로 BTS가 빌보드 차트 1위로 수주 간 올라가 있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윤여정 배우의 재치 있는 말씨로 세계를 휘잡았다해서 한국은 그야말로 미국 내에서 기세가 등등해지는 요즘이다. 


이대로라면 곧 영화판도 더 흔들고 K팝에서도 세계를 들었다 놨다를 열두 번도 더할 모양인데 아직 미국 사람들은 우리의 성과를 우리의 문화를 모르고 있고 더군다나 아시안 자체에 호감도 없고 아예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을 한다는 이런 기사를 정말 믿으라는 건가?


여기서 주목할 점은 Indivisible 이란 말이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처음에 내가 만난 이 단어는 보여서 경계를 만드는 울타리가 아닌 경계가 눈에 보이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어서 좋은 단어였고 보이지 않게 숨겨서 음산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을 거 같아서 손뼉 치며 좋아라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이지 않기에 관심도 없고 보이지 않기에 없어져도 된다는 숨은 의미로 쓰일지 몰랐다. 


개 때문에 미국인의 민낯을 직접적으로 보았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우리의 인권을 보이면 안 되는, 고개를 들어도 다시 땅속으로 넣어버려야 한다는 암묵적인 단어로 우리 아시안 아메리칸을 상징한다니 나는 그리고 우리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나는 숨어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드러나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랐고 나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숨어서 살기를 원치 않는다. 숨어서 살아야 할 만큼 못나지도 않았고 그런 죄를 지은적도 없고 숨어서 살만큼 약한 사람들도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아시안 특히 한국인들은 절대 숨어서 사는 조용하고 착한 사람들이 아니다. 어느 민족보다 훌륭하고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김구 선생님이 남기신 말이 있다. 


"...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아무것도 없었던 그 당시엔 씨도 안 먹히는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춤추며 노래하는 걸 좋아하는 기마민족이고 그러한 노는 문화가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세계에 우뚝 서 이제는 세계의 미래를 이끄는 그야말로 김구 선생님의 뜻대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하는 날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될 만큼 성장했다. 실로 대단한 한국이다.


그런 우리를 두고 아시안을 싸잡아서 아시안 아메리칸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외국인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기사는 울분을 터트리기에 충분했다. 숨겨 놓아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나를 주장하면 즉각적으로 내 목을 전기로 부르르 떨게 하는 'INVISIBLE FENCE'처럼 아시안 아메리카의 운명도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여실히 알게 된 씁쓸한 기사였다.


보이는 Visible 아시안 아메리칸이 되기 위해선 우리의 단합된 목소리가 필요하다. 


이러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극복하긴 위해서는 먼저 아시안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인종차별적인 처우를 지속적으로 다른 커뮤니티와 연대에 의회를 상대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교육하는 과정에서 아시안 이민자의 사례를 공유하고 우리가 미국 사회에 얼마나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지,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한 부분이라는 걸 강조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아시안 아메리칸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외국인이라 외면하고 한국에선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들여야 한다며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을 떠나 세계 어디에선가 열심히 한국인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 충성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에서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말로 외면받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영원한 이방인이 되었다.


가정에서 행복을 듬뿍 받은 아이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가정환경이고 가정교육이라고 배웠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내가 태어난 한국, 내가 먹고 자란 한국인으로서의 강한 긍지를 한국 밖에서 그 향기를 내뿜으려면 지속적인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어야 한다. 


한국을 떠난 것이 한국을 저버리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을 떠나보니 한국인임을 더욱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인들이 보내주는 따뜻한 시선만큼 세계에 나가 있는 한국인에게는 더욱 큰 힘이 되어 줄 것이고 세계 속에서 보이지 않는 Invisible이 아닌 보이는 Visible인 사람으로 그 사회를 이끄는 한국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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