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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ug 11. 2021

미국에서 중3 로맨스는,

우리 집에 드디어 로맨스가 찾아왔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했던 막내아들의 첫사랑이다.


아이를 키우는 집의 공통사중의 하나는 누가 우리 아이와 데이트를 할 것인가일 것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 시절도 더 올라가 우리 엄마 시절의 연애는 숨죽이는 만남을 해야만 했고 행여나 동네 어른들한테 들킬세라 쥐도 새도 모르게 만나야 했다. 물레방아 뒤편 위 음습한 곳에서나 우물가 뒤 숲 속에서의 은밀한 만남이었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스릴 있고 짜릿했을까?


지금처럼 대놓고 만남을 축하해주는 상황에서는 그런 은밀하고 숨죽인 비밀의 맛은 없으리라. 나만해도 1여 년은 가족 모두에게 나의 연애를 비밀에 부쳤고 그나마 친구에게 깊은 속내를 말하는 비밀스러운 자리에서 비난과 그녀들만의 판단기준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감내를 했었다. 그러니 부모의  판단은 오죽했으랴. 그러했으니 나의 판단이 객관화되지 못하고 한마디로 갈 때까지 간 상태에서 공개를 하게 되고 공개한 후에는 이미 상황 종료.. 그대로 결혼을 해야 했다. 에고 너무 고루하고 진부한 성인이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굳이 했다. 나도 늙었나 보다. ㅎㅎ


암튼 우리 막내아들이 한국으로 치면 중3이다. 


여기에선 하이스쿨 'freshman'이다. 고등학교가 3년제가 아닌 4년제이기도 하고 한국처럼 1학년이나 2학년이란 말을 좀처럼 쓰지 않고 보통 Freshman, sophomore, junior, senior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9th, 10th,,,12th grad라고 한다. 이는 대학생도 4년제라 같은 호칭을 쓴다. 그래서 우리 막내는 현재 freshman, 9th grade in high school에 다니고 있다. 즉 한국에선 중3학년에 해당되는 지극히 평범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고 그나마 북한도 무서워 한다는 중2는 간신히 지난 셈이다.


우리 아들로 말할 거 같으면,


어릴 때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 단체로 하는 운동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남자애들이 흔히 하는 태권도를 4살부터 시켰는데 혼자 도장으로 들어가지 못해 결국 5살 많은 누나의 손을 잡고 시작을 했고 검은띠를 딸때까지 누나의 손을 놓지 않아 나란히 검은띠를 거머쥐는 행운(?)을 얻었다. 플래그 럭비라는 미국에서 어린아이들이 흔히 하는 운동도 미국 아이들의 덩치에 밀려 필드에 나가지 못해 내 치마꼬리를 잡고 주저앉는 아이였다. 


그래서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 운동인 수영이나 골프를 아주 오랫동안 홀로 운동을 해야 했다. 그랬던 아이여서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더랬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 시대지 않은가? 작년 3월부터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은둔생활을 한지 거의 1년 하고도 반년이 지난 시점이고 고등학교를 들어갔다지만 학교 구경도 못해봐서 학교가 어떻게 생겼나 알지도 못한데 무슨 여자 친구? 


그랬는데 한 두어 달 전부터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처음엔 누나들이 말해 주었고 다음에 아들 입에서 수줍어하지도 않고 당당히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헐... 혼자 필드에 들어가지도 못해 엄마 치마꼬리만 잡고 주저앉아 풀만 뜯던 그런 어린아이는 어디 가고 이리 당당히 자신의 여자를 그것도 자기가 먼저 고백하며 사귀자고 말했다니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멋져 보이는 이유를 난 잘 모르겠다.


얼굴에 털이 나고 면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로맨스가 시작되었지 싶다. 


코로나 시대기도 하고 앞에서도 말했듯이 말만 고등학생이지 학교 구경은커녕 친구 얼굴도 모르는데 어찌 여자 친구가 생겼나 의아했다. 성격적으로 신발 신고 어디 돌아 뎅기는 활발한 성격이 아니라서 운동화 1켤레 슬리퍼 하나가 전부인 머리 덥수룩한 모습으로 집안만 어슬렁거리는 아이였고 기껏 친구들과 컴퓨터로 잠깐 게임이나 하는 정도고 집 밖이라고는 메일박스까지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게 하루의 걷는 총양인 지긋히 느림보 사춘기 소년이었다. 


거기다 사춘기랍시고 말도 거의 없고 밥만 주면 엄마로서의 임무가 끝날 거 같은 요즘이었다. 그래서 아주 편한 코로나 시대 사춘기 아들 키우는 맛이 나는 시절이었다. 아이가 학교에도 안 가고 집에서만 뒹굴어 남들은 애들과 싸우는 게 일이라며 빨리 코로나가 끝나기를 기원한다고 하는데 나는 영 반대급부 부모였다. 학교에 안 가니 나 또한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고 도시락을 싸지 않아도 되고 모든 레슨이 줌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절대적인 라이드도 할 필요가 없고 나갈 일이 없으니 기본적인 생필품도 필요 없고... 도무지 좋지 않은 일이 없다.


문제는 이런 생활 반경에서 어찌 여자 친구가 생겼느냐가 관건이다. 


중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다고 한다. 말로는 여자 아이가 먼저 좋아한다고 친구들을 통해 들었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 같은 나이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더 높다 보니 사랑의 감정 또한 더 빨랐지 싶다. 그때는 몰랐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우리 아들도 여자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그래서였는지 먼저 직접 좋아한다고 말했고 사귀자고 말했다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남자가 먼저 사랑고백을 해야 순조로운 만남이 시작되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도 우리 아들이 먼저 사랑 고백을 했음에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좋아한다고 말한 거야? 만나지도 못했으면서?' 우리 아들은 나를 약간 비웃듯이 웃으며 대답한다. '페이스톡' 아.. 그러니까 휴대폰 화면을 보고 사랑고백을 하고 사귀자 말을 하고 상대방도 화면을 보며 대답한다. 나도 그러겠다고..


한 달이 되었다며 기념 파티를 한다고 야단이었다. 그것 또한 페이스톡으로... 그러다 첫 데이트를 한다고 공표했다. 수줍음이 전혀 없다. 첫 데이트답게 꽃과 데이트 코스를 정해야 한다며 어떤 꽃을 여자들이 좋아하는지 하루 종일 인터넷 서치를 하고 누나들에게 데이트 코스를 코치받고 아빠에게도 어떻게 할지 진지하게 의논한다. 덩달아 우리 식구 모두 그 여자아이에게 초점이 맞춰져 그 아이의 얼굴을 사진으로 뜯어보며 어떤 걸 좋아할지 성향이 어떨지 살펴보느라 한나절이 갔나 보다.


드디어 첫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우리 가족은 무슨 첫 전사에 다녀온 후기담을 들으려는 듯 잔뜩 호기심 가득해 물으니 대답은 '좋았어' 딱 한마디다. 역시 남자는 남자다. 여자 같으면 그 애가 뭘 입고 왔고, 뭘 먹었고, 무슨 이야기를 했고 라불라 라불라 정신없이 업데이트하느라 여념이 없었을 텐데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남자의 성향은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참으로 간단하게 호기심을 차단해 버렸다.


우리에게 막내의 로맨스는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한데 아들은 참으로 쿨하다. 

'지금도 그렇게 좋니?' 물으면 그저 

'응 좋지..

'오늘도 전화했니?' 물으면

'' 한마디고 혹여나 

'무슨 이야기를 그리 오래 하니?' 물으면 

'그냥' 이란다. 그러다 아빠가 한방 먹은 일이 생겼다. 아빠는 유머가 많은 사람이라 이렇게 놀렸다. 

'00 얼굴이 별로라고 하던데.. 이쁘니?' 물으니 아들은

'이뻐' 또 아빠가 한술 더 뜬다. 

'그럼 00이 이뻐? 엄마가 이뻐?' 아들이 아빠를 어이없게 쳐다보며 

'아빠는 엄마가 이쁘지? 나도 그래..' 아빠가 헉하고 쓰러졌다. 우리 모두 깔깔거리다 쓰러졌다.ㅎㅎ


그렇게 한마디로 간단명료하게 대답하는 녀석에게 가장 크게 변한 게 하나 있다. 사춘기가 오면서 목소리 변성기가 가장 빨리 오더니 그 누구보다도 저음의 소유자가 된 지 오래다. 외출도 싫어하고 대답하는 것도 귀찮은 사춘기 소년의 대답은 항상 조용히 그리고 깊숙한 울림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저음으로 유명해서 그저 '네....' 했었었는데 갑자기 소리가 높고 밝아졌음에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금은 '네?' 소리가 크고 밝고 경쾌하고 높아졌다.


아,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여자 친구가 한국말을 아주 잘한단다. 그 이유로 내 아들도 한국말에 조금 더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말을 못 하지는 않지만 깊이 있는 말은 못 알아들었고 읽기는 가능하지만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가 영어는 무슨 문자든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을 헤아리기에는 어려움이 있듯이 우리 아들의 한국어 실력도 비슷하다. 그랬는데 이제는 영화도 한국영화를 좋아라 하며 보기 시작했고 영역을 넓혀 한국 드라마도 보기 시작했다. 이 모두가 그 여자 아이의 덕이다.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다 여자 친구의 생일이 왔다. 


미리 아마존으로 생일 선물을 여자 친구의 집으로 보냈단다. 멋진 생일 카드를 사고 아들이 잘하는 그림으로 여자 친구의 캐릭터를 만들어 준비했단다. 그리고선 라이드를 부탁했다. 난 당연히 흔쾌히 허락했다. 그날 아침 꽃을 골라 달라고 해서 핑크색 꽃들이 가득 담긴 꽃다발을 골라주니 계산은 아들이 직접 하더니 집 앞까지는 말고 엄마는 멀리 주차장에 있으란다. 꽃만 전해주고 온다고..


난 설마 꽃만 주고 나올까 싶어서 혹 늦게 오게 되면 전화를 하라고 당부하고 여자아이의 얼굴이라도 한번 몰래 볼 심상으로 멀지만 가까이 차를 주차하고 아들의 행동을 훔쳐보기로 했다. 아들은 집 앞 계단에 꽃다발을 놓고 진짜 뒤로 물러서 있다. 2층 창문이 열리더니 그 아이가 손을 흔들어 보이더니 이내 사라진다. 그러더니 현관문이 열리고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 갑자기 여자아이가 돌층계를 마구 뛰어 내려오더니 우리 아들에게 퍽하니 안긴다. 아들은 팔을 벌려 여자를 힘차게 안더니 둘이 같이 머리를 파묻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한다. 그리고선 곧바로 여자는 뛰어 올라간다. 얼굴은커녕 실루엣 보기도 실패다. 아들은 휙 돌아 전화를 한다. 


'엄마 어디야?'


멀리 있는 척 잠시 후에 돌아가 아들을 태웠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궁금해 미치겠는데 물어보지는 못하겠고, '왜 벌써 나왔어?' 물으니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오늘 생일이니까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말했는데 허그해 달라고 해서 안아줬어' 마치 내가 엿보고 있는 걸 아는 것처럼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순식간에 여자아이를 안듯 순식간에 말을 해버린다. 나는 뭐라 말할 수도 없이 '어 그랬어?' 하고 속으로만 피식 웃었다. 


하지만 라테는 말이야~ 하며 말하고 싶은 게 있었다. 공개연애 탓에 몰래하는 연애의 스릴은 없겠지만,


'엄마는 그 시절 그러니까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만 아니 피아노만 치느라 연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해서 뭐라 해줄 말은 없는데, 엄마는 우리 아들이 너무도 부럽구나. 사춘기 시절은 가슴이 활활 타는 무풍지대로 예전엔 그런 말을 했었지.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매일매일 사고의 틀이 깨지고 뒤틀어지는 한마디로 망둥이에 망아지처럼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르는 시절이야. 이런 시절, 이런 나이는 절대 다시 오지 않아. 힘껏 너의 생각과 너의 행동을 펼치렴. 지금처럼 사랑도 열정적으로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아들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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