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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Oct 14. 2021

고맙다, ‘오징어 게임’

미국에서 당당히 도시락을 먹는 아들을 보며~

개인적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넷플랙스가 집안으로 들어오고부터.. 아니다. 스마트 TV로 바꾸고부터는 노트북보다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다. 한가로운 저녁 시간에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 도중 넷플랙스 인기 1위 ‘Squid Game(오징어 게임)’이라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제목이 아주 별로였다. 외국 사람들은 물컹거리고 미끄덩거리는 오징어를 싫어한다는 말을 익히 들어서인지 오징어로 게임을 한다고? 하필 왜 오징어일까? 오제미 게임도 있고 그 흔한 사다리 게임도 있는데 왜 하필 오징어 게임일까? 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메인 샷도 장난스런 문구로 SQUID GAME이라 쓰여 있고 무서운 아기 인형이 전체 화면를 메우고 있어 마치 괴기 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만화 같은 이미지라 시선을 압도하는 비주얼도 아니었다.


드라마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만 몰랐을뿐 세계인들은 한참 오징어 게임에 열광하던 시간이었는데) 한국 드라마가 1위라니 흥미로워 채널을 고정시켰다. 첫 장면은 핸섬하고 말끔한 이정재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찌질한 중년 아저씨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뒷골목에서 주먹도 제대로 쓰지 못할 거 같은 부하 쫄다구니로 나오는 모습에 일단 놀랐다. 한국의 멋진 빌딩 숲과 잘생긴 배우를 타국에서 기대했건만 이건 너무도 못 사는 동네에서 가장 못난 모습의 아저씨가 한국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1위를 하다니...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그것도 모자라 곧이은 잔인한 폭력!!! 나에게 가장 싫어 사는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라고 말할 정도로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장면을 극도로 싫어한다. 마치 감정이 이입되어 어찌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손을 쓰고 맞고... 아!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장면이다. 곧바로 STOP을 눌렀다. 나는 지나친 비 폭력주의자다.


그러다 딸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 오징어 게임 봤어요?"

"오징어 게임? 너도 봤어? 왜 봤어. 그런 걸..".

"엄마, 무슨 말이에요? 지금 미국이 한국의 오징어 게임으로 난리가 났는데요?"

"헐... 엄마는 너무 이상한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너도 재밌던?"

"응 엄마, 너무 재밌지... 엄마 기억나요? 한국에서 제가 어릴 때 뽑기 하다가 손등 데어서 지금도 마크가 있는 거? 얼마나 맛있었는데요. 매일 학교 끝나고 달려갔는데... 드라마에서 그거 나와서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내 친구들이 뽑기 하는 거 아마존에서 사서 내 집으로 가지고 와서 같이 만들어 먹었어요. 호호호"

"어머나 진짜? 엄마는 폭력이 나오자마자 돌려버렸어. 아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 같았거든"

"엄마, 꼭 봐야 해요. 너무 무서우면 아빠랑 꼭 같이 봐요. 요즘엔 오징어 게임 보지 않으면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아요. 엄마 꼭 봐요. 꼭!!"


이렇게 어부지리로 다시 보기 시작해서 마지막 9회까지 완파했다. 물론 하루에 몰아보기는 쉽지 않았지만, 삼사일에 걸쳐 9회 모두 그야말로 한마디 대사라도 놓칠세라 귀기울이며 자세히 보게 되었다. 와! 그야말로 대박인 드라마였다.


그전에 '인간 수업'이라는 청소년 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인간말종의 모습을 적나라하고 잔인하게 보여줌으로써 힘들게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자아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드라마였다. 어느 사회에서나 빈부격차가 없을 수 없고 가정생활과 교육환경이 똑같을 수 없기에 이런저런 이야기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때도 우리 아들 나이에 한국의 모습을 보고자 폭력적인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가리며 봤던 드라마였다.


이번 오징어 게임도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결국은 돈과 결부될 수밖에 없고 돈과 목숨을 맞바꿀 수 있다는 즉 돈을 향한 인간 본성의 밑바닥을 가감없이 보여줌으로써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또 그 이면에는 그래도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도덕성에 기반을 둔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드라마라 볼 수 있다.


자, 여기에서 미국에서 바라본 오징어 게임의 시각을 말하고자 한다.


내 딸의 친구들이 물어보았다고 한다. 정말 한국에는 그렇게 많은 게임이 있냐고? 뭐든 게임으로 시작해서 게임으로 끝이 나는 나라가 한국이냐고, 한국은 정말 재미있고 재치 있는 나라라며 자기들도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한국에 가면 그렇게 재미난 일들이 있을  같다고, 마치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 순간이 게임이고, 게임하면서 유쾌하게 노는 문화인 양 말한다고 한다. 내 딸도 웃으며 맞다고 한국이 그렇게 재미있는 나라고 게임이 정말 많은 나라라고 맞장구를 쳤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막내아들에게도 물었다. 너는 학교에서 무슨 게임을 하냐고 물으니 휴대폰이 없다면... 줄넘기나 농구 같은 운동을 했다고 대답했다. 아 맞다. 우리 시대는 밖에서 아무런 도구 없이 그저 돌멩이 하나로 놀아야 되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했던 놀이문화가 지금은 핸드폰이 생활화되어 인터넷 게임을 할 수밖에 없구나!


우리 때는 게임이 아니라 놀이였다.


고무줄 치기, 공기놀이, 구슬치기, 작대기 놀이, 땅따먹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너무도 많아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놀이가 무궁무진했다. 더군다나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아이들의 놀이 문화가 개발되고 널리 유행되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놀이가 아마 수천 가지가 넘을 것이라 예상해본다. 우리의 놀이는 무궁무진했다.


좁쌀이나 마른 콩 같은 곡식을 낡은 천에 넣고 둥그렇게 말아 꿰매어 주면 그걸로 친구들과 편을 갈라 다른 편에 던지고 그 공을 맞은 상대가 선 밖으로 나가고 남아 있는 수가 많은 편이 이기는 오제미 놀이도 생각이 난다. 어린아이들이 맞으면 아플까봐 엄마들은 머리를 써서 먹을게 귀했음에도 불구하고 곡식을 놀잇감으로 만들어 주신 지혜도 엿보인다.


고무줄놀이 또한 기다란 고무줄 하나로 단체게임이 가능한 놀이다. 왜 여자들의 전유물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린 여자 아이들이 폴짝폴짝 뛰며 양옆에서 돌리는 줄에 걸리면 아웃인 너무도 단순한 게임이지만 키 크는 운동의 최고이자 단체로 뛰며 놀기에 이만한 운동게임이 또 있겠나 싶을만큼 시간과 공간과 비용 대비 최고의 골목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자. 돌멩이 하나로 노는 게임도 살펴보자. 일단 돌멩이로 땅바닥에 직사각형을 그린다. 오징어 게임처럼 생겼지만 이건 사각형만으로 이루어진 게임인데 1부터 10까지 숫자를 넣고 그 숫자에 돌멩이를 던져 외발로 건너며 던져진 숫자를 건너뛰기 해서 끝까지 선을 밟지 않고 건너면 이기는 게임이다. 이것 또한 숫자 개념을 익히며 몸의 균형 감각을 익힐 수 있는 운동을 겸비한 놀이라고 볼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 이제는 단순한 놀이를 떠나 문화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 도시락이라고 하면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도시락통에 밥과 반찬을 담아가는 걸 도시락의 개념으로 알고 있지만 여기 미국의 도시락 개념은 샌드위치가 전부라고 말할 정도로 따로 각자 포장되고 낱개로 되어있다. 꼭 미국의 개인주의를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도시락이다.


요즘은 한국 학교 급식이 영양 균형에 맞는 훌륭한 도시락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 미국은 점심 급식이 아주 형편없다. 기껏 피자나 치킨너겟에 음료수가 전부다. 그것도 따뜻한 것도 아니고 차가운 빵조각에 원래도 느린 민족성으로 줄을 기다랗게 서야 하는 수고로움까지 합쳐져 우리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에 아직 먼 이야기다.


그랬기에 차가운 피자보다는 나은 샌드위치로 점심을 가져갔던 우리 아이가 먼저 변했다. 빵보다는 밥돌이인 아들이 혹시나 동양 아이가 음식으로 튈까 염려스러워 밥도시락이 절대 금기였던 일이었는데 조그맣고 납작한 도시락통에 하얀 밥을 먼저 깔고 그 위에 계란 프라이 두 개와 햄을 튀겨 올린다. 김치처럼 냄새나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많이 발전한 셈이다. 여기에 도시락 김이나 작은 참치 캔을 넣어주면 점심 한 끼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는 셈이다. 학교에서 나오는 차가운 피자나 샌드위치에 비할 수 없는 우리 한국식 도시락을 이제는 부러움 가득한 눈빛의 밥으로 변모하고 있는 중임을 실감한다.


오징어는 바다에서 사는 작은 생물이지만, 오징어처럼 우리에게 다양한 음식을 제공하는 먹거리는 없을 것이다.


 잡아 올린 오징어는  자리에서 회로 먹고, 무를 숭덩 썰어 넣으면 국물이 시원한 찌개가 되고, 오징어순대처럼 모양 그대로 살려 보기에도 좋고  만점인 음식이 되기도 하고, 매운 덮밥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며, 바닷 바람에  말린 오징어가 심심풀이 간식거리나 어른들 술안주에도 그만이고, 짭짤하게 고추장에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리면 밥반찬에도 좋다. 정말이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먹을  있는  바로 오징어다.


또한, 오징어는 우리가 아주 가난했던 시절부터 먹었던 서민 음식 중의 하나다. 그만큼 저렴하게 먹는 음식이기에 아이들에게도 친숙해서 놀이에까지 적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적어도 미국에서는 앞서도 말했지만 아주 싫어하는 생물 중의 하나다. 오징어 요리를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기껏 한치를 잘라 튀김으로 만든 깔라마리(Calamari) 하나 정도다. 이렇게 소극적이었던 오징어가 새로운 시각으로 미국에서 받아들여지고 누구나 따라 해보고 싶은 게임이 되었다니 한나라의 문화가 주는 파급효과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오징어를 먹거리가 아닌 무서운 게임으로 하나의 콘텐츠가 되어버려 피자나 햄버거 같은 음식이 아니라 BTS 기생충 같은 하나의 단어로써 기억되고 그렇게 쓰일 공산이 큰데 이왕이면 이번 기회에 오징어 요리가 대중화되어 한국처럼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해본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우리의 문화가 나오게 될지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고 오히려 다음엔 어떠한 콘텐츠로 놀라게 할지 세계인들은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자랑스럽다. 우리 한국!!


PS: 딱 한가지 서운한 점이 있었다. 6게임중 5게임 모두 게임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정도로 단순해서 누구나 보면서 쉽게 이해되는 스토리 구성이었다. 마지막 게임을 하이라이트로 남겨둔 상황에서 클라이막스를 기대했던 게임이 바로 오징어 게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 두명이 오징어 게임의 법칙에 대한 설명이나 장면없이 두사람의 몸싸움으로 승부가 난듯해서 아쉬었다. 오징어 몸통 안에서는 두발로 다니며 밀쳐낼수 있지만, 몸 밖으로 나가면 외발로 다녀야하고 중앙에 있는 직사각형 안에서는 자유로 다닐수 있고 양쪽 동그라미 안에 먼저 도달해 ‘만세’ 를 외쳐야 이긴다는 게임의 법칙을 알아야만 극의 흐름을 더 이해할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써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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