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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ug 07. 2020

검은 구름이 보이면,  여지없이 비가 내린다

이 장마철에 여행을 떠났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에 있을 때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생김은 무엇 때문일까? 다른 해에 비해 이번해는 불볕더위로 심각하게 더울 거라는 예상을 했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장마가 길어지고 하늘에 구멍이 뻥 뚫린 것처럼 서울과 경기도권 그러니까 중부 쪽에 물폭탄이 떨어졌다. 더위와는 상관없는 홍수로 나라 전체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코로나로 외국여행이 거의 금지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그나마 국내여행이 대세가 되어 모든 호텔이나 이름난 여행지의 숙소가 마감이 되어버려 어쩔 수 없이 유명하지 않은 곳 그러니까 전라도 그것도 한옥집 숙소가 만만했다. 한옥집이니 호텔처럼 럭셔리를 동반한 편안함은 포기해야 할 것이고 유명한 곳이 아니니 시설이나 교통은 거의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마음을 단단히 잡고 떠났다.



처음 간 곳은 전라도 완주 한옥마을이었다.

에어비앤비로 사진과 리뷰를 확인했다. 사진은 한옥으로 지어진 단아한 집이었고 시골이지만 깔끔할 거 같은 느낌이었다. 리뷰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딸은 만 두 살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가끔 한국에 와 여행을 하고 친척집에서 기거는 했지만 시골 한옥집에서 자면서 느끼는 한국의 맛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일을 해주고 싶어 옳거니 잘되었다 싶었다.


장마철이기도 하지만 이재민이 발생하는 과정이라 여행을 떠나기 전에 지인들의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을 가기전 그저 딸과의 여행에 즐거움을 얹어 제발 중부지방을 떠난 아랫지방에는 비가 오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출발했다. 역시 하늘은 우리를 도와주었다. 외출을 자제하라는 뉴스에 귀를 억지로 닫으며 출발했는데 우리를 응원이라도 해주는 듯 서울에 빠져나오는 톨게이트까지가 거의 죽음으로 막히는 길이 그야말로 뻥 뚫려있어서 역시 이럴 때 여행을 가야 한다는 말이 맞는 듯 즐거웠다. 그래도 날은 흐렸다. 그러다 전라도선으로 들어서는 순간 언제 하늘이 흐렸나 싶게 정말 하늘이 너무도 맑게 개어있었고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는 듯이 고속도로가 깨끗하게 말라있었다. 야호!!


나지막하게 늘어선 나무들이 허하게 쭉쭉 위로만 뻗어있는
미국 나무와는 대조적이다


매번 그래도 바다지! 하며 갔던 부산이며 제주도의 위용이 한순간에 무너진 산과 계곡의 잔잔함에 반하고 나지막하게 늘어선 조그마한 나무들이 길 양쪽으로 줄지어있는 나무들이 허하게 쭉쭉 뻗어만 있는 미국 나무들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정겨운 낮음이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한 자연이 될 줄이야. 그저 하늘로 뻗어있는 미국 사람처럼 키 큰 나무만 보다 낮고 자그마하고 수줍게 피어있는 나무들이 편안함을 줄지는 상상하지 못한 덤으로 느낀 한국의 따뜻한 맛이었다.


자그마한 계곡도 지나고 겨우 한길로만 마감된 좁은 길도 지나고, 둑처럼 계곡을 막아 산책로를 낸듯한 작은 마을도 지나며 완주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먼저 100년이 되어 벼락을 맞아 누워버린 나무가 멋스럽게 우리를 맞이했다. 누워있는 나무도 이상하게 멋스럽게 장식이 되어 마치 지금도 한쪽에선 생명을 이어가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가만 보니 나무에 뻥 뚫린 구멍 사이로 넝쿨을 심어 나무 안에서 인위적으로 나뭇잎이 나오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죽은 나무에서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즐거운 눈요깃감이고 번득이는 아이디어였다.


벼락 맞아 누워버린 나무가 우리를 생명 있는 나무로 맞이했다


그 옆으로 기역자 한옥이 한채 앉아있는 모습이 내 어릴 적 추억의 집으로 빠져들게 했다. 그 옛날 나의 아버지는 기역자 일본집을 손수 지으셨고 황토흙으로 벽을 바르고 길게 마루를 방마다 연결되게 지으셨다. 일본식이라 마루 끝에 유리문을 닫아 대청마루 느낌은 없었지만 길게 뻗어있는 마루는 지금의 한옥과 닮았다.


그런 추억으로 잠시 빠져들 때쯤, 지금의 집과 집의 경계를 짓는 벽이 허물어져 버린 형태에선 굳이 대문이라는 개념이 없어져버렸지만 대문을 통해 보이는 폭포가 어이없을 만큼 멋진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문의 문턱이 보통은 반듯한 일자로 되어있을 법한데 어라? 살짝 밑으로 휘어진 굵은 나무로 되어있다. 자세히 보니 일부러 깎은 나무는 아니고 자연적으로 휘어진 나무를 대문의 발받침으로 이용했다는 점이 신의 한 수였다.


대문에 발을 내딛는 발판이 휘어져있다 난 이 모습에 감탄했다


한옥의 마루에서 대문의 휘어진 바닥이 붕 떠있는 사각 형태에서 문을 열어놓은 대문 밖의 폭포수는 음... 이태백의 무릉도원이 부럽지 않아 시 한수를 읊어야만 하는 그런 풍경이요, 장녹수가 시 한수를 구슬프게 읖어야만 될 거 같은 한오백년의 역사가 훅 뒤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내가 장녹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시인이 되어 한 줄의 시 한자락 연상되어야만 될듯한 느낌이 그저 아쉬웠다.


방마다 방의 이름도 한글로 그럴듯했다. 우리가 묵는 방은 얼쑤채였다. 얼쑤!! 맞다. 상대방의 노래를 들으며 혹은 즐거운 말에 장단을 맞출 때 쓰는 장단음이 얼쑤인데 참 정겹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한글말이라 더욱 반가운 이름이었다. 얼쑤 채에 들어가니 어라? 이층으로 되어있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오피스텔의 이층으로 되어있는 구조였다. 오픈된 이층이라 아래에서 이층이 보이면서 반만 오픈되어있는 시원한 반 이층 방이었고 특이한 건 천정이 서까래로 마감되어 옛스럽고 멋지게 보이고 이층의 난간도 한국 전통의 나뭇결을 살려 멋있게 보였다.


겉은 완전히 한옥이지만 실내의 시설은 현대식으로 인테리어를 해서 에어컨이 설치되어있고 화장실도 호텔식으로 잘 되어있었다. 한옥이지만 실내는 요즘 아이들에게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시설이라 좋았다. 중부지방에는 장마가 들이치는 어려운 상황인데 우리는 별을 헤아리며 마루에 앉아 희덕거리는 죄스러운 마음조차 들었다. 거기에 달밤에 누군가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여 우리 모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알고 보니 지하 암반수라나 뭐래나... 장마만 아니었으면 수영복이라도 준비했을 터인데 아쉬운 순간이었다.


방음이 잘되어 새소리에 잠을 깰리는 없는데 눈을 떠보니 밝은 아침이었다. 장마철은 커녕 너무도 맑은 하늘이 한옥의 창문에 빛을 비추고 있었다. 새소리가 어렴풋이 나는듯했다. 예쁜 주인분이 마루에 걸터앉아 아침인사를 하고 둑방길의 산책로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전라남도 보성으로 향했다.



길을 나서는데 검은 구름이 살짝 맑은 하늘을 가리는듯했다.

검은색은 아니더라도 살짝 검게 그을리는듯한 회색 비슷한 어두운 구름들이 어디선가 밀려오는 듯했다. 여지없이 빗방울이 한두 방울 차 창문을 두드렸다. 비가 내리고, 쏟아지고 비상등을 켰다. 비상등에 차 양쪽 등이 연속적으로 깜박이고 점점 세찬 빗줄기가 강하게 내리더니 앞뒤 구분 없이 정신없이 내리쳤다. 아! 이런 게 장마이고 시간당 100미리가 내리면 위험할 수도 있겠구나 싶으니 당황스러웠다. 검은 구름은 여지없이 비가 내린다는 말은 진리였다.


실은 우리 인생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검은 구름이 비를 몰고 오는 것은 자연이 말해주는 여지없는 100% 확률이지만, 인생의 먹구름은 100%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생을 걸을때 먹구름으로 예측을 하고 비를 피하고 대비하고 그리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무섭지만 예측 가능했던 검은 구름이 인생에 비해 얼마나 정직한지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 강한 비가 내리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에 도착했다. 보성 옆 꼬막으로 유명한 벌교에서 꼬막으로 지친 배를 채우고 역시 한옥집으로 근사한 춘운서옥이라는 한옥카페에서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참 보성 가기 전 남원의 하정동 커피점에서의 커피는 연달아 두 잔을 마실 수밖에 없었던 황홀함을 잊을 수는 없겠다.


하정동 커피는 이름에서 주는 정직하고 장인정신이 뚜렷할듯한 인상이 그대로 묻어난다고나 할까?

남원에 위치해 있고 일제시대 때 은행이었다는 이 건물은 1940년에 건축되었다지만 손질이 잘되어있어서인지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았다. 일단 세모로 뾰족한 지붕모양에 양쪽으로 멋지게 서있는 소나무에 반할 것이다. 들어가면 천정이 오픈되어있고 천정 구조가 트러스식이라 오래된 일본식 건축 구조물과 대면하게 된다. 무엇보다 커피의 진한 향과 진한 맛에 반하게 될 터이니 춘향이의 도시 남원에 간다면 반드시 들려보아야 할 곳이라 생각된다.


이름도 멋진 하정동 커피숍이다 양옆의 소나무가 역사의 흔적이다

 

진한 커피맛을 아쉽게 뒤로하고 보성에서 유명한 골망태 펜션을 갔다. 너무 오래되어서인지 아니면 비가 많이 내린 숲 속이어서인지 아니면 완주 한옥의 깔끔함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인지 산 위에 골방태 모양의 멋진 정경만큼 실내가 깔끔하지도 시설이 좋지 않음에 살짝 실망을 남겨 아쉬웠다. 하지만 장마의 위험에서 산사태가 없다는 것만으로 안도하고 허리가 아픈 어설픈 잠을 자야했다. 새벽공기의 어슴프레하고 눅눅한 습기에 잠에서 깨고 서울로 향하는 중간, 이천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립 이천 호국원은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시는 곳이다.

남편은 한국에 오자마자 인사를 하러 가는 곳이지만 한치 걸러 두치라고 나에게는 시댁 식구임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살아생전엔 그리 아버님을 좋아하고 돌아가시고도 그립다 말은 하면서도 한국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도 인사를 가지 못했다. 중부지방에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장마라 상황이 어떨지 몰랐지만 일단 이천으로 네비를 찍었다.


전날까지도 중부에 홍수가 나서 이재민이 발생하고 대피를 하고 가는 길에 물이 불어 흙더미가 여기저기 무덤을 이루고 있었다. 기록적인 홍수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이런 난리통에 누가 여행을 한답시고 길을 나서겠는가? 오로지 철없는 우리 모녀와 언니만이  넓은 길을 차지하고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이천 호국원 주차장에 우리 차만 덩그러니 주차를 했다. 꽃을 파는 가게 아줌마들은 우리를 보니 반가운가 보다. 아무도 없다가 우리가 들어오니 자기의 꽃과 제수용품을 사라 여기저기서 손짓했다. 비가 온 뒤라 하늘이 너무도 맑았고 나라에서 관리하는 곳답게 돌아가신 분들을 예우하는듯, 보이는 모든 곳이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손질되어 있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시고 그 보상으로 나라에서 마련한 이런 멋진 곳에 계시고 그 후손은 이런 근사한 곳으로 인사를 오고.. 이런 것까지 감사를 드리게 해 주신 아버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뵙고 내려오는 길이 그리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일반 묘지에 갔다면 장마에 길이 좋지 않아 발이 빠졌을 것이고, 풀이 자라 묘지를 손질하느라 바빴을 것이고, 꽃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을 것이고....

내가 복이 많은 건지 아버님이 며느리인 나를 생각하셨는지 이런 호국원에 계시게 되는 일까지 기분 좋게 만들어주심에 감사를 드려야겠다.


맑은 하늘에 기분이 좋다가도 검은 구름만 보이면 여지없이 비가 내리는 여행이었다.


맑음과 흐림 그리고 쏟아지는 비로 오락가락한 날씨만큼이나 마음도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여행이었다. 한국에 살 때보다 한국을 떠난 후에 다시 한국을 찾은 이번 여행은 가족 전체가 아닌 딸과의 여행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 불안감이 항상 존재한 타국 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이 다 풀어져버린 넉넉한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들은 모두 불안해하는 고생이 예고된 장마철 여행을 한적하게 단지 우리에게만 포커스가 맞춰져 빛을 주는 그런 여행이었지 싶다. 홍수로 고생하시는 이재민에게는 정말 죄송스럽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해야 하나? 다음엔 장마철에 강원도 여행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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