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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Jul 30. 2020

'지네한테 신발을 다 파셨나 봐요?'

장마철이긴 하나보다.

멀쩡한 날씨로 잠시 들어간 백화점에서 일을보고 나오려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비를 피해야하는데 택시를 탈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휴~ 다행이다 싶어 안도를 하는데 택시 기사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물었다.


"오른쪽에 앉으신 분, 오늘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아... 네..(하며 희한해서 나는 언니를 흘끗 쳐다보며 웃었다)"
"지네한테 신발을 오늘 다 파셨나 봐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지네가 신어야 할 신발을 모두 팔으셨나 보다고요"
"음...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는데요(미국에 살다 보니 한국말도 점점 딸리고 영어도 그다지 늘지 않음을 한탄하는지라...) 지네가 왜 신을 신죠?"
"잘 들어보세요, 지네가 발이 아주 많죠?"
"그렇죠, 지네는 발이 많은 걸로 유명한 벌레죠"
"발이 엄청 많은데 그 발에 신을 신발을 다 팔았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어요. 지금 손님이 그렇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말이에요"
"아하... 정말 재미있는 표현이네요. 하하하"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니 양말까지 다 팔으셨나 봐요"
"맞아요. 양말까지 끼워 팔았어요. 으하하하하......"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에 의해 아주 큰소리로 경쾌하게 웃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다. 아주 힘들게 2주간의 자가격리를 끝내고 어영부영 2주가 쏜살같이 지나면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코로나로 제한이 되어 미국에서 어렵게 탈출한 빠삐용이 되었지만, 그저 즐거운 나날만이 아니라는 것을 슬슬 알아갈 참에 이 한마디의 유머가 단비같이 내리는 한줄기 장맛비처럼 시원하게 내 마음을 신나게 만들어 주었다. 지네가 신발을......



조금 생뚱맞지만 해마다 들리는 유행 코드의 획일화된 이슈가 하나 있다. 그것은 복고 바람이다. 내가 지금껏 살면서 해마다 "이번해는 유난히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과 " 이번해는 복고풍의 열기가 분다"는 말은 안 들어 본 해가 없다. 아마 모든 이가 매년 한번 이상은 듣는 레퍼토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번해는 정말 다르다. 물론 코로나로 인한 불가항적인 경제 하락은 아무도 이견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니 경제가 안 좋다는 말은 일단 동그라미다.  두 번째, 복고 바람이 분다는 말은 트롯으로 인한 가요계가 천지개벽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안될 만큼 대단한 복고 바람이다. 바람 이상이 불어 한국의 코로나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는듯 하다.  


나 또한 2주간의 격리를 격렬하게 불러 재킨 힘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미스터 트롯'이었다.


매번 언니의 전화로 들려왔던 것이 '난 매일 남자 7인방과 놀고 있어서 심심치 않다'였었다. 난 그랬다. '에구 울 언니가 이제 나이가 드나 보다' 한국에 있을 때 어른들이 절대 놓칠 수도 없고 친손주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티브이 속 가요무대가 트롯이었는데 그런 나이 든 프로그램의 대명사인 트롯에 내 눈에는 젊디 젊은 우리 언니가 빠졌다니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살짝 실망스러운 대화였다. 더군다나 내가 그 집에서 2주간 격리를 해야 하는데 한 발짝 나가지도 못하는 감옥살이를 어떻게 지내야 될까 심히 걱정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가격리 맨 첫날부터 86번 티브이만 하루 종일 틀어대는데 트롯만이 내 귀를 뱅뱅 돌았다. 그나마 미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차도 적응해야 하고 코로나의 위험으로 몸을 한참 움츠리고 있던터러 그런대로 티브이에 집중하지 않았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언니는 옆에서 계속해서 7인방의 이름과 노래를 연관 지어 설명하고 '안면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나는 몇 번이고 얼굴과 이름과 노래를 매칭 하는데 며칠이 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트롯의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1번은 임영웅, 2번 영탁, 3번... 4번 정동원, 5번.... 또 모르겠다. 아무튼 난 그중에서도 영탁과 정동원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영탁의 애교 섞인 말투와 몸짓에 따라 웃고 정동원은  내 아들 나이인데도 너무 어른스럽고 노래를 정말 잘해서 만약 14살이 아니었다면 분명 1등 자리를 꽤 찼으리라 생각될 정도이다.


트롯 7인방

트롯의 바람이 바람을 넘어 이젠 트롯만이 가요가 되어버린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트롯은 나이 든 사람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다른 장르 특히 요즘의 랩이 섞여 말을 하듯 읊조리는 노래 같지 않은 노래에 취해 사는 아주아주 젊은 층까지 트롯의 매력으로 빠져들었으니 과히 트롯세상이 되어버렸다. 오래된 유머에 상상을 더해 빵 터진 나처럼 삭힌 김치라 어른들만 먹었던 시어빠진 묵은지가 돼지고기를 넣어 푹 고아진 김치찌개가 되어 모든 사람의 입맛을 사로잡아 버린 셈이다.


이제는 차에서 흥얼거리는 노래가 '정동원의 보릿고개'이고 화장실의 오랜 시간을 '영탁의 찐이야'로 때운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 엄마와 아빠가 좋아하는 촌스런 트롯에는 절대 빠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시절이 이래서 트롯 대열에 합류를 한 것인지 시간이 주는 세월에 흔들려 트롯 매력에 자연스레 빠진 건지 물론 세월이 지나 봐야 알 수 있을 거 같다.


옛 시절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오늘, 나의 시절 흐름이 생각난다.

바로 열쇠 문화다.


내 어린 시절에는 쇳대라고 해서 잘 사는 기와집 곳간 열쇠 꾸러미를 누가 쥐고 있느냐가 관건이었다. 암암리에 벌어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구조 대결에 반드시 끼워져 있는 스토리에 곳간 열쇠가 있었다. 곳간이란 쌀이며 오래 보관하며 먹어야 하는 재료들을 창고에 넣어놓고 그 창고에 커다란 열쇠를 달아놓는다. 그 문을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을 딱 한 명 정해놓고 그 사람이 아니면 절대 들어가지 못하니 그 집안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이 바로 곳간 열쇠가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그 열쇠 주인이 집주인인 셈이다.


곳간 열쇠를 쥔자가 집주인이다


복사를 해서 쓰면 주인이 여럿이 되었을 것을 왜 꼭 하나만 있었을까 말하는 요즘 아이들도 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다음 세대 아이들은 정말 집 열쇠를 식구대로 하나씩 복사를 해서 어른들은 방마다 다른 열쇠와 집이여 방이며 차며 기타 등등 열쇠뭉치를 걸고 끼고 그 무거운 것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매번 잃어버리기 일쑤라 문고리 따는 직업이 따로 있을 정도로 대문 열쇠의 집착은 대단한 거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데로 가방에 달고 목에 차고 다니며 엄마 없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던 그런 때가 있었다.


열쇠뭉치는 그 사람의 직업과 신분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활이었다


그러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되어 현관에 번호키를 설치해서 열쇠 문화가 없어졌다.

그저 손가락으로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문이 저절로 열리고 기껏 아주 작은 단추로 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난 초창기 번호키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5년 동안의 시댁살이를 끝내고 아주 짧은 반바지와 엄청나게 큰 소리로 팝을 듣고 싶어 하는 열망 하나로 분가를 한 어느 날... 그날 나는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는 참이었다.


"어머나!"
"에미냐?"
"자... 잠깐만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함께 살았던 습관으로 아버님은 우리 집을 그저 아들 집이라 생각하시고 비밀번호를 누르시고 들어와 앉아계셨던 것이다. 물론 나에게 말도 없이 현관 번호를 알려준 남편이 너무도 원망스러웠지만 당장의 민망함에 부르르 떨어야 했던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누구나 번호만 알면 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폐해가 생각보다 심각한 과도기였다.


그 뒤로도 많은 시행착오로 시부모님과의 현관문 쟁탈전이 일어났지만 곳간 열쇠처럼 딱 하나가 그리 그리울 수 없었던 때이기도 한 시절이었다. 그렇게 열쇠 하나로 젊은 나를 힘들게 하셨던 아버님이 그리운 나이가 되어버렸지만 조금은 서운한 마음에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아버님, 그때는 너무하셨어요. 지금처럼 나이가 있는것도 아니고 그래도 제가 한참 어린 새댁이라 이것저것 가릴 때인데 오신다는 말도 안 하시고 번호 누르시고 소파에 앉아계셨으니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참 많이도 원망했더랬어요. 하지만 이제 제가 아버님의 그때 나이가 점점 되고 보니 얼마나 딸처럼 가깝게 생각하셨으면 그러셨겠어요. 그때 한 번이라도 눈을 찡그린 저를 아무 말 없이 눈감아 주셨던 아버님이 참 보고 싶습니다..."


지금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아마 그 어린 새댁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치를 가져다주고 싶어도 집안은커녕 1층 경비실에 맡기고 가야 그나마 말없이 가져왔다는 말을 안 듣는다는 요즘 세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랬던 시절에서 지금도 크게 변한 게 없는 한국인데, 미국은 완전 반대다.


한 번은 우리 집에 경찰이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은 일찌감치 한국의 버튼키를 현관에 설치했었다. 그런 문을 아주 희한하게 생각한 미국경찰이 우리에게 방범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 말하며 신기한 듯 여러 번 현관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만큼 일반 가정집에 버튼키 사용이 흔하지 않다. 지금까지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본적이 거의 없다. 희한하지 않나? 한국은 누구 하나가 좋다고 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일제히 교체가 되는 빠른 사회인데 미국, 그것도 뭐든지 먼저 발견되고 빠르게 전파될 거 같은 미국은 우리의 90년대 초에나 있었던 열쇠 꾸러미를 누구나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이 어이없게도 지금의 현실이다.


뭐든 빠르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빠른 한국이라,
복고 바람에 빠르게 후진기어를 넣는 것도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일인듯하다.


트롯이란 한방으로 확실한 복고로 도장을 찍어버리니 덩달아 청춘을 돌려달라는 말로 옛 추억의 장소도 많아졌다. 옛 음식에서 건축에 이르기까지 미래로만 돌진했던 무형의 미래형들이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백으로 심하게 후진하고 있다. 잠시 어리둥절하지만 또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다 같이 놀자 동네 한 바퀴'라는 노래처럼 다 같이 뒤로 돌아 한국 한 바퀴 도는 그런 시대인듯해 덩달아 좋다. 지금은 트롯이지만 언제 모두가 다같이 빠른랩을 읇조릴지 아무도 모른다. 참으로 재미있는 세상이다.


"지네한테 신발을 다 파셨나 봐요"의 유머 한마디가 번개 맞듯 웃게 만들고 아득한 복고 바람으로 들어가게 해서 이런 글까지 쓰게 했음을 그분은 아실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 하듯, 유머는 시들어가는 꽃에게 물을 주어 꽃을 방긋 피우게 하는 듯하다. 우리 한번 웃어봅시다. 푸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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