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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랜Jina Aug 13. 2020

운동을 싫어하면,  게으른 사람인 이유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마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횟수만큼 많이 들어본 말일 게다. 

어렸을 때 운동은 음... 따로 시간을 내서 할 필요가 없었다. 매일 걸어서 학교에 갔고 체육시간이 하루에 한 번 있었고 끝나면 걸어서 집에 갔다. 집에 가서도 숙제를 마친 아이들이 모여 뒷동산으로 들로 산으로 무리 지어 다니며 산딸기도 따먹고 아카시아 열매의 맛도 보고 다람쥐며 토끼를 쫒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면 엄마가 찾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렇게 놀아서인지 아니면 먹을거리가 충분치 않아서였는지 몸집이 좋은 아이는 가뭄에 콩 나듯 했고 오히려 그런 아이들은 인상이 좋아 보였고 귀티 나는 이미지였다.  


그랬던 시절이었으니 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매번 시절과 시대상이 주는 모순이 상반되어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과거로 회기 할 수 없는 일이니 말해 무얼 하겠는가?



어렸을 때 엄마의 운동은 요가였다.

고양이 자세라고 하시면서 아랫목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다음 머리를 서서히 바닥에 내리며 팔을 위로 올려 머리와 함께 천천히 내리며 허리를 쭉 펴면서 가슴을 바닥에 대며 얼굴과 팔도 그대로 일직선으로 바닥에 댄다. 얼굴을 다리 안쪽으로 끌어당겨 깊숙이 다리 아래로 넣고 팔을 더욱 길게 바닥의 위로 뻗으면서 긴 호흡을 내쉰다. 그러고 한참을 있다가 제자리로 당겨 호흡을 하고 다시 얼굴을 끌어 다리 사이로 끌어 넣기를 반복한다.


낙타자세도 하시고 코브라 자세도 하셨다. 그러시기를 1시간 정도 하시고 맨손체조로 마무리를 하시면서 '에구 오늘도 다했다' 하시며 빙그레 웃으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니까 엄마가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으신 운동이다. 그래서인지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난 후 지금처럼 침대에만 누워계시기 전까지 허리가 하나도 굽지 않고 꼿꼿하게 걸으셨다. 식사도 잘하셨고 치매로 기억을 잃으신 거 말고는 내장 장기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는 없으셨으니 운동으로 단련된 건강은 유지된 셈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운동신경이 아주 잼뱅이진 않았다.

적어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말이다. 100미터 달리기는 16초 1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테니스팀이나 핸드볼 골키퍼도 잠깐 했었다. 당연히 체력 검사도 밀리지 않았고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도 신체나이가 5살 이하로 나와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기쁨을 감출 수 없음도 고백한다. 어쩌다 이렇게 운동과 담을 쌓는 인생을 살게 됐느냐 하면 대학 2학년이 막 되었을 때이다.


엄마와 시장에 갔다가 김칫거리를 통째로 들어 올리다 갑자기 허리에 무리가 왔다. 그날부터 난 한 달 반 동안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병상생활을 해야 했다. 다행히 유급을 당하지는 않고 수업일수를 채울 수는 있었지만 하마터면 휴학을 해야 했다. 그 당시 지압을 잘하시는 어떤 분의 기가 막힌 치료로 완치를 했지만 그 뒤로는 내 허리를 심하게 움직이는 일이 없었다. 운동은 물론이고 의식적으로 무거운 물건을 든다거나 옮기는 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었고 허리를 써야 하는 운동을 아예 생각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동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또한가지 이유가 있다. 나의 위장에 문제가 있다. 거짓말 같지만 고등학교 때의 몸무게가 거의 변동이 없다. 심지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한 달 안에 원상복귀가 되는 이상한 몸이다. 모르는 사람은 그런 나를 독하다 말했다. 얼마나 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면 출산 후 한 달 만에 원래 몸으로 돌아오냐는 말을 들었다. 뭐 억울하기는 하지만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쭉쭉 살이 빠지니 연예인처럼 체계적인 출산 후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아닌데 원상복귀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몸에 후한 점수를 줘도 될만하긴 하다.


하지만 나는 나대로 힘든 점이 있다. 보통 그런 말이 있다. 너무 배가 고플 때 뱃가죽이 등에 붙는다고 하는데 내 배가 좀 그런 편이다. 가끔 정기검진 때 위나 내장이 보통보다 작다는데 왜냐면 허리뼈와 갈비뼈의 간격이 지나치게 가까우면서 옆으로 섰을 때의 두께가 얇아 내장기관이 작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남들에 비해 많이 먹을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과식을 하면 위가 늘어나면서 배가 아프고 급기야는 체하고 토하고 난리도 아니다.


거기다 조금 낯선 사람과 식사 자리가 있으면 조금만 먹는다는 말이 듣기 싫어 선수 쳐서 과식을 하다 보니 급체에 시달리고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 뒤로는 절대 나에게 많이 먹으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급기야 내 앞자리에서 같이 밥먹기를 꺼린다. 같이 먹으면 덩달아 밥맛이 없어진다나 뭐래나...



그러니 허리가 좋지 않아 운동과 자연적으로 멀어진 데다, 조금 마른 체형이라 운동을 하면 더 빠질 거 같은 생각에 더욱 운동을 하지 않게 된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에 비해 남편은 운동 마니아다. 지금이야 코로나로 센터에 가서 운동을 할 수 없으니 걷는 운동을 한다. 하루 만보를 실천하는데 기어이 정말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만보 걷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매번 같이 운동하기를 원했지만 그때마다 하는 시늉만 하고 돈만 까먹는 일을 반복하니 이제는 뭐든 같이 운동하자는 말이 쑥 들어간 상태이다.


그런데... 왜 남편의 배 둘레는 줄지 않고 그대로인지 모르겠다.

매번 나에게 힘듦을 호소한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하는데 자기의 몸은 한치의 동요가 없는데 반해 운동이라면 치를 떠는 운동 제로인 나는 왜 자기처럼 몸무게 요동 제로가 되는지에 항상 불만과 의심 가득이다. 희한하긴 하다. 의사는 메타볼리즘이 남들에 비해 많아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라고 하는데 맞는 말이지 싶은 게 두 딸 중 한 명은 조금만 먹어도 아빠처럼 찌는 타입이고 한 명은 나처럼 잘 찌지 않는 체질을 가지고 있다. 찌는 타입의 내 큰딸에게 원망을 듣는 남편이 힘들어한다. 에구...


몸을 써서 하는 건 잘 못하지만 내가 제일 잘하는 운동은 가만히 누워서 천정을 보는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무인 상태에 빠져 무아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머릿속에서 생각을 걷어내고 허공을 응시하며 하염없이 무이고 공인 상태에서 가만히 한 곳을 응시하며 한참을 그대로 멈추어 있다. 뭐 복식호흡이라도 하느냐 묻는다면 부끄럽지만 그것도 아니다.


누워서 올려다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일단 창문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파란 하늘 사이사이에 보이는 구름과, 구름 사이로 보이는 새들 그리고 가까이에 흔들리는 초록잎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창문에 붙은 하루살이의 날갯짓도 미세히 흔들리고 초록잎에 점점 물들어가고 있는 오렌지빛바랜 잎들도 수줍게 숨어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거기에 거미가 출동하면 기막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짜 티켓을 덤으로 챙기는 일이 된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텅 빈 공간에 무슨 서커스 묘기도 아니고 맨 위에서 아래로 쭉 내려오면서 한 면을 치고 반대편으로 춤을 추며 뛰어올라 면을 찍고 그 사이에 한 면씩을 찍으며 일단 제일 큰 사방형을 만든다. 그다음 정가운데를 기점으로 한 면씩 아주 정교하게 칸칸이 메꾸어 나간다. 작게 작게 그리고 좁게 좁게  면씩 아주 빠르게 또는 아주 느리게 거미 엉덩이에서 끊임없이 줄을 내어놓으며 집을 짓는다. 이때 인내를 가지고 다 지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거미의 집 짓기는 상상 초월할 정도로 정교하고 정확하다.

가운데 점에서 시작해 가장 먼 곳까지 처음엔 촘촘히 시작하다 간격이 점점 넓어진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공연을 보는듯하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한 칸 한 칸 마치 미리 설계도를 가지고 집을 짓는듯하다. 개미가 집을 아주 잘 짓는다는 이야기들은 수없이 많지만 개미의 집짓기 모습은 땅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다. 하지만 거미의 집짓기 모습은 조금만 우리가 관심있게 거미의 행동반경을 눈으로 따라가 보면 쉽게 볼 수 있다.


운동으로 치면 거미의 운동은 한번 시작하면 끝이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이니 처음부터 정확한 계산하에 시작해야  일이다. 그렇다고 치면 내가 거미의 운동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눈 운동도 크게 점수를 주어야 마땅하다. 거미는 그렇게 힘들게 집 짓는 운동을 마치면 완전히 지쳐 그대로 한쪽 구석에서 쓰러져있는 듯 숨죽이고만 있는다. 집만 지어 놓으면 거미줄의 점액 때문에 날아가며 부딪쳐 얻어걸린 작은 벌레들이 거미의 밥이 되기 때문이다. 그물을 강가 물밑에 숨겨놓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저절로 얻어걸리는 물고기 잡기처럼 쉬운 게 거미줄 사냥이다.

처음 지을때는 촘촘하게 이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군데군데 찢기고 구멍이 난다

누워서 이런 거미를 보다 문득 생각이 났다.

거미처럼 집 짓기만 열심히 하고 나면 가만히 있어도 돈이 나와 일하지 않고 그냥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면 열심히 주워진 일만 하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어 절대 살이 찌지 않는다면, 모두가 정말 열심히 일만 할텐데 하며 혼자 웃음 짓는다. 이러니 나처럼 운동을 안 하는 사람이 게으른 이유가 될 수 있다. 운동을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직업이 운동이고 운동을 해야 성취감을 느끼는 소수 몇을 빼고는 운동이 죽을 거처럼 싫지만 할 수 없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약 꼭 운동을 해야지만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 나도 운동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 부지런하게 집안일도 하고 부지런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집 앞 산책조차도 혼자 생각으론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니 참으로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마른 사람이 지금은 좋을 수 있지만, 결국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하든 아니든 운동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한국에 오니 집안에서 활동하는 동선이 적어 집안에서의 운동량은 미국에 비해 적지만 집 밖을 나와 조금만 나오면 곳곳이 산책로요, 공원들이 있어서 사람 구경을 겸비한 걷기 운동이 이리 좋을 수 없다.


나처럼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건강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고 그 노력은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연결됨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운동을 하면 좋은 점은 이 지면을 통해 모두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도 사실이다. 노폐물을 빼주어 신진대사에도 좋고 모르핀이 나와 기분이 상승하는 효과도 있다는 것도 알고 그리고 면역체계가 높아져 계절감기 예방에 좋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듯하다. 특히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코로나에 걸리지도 않고 걸린다 해도 무증상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운동 하기 싫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과 함께 천천히 산책 하기를 권하고 싶다.

나지막한 오르막 봉우리 산도 좋고 작은 내천에 핀 들꽃의 수줍음을 보기 위해서라도 잠시 걸어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한국에 와서 그나마 장맛비로 산책 또한 마음껏 하지 못했지만 동네 매봉산이 언니와 나의 작은 산책로가 되었고 조금 더 걸어 양재천으로 가면 지친 도시인에게 작은 위안을 주는 안식처처럼 멋지고 나지막한 나무들이 이들을 반기며 초록으로 눈의 피로를 씻어주었다.


운동이 싫다면 저녁 먹은  가족과 함께 산책하며 오손도손 이야기도 하고 거미줄에 걸린 맑은 빗방울을 보며 코로나로 울적하고 장마로 우울한 마음을 날려보는  어떠할지...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게으른 사람은 아니지만 운동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부지런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그런 의미로 산책도 운동으로 쳐주면 좀 덜 게으른 사람이 될 것도 같은데...

양재천의 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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