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의 운명

by 멜랜Jina

내 주위에 보이는 식물이 많지는 않다. 여기가 미국의 시골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완전 깡촌이나 아궁이에 불 때서 밥해 먹는 시골은 아니고 배추 심고 파 심어 자급자족하는 수준도 아닌 전원주택쯤으로 생각하면 딱 맞을성싶다. 그런 시골이니 내가 볼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하면 음... 부지런한 주부들이 조그마하게 가꿀 수 있는 작은 텃밭에서 소박하게 피워내는 호박이나 깻잎 아니면 파? 정도다.


옛 시골, 내가 자랐던 동네에서 그 정도의 텃밭에 매일 물주시고 조금 자라면 하나하나 따고 캐서 정성껏 식탁에 올리셨던 엄마의 추억으로 잠시 들어가 보면,


1평이나 될까 한 텃밭에 이것저것 심으셨던 거 같다. 상추는 기본이고 파를 밑동 구리만 콕 박아 놓고 손톱 크기만큼 자라면 싹둑 잘라다 된장에 넣으셨고 호박이 넝쿨째 자라면 연한 호박잎을 한 장 한 장 뜯어서 밥 뜸 들일 때쯤 살짝 밥 위에 얹어놓으면 알맞게 쪄진다. 잎에 난 보송보송한 까끌함을 뒤집어 손바닥에 얹고 고소한 양념장을 얹어 먹으면 그 향긋한 풀내음이 입안 가득 퍼졌다. 감자를 캤던 기억까지 있는 거 보면 그 자그마한 텃밭에 제법 이것저것 심어놓으셨나 보다. 아무래도 먹거리가 귀했던 시절이라 손수 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가 했던 가난한 시절이었으니까.


그때의 가난으로 일구었던 먹거리들이 지금은 올개닉이라고 해서 농약을 치지 않았다며 오히려 비싼 돈을 들여 구입하는 시절이 되어 집에서 손으로 직접 길러 먹는 먹거리가 유행처럼 번졌다.


나도 몇 해 전에 1평 정도의 텃밭을 가꾸어본 적이 있다. 주방과 가까운 거리에 텃밭이 있어야 그나마 음식을 하다가도 쉽게 이용을 할 수가 있고 내 손이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라야 잘 키울 수 있는 그야말로 거리싸움인데, 내 텃밭은 집에서 가장 먼 곳을 택한 게 가장 큰 실수였다.


텃밭의 가장 중요한 점은 햇볕이 잘 들어오는 남향이어야 하고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한 곳을 고르는 게 가장 큰 관건으로 생각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어오고 사방이 유리창으로 되어있어 동물들의 행동을 집안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을 들어 택한 곳이 우리 집 썬룸, 바로 밑으로 텃밭을 만들었다. 그러니까 우리 집의 가장 끝에 위치했고 주방에서는 가장 멀고 약간 언덕인 그곳으로 가서 매일 물을 주어야 하고 문제는 밥하다 가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일은 내 시야에서 먼 곳이라 인간의 발걸음이 뜸하다는 사실을 우리의 영리한 주변의 동물들 특히 사슴들이 모를 리 없다는 것이다.


사슴의 주식이 무엇인가? 바로 호박잎이나 고춧잎 등 모든 종류의 싹들을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분명 어제 물을 주면서 정성껏 씨 뿌렸던 곳에서 싹이 나 너무 신기해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기고 다음날 얼마나 더 자랐을까 기대하며 가보면 그새 손톱만큼의 싹을 싹둑 잘라먹은 이빨 자국을 보면 이런.... 정말 야속하리만큼 말끔히 해치워져 있었다. 약이 올라 어설프지만 나름 울타리를 치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어찌 그리 야심 차게 먹어 치워 버리는지...


사슴 공격이나 토끼 심지어 새들의 먹이 사냥에 나의 수고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하기까지는 봄에서부터 가을까지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뒤로 몇 해가 지나고 이번해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로 집안에 묶인 바람에 다시 먹거리 발동이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주방에서 문을 열면 베란다가 있는데 딱 그곳으로 정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물을 주기도 편하고 사슴에게 나의 먹거리를 빼앗기지 않아도 되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해가 그전처럼 하루 종일 내리쬐는 남향이 아닌 북향이라는 거와 진짜 텃밭이 아닌 텃밭 모양을 한 작은 화분이라는 거..


그렇게 시작을 했다.


일단 빨간 상추와 아삭이 고추 그리고 호박을 작은 화분에 나누어 심었다. 진짜 씨를 심는 건 싹이 나올 확률이 50% 밖에 되지 않아 시간과 공간의 여유가 없으니 누군가가 틔운 자그마한 싹들을 구매해 좋은 흙으로 채우며 심었다. 물을 충분히 주고 그나마 해가 제일 오랫동안 받을 수 있는 베란다 가장자리에 정성껏 올려놓았다.


하, 이번엔 해가 너무 모자라는지 아니면 해가 받는 일조량에 비해 물의 양분이 많은 탓인지 점점 굵어지며 크게 자라야 할 줄기가 비실비실 말라깽이처럼 삐쩍 마른 줄기로 키만 커지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멈추어 버렸다. 이런... 엄마가 가꾸던 텃밭에서는 쑥쑥 잘 자라 우리에게 건강을 제공하더니 내 텃밭에서는 왜 그리 어렵게 크는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상추는 봄에 한번 심어놓으면 매번 따먹어도 자라고 자라서 정말 가을까지 잊어버리고 먹을 수 있는 게 상추다. 고맙지 않을 수 없다. 깻잎은 더 좋은 점이 있다. 한 번만 심어놓으면 상추처럼 매번 뜯어먹을 수 있을뿐더러 가을에 깻잎의 씨가 흩날려 그 씨들이 혼자 번식해서 다음 해에는 씨가 흩날린 그 어느 곳이든 깻잎의 싹이 난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 집 뒷마당엔 깻잎이 봄에 지천으로 깔린다.


호박은 깻잎처럼 씨로 번식하는 대단한 녀석은 아니지만 호박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는 말이 있듯이 호박은 하나의 싹에서 줄기가 나오고 줄기가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고 옆으로 퍼지면서 줄기에서 다른 줄기를 만들어 넝쿨을 만들고 그 줄기마다 이쁜 호박꽃을 피우로 꽃핀 자리마다 튼실한 호박을 만들어낸다. 넝쿨에 둥그런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이 정말 행복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에 반해 정말 콩 심은 데 콩 하나 나고, 팥 심은 데 팥 하나만 나는 먹거리가 있다. 바로 고추와 오이 그리고 토마토다. 이 아이들은 1+1=2 듯이 한 뿌리 심으면 딱 한줄기가 올라오고 딱 그 줄기 하나에서 고추가 나오고 오이가 열리고 토마토가 나온다. 그러니까 이런 아이들은 처음부터 몇 개를 쌍으로 사야 그나마 여러 개 수확할 수 있다. 그것도 다 키워서 딱 한 번만!! 식물도 인간처럼 생긴 다르면 열매 맺는 과정에서부터 수확하는 방법이나 결과물이 다르다. 식물이 먹거리가 되는 과정과 번식 그리고 유익한 종과 그저 그런 종이 있다는 걸 보면 사람이나 식물이나 매 한 가지라는 걸 또 한 번 배운다.



그럼 옥수수는 어떨까?


처음에 소개한 엄마의 텃밭에 울타리 삼아 빙둘러쳐진 키다리 아저씨의 몫은 단연 옥수수였다. 옥수수는 오이와 고추처럼 딱 한자리에 곧이곧대로 하나의 줄기로 키가 크면서 서너 개의 옥수수를 키워낼 뿐 다산의 식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춧잎이나 호박잎처럼 열매 이상의 사이드 먹거리도 제공하지 않는 아주 도도하고 딱 부러지는 식물이다.


여기 옥수수의 운명은 한국의 운명과 다르다. 한국의 옥수수는 노란 알갱이가 드문드문 빠진 듯 삐죽이 키가 달라 얼기설기 수줍게 다른 모습으로 서로 키재기에 바쁜 반면, 미국의 옥수수는 미국 사람처럼 키가 크고 똑같은 키와 똑같은 개량종으로 일렬종대의 군대식 모습을 하고 있다. 일단 소매점에서 옥수수 씨를 본 적이 없다. 그 말은 대량생산으로 즉, 아주 넓은 땅에 기계를 이용해 대량으로 심어서 대량을 수확한다. 우리 집 근처에는 옥수수밭이 천지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도 옥수수는 천지에 있다. 오죽 넓은가? 미국의 땅들이.. 너무 넓은 땅이다 싶으면 여지없이 옥수수밭이다. 옥수수 생산량이 전 세계 1위라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파릇한 초록으로 아주 나지막하게 싹이 나면 옥수수를 이제 막 심은 봄의 소리다.

키가 발목만큼 자라 푸르고 여린 잎들이 듬성듬성 보이면 봄이 익어가는 소리고,

허리만큼 키가 자라고 초록 잎들이 빼곡해지면 이른 여름을 알리는 싱그런 태양빛의 따가움이다.

시간의 흐름이 옥수수의 키만큼 자라고 있음을 세월이 재촉이라도 하듯 이때부터 나의 바람은 그만 컸으면 하는 마음으로 전환된다.

하지만 여지없이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가는 가을에 더 이상의 싱그러움은 없다.

이미 다 커버린 옥수수는 초록이 아닌 늙수그레한 노랑으로 기다란 수염을 기어이 늘어뜨린다.


이럴 때 우리가 쓰는 말이 있다. 벼와 옥수수수염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그래서 뭐, 고개를 숙이니까 좋은 거라고? 뭐, 고개를 숙이며 자기를 낮춘다는 그런 의미? 난 실제로 옥수수의 수염이 축 늘어트려지면 너무 서글프다. 세월의 흔적이 그래, 나이의 흔적이 옥수수의 수염으로 축 쳐져 생기도 없고 힘도 없어지는 신체적 나이 같아서 기분도 따라 쳐진다. 더구나 수염이 쳐지면서 옥수수가 비쩍 말라가며 누런색에서 빛이 바래고 바래 아주 하얗게 떠버린 종이 짝처럼 말라지고 바래지면 밑동이 싹둑 잘려나가 버릴까 매일 불안해진다.


바로 지난 토요일, 아침마다 조마조마했던 나의 마음을 싹둑 자르기라도 하듯 처량맞게 뚝잘려 밑동 구리만 겨우 그 넓은 들판을 뾰족뾰족, 얼기설기 수놓고 있었다. 아! 마음이 아프다. 아픈 마음은 단지 옥수수의 잘린 밑동 구리 때문만은 아니다. 곧 닥칠 싸늘한 겨울바람의 예고가 있기 때문이다. 겨울바람이 불면 차가운 눈이 그 빈자리를 매울 것이고 사이사이에 구멍 난 옥수수 뿌리 자리를 차지해 더 시린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모진 찬바람을 이겨내야 따뜻한 바람이 부는 봄을 맞이할 것이다.


가만 보면 옥수수처럼 내 주변 근처에서 쑥쑥 건강하게 단숨에 자라 순식간에 사라지는 식물을 본 적이 없다. 단 7개월 만에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없어지기까지 아주 짧고 굵게 살다 간다. 그것도 키가 아주 크고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나왔다가 쿨하게 서너 개 자신의 열매를 세상에 던져주고 가버린다. 짧은 밑동 구리로 자신의 흔적을 아주 잠시 남기고 그나마도 찬바람이 불고 그 자리에 눈의 온기를 담아 흔적 없이 사라진다. 비옥한 다음 해의 땅을 위해...


난 이런 옥수수의 위용을 좋아한다.


그리고 흔적 없는 자신의 모습을 지우는 자연섭리를 좋아한다. 깻잎처럼 씨를 바람에 날려 원치 않을 수도 있는 땅에 자신의 흔적을 여기저기 남겨놓는 거에 비하면 얼마나 깔끔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만의 길인가? 호박처럼 하늘을 향해 오르지 않고 땅으로 번식하지 않은 점도 멋지다. 오로지 꿋꿋하게 하늘을 항해 뻗어나가는 오롯한 행로 또한 마음에 든다.


고추나 오이 그리고 토마토처럼 다산을 하지 않는 점이 단점일 수 있겠으나 이점 또한 완벽하지 않은 야무지게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점에서 안쓰러우면서 도도한 모습이 슬프지만 시크해 보인다. 옥수수수염차를 왜 좋아하는지 몰랐다. 커피를 많이 먹으면 몸에 좋지 않다는 통상적인 개념을 살짝 받아들이는 차원에서 대체음료로 택한 것이 옥수수차였는데 그 맛이 그야말로 옥수수의 성격 그데로인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일단 맛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얇다. 그리고 담백하다. 커피의 쓴맛과 단맛에 익숙한 나에게는 입안에서 돌다 목 넘김까지 1도 느껴지지 않는 밋밋함, 그 자체인데도 입안을 깔끔하게 정화시키는 청량감이 있다. 그렇다고 사이다같이 톡 쏘는 상큼함을 가장한 가짜 맛이 아니다. 맑은 조갯국이 시원함을 주는 것처럼 그런 담백하고 맑은 기품 있는 맛이다. 그렇다고 그린티나 밀크티처럼 물 건너온 고급진 이름과 맛도 아니다. 그런 고급진 이름의 진중한 뒷맛의 텁텁함도 남기지 않는다. 입안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도도하고 시크한 맛이다. 옥수수가 남긴 마지막 수염의 뒷맛은 무언가를 남겨야 하는 진한 인간의 욕망을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멋지다.


옥수수가 주는 의미는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생의 긴 여정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엔 보기에도 아까울 만큼 쑥쑥 키가 큰다. 드넓은 평야에서 뜨거운 햇살을 받고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뽐내며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의 크기와 빛깔로 누구 못지않게 도도히 성장한다. 성장이 멈추고 열매가 익어가며 주위를 보게 된다. 모두가 같이 성장하고 함께하는 관계 속에서 즐겁지만 외롭게 익어감을 경험한다. 성장시켜야 할 열매를 위해 기꺼이 온몸으로 햇볕을 받으며 인내하며 그들을 키워낸다. 양분을 고루 나눈 키다리 아저씨의 수염은 쳐지고 빛은 점점 바래서 누렇게 뜨고 삐쩍 말라간다.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옥수수 열매는 사람과 모든 동물들의 사료로 쓰이고 마지막 남은 마른 옥수수수염은 인간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맑은 차로 희생한다. 나 또한 이런 옥수수 같은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단맛과 쓴맛이 진한 그런 맛이 아닌 조용하고 기품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남은 자리는 빈자리로 다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할 때 그냥 그런 사람이 조용히 왔다가 조용히 갔노라 말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엄마가 가꾸셨던 작은 텃밭의 옥수수 울타리처럼 그냥 누군가의 울타리로 남으면 그뿐인걸... 오늘도 따뜻한 옥수수 차를 마시며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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